소설리스트

18화 (19/65)
  • 빈센트가 담배를 한 번도 안 피워 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한 새벽이 되면 달을 보면서 몇 대나 태우곤 했다.

    그러나 빈센트는 마치 처음 담배를 태우는 것처럼 긴장되었다. 아마 고요한 맹수처럼 그를 빤히 응시하고 있는 요하네스 때문일 것이다.

    희뿌옇게 흩어지는 연기 속에서 지나치게 선명한 노란 눈이 빈센트가 시가를 잡아 들어 입술에 무는 것까지 꼼꼼하게 좇고 있었다.

    “아시겠지만.”

    그러나 이 정도 위압감을 참지 못한다면 ‘에이스’를 폭발시키는 주역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빈센트는 턱을 치켜들며 태연하게 말했다.

    “남부는 매일같이 시끄러워서 좀 성가십니다. 그래도 비밀리에 사업하기는 딱 좋죠. 워낙에 뜨내기들 천지에다가 겁쟁이들만 모인 무법 지대에 가까우니.”

    요하네스가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미 상대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한 오연한 웃음이었다. 빈센트는 속으로 욕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제국의 눈을 피해 꽤 괜찮은 무기들을 유통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황실에서도 모르는 비공식적이고, 아주 훌륭한 놈들이죠.”

    시온이 그에게 지시한 것은 간단했다.

    “무기 사업을 핑계로 다가간 척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 어차피 요하네스 역시 우리를 의심하고 있을 테니 무조건 오랜 시간 잡혀 있을걸.”

    과연 요하네스는 샅샅이 탐색하는 눈빛으로 그를 훑으면서, 카드 룸 밖으로 나갈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단순한 검이나 방패, 이런 것이 아니고 꽤 성능이 좋은 폭탄도 취급하고 있지요.”

    빈센트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국에서는 금지시켰지만 말입니다.”

    폭탄 및 화약은 제국에서 유통을 금지시킨 품목이었다. 아직 불안정하여 사고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특히 ‘에이스’가 불법 화약을 유통하며 폭발했다는 사실을 들어 더더욱 단속하곤 했다.

    시가 끝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의도된 정적을 만든 요하네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총도 다루나?”

    “…총이요?”

    “그래. 지금 유통되는 총들은 너무 무겁고 불발률도 엄청난 데다가 반동이며 소리도 지나치게 커.”

    “아….”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엘로이즈가 지난 사냥 행사 때 오래된 총을 다루다가 반동 때문에 어깨에 부상을 심하게 입었지. 엘로이즈 정도의 체구가 작은 여성도 잘 다룰 수 있는 가볍고 개조된 총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는데.”

    빈센트는 아쉽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총 개발에는 별 흥미가 없어서요.”

    “아쉽게 됐군.”

    요하네스는 혀를 한 번 차 보였으나 전혀 아쉬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을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빈센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엘로이즈와 총이라… 총을 든 엘로이즈는 상상이 잘되지 않는걸요. 북부가 그렇게 험한 곳이라면 역시 엘로이즈에게 어울리는 곳은 남부인 것 같습니다.”

    빈센트는 걱정된다는 표정을 적나라하게 지어 보이며 말했다.

    “원래 엘로이즈가 어릴 때부터 외부 출입을 잘 안 해서… 미지의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호기심이라.”

    “동화책 몇 권 읽고 북부에 가 보고 싶다고 많이 얘기 했었는데, 부상까지 입었다면 이제 북부가 동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환상적인 곳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겠죠.”

    순간 요하네스의 눈이 번쩍이는 걸 빈센트는 바로 눈치챘다.

    “그리고 도발해. 엘로이즈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뉘앙스로 몇 마디하면 될 거야.”

    인정하기 싫지만 시온의 말은 귀신같이 맞아떨어졌다. 엘로이즈와 남부 이야기가 나오자 절대 깨질 것 같지 않았던 요하네스의 평정심이 바로 흔들렸다.

    그리고 빈센트의 입장에서 그건 별로 어려운 도발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진심으로 엘로이즈가 잠시 필요에 의해서 북부에 갔을 뿐, 마법진만 지우고 나면 결국에는 그와 시온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애가 좀… 순진하고 맘이 여려요. 가까이서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그래서 제가 늘 걱정이 많았죠.”

    빈센트의 말에 요하네스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다고 남부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던데.”

    “하지만 남부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시온처럼 지내는 건 아니니까요.”

    빈센트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다시 저와 함께 지내면 됩니다. 그 애가 좋아할 만한 고즈넉한 바닷가 주변의 저택도 이미 마련해 두었으니.”

    “남의 아내에게 상당히 관심이 많군.”

    “글쎄요. 엘로이즈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내내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애가 아주 어릴 때부터 내내 봐 왔어요.”

    “…….”

    “1년도 안 되는 충동적인 결혼 생활 같은 건 솔직히… 아, 아닙니다.”

    더 도발하려던 빈센트가 입을 다문 것은 이러다가 본래의 목적을 잊을 것 같아서였다. 요하네스의 얼굴은 명백히 굳어 있었고 못마땅함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현명하군.”

    요하네스가 낮게 말했다.

    “더 이상 입을 나불거렸다가는 그 손에 화상 자국이 하나 더 생길 수도 있었거든.”

    빈센트는 원래 남의 비위를 맞추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불쾌한 것은 둘째 치고 상당히 섬뜩했지만, 걸려 있는 것이 엘로이즈의 목숨이었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온몸으로 쏟아 내고 있는 불쾌함에 대해 혼자서 자조적으로 평가할 뿐이었다.

    ‘생각보다 완벽하게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편은 아니군. 사교계에서는 나름대로 여우같이 행동한다던데 헛소문이었나.’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오랜 시간 엘로이즈를 괴롭혀 댄 주제에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제 아내에 대한 소유욕을 표현해 대는 것이 내심 웃기기 그지없었다.

    그동안 엘로이즈가 얼마나 그를 성가셔했는지 전혀 모르겠지. 그것이 주는 감정적 우위가 없었다면 빈센트 역시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더 이상 엘로이즈에 대해서 말해도 안 될 것 같아서 난감했다. 그를 지나치게 도발한 나머지 폭주해서 이 자리를 파하게 만드는 것도 곤란했다.

    다른 화제로 조금 더 시간을 끌어야 하는데, 폭탄 말고 다른 미끼를 던져야 하나. 빈센트가 빠르게 다음 무기에 대해 말하며 넘어가려고 할 때였다.

    “뭐, 새로운 무기가 필요하긴 해. 요즈음 악령들이 아주 이상하게 움직이고 있어서.”

    마치 빈센트를 갖고 노는 것 같은 화법이었다. 빈센트는 그 사실을 알아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한두 개가 아니야.”

    요하네스는 얼마 피우지 않은 시가를 비벼 끄며 성가시다는 어조로 말했다.

    “얼마 전에는 에멘타의 유제이 왕녀까지 찾아와서 하급 악령을 잔뜩 퇴치해 주고 가기까지 했지.”

    “그랬군요.”

    딱히 별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 같은데, 빈센트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해서 생뚱맞다는 듯한 표정을 지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요하네스가 비벼 끈 시가를 탁, 하고 던지듯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하급 악령들이 떨군 보석들을 제 목걸이에 넣지 않더란 말이야.”

    빈센트가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은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에멘타 왕국조차도 아주 낯선 곳이었는데, 그곳의 왕녀와 목걸이가 무슨 상관인지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뭐, 별일 아닐 수도 있는데… 그게 내내 거슬리더란 말이지.”

    “…….”

    “아, 미안하군.”

    역시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요하네스가 씩 웃었다. 빈센트가 알아듣지 못했다는 걸 짐작하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남부 사람이라 북부의 일들에는 관심이 없을 텐데 말이야. 그럼 무기 얘기나 해 볼까.”

    그의 금빛 눈이 아직 시가를 쥐고 있는 빈센트의 손으로 향했다. 요하네스가 여유롭게 덧붙였다.

    “느낌상 아주 유능한 무기 개발자 같은데.”

    ⚜ ⚜ ⚜

    빈센트와 요하네스가 카드 룸에 들어간 이후, 시온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저렇게 밀폐된 곳으로 데려갈 줄은 몰랐는데. 대충 구석에서 이야기를 나눌 줄 알았지….”

    “그러게. 빈센트 잘하겠지?”

    나는 연신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눈을 굴렸다. 계속 나 혼자 움직이다가 갑자기 단체 활동을 하려니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아.”

    시온은 진지해진 얼굴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어쨌든 시선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건 또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주변을 서성이고 있던 베이든에게 살짝 눈짓했다.

    나는 베이든에게 싱긋 웃어 주었고 베이든이 홀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구석에 있던 페이건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시온은 미심쩍다는 듯이 그 꼴을 보고 내게 물었다.

    “…정말 저 사람이 네 편인 건 맞지? 그게 아니라면 모든 게 다 틀어지는데.”

    “일단은 맞아. 3개월 동안은 확실히?”

    지금은 신중을 기하기보다는 무작정 질러야 할 때였다. 연회는 단 한 번뿐이었고 다음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내 성력을 믿었다. 내 성력만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지금 베이든은 본능적으로 악령을 퇴치하는 성력에 홀려서 ‘엘로이즈는 무조건 선한 일을 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베이든이 페이건에게 뭐라고 속삭이자, 페이건은 씩 웃으며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눈짓하면 베이든이 ‘마님은 내가 지켜보고 있겠네. 레오 공자님께 가주게. 공작님이 걱정하고 있는 것 같으니.’라고 하기로 한 것이다.

    평상시라면 요하네스에게 한 번 더 확인했을 페이건이지만, 세예나와 연회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해서 바로 미끼를 물어 버린 듯했다. 역시 베이든의 말대로 사랑은 사람을 참 이상하게 만드는 법이었다.

    베이든은 해냈다는 얼굴로 나를 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나는 엄지를 치켜올리며 화답했다. 누구나 요하네스의 편이라고 믿고 있는 최측근을 내 편으로 끌어드리니 많은 일이 쉬워졌다.

    내가 여유 있게 시온과 춤을 추고 있는데 시온이 낮게 말했다.

    “그리고 잊지 마, 엘로이즈.”

    “뭘?”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일이 다 잘 풀리는 것 같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무조건 요하네스를 유혹해.”

    “그게 말이 쉽지….”

    “할 수 있어.”

    시온이 짙게 웃으며 말했다.

    “대충 내가 지금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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