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2/65)
  • 다음 날 새벽, 요하네스의 집무실에는 세 명의 기사가 모였다. 세예나와 페이건, 그리고 베이든이었다. 요하네스의 최측근이기도 했다.

    “연회가 내일 밤이지요?”

    페이건은 다소 거칠어 보이는 주군의 얼굴을 흘끗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요하네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담담하게 말했다.

    “세예나, 너는 레오의 호위로 있도록 해. 어차피 그렇게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레오를 해칠 이는 없지만 어쨌든 내가 함께할 수 없으니 신경이 쓰이는군.”

    “예, 알겠습니다.”

    보통 어린아이들은 어린아이들끼리만 모여 별도의 공간에서 파티를 열었다. 그러므로 요하네스와 엘로이즈는 레오와 어쨌든 분리되어 있어야 하는 셈이었다.

    “페이건, 너는 연회를 적당히 즐기되 엘로이즈가 나와 떨어질 때 몰래 호위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페이건은 시원스럽게 대답하고 조용히 덧붙였다.

    “…감시도 포함된 거죠?”

    요하네스는 별다른 고저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만일 엘로이즈가 누군가의 사주로 인해 움직인다면 복잡한 연회에서 누군가와 접촉할 가능성이 크겠지.”

    모호했지만 결국 감시하라는 얘기였다. 페이건은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로이즈에게 품은 호감과는 별개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는 거둘 수 없는 법이었다.

    요하네스는 베이든이 에멘타 주술사의 힘을 빌렸다는 것도 일부러 엘로이즈에게 알렸다. 나름대로의 함정인 셈이었다.

    그건 정말 중요한 정보였고, 만일 엘로이즈가 정말 누군가의 첩자라면 그 사실을 배후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꼬투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 당시 요하네스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어쨌든 그 정보가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가지는 않은 듯했다. 요하네스는 잠시 침묵을 지킨 뒤 베이든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베이든.”

    “…예.”

    “악령이 멋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이에 관련된 이능을 가진 핏줄은 제국에 단 둘이야. 노아비크와 벨리아나스.”

    모두의 숨이 잠시 멈췄다. 황족의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벨리아나스는 북부의 유랑 민족을 잘 몰라. 기록이 없기 때문이지. 그러니 그들은 에멘타의 이능을 알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네가 그 힘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할 거다.”

    “그건… 그렇겠지요….”

    “그러니 황궁을 돌아다니며 잘 파악해 봐. 벨리아나스는 그 방향은 좀 다르지만 노아비크만큼이나 악령과 가까운 핏줄이니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을지 몰라.”

    요하네스가 차분히 말했다.

    “특히 디에고 황태자를 주시해. 그 누구보다도 북부를 혼란에 빠트리고 싶어 하는 자이니.”

    “예, 알겠습니다.”

    베이든은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그를 흘끔 보면서 말했다.

    “그런데 혹시… 공작님, 어제 못된 짓을 할 뻔하셨습니까?”

    담담하던 요하네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내가 그 말을 핑계 삼아 못된 짓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깜찍하게 그런 대담한 소리를 해.”

    분명히 스스로가 ‘못된 짓’이라고 언급한 행동들을 할 뻔하긴 했다. 요하네스는 미심쩍은 눈으로 베이든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베이든은 요하네스가 별말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곧바로 변명하듯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니… 찻물 점을 봤는데 그런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공작님께서 어젯밤에 못된 짓을 하실 뻔했지만 결국 안 하셨다고요. 바보 머저리 숙맥같이… 앗, 이건 그 할망구의 의견입니다.”

    “무슨 찻물 점을 그렇게 자주 쳐? 점쟁이로 전직이라도 하게?”

    “그, 그게… 전 별로 내키지 않는데 제 안의 그 할망구가 자꾸 점을 치고 싶어 합니다!”

    베이든은 억울하다는 듯이 눈을 홉떴다. 요하네스는 늙은 스승에게 더 화를 낼 수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빈정거렸다.

    “어젯밤의 일을 점치고 싶어 하다니 참 대단한 호기심이군.”

    “물론… 그 점이 진짜 말하고 싶어 하는 바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어제 못 하신 그 나쁜 짓에 대한 충동이 곧 더 세게 찾아올 테니 주의하라고… 우욱.”

    그러나 요하네스와 지나치게 대화를 오래 나눈 베이든은 결국 말을 다 잇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베이든은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내저었다.

    “이건! 그냥 속이 안 좋아서 그런 겁니다! 절대 공작님을 보고 역겨워서 내뱉는 구역질이 아닙니다! 제가 공작님과 가까이 있으면 좀 토할 것 같기는 하지만 정말로 토하지는 않는다고요.”

    “가 봐.”

    요하네스는 다소 질린 표정을 지으며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명백히 했고, 그대로 세예나와 베이든은 예를 갖춘 뒤 집무실을 나섰다.

    페이건이 남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새로운 정보를 언제나 요하네스에게 보고하는 임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하네스는 잠을 잘 못 잔 듯, 피곤한 눈가를 문지르며 말했다.

    “가벼운 것부터 시작해.”

    “예, 알겠습니다.”

    페이건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이 판단하기에 정말 별것 아닌 것부터 보고를 시작했다.

    “일단 급히, 어제 명령하신 빈센트 엘리어트에 관한 보고입니다.”

    그가 챙겨 온 보고서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남부는 워낙에 사람들이 이름도 자주 바꾸고 어디 가만히 눌어붙어 있지를 않아서 추적이 몹시 까다롭습니다. 특별히 대단한 정보가 있지는 않습니다.”

    페이건이 민망하다는 듯 살짝 웃었고, 요하네스는 감흥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괜히 범죄자들이 기어 들어가는 땅이 아니지.”

    “게다가 좀 급하게 조사한 것이라서… 정확도가 좀 떨어질 수 있는데요, 어쨌든 조사한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요하네스는 한 손을 내밀어 페이건의 보고서를 받아 들어 직접 읽기 시작했다.

    빈센트 엘리어트, 24세,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으로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외골수라고 알려짐, 그래서 근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음.

    서류상으로는 남부에 정착해 있던 엘리어트 남작가의 외동아들로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는 시온 르노아로의 이웃집에 거주 중.

    여기저기 투자에 손을 대서 성공하고 있는 시온 르노아로와는 달리 사교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나 최근 바다를 끼고 있는 거액의 사유지를 구매한 것으로 알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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