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의 그림자를 그만두었을 (111)화 (111/120)
  • 111화

    ❀ ❀ ❀

    그 후, 재판이 끝나고.

    샬럿은 무고죄, 살인죄, 시체 은닉죄가 성립되어 30년 형.

    어셔 후작에게는 무고죄, 시체 은닉죄가 성립되어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 외로 돈을 받고 사망 확인서를 위조해 주었던 법의관은 공문서 위조 혐의로 처벌을 받았고, 핸슨 백작도 사기죄로 나란히 감방으로 끌려갔다.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 귀한 아들을, 내 아들을……!!”

    “감히 내 동생을 죽여!?

    그 와중 방청석에 앉아 있던 고트 자작 대부인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쫓아와 샬럿을 공격한다거나,

    “저, 저. 숨이 쉬어지지 않아요!!”

    어마어마한 중형에 충격을 이기지 못한 샬럿이, 호흡 곤란을 일으켜 쓰러진다거나,

    “국왕 폐하,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어셔 후작이 에드워드에게 달려가 울고불고 애원하며 추한 모습을 보이는 등, 여러 가지 소란이 있었으나.

    어쨌든 몇 달간 랭커스터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재판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렇게 사건 관련자들이 사이좋게 교도소에 수감되던 중.

    이네스는 공문서 위조죄로 소년 교도소에 수감된 펠릭스를 찾아갔다.

    “브라이어튼 백작님.”

    펠릭스는 생각보다 안색이 좋아 보였다.

    “어때, 잘 지내니?”

    “그럼요. 다들 제게 잘해 주셔요.”

    “……그렇구나.”

    이네스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펠릭스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펠릭스는 어셔 후작 아래에서 도제로 사는 것보다, 소년 교도소에 머무르는 편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한 것 같다.

    ‘얼마나 어셔 후작에게 시달렸으면.’

    말갛게 웃는 펠릭스가 안타까워서, 이네스는 못내 입 안이 썼다.

    당연히 펠릭스를 교도소에서 빼내 줄 수는 없었다.

    아무리 강요에 의한 일이었다 한들, 공문서를 위조한 죗값 자체는 치러야만 했으므로.

    하지만.

    ‘어찌 보면 나 때문에 펠릭스가 서류를 위조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에녹은 이미 이네스의 죄책감에 대하여, ‘자기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스스로를 질책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 주었지만.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였다.

    저 아이는 결국 어셔 후작이 이네스에게 가진 악의에 휘말린 것 아닌가.

    “펠릭스, 혹시 그림을 공부하는 것에 관심이 있니?”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 네가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내가 학교를 세우는 데에 관심이 있거든.”

    “학교요?”

    펠릭스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이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신분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받아들일 생각인데, 네가 원한다면 네가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생활비 지원도 할 거고, 교육비 문제도 걱정 없게 할 거고…….”

    손가락을 꼽으며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던 이네스가 아차 하며 말을 덧붙였다.

    “……아, 물론 일단 소년 교도소에서 출소부터 해야겠지만?”

    “…….”

    “…….”

    침묵이 흘렀다.

    ‘아니, 어쩌면 좋아?’

    괜히 출소 이야기를 해서는!

    어색한 분위기를 날려 버릴 겸, 이네스가 재차 황급히 입을 열었다.

    “물론 꼭 학교에 입학하지 않아도 돼.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쪽도 지원할 생각이니까, 강요라는 생각은 말고…….”

    “하고 싶어요.”

    어라?

    이네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이었으니까.

    펠릭스가 제 의견을 저렇게 또렷하게 표현하는 것 말이다.

    “그, 그림 공부도 하고 싶고, 학교도 가고 싶어요.”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마 저 대답을 하기 위해, 펠릭스는 온갖 용기를 끌어모아 입술을 떼어야만 했겠지.

    물끄러미 펠릭스를 바라보던 이네스가 생긋 웃었다.

    “네가 하고 싶은 일들은 뭐든지 다 해도 돼.”

    “정말요?”

    “그럼, 내가 도와줄 테니까.”

    그 확고한 대답에, 펠릭스의 어린 얼굴 위로 천천히 미소가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환한 미소였다.

    ❀ ❀ ❀

    이네스는 펠릭스와의 면회를 끝내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에녹이 이네스를 반겼다.

    “이네스.”

    “아, 에녹.”

    이네스는 종종걸음으로 에녹 곁으로 다가갔다.

    “오래 기다렸죠? 미안해요, 얘기가 조금 길어지는 바람에.”

    “아닙니다. 그보다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단 펠릭스가 출소하면, 어른이 될 때까지는 제가 지원해 주기로 했어요.”

    에녹에게 바짝 붙어 선 그녀가 종알종알 말을 늘어놓았다.

    “아 참, 제 학교에 입학하는 건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일단은 긍정적인 것 같아요.”

    “그랬습니까?”

    “아이가 공부에 열의가 있는 것 같아서 그건 다행인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내 밝은 얼굴이었던 이네스의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그래도 펠릭스에게 범죄 기록이 남는 것은 원하지 않았었는데.”

    “그래도 아이의 형량을 줄이려고 최선을 다했잖습니까.”

    에녹이 이네스를 다독였다.

    “공문서 위조는 중범죄이니, 아예 처벌을 받지 않을 수는 없어요.”

    “그건…… 그렇기는 하지만요.”

    짧게 한숨을 내쉰 이네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학교를 세우는 문제도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네요.”

    재판이 끝난 후, 이네스가 뒤집어썼던 누명은 완전히 해소되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구설수에 시달렸던 것 자체가 문제였다.

    비록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 한들, 여태까지 계속해서 누적되었던 부정적인 이미지가 어느 정도로 정리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학교 설립에는 문제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기는 한데, 입학자 수가 전혀 가늠이 되질 않으니…….”

    이네스가 양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보통 학교를 설립하기 전, 입학 예정자가 얼마나 될지 미리 살펴보고는 한다.

    학교의 실수요자가 어떻게 될지, 교육의 질은 어떨지 등등.

    학교를 설립하기 전, 이런저런 지표를 미리 추산하여 왕실에 제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설수를 겪었으니, 학부모들이며 학생들이 벌써부터 학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 어쩌나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뭐, 힘내야지요.”

    침울해하던 것도 잠시.

    이네스는 이내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저는 제 생각이 옳다고 믿으니까…… 더 망설이지 않을래요.”

    “그래요.”

    에녹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언제나 당신 편입니다. 알죠?”

    “그럼요. 제가 누구를 믿고 이렇게 전진하겠어요?”

    이네스 또한 에녹을 향해 장난스럽게 마주 웃었다.

    “모두 에녹이 제 곁에 있어 주니까 그런 거죠.”

    ❀ ❀ ❀

    ……분명 그랬었는데.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네스는 서류 뭉치에 코를 박은 채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혹여나 눈이 피로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이네스는 부러 서류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짙은 초록색으로 물든 정원을 한참 바라본 후, 눈도 두어 번 깜빡인 후에.

    “후아.”

    커다랗게 심호흡을 하고는 서류를 재차 살펴본다.

    하지만 서류에 적힌 숫자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네스가 잘못 본 게 아니라는 소리다.

    “오, 오백 명이 넘는다고?!”

    그녀가 처음 생각했던 정원은 천 명 정도였다.

    총 4년제 학교로 고려하고 있었으니, 한 학년 당 대략 이백에서 삼백 명 정도를 생각했었는데…….

    첫 입학생 모집부터 총 정원의 반 이상의 인원이 입학을 지원한 것이다!

    “세상에, 나 꿈꾸는 거 아니지?”

    이네스는 손을 뻗어 제 뺨을 꼬집어 보았다.

    “아얏.”

    눈물이 나도록 아프다.

    “어떡해, 꿈이 아닌가 봐.”

    이네스는 눈물이 고인 채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서 웃던 이네스가, 냉큼 겉옷을 집어 들고 몸을 일으켰다.

    밖으로 빠르게

    “어머나, 가주님?”

    이네스를 발견한 메리가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어디 가세요?”

    “아니, 그게……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이네스는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신이 난 목소리로 외친다.

    “서식스 공작가의 타운하우스로!!”

    마차가 경쾌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타운하우스에 도착한 이네스는, 당장에 벨부터 눌렀다.

    “이네스?”

    뜻밖의 방문에, 에녹이 놀란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그를 마주하자마자 이네스가 다짜고짜 외쳤다.

    “오백 명이에요!”

    “예?”

    “제 학교에 입학하겠다는 사람이 오백 명이나 된다고요!!”

    잠시 어리둥절했던 것도 잠시.

    에녹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에필로그

    막 외출 준비를 마친 이네스는, 최근 도착한 편지 한 통을 읽고 있었다.

    <브라이어튼 백작님께.

    안녕하세요, 백작님. 안드레아 애틀리예요.

    몸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가요?

    어머니께서 그러시는데, 이번에 에반스 학원의 개교식이 열린다면서요?

    저도 조금만 더 자라면 꼭 학원으로 유학 갈 거예요.

    지금은 어머니가 너무 어리다고, 랭커스터로 혼자 보낼 수가 없대요.

    어머니는 저를 너무 어린애 취급한다니까요?

    그럼 또 편지할게요.

    사랑을 담아서, 안드레아 올림.>

    편지의 말미를 더듬던 이네스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원래 어린애들은 다 이렇게 귀엽나?’

    펠릭스도 그렇고, 안드레아도 그렇고…… 다들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다.

    “이네스.”

    때마침 그녀를 부르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