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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를 그만두었을 (105)화 (105/120)
  • 105화

    “고트 자작 영식이 이렇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얼마나 슬프고 비통하실까…….”

    “과음 때문에 물에 빠져 죽었다니, 이 얼마나 허망해요?”

    “하기야, 자작 대부인께서 아들들을 워낙 귀하게 키우시기는 했었죠.”

    그러고도 한참을 기나긴 울음이 이어졌다.

    “어머니, 이제 그만하셔야지요.”

    “어떻게 내가 그만해! 내 아들이 이렇게 차가워져서 누워 있는데!!”

    “어머니께서 이렇게 슬퍼하시면, 라이언도 제대로 떠나지 못할 겁니다. 네?”

    보다 못한 고트 자작이 제 어머니를 어르고 달랬다.

    그러는 고트 자작의 눈동자에도 슬픔과 비탄이 그득하게 차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부터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언!”

    “이러시면 안 됩니다, 돌아가시고……!”

    “라이언!!”

    애처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망자의 이름을 쩌렁쩌렁하게 불렀다.

    조문객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죠?”

    “그러게요, 엄숙해야 할 장례식에서 이게 무슨…….”

    그와 함께 한 여성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라이언, 내가 왔어!!”

    흑진주와 검은 레이스로 장식한 모자, 풍성한 드레스 자락, 코가 뾰족한 검은 구두.

    조문객으로서 최소한의 검은 의복만 갖추었을 뿐, 그 면면을 살펴보면 흡사 당장이라도 파티에 참석할 수 있을 만치 화려하다.

    고트 자작의 품에 안겨 펑펑 울던 고트 자작 대부인이 두 눈을 부릅떴다.

    “아니, 저 계집이 미쳤나!!”

    그녀는 바로 샬럿이었다.

    “주제도 모르고, 여길 어떻게 찾아올 생각을 다 해?!”

    한편 조문객 사이에 섞인 어셔 후작은, 경악과 짜증이 뒤섞인 시선으로 샬럿을 바라보았다.

    ‘제이슨 남작 영애, 도대체 왜 여기까지 온 거야!?’

    하지만 샬럿은 그 따가운 시선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양 뺨 위로 구슬 같은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라, 라이언이 이렇게…… 세상을 떠날 줄은 몰랐어요…….”

    샬럿이 양어깨를 바르르 떠는가 싶더니, 손수건에 와락 얼굴을 묻었다.

    “비록 라이언이 저를 농락한 건 사실이에요.”

    “저, 저 계집애가!”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났는지, 고트 자작 대부인이 샬럿에게 마구 손가락질을 하며 자리에서 펄펄 뛰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샬럿은 지극히 연극적인 어조로 다시 한번 외쳤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라이언을 사랑했어요!”

    “어딜 저 계집애가 들어와! 당장 나가지 못해?!”

    분노로 눈이 뒤집힌 고트 자작 대부인이 마구 날뛰었다.

    그러자 샬럿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이 되어 자작 대부인에게 항변했다.

    “이러지 마세요, 저도 라이언과 마지막 인사를 해야만……!”

    “저, 뻔뻔한, 저게! 악!”

    감정을 이기지 못한 고트 자작 대부인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트 자작이 황급히 제 어머니에게 달라붙었다.

    “어머니, 그러다가 쓰러지십니다!”

    “저, 저 계집이 우리 라이언더러 무어라 떠들어 댔는데…… 저 파렴치한……!”

    “아, 뭐 해?! 당장 제이슨 남작 영애를 내보내지 않고!!”

    고트 자작이 주변을 휘둘러보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가시죠, 제이슨 남작 영애.”

    “싫어, 이것 놔요! 아직 라이언에게 작별 인사도 못 했는데!”

    마구 발버둥을 치던 샬럿이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때마침 구덩이에 관이 들어가고 있었다.

    관 뚜껑에 흙이 덮이는 모습이 샬럿의 망막 위로 선명하게 아로새겨졌다.

    동시에 붉은 입술이 선명한 호선을 그렸다.

    ‘뭐, 뭐야?’

    우연히 그 모습을 목격한 고트 자작 대부인의 동공이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묘한 미소를 지은 샬럿이 몸을 돌렸다.

    그 아름다운 얼굴에 역력하게 드러난 감정은, 짙은 안도감이었다.

    ‘도대체 왜 웃는 건데?’

    아수라장이 된 장례식 속에서, 모두가 경황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으나.

    고트 자작 대부인은 똑똑히 보았다.

    샬럿은 라이언의 죽음을 기뻐하고 있었다.

    당장 춤이라도 출 것처럼, 뛸 듯이.

    ❀ ❀ ❀

    달칵.

    방문이 열렸다.

    샬럿이 성큼성큼 방 안에 들어섰다.

    “아…… 정말.”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은 샬럿은,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너무 울었더니 눈가가 당기네.”

    계속 우는 통에 목이 쉬었고, 장례식에서 끌려 나오는 통에 온몸이 뻐근했으며, 어마어마하게 피곤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감당할 만했다.

    샬럿이 뿌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 모두들 날 바라봤었어.”

    그리고 그중에는 라이언의 장례식을 취재하기 위해 모인 기자들도 있었다.

    아마도 내일 자 신문에는 그녀가 애처롭게 우는 모습이 실릴 것이리라.

    그것만으로도 샬럿은 제 목적을 웬만큼 모두 이루었다.

    사람들이 그녀를 가련하게 여기는 것.

    진심으로 사랑했던 남자에게 버림받았음에도, 그 남자의 죽음을 가슴 아프게 여기는 모습.

    그리고…….

    ‘라이언의 시체도 땅에 묻히는 것을 확인하고 왔으니까.’

    살인의 가장 큰 증거이기도 한 시체.

    그 시체가 땅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시체가 썩어 없어지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샬럿은 흡족한 얼굴이 되어, 침대 바로 옆에 놓인 서랍장에 손을 뻗었다.

    서랍을 열자, 그 안에는 고급스러운 보석 상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딸깍.

    샬럿은 상자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팔찌가 놓여 있었다.

    “……감히 내게서 뜯어낸 돈으로 이네스에게 선물을 하려 들어?”

    샬럿이 날 선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라이언은 감히 샬럿이 아닌 이네스를 선택했다.

    그러니.

    ‘나를 배신했으니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지. 안 그래?’

    팔찌를 움켜쥔 손아귀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쾅쾅!!

    누군가가 방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샬럿이 짜증스러운 시선으로 방문을 노려보았다.

    “누구세요?”

    “당장 이 문 열어, 제이슨 남작 영애.”

    당장이라도 고함을 내지르며 화를 내고 싶지만, 혹여나 누군가 제 목소리를 들을까 두려웠는지 잔뜩 억누른 목소리.

    “아, 뭐야.”

    픽 웃음을 터뜨린 샬럿이 몸을 일으켰다.

    산들산들 방문 쪽으로 다가간 그녀가 문고리를 쥐었다.

    달칵.

    방문 사이로 한 중년 남성의 분노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 얼굴을 향해, 샬럿은 눈매를 접으며 예쁘게 웃어 보였다.

    “이 누추한 곳까지 웬일이신지요, 어셔 후작님?”

    “…….”

    어셔 후작은 이를 악물며 방 안으로 쿵쿵 걸어 들어왔다.

    쾅!

    분을 이기지 못하고 거세게 방문을 닫자, 샬럿이 보란 듯이 눈썹을 늘어뜨렸다.

    “후작님, 그러다가 문이 으스러지겠어요.”

    “제이슨 남작 영애.”

    어셔 후작이 이를 갈며 샬럿을 쏘아보았다.

    “오늘은 왜 장례식장까지 찾아온 거야?”

    그 살벌한 목소리에, 샬럿이 순진한 척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야 당연하잖아요? 라이언의 시체가 땅에 제대로 묻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장례식장에 굳이 올 필요까지는 없었잖아?”

    어셔 후작이 왈칵 성을 냈다.

    “내가 참석할 테니, 남작 영애는 자중하고 있으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어련히 내가 확인해서 말해 줄 텐데!”

    그러고는 질색을 하며 샬럿을 위아래로 뜯어본다.

    “게다가 그 차림새는 뭔데? 상복을 입고 무도회라도 참석할 생각인가?”

    “하지만 언제 어디에서 기자들이 나타날지 모르잖아요.”

    샬럿이 양어깨를 움츠리며 어셔 후작에게 항변했다.

    “언제 신문에 실릴지도 모르는데, 초라한 모습으로 있을 수는 없지 않겠어요?”

    “아니, 지금 뭐라는 거야?”

    어셔 후작이 기가 막힌 얼굴을 했다.

    하지만 샬럿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최대한 제가 가여운 여자로 비쳐야만, 후작님께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것도 때와 장소를 가렸어야지!”

    어셔 후작은 그만 참지 못하고 와락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샬럿이 외부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브라이어튼 백작과의 일로 사교계에서 퇴출된 이후로도 어떻게든 사교계에 복귀하려는 모습이라거나.

    혹은 백작에게 복수하겠답시고 여러 언론사들을 찾아다니다가 문전박대를 당한다거나.

    그런 모습 때문에 어셔 후작은 샬럿을 선택했다.

    브라이어튼 백작과 고트 자작 영식에게 상당한 원한을 가졌고, 그 원한을 어떻게든 갚아 주려는 의지도 보이고 있으니.

    의욕적으로 움직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대체가 자네는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재차 쏘아붙이던 어셔 후작이 순간 멈칫했다.

    샬럿의 손에 반짝거리는 저 물건.

    저건…….

    ‘고트 자작 영식이 갖고 있었던 다이아몬드 팔찌가 아닌가.’

    순간 어셔 후작은 등골이 써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최근 샬럿과 비밀스럽게 함께했던 일이 뇌리에 떠오른 탓이다.

    그 시발점은 샬럿의 급작스러운 연락이었다.

    ‘후작님의 도움이 꼭 필요한 일이 생겼어요.’

    거의 반협박에 가까운 연락이었다.

    평소라면 무시했을 연락을 이번에는 무시하지 못했던 이유는, 샬럿의 기이하리만치 확고한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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