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누드-45화 (45/47)
  • 외전 1. 누가 더 변태일까

    “넌 변태야.”

    아저씨가 눈을 질끈 감고 중얼거린다. 저 점잖고 수줍음 많은 아저씨가, 실오라기 한 올 두르지 않은 몸으로, 환한 불빛 아래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 있으려니 얼마나 창피할까. 속옷 한 장이라도 주워 입고 싶어 죽겠지. 이불자락으로 그곳만이라도 가리고 싶겠지.

    아저씨가 붉게 물든 얼굴을 베개에 파묻으며 나직하게 항의한다.

    “우연이 넌, 정말…… 취향이…… 이상해.”

    우연은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했다.

    “아저씨. 저는 창의력을 조금 발휘했을 뿐이에요. 섹스에도 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는 생각 안 해 보셨어요?”

    “그런 말 좀 아무 데나 갖다 붙이지 마…… 아윽!”

    아저씨의 말끝은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신음에 묻혀서 뭉개진다. 우연이 그의 배 위로 답삭 올라가 유두를 이로 아작 깨물어 버린 것이다.

    아저씨가 눈을 꽉 감으며 신음을 삼킨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자신이 미리 저질러 놓은 짓이 있으니, 보복도 감수해야죠? 우연의 양쪽 젖꼭지와 그 주변은 이미 빨갛게 팅팅 부어서 차마 만지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우연은 아저씨가 제 몸에 무슨 짓을 하든 말리지 않았고, 그건 이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연은 입속에 든 것을 자그시 깨문 채 종알종알 말을 이었다.

    “아저씨도 임원 회의 들어갈 때마다 그런 얘기 하실 거 아니에요. 여러분, 급변하는 시대에 기업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 혁신입니다! 발상의 전환입니다! 창의력! 참신한 기획! 혁신적 사고! 패러다임의 전환!”

    쫄깃한 살덩어리가 살강살강 씹힐 때마다, 아저씨의 몸이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꿈틀거렸다.

    “안…… 해, 그런 말……. 아, 우연, 아파, 윽…….”

    “회사만 해도 한 해 한 해 생존을 위해 기술 혁신에 매달리는데, 적어도 100년은 지속되어야 할 우리의 섹스 시스템을 위해서는 이노베이션이 더더욱 필요하지 않겠어요?”

    “넌 대체 그런 말은, 흐, 어디서 배운 거야……. 구, 구별도 못 하던 주제에, 아, 제발…….”

    “제가 세경 CEO 덕질을 몇 년을 했는데요. 이노베이션 마스터베이션 구별도 못 하던 예전의 진우연은 잊으시라고요, 좀.”

    우연이 귓바퀴를 핥으며 속삭이는 순간, 아저씨가 신음하며 부르르 몸서리를 친다. 가슴 근육과 복근도 순간적으로 요동친다. 우연은 터질 듯이 꿈틀대는 가슴과 배의 근육을 살살 간질이며 속삭였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이 짓을 하루 이틀 하고 말 것도 아니고, 약속대로라면 100년, 36500일에 윤년 추가해서 25일인데, 장기적인 섹스 플랜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어요? 지속 가능한 동반 성장을 이루기 위한 혁신적 성교 시스템, 아 좋다! 달나라 토끼도 아니고, 천년만년 같은 포즈로 위아래 위위아래아래 절구질만 하고 있으면 그런 재앙이 어디 있어요?”

    “왜 그게 재앙이니? 그게 제일 기본이고 중요한 거 아니야? 클래식은 영원해.”

    아저씨는 쉬어 빠진 목소리로 더듬더듬, 하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반박하려 노력했다. 우연은 가차 없이 콧방귀를 뀌었다.

    “100년 동안 똑같은 물건을 똑같은 방식으로만 만드는 회사가 업계에서 살아남겠어요? 그랬다간 세경건설은 지금도 클래식한 초가집 토담집만 짓고 있겠죠. 대표이사님, 동참해 보세요, 섹스 이노베이션!”

    “대표이사라고 하, 지…….”

    아저씨가 신음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문다. 이건 너무 심하잖아, 이런 식으로 도발하는 건 반칙이야, 아저씨가 항의하는 소리가 다 들린다.

    아저씨는 우연이 주는 새로운 자극을 감당하는 것을 종종 버거워했다. 이런저런 야한 장난들을 여유 있게 받아들이려면 천년쯤 도를 닦아서 연륜과 관록이 쌓여야 가능하려나. 아저씨의 허리가 크게 꿈틀대는 순간, 우연은 단호한 목소리로 제지했다.

    “아저씨, 말씀하시는 건 자유지만요, 몸은 움직이시면 안 돼요. 제가 무슨 짓을 하든지요. 체스를 세 번이나 내리 져서 벌칙받으시는 거잖아요. 실패할 때마다 벌칙은 자꾸 세질 수밖에 없어요. 움직이지 못하게 손발 묶이고, 그런 건 싫으실 거 아니에요.”

    “이건 불공평해, 우연아. 네 벌칙이 너무 변태…… 아니, 어려운 거야. 왜 점점 이상한 벌칙만 만들어 내는 거야? 이런 자극을 받고 사람이 어떻게 안 움직여? 너 같으면 버티겠어? 생각해 봐.”

    아저씨가 쉬어 갈라진 목소리로, 하지만 여전히 침착하려 애쓰며 반론을 펼친다. 하지만 창백하게 질린 얼굴색까지는 감출 수 없었다.

    “억울하시면 다음번 게임에선 좀 이겨 보세요. 사람이 공부만 잘하면 뭐 하나요? 잡기에도 골고루 능해야 하는 거예요. 게임을 하는 족족 이렇게 지면 평소에 뭐라도 노력을 하셔야 할 거 아니에요, 노오력!”

    “내가 이겼을 때는…… 너한테 이렇게 어려운 벌칙 안 줬잖아.”

    “그럼 아저씨도 이런 심한 벌칙 주시면 되잖아요. 손목 때리기, 이마 딱밤 그런 시시한 벌칙 말고. 그런 데서는 배려심을 발휘하실 필요 없다고요.”

    우연은 생글생글 웃으며 아저씨의 다리 사이로 고개를 숙이고는, 축 널브러진 길죽한 살덩어리를 사르르 핥아 올렸다. 한 번, 딱 한 번이었다. 그것도 머리 부분만, 살짝, 감질나게.

    후윽. 그가 짧게 신음을 뱉으며 후드득 몸부림을 친다. 아랫배와 옆구리, 허벅지와 가슴으로 날카롭게 근육이 튀어 오르는 것이 보인다. 피부를 찢고 튀어나올 듯, 순간적으로 날이 서는 근육은 볼 때마다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어머나, 이런!”

    방금 전까지 무겁게 늘어져 있던 페니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빳빳하게 튕겨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한 뼘 반은 될 정도로 길고, 굵고, 돌덩어리처럼 딱딱한 것이 수직으로 서서 자신을 도발하듯 흔들리고 있다. 이미 이런저런 벌칙으로 세 번이나 사정을 했으면서 단 한 번의 애무에 다시 발기한 이 장대한 살덩어리는 진심으로 신비로웠다.

    우연은 얼른 몸을 일으키며 명랑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아저씨, 또 실패요. 세상에, 벌써 몇 번째인가요? 새로운 벌칙 정하기도 바쁘잖아요.”

    “……정말 이게 무슨…….”

    아저씨가 몸을 일으키며 좌절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성실한 원칙주의자인 아저씨는 이런 애들 장난 같은 게임 벌칙마저 곧이곧대로 수행하곤 했다. 이게 참 성실하고 반듯하다 칭찬을 해야 할지, 답답하고 융통성이 없다 한탄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포자기한 듯, 몸을 축 늘어뜨린 아저씨가 한숨을 쉬며 묻는다.

    “……그래, 새로운 벌칙이 뭔데?”

    우연은 아저씨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목에서부터 발가락까지, 대리석처럼 매끈한 그의 피부는 자신이 새겨 둔 딥 키스 자국과 손자국으로 가득했다. 내 몸도 상황은 비슷하니 할 말은 없겠지. 붉고 매끈한 머리를 드러낸 채 빳빳하게 몸을 세우고 꺼덕대는 저놈은, 어쩐지 우연을 사납게 노려보고 있는 것 같다. 점잖고 음전하신 본체와는 기어이 따로 놀겠다는 놈의 흉흉한 기세를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저씨, 잠깐만 그대로 계셔 보세요. 새로운 게 생각났어요.”

    우연은 탁자 옆에 놔둔 에코 백을 뒤적거렸다. 아 여기 있다. 절반쯤 먹다 남긴 비닐봉지에는 대왕 꿈틀이 콜라맛, 이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고, 주둥이는 자그마한 아기 고무 밴드로 묶여 있었다.

    “역시 대왕 꿈틀이를 아껴 놓고 안 먹기를 잘한 것 같아요.”

    “그…… 또 무슨 이상한 짓을 하려고?”

    “이상한 짓이라뇨, 야하고 재미있는…… 아우 씨, 모자라잖아…….”

    대왕 꿈틀이로 이원의 성기를 한 바퀴 둘러 보려던 우연은 짜증스럽게 한숨을 쉬었다. 그냥 왕꿈틀이도 아니고, 자그마치 한 뼘이 훌쩍 넘는 ‘특대형 왕꿈틀이’였음에도 완전히 발기한 그의 페니스를 묶어 놓기엔 역부족이었다.

    “아, 됐다…….”

    우연이 대왕 꿈틀이의 허리를 잡아당겨 늘인 후 귀두 아래쪽으로 한 바퀴 빙 둘러 양 끝을 고무 밴드로 묶는 동안, 아저씨는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비장하게 침묵하고 있었다.

    “제가 이걸 다 빨아 먹을 동안…….”

    “뭐? 빨…… 우연아, 우연……. 잠깐만, 그건, 우연아.”

    예상보다 센 벌칙이었는지, 갑자기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경악과 공포로 물드는 아저씨의 얼굴을 보며, 우연은 다정하게 웃었다.

    “사정하시면 안 돼요.”

    * * *

    우연이 섹스 라이프에 온갖 종류의 게임과 벌칙을 도입한 지 어언 넉 달이 되어 간다.

    원래 우연은 자신의 호를 ‘음란마구니’로 하면 어떨까 고민할 정도로 야한 망상이 샘솟았고, 이원과의 섹스도 환장할 정도로 좋아했다. 그리고 자신이 음란마구니인 걸 그에게 딱히 감출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매번 정신이 나갈 정도로 몰아치는 쾌감은 섹스 중독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황홀했고, 그 순간 느껴지는 합일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충족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니 그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일일 것이고, 그래서 굳이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이원의 미친 성욕을 감당하기가 역부족이라는 것이 첫 번째였다.

    체력 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저놈의 중년 아재는 나이가 열두 살이나 많은 주제에 체력―의 탈을 쓴 성욕―이 무시무시했다. 아무리 주말이라도, 하루 일곱 번이 말이 되냐! 인간적으로 그게 사람이 할 짓이냐 싶은 것이다. 지금까지 저 짐승 같은 분신을 어떻게 누르면서 살았는지, 미스터리를 넘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그에 반해 우연의 체력은 겸손하고 소박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의 저질 체력은, 자신의 야한 상상도, 아저씨의 짐승 체력도, 심지어 조금이라도 활동적인 데이트조차도 감당할 수 없었다.

    혹시 아저씨 말대로 인스턴트 편식을 없애면 체력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나?

    우연은 눈물을 머금고 ‘잠시’ 식단을 바꾸는 데 동의했다. 그녀는 오로지 섹스를 위해 라면 대신 현미밥을 먹기 시작했다. 채소, 고기, 과일도 가끔 먹고, 콜라 대신 우유와 주스도 마시고, 주 1회 PT까지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년 아재의 체력―의 탈을 쓴 성욕―은 여전히 감당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저씨는 사정할 때까지 시간도 긴 편이라 한 판만 해도 생명력이 바닥까지 고갈되는 기분이었다. 두세 번만 하면 의식이 날아가서 온갖 헛소리는 다 씨불댔고. 대여섯 번으로 넘어가면 두 발로 걷지도 못해 엉금엉금 다녀야 했고, 다음 날 아침부터 다시 시작하면 ‘아,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물론 복상사라는 게, 당사자에게야 꽤 행복한 죽음이겠지만, 남은 자의 쇼크와 고통과 창피함도 생각은 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아저씨는 조금만 살이 닿아도 시동이 걸리고, 무슨 말만 해도 발동이 걸렸다. 피곤할 때는 싫다고 튕길까도 싶은데, 그러자니 ‘제가 욕정이 좀 만발하와’ 운운하며 섹스 거절 불가를 그에게 강요한 흑역사가 발목을 잡았다. 한 치 앞을 몰랐던 요놈의 조동아리, 요놈의 대가리.

    그러다 보니 그의 성욕에 불을 지르는 트리거라도 미리 알아내서 적당히 피해 볼까 싶은데, 아무리 관찰해도 트리거가 뭔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사실, “오늘 트레이너 언니한테 체스트 프레스하고 체스트 플라이 하는 거 배웠는데, 근육 좀 생긴 거 같지 않아요?” 하고 노브라로 가슴 내미는 포즈를 취했던 건, 트리거 테스트라기보다 조금 도발한 게 맞다. 물론, 다음 날 모유 수유용 연고를 사다가 열흘이나 발라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줄 알았으면, 절대 그런 도발은 안 했을 것이다. 그가 가슴에 집착하는 건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나머지 트리거들은 정말 일관성이 없었다. 어떤 날은 ‘아저씨 사랑해.’ 하는 잠꼬대에 자다가 일어나서 덤벼들었고, 어떤 날은 ‘아저씨 담주에 나랑 왁싱하러 가는 건 어때요?’ 하는 말에 핀이 나갔고, 어떤 날은 ‘아저씨 배고파.’ 하는 말에 자다가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덤벼들었다. 허리를 굽히고 발톱을 깎고 있을 때 ‘어쩜 발톱 조각까지 이렇게 예쁘지?’ 하고 중얼거렸는데, 대체 그 말에 왜 발기가 되는 건지, 우연도 모르고 당사자도 몰랐다. 오밤중에 술집으로 데리러 온 아저씨 등에 업혀서 ‘아저씨, 나 오늘 맥주 먹었어! 두 개! 끅.’ 하는 술주정에 갑툭튀 반응하는 페니스는 그저 불가사의할 뿐이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아니 집에 와서도 침대머리에 이마를 박고 애국가 가사와 용비어천가와 기미독립선언문을 외우다가 결국 기도실에 박혀서 라틴어로 된 기도문까지 줄줄 외우는 비장한 모습을 보면, 그의 트리거를 찾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우연이 음란마구니 섹스 정책을 게임과 야한 벌칙 노선으로 변경하기로 한 데에는 이렇게 목숨이 달린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아저씨는 그런 미친 성욕을 갖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점잖고 단순한 섹스 패턴을 갖고 있었다.

    평상시의 섹스는 매우 규칙적이고 상식적인 루틴으로 진행되었다. 그는 환한 낮에 섹스하는 걸 많이 멋쩍어했고―낮에 안 한다는 건 아니다.―, 차분하고 정중하게 허락을 구했고―거절을 염두에 둔 건 아니다.―, 어지간하면 따로 씻고―같이 샤워를 안 한다는 건 아니다.―, 우연이 침대에 들어가면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춘 후 가슴에 파묻혀서 핥고 빨고 볼을 비비는 습관이 있었다.―점잖다고 할 짓을 안 하는 건 아니다.―

    아저씨는 그렇게 꼭 달라붙은 상태로, 다정하고 길게, 꼼꼼하다 싶도록 샅샅이 애무를 하고서야 삽입을 시작했다.―이게 싫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의 성격대로 무진장 부드럽고 다정하게 왕복 운동을 반복했고, 사정까지 발군의 인내심을 발휘해서 우연에게 몇 번의 오르가슴을 선사했다.

    물론 거듭 말하건대, 이게 싫다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 이렇게 단순한 방법으로만 써먹으면 기능의 낭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이 초등생들에게 더하기 빼기를 가르친다고 생각해 봐라. 얼마나 복장이 터질지. 그러니 그 훌륭한 기능을 만들어 준 분이 이 가성비 떨어지는 짓거리를 보시면 얼마나 복장이 터지시겠는가.

    그리고 사람이란 게, 고급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와 랍스터만 계속 먹다 보면, 가끔 라면과 치킨과 콜라와 불닭면이 당기는 게 인지상정이다. 평생 라면을 안 먹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는 법이니, 유기농 저염 건강식만 먹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을 우러러 그 쨍하고 자극적인 맛이 맹렬하게 당기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섹스도, 그렇지 않겠는가.

    ‘아저씨, 뭔가 재미있는 게임 같은 거 같이해 보실래요?’

    ‘그럴까? 집에 체스도 있고 카드도 있고 모노폴리도 있고……. 아니면 윷놀이 같은 거 하고 싶어?’

    ‘아하……. 아저씨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게임’은 그런 거예요?’

    하긴. 아저씨는 컴퓨터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다. 게임 용어나 파생 유행어도 모른다. 담배나 거짓말처럼, 하지 않겠다고 정해 놓은 많은 것들 중에 컴퓨터 게임도 들어가 있는 듯했다. 인생의 재미를 너무 어린 나이에 걷어차 버린 아저씨. 나이는 열두 살 차이인데 노는 방법은 120년쯤 벌어진 것 같다.

    뭐 괜찮아. 내가 재미있게 만들어 주면 되지. 우연은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겠네요. 아저씨가 하는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자고로 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은 돈을 거는 것이다. 더 재미있게 만들려면 더 큰 돈을 거는 것이고, 최고로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은,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수행할 수 없는 야한 벌칙을 거는 것이다. 그러면 윷놀이나 팽이치기, 가위바위보에도 목숨을 걸게 되어 있다.

    그리하여, 보드게임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아저씨의 집에 박혀 있던 오래된 보드게임들이 줄줄이 소환되어 나왔다. 체스를 둘 줄 모르던 우연은 아저씨에게 말의 이름과 운용법부터 하나하나 배웠고, 카드 게임을 전혀 할 줄 모르던 우연은 보름에 걸쳐 포커와 원카드와 블랙잭도 배웠다. 루미큐브, 젠가 블록, 모노폴리, 윷놀이, 오목, 스도쿠……. 같이 놀 사람도 없으면서 보드게임 종류는 엄청 많았다. 심지어 화투도 있었다. 아저씨가 고스톱과 섯다를 칠 줄 안다는 것이 좀 충격이긴 했지만, 이 모든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 아저씨의 대부인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이었다는 말에 우연은 난생처음으로 깊은 은혜를 받았다.

    처음에는, 당연히 가르쳐 주는 아저씨가 이겼다. 아저씨가 제시하는 벌칙은 시시했다. 손목 맞기나 이마 딱밤, 발바닥 간질이기, 뽀뽀 한 번, 어깨 주물러 주기 따위로는 게임이 재미있어질 리가 없다. 하지만 우연이 옷 하나씩 벗기기를 벌칙으로 처음 도입하면서, 드디어 보드게임은 본격 공포물의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손바닥이나 발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쓰고 맞히는 게임을 할 때, 벌칙이 손목 맞기나 딱밤 정도가 되면 딱히 이겨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귀두나 클리토리스에 0호 붓으로 글자를 쓰고, 못 맞힐 때 짱짱한 고무 밴드로 그곳에 딱밤을 날리는 벌칙으로 약간의 변화만 주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자극도 자극이고,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아저씨는 그 창피한 것을 도저히 견디지 못했다.

    아저씨는 더 이상 대인배처럼 여유로운 표정으로 게임에 임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 수, 한 수 눈에 핏발을 세우고 승부에 몰입했다. 벌칙으로 파푸아 사나이들의 거시기 보호대인 꼬데까만 착용하고 주말 보내기 따위가 들어가면서, 아저씨의 태도는 가위바위보 한 판에 집 한 채도 걸 만큼 심각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연은 그때부터 게임에서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게임 규칙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전에서 허를 찌르고 공격하는 것에는 상당히 서투른 듯했다. 정공법밖에 모르고 타이밍을 놓치는 일도 많았다. 걸린 벌칙이 야하고 과격하고 셀수록 아저씨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고, 그럴수록 실수가 늘어서 승률은 갈수록 바닥으로 처박혔다.

    그는 패배는 정정당당히 받아들였지만, 우연이 개발한 온갖 야하고 저질스럽고 창의적인 미션에는 늘 멘탈 붕괴를 일으켰다. 벌칙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는 하지만, 벌칙의 변태력이 너무 강력하다 보니 실패할 때도 많았다. 그러면 벌칙은 점점 더 창의적이고 변태적인 미션으로 이어졌고, 결국 자극을 견디다 못한 아저씨가 중간에 우연의 손을 빌려서 사정을 하는 사태도 종종 벌어졌다.

    하여, 게임 서너 판을 야한 벌칙까지 돌리며 끝내고 나면 아저씨는 대략 서너 번 정도 사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같이 씻고, 한두 번쯤 같이하고 꿀잠을 자면 딱 적당한 상태가 된다.

    그 정도면 좋다. 딱 좋다. 재미있게 놀고, 두뇌도 개발되고, 아저씨도 충분히 욕구를 풀 수 있고, 나도 복상사의 위험에서 벗어나고, 26세 꽃다운 나이에 변태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만 감수한다면, 그야말로 윈윈윈윈 아니겠냐고?―물론 변태로 불리게 된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우연의 장대한 마스터플랜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둔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오늘까지는, 뭐 나름나름.

    * * *

    “……으음.”

    아저씨가 눈을 감고 나직하게 한숨을 쉰다. 우연은 손을 뻗어 이원의 몸을 미끄러지듯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아, 음……. 억눌린 듯, 혹은 달콤한 듯, 낮고 부드러운 신음이 새어 나온다.

    촉, 촉, 촉, ……츱.

    가볍고 경쾌하던 입맞춤 소리에 어느덧 습기가 가득 들어찬다. 우연은 그의 가슴과 아랫배와 옆구리, 그리고 사타구니로 이어지는 예민한 고랑을 살살 핥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허리와 허벅지 근육으로 뻐근하게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드디어 우연은 자신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빳빳하게 고개를 치켜든 녀석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흡.”

    짧은 숨소리가 튀어나오더니 이내 조용해진다. 우연은 붉게 솟아오른 매끈한 머리를 한입 가득 물었다가 윗니로 지이익 긁어 올렸다. 핫, 거대한 몸이 채찍에 맞은 것처럼 크게 꿈틀거린다. 귀두 바로 아래 감긴 새콤한 젤리가 혀에 걸린다. 젤리를 혀로 빙그르르 휘어 감고 힘껏 빨았다. 하아악, 미처 걸러지지 못한 거친 비명이 다시 치솟으며 온몸의 근육이 발작하듯 튀어 올랐다. 우연을 감싸듯 벌어져 있던 그의 굵은 허벅지가 우연의 허리를 확 짓누른다.

    특대형 대왕 꿈틀이는 길고, 굵고, 쫄깃하고, 혀로 힘껏 빨아도 잘 녹지 않았다. 자신의 허리를 휘감은 허벅지가, 정강이가 크게 휘청대는 것이 느껴진다. 신음은 흘러나오지 않는다. 입에 문 채 위를 올려다보니 아저씨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상반신을 뒤틀고 있었다.

    ……아, 이번엔 좀 셌나 보다.

    물론, 이 상태에서 아저씨가 파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연이 입으로 애무를 해 준 적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아저씨는 절대 사정하지 않았다. 한번 해 보라고 우연이 부추겨도, 그곳을 잘라 내면 잘라 냈지 네 입에 사정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하는 걸 보면, 아저씨는 그 짓을 아주 더럽고 몹쓸 짓으로 여기는 게 틀림없었다.

    “하, 으, 음…… 윽!”

    아저씨의 몸부림이 과격해진다. 젤리는 이제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녹아내린다. 입안이 새콤하고 달콤한 콜라맛, 그 불량스러운 자극으로 가득해진다. 읍, 윽, 아저씨의 손가락 사이로 다급하고 괴로운 신음이 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입을 틀어막은 채 고스란히 견디기만 한다.

    온몸에 땀이 쫙 솟아오르는 것이 보인다. 이마에서부터 가슴, 배, 옆구리, 퍼득, 푸득, 경련하듯 뒤틀리는 다리에서도 땀방울이 듣는다.

    괴로우면 나를 밀어내고 끝내면 된다. 같잖은 게임의 벌칙 따윈 싫으면 언제든 그만두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늘 버티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우연은 계속했다. 이 달고 시고 불량한 대왕 미꾸라지가 모조리 녹을 때까지, 힘껏, 아주 힘껏, 볼이 쏙 패어 들어가고 혓바닥이 아릴 때까지 핥고, 휘감고, 빨고, 당겼다.

    ‘아저씨, 그냥, 해요. 해도 괜찮아요.’

    말 없는 말을 알아들은 그가 대답 없이 고개를 젓는다. 이를 악문 그의 턱에 자잘한 무늬가 도드라진다. 터질 것처럼 부푼 근육과 손등, 목덜미, 그리고 이마에 치솟은 굵고 푸른 핏줄을 보며, 우연은 그가 한계를 넘겨 가며 욕구를 참고 있다는 것을 짐작한다. 우연은 이제야 겨우 반쯤 녹아 몰랑몰랑해진 젤리를 이로 긁으며 다시 말했다. 아저씨, 괜찮아, 정말 괜찮다니까요.

    하지만 그는 사정하지 않고 버틴다. 이제 겨우 10분이나 지났나. 15분인가. 대왕 꿈틀이는 많이 물렁하고, 조금 시고, 많이 달았지만, 여전히 질기고 천천히 녹았다.

    툭.

    결국 꿈틀이의 허리가 끊어진다. 그것을 느낀 아저씨가 고개를 번쩍 든다. 그 짧은 시간에, 눈에 핏줄이 터지고 얼굴은 땀으로 번질번질 젖었다. 줄줄 흘러내린 땀이 턱 끝에 모여 툭툭 떨어진다.

    우연은 고무줄을 혀로 밀어 낸 후, 잘린 젤리를 혀로 휘감아 천천히 씹었다. 아저씨는 입술을 꽉 깨물고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 흐, 흐읍, 흐, 고통에 겨운 신음. 우연은 아저씨가 대체 왜 이렇게 버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두 손이 입을 틀어막는다. 고개가 푹 수그러든다. 빳빳하게 힘이 들어간 어깨는, 역도 선수가 마지막으로 바벨을 들어 올렸을 때처럼 아슬아슬, 터질 듯 보였다.

    조각난 젤리의 잔해들이 입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목구멍으로 마지막 조각까지 넘긴 후, 우연은 끈적해진 그의 페니스를 혀로 깨끗하게 빨아올렸다. 고개를 들어 올린 우연은 아저씨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며 아주 천천히, 혀로 입술을 핥았다.

    터질 듯한 시선과 마주 닿았다. 아저씨의 울대뼈가 꿀럭, 아래위로 움직인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숨 막힐 듯한 침묵이 흘렀다.

    “다 먹었어요.”

    “아……, 다 됐어?”

    아저씨가 희미하게 웃으며, 침착한 표정으로,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안도의 한숨 따위는 흘러나오지 나오지 않는다. 지금 아저씨에겐 한숨 한 자락 쉴 여력조차 없다. 얼굴은 붉고, 눈의 실핏줄은 터졌으며, 헐떡임만 간신히 눌러둔 무거운 날숨은 숨겨지지 않는다. 온몸의 근육과 혈관이 바짝 도드라진 상태로, 아저씨가 나직하게 묻는다.

    “……지금 너 좀 안아도 되겠니?”

    “물론이에요.”

    우연은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이 시간을 오래 기다렸다는 듯.

    이원은 그 상태 그대로 우연을 덮쳤다. 입맞춤도 부드러운 애무도 없이, 그대로 우연의 다리를 벌리고 단번에 페니스를 박아 넣었다.

    “아, 악, 아저씨! 처, 천천히!”

    우연은 날카롭게 고함치며 발버둥을 쳤다. 물론 그 고함이 그에게 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은 안다. 아저씨는 두 손으로 양쪽 허벅지를 꽉 움켜잡더니, 좌우로 활짝 벌린 채 미친 듯이 허리를 쳐 대기 시작했다.

    ……아 이런, 제기랄.

    이원은 드디어 자신이 정신을 놓아 버린 것을 스스로 인지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우연의 몸만 보였다. 그 은밀하고 이상하고 자신을 미치게 하는 그 부분만 보였다. 악, 악, 아, 아아, 뭐라고 하는지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이원은 오늘도 자신의 안에 있는 짐승을 기어이 끄집어낸 우연에게 당황했고, 그보다 몇 배나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우연이라는 존재에 중독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약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세상의 어떤 마약이라도 우연보다 더한 쾌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녀가 보여 주고, 이끌어 가고, 매번 확장해 가는 감각의 지평선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노예처럼 속수무책 끌려가 이성도 수치심도 다 잃은 채 이 절대적인 희락에 휩쓸리는 것뿐이었다.

    허리와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린다. 하반신이 터져 버릴 듯하다. 몸의 감각도, 시간 감각도 이상해진 것 같다. 온 우주가 짝짓기의 시간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 같고, 이 무시무시한 쾌락의 시간이 영원히 이어질 것 같다.

    “아, 흑, 으응, 아, 아저씨, 아학, 조, 좋아! 아아, 좋아! 나 어떡해! 더, 더 세게!”

    우연의 첫 번째 오르가슴이 느껴진다. 이원은 터질 것 같은 분출 욕구를 버텨 냈다. 첫 번째 파도가 지나가고 두 번째 파도가 오면, 우연의 몸은 더욱 크게 반응할 것이다. 겪을 때마다 여전히 새롭고 두려운, 신경이 갈려 나갈 정도로 자극적인, 아마 영원히 익숙해지지 못할 쾌감이 올 것이다.

    이원은 베개를 쥐어뜯으며 몸부림치는 우연을 꽉 끌어안았다. 이 몸은, 너무 작다. 이렇게 안을 때마다 어떻게 손댈 수 없을 만큼 여리고 가냘프다는 걸 실감한다. 이 작은 몸 사이로 나를 기어이 밀어 넣어야 하는 상황이 항상 버겁고 두렵다. 속살을 헤치고 들어갈 때마다 위에서 빠듯하게 갈라지는 두 개의 볼록한 두덩과 그 사이에서 저절로 드러나는 작고 붉은 클리토리스를 보면, 저것을 핥고 빨고 손으로 짓눌러서 비명을 지르게 만들고 싶어 정신이 어찔어찔해진다.

    너무 좁고, 너무 뜨거운 속살이 하반신을 극렬히 짓누르며 죄어 댄다. 이렇게 점점 죄어들다가 아예 페니스가 터져 버리면 그 느낌이 어떨까. 끔찍하게 고통스럽겠지만, 왜인지 끔찍하게 황홀할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치고 올라온다. 나는 이 좁고 뜨거운 속살이 그 정도로 나의 몸을 힘껏 주무르고 짓누르고 격렬하게 애무해 주기를 바란다. 입 밖으로는 절대 내지 못할 추잡하고 괴상한 욕망을 인지할 때마다, 이원은 심한 수치심과 기이한 해방감, 그리고 맹렬한 성욕을 동시에 느꼈다.

    퍽, 퍽, 퍽.

    하아, 학, 하아, 학, 학, 하아, 하아아.

    우연이 숨을 가쁘게 쉬며 몸을 이리저리 비튼다. 단발 머리카락이 베개 위로 온통 흐트러지고 얼굴은 복숭앗빛으로 물든다. 가녀린 턱과 가는 쇄골과 하얗고 작은 가슴이 발딱발딱 오르내린다.

    이원은 두 손으로 양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로 튀어나온 젖꼭지는 늘 지나치게 붉고 야했다. 허겁지겁 우연을 끌어 올려 그것을 입으로 물었다. 그녀가 이원의 성기에 내려앉아 날카롭게 비명을 지른다.

    “아 아저씨, 어떡해, 아, 너, 너무, 깊어, 지독, 아, 악.”

    이원은 젖을 먹는 아기처럼 필사적으로 가슴에 매달렸다. 작은 젖꼭지를 필사적으로 삼키고, 핥고, 짓무르도록 힘껏 빨았다. 그럴 때마다 발작적으로 이어지는 우연의 격렬한 몸부림으로 삽입이 깊어진다. 아랫배가, 딱딱하게 충혈된 살덩어리가, 극도로 예민해진 끝부분이 터질 것처럼 가렵고 고통스러웠다.

    으윽.

    아래에서 열기가 터져 나간다. 이원이 어깨를 굳히며 허리를 가늘게 떠는 순간, 우연의 속살이 이원의 성기를 물결처럼 짓누르며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아!”

    마지막 파도가 두 사람을 한꺼번에 후려친다.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뒤로 꺾인다. 아랫배와 허벅지와 엉덩이, 종아리, 발가락 끝까지 의지와 상관없이 꿈틀거리며 몸부림을 친다. 쩔꺽쩔꺽 쩍, 쩍. 물기 어린 마찰 소리의 농도가 짙어진다. 애무를 견뎠던 시간만큼이나, 파정의 쾌락도 지나치게 길었다.

    아아, 하아, 아아아.

    절정의 쾌감은, 길고 아득한 추락 같았다. 검은 우주에서 벌거벗은 채 푸른 지구로 뛰어내리는 것처럼 늘 무섭고 신비로웠다. 눈앞이 점점 하얗게 변하며 번쩍번쩍 빛이 점멸한다. 수천 갈래의 바람이 손톱처럼 전신을 긁는 듯, 대기의 마찰열이 온몸을 태워 버리는 듯, 길고 짜릿하고 뜨거운 쾌감이었다. 피부와 내장과 근육과 생식기와 뇌 속을 오로지 자극 하나로 지져 버리는 듯했다.

    두 사람이 절정을 맞이하는 시간은 늘 비슷했다. 우연의 속살은, 몇 번의 오르가슴 파도가 지나갈 때마다 난폭하게 이원을 끌어당겼고, 그가 그 끔찍한 쾌감에 완전히 잠식되도록 강제했다. 이원은 노예처럼, 혹은 길든 짐승처럼 속절없이 굴복했다. 이원의 사정은 대체로 우연이 최고로 절정을 느낀 직후에 이루어졌다. 그 순간은 서로에 대한 완벽한 종속과 온전한 해방감, 그리고 그것을 모두 넘어선 깊은 합일의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하아, 아, 후우, 후우.”

    오르가슴이 지나간 우연의 몸은 연체동물처럼 완전히 풀어지곤 한다. 이원은 우연의 이런 모습이 미칠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축 늘어진 가녀린 몸을 으스러질 듯이 끌어안고 입술이 맞닿는 곳마다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이 순간은, 늘 눈물이 난다. 아저씨, 사랑해. 우연의 가느다란 팔이 목을 끌어안으며, 입맞춤이 깊어진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희락의 시간, 나를 잃고, 너를 통해 새로운 나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 * *

    “아가씨? 일찍 내려오셨네요? 출출하세요?”

    “아, 네. 목도 조금 마르고 배도 좀 고프고…….”

    간식과 음료수를 가지러 내려왔더니 식당에서는 벌써 송 할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당연히 밤새 한 짓이 있어 놓으니 배가 고픕니다. 무진장 고픕니다. 아침부터 삼겹살 통갈비 치킨 피자 라면 곱빼기 다 먹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간 괜히 아저씨까지 창피해질 테니, 최대한 조신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송 할머니는 얼른 바나나와 우유를 꺼내 믹서에 갈기 시작했다.

    “요새 전무님하고 보드게임 자주 하시는 것 같던데, 어제는 어떤 게임 하셨어요?”

    “히히. 어제는 체스 뒀어요.”

    물론 ‘체스는 거들 뿐’이라는 건 빤히 아실 테지만, 매너 좋고 배려심 깊은 송 할머니는 해맑게 웃으며 말을 받아 주신다.

    “어머나, 아가씨. 체스 잘 두세요? 원래 보드게임 같은 거 좋아하세요?”

    “배운 지는 얼마 안 됐는데, 굉장히 재미있어요.”

    자그마치 대왕 꿈틀이 펠라가 걸려 있는데, 재미없을 수가 없죠. 우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속으로 웃었다. 송 할머니가 무척 반가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재미있으시다니 너무 잘됐네요. 전무님도 체스 무척 좋아하시거든요. 배운 지 얼마 안 되셨으면 전무님이 좀 봐주셔야 할 텐데.”

    에이, 할머니가 뭘 모르시네. 현재는 제가 파죽의 연전연승 중인데요?

    물론 아저씨가 머리가 상당히 좋은 건 우연도 알고 있고, 송 할머니가 아저씨를 무척 자랑스러워하시는 것도 알고 있지만, 공부 머리와 게임 머리는 따로 있는 법이다. 안타깝게도 송 할머니의 자랑은 계속되었다.

    “전무님이 어릴 때 보드게임 마니아였답니다. 간신히 걸음마 떼실 때부터 아우구스티노 대부님한테 온갖 종류의 게임은 다 배웠는데, 글쎄 대부님이 ‘사나이들의 비정한 승부의 세계를 미리 맛보여 주겠다.’ 하면서 얼마나 골탕을 먹이셨는지. 글쎄 그 착하고 마음도 여린 전무님이, 피도 눈물도 없는 보드게임 승부사가 돼 버리셨지 뭐예요.”

    아, 하, 아하하하. 눈앞에서 영상이 재생된다.

    아저씨의 괴짜 대부님은 과천 아트빌리지 가까이 살고 계셔서 몇 번 뵌 적이 있다. 아저씨의 외가 쪽 먼 친척으로, 자그마치 은퇴 신부님이었다. 아저씨의 어머니가 불임으로 고생하고 이혼당하고 다시 재혼하고 아저씨를 갖기까지 울며불며 힘들게 고생하는 것을 보고, 짠한 마음에 공수표를 몇 번 날렸다고 했다.

    ‘세상에서 젤 예쁜 아기 좀 보내 달라고 하느님께 졸라 보마. 그러니 고만 울어.’

    ‘네가 아기를 낳으면, 내가 꼭 대부가 되어 줄게. 그러니 고만 울어.’

    ‘그 아기가 결혼하면 혼배 성사도 내가 집전해 주마. 그러니 고만 울…….’

    문제는, 그러다가 정말 아저씨가 태어났다는 사실이었다. 대부님은 아저씨를 볼 때마다 “약속 한번 함부로 했다가 코가 꿰었어. 내가 은퇴한 지 오삼 년인데, 네놈이 장가갈 때까지 죽지도 못하게 됐잖아.” 하며 투덜대곤 하셨다.

    우연이 킬킬 웃으며 송 할머니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아이 참, 콩깍지가 너무 심하신 거 아니에요? 게임 머리는 공부 머리하고 다르다고요.”

    송 할머니의 표정이 엄숙하고 진지해진다.

    “아니에요. 전무님은요, 제대로 룰을 아는 게임이면 거의 지는 법이 없으세요. 체스, 루미큐브, 큐브, 윷놀이, 포커, 고스톱, 가위바위보까지요.”

    “가위바위보도요?”

    “네. 가위바위보도요.”

    송 할머니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가위바위보 잘하는 게 이렇게나 자랑스러워할 일이던가. 우연은 다시 웃음을 참았다. 늘 침착하고 신중한 송 할머니지만, 어린 시절의 아저씨에 대해 자랑이라도 할 참이면 늘 품위와 이성을 잃곤 했다.

    “가위바위보 하실 때 열 번 중에 여덟아홉 번은 이기세요. 열 번 다 이길 때도 있었고요. 그나마 상대가 기분 안 좋은 것 같으면 끝판에 몇 번 져 주는 것 같아요. 감이 상당히 좋으신데, 티를 잘 안 내시는 게 틀림없어요.”

    우연은 맹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들을수록 뭔가 좀 이상하다. 가위바위보를 지는 법이 별로 없다? 그거야말로 진짜 확률 싸움 아닌가? 그 말대로라면 아저씨의 진짜 적성은 신부님이나 정원사가 아니라 타짜 아니겠냐고.

    그리고 그 얼치기 타짜는 현재 진우연이라는 초짜에게 쪽팔릴 정도의 패배를 거듭하고 있는데? 특히 야한 벌칙이 점점 강화되면서, 특유의 침착함마저 잃고 광란의 연패 중이다. 그렇게 잘하신다는 가위바위보는 물론이고 어제 체스 게임도 저한테 줄줄이 3연패를 하셨는데요오오……?

    멍하니 올려다보는 우연을 향해, 송 할머니는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글쎄 미국에서 학교 다니실 때는요, 주에서 하는 체스 대회에 나가서 우승 트로피를 두 번이나 받아 오셨다니까요? 어른들도 다 참가하는 대회에서요.”

    “아, 아하아……?”

    순간, 푸른 하늘의 날벼락과도 같이, 거대한 깨달음이 도래했다.

    그래. 나의 촉은 이미 오래전부터 말하고 있었어! 쎄하다고! 구리다고! 뭔가 이상하다고!

    ……진짜 변태는 아저씨라고.

    * * *

    “짜잔!”

    우연이 송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바나나 우유와 생수, 전채 요리 몇 가지를 들고 들어가니 이불에 파묻혀 있던 아저씨가 부스스한 머리를 내밀고 멋쩍게 웃는다. 침대에서 내려올 생각도 안 하고, 이불을 둘러쓴 채 생수 한 병을 다 마시고 전채 요리를 주섬주섬 집어 먹더니 바나나 우유도 단숨에 비운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요새는 이런 아저씨의 모습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식욕이 몹시 좋아진 아저씨는 이제 음식을 먹을 때 진심으로 즐겁고 활력이 넘쳐 보였다.

    “아저씨, 벨기에 브뤼셀에 가 보신 적 있으세요?”

    “있어.”

    “거기 시내에 가면 소변보는 아이 동상도 있다면서요? 보셨어요?”

    “응. ……왜?”

    아저씨의 눈빛에 긴장감이 서린다. 대체 또 무슨 황당한 말을 하려고 이럴까, 싶은 눈치다. 하지만 우연은 그 눈빛 뒤로 저도 모르게 스며 나오는 옅은 호기심과 흥분을 감지한다.

    “저는 그 아기를 생각할 때마다 걱정이 돼요.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물로도 단단한 돌에 구멍이 난다는데, 그 아기의 고추는 4백 년 동안 물을 쏟아 내고 있으니 닳아요 안 닳아요, 그러니 구멍이 커져요, 안 커져요?”

    “……뭐?”

    아저씨의 입이 멍하니 벌어진다. 우연은 점점 열렬하게 주장을 펼쳤다.

    “저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그 불쌍한 아기의 요도 구멍이 걱정돼 죽겠고, 그 아이가 자라면 고자가 될 거라는 생각밖에 안 들고, 그때마다 저놈의 구멍을 얼른 좁게 땜질 좀 해서 불쌍한 아기를 구해 줘야 한다는 조바심에 시달린다고요.”

    “그게 무슨 변태 같은 생각이야! 그 동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그건 복제품이라 네가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아, 그건 다행이네요. 그런데 아저씨는 그 동상 보면서 한 번도 그런 생각 안 해 보셨어요?”

    “안 해 봤어. 그렇게 귀여운 아기 동상을 보면서 누가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해?”

    엥? 우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귀여워요? 대놓고 야릇하라고 만든 것 같은데요? 그걸 보면서 단순히 귀엽다는 생각만 하는 게 오히려 비정상 아닌가요? 얼마나 욕구를 억압했으면 당연히 들어야 할 야릇한 생각조차 안 들겠어요? 저는 뭐 대놓고 변태지만요, 그걸 보고 전혀 야릇하다고 생각 안 하는 사람도 분명 변태일 거예요!”

    아저씨가 기가 막힌 듯이 웃으며 머리에 딱밤을 날린다.

    “주일날 아침부터 자꾸 이런 말만 할 거야? 그래서 나한테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대놓고 변태’ 아가씨.”

    “아저씨가 소변보는 걸 보고 싶어요.”

    아저씨의 입이 떡 벌어진다. 1초도 되지 않아 아저씨답지 않게 커다란 목소리가 펑 터져 나온다.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왜 그런 결론이 나와!”

    “왜요? 그 정도면 합리적이고 합당한 결론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게 왜 보고 싶냐고!”

    아저씨가 기겁을 하며 되물었다. 우연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생긋 웃었다.

    “호기심에 이유가 어디 있어요? 그냥 궁금하니까 보고 싶은 거죠. 아, 창피하면 저도 보여 드릴게요. 아저씨도 궁금하시죠?”

    “나는 안 궁금해!”

    아저씨는 정말로 멘탈이 빠져나간 것처럼 큰 소리로 고함친다. 이성은 온몸으로 거부 의사를 드러낸다. 저렇게 온몸을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치는 것은, 아저씨의 이성의 부분이고, 아저씨의 진짜 반응이다.

    하지만 우연은 아저씨가 자신의 청을 딱 잘라 거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속으로 비죽이 웃었다. 그의 이성도 힘이 세지만, 그의 본능도 만만찮은 저력과 한 방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무의식은, 눈을 지글지글 빛내며 기대에 찬 시선으로 우연을 내려다본다. 그 강렬한 눈빛은 기대를 넘어, 탐욕을 넘어, 애원에 가깝다. 아저씨는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저 표정이야말로, 아저씨의 내면에 있는, 이 황당한 제안에 귀를 쫑긋 세우고 수치심에 자신을 풍덩 던지고 싶어 하는 한이원의 진짜 얼굴일 것이다. 우연은 이 새로운 깨달음에 자신의 모든 패를 걸 수 있었다.

    이제 우연이 할 일은 아저씨를 두르고 있는 마지막 한 꺼풀을 손가락으로 톡 쳐서 걷어 내는 일이다. 우연은 이원의 허리에 대롱대롱 매달리며 고양이처럼 얼굴을 비볐다.

    “정말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어차피 서로 볼 거 다 봤으니까 숨길 것도 없잖아요. 이건 죽어도 안 그릴게요. 정말로.”

    “그따위 짓을 했다간 창피해서 내가 먼저 죽어 버릴 거야. 볼 거 다 봤으면서 대체 뭐가 더 궁금한데.”

    “아저씨 몸에서 나오는 신비하고 놀라운 황금빛 물줄기가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니까요.”

    “우연아, 그런 말 하면 정말…… 변태…… 같아. 정말이야.”

    아저씨는 아주 몹쓸 욕이라도 하는 것처럼 더듬더듬 비난했다. 하지만 우연은 자랑스럽게 턱을 들고 말했다.

    “그럼요. 상변태 맞죠. 전 제가 변태인 게 자랑스러워요. 아저씨는 왜 안 궁금하세요? 브뤼셀에 오줌 누는 소녀 동상도 있다던데, 그건 안 보셨어요?”

    “안 봤어. 그 앞을 지나가긴 했는데 안 보고 그냥 지나갔어,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 정말 보고 싶지 않……. 정말이니까 웃지 마.”

    우연은 키득키득 웃으며 아저씨를 올려다보았다. 이놈의 아재가 참말로 워싱턴처럼 정직한 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라 하기도 애매한 것이, 아저씨는 자신을 속이는 것으로 남까지 속이는 스킬이 꽤 탁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아저씨 가위바위보로 정하는 건 어때요? 이긴 사람 마음대로.”

    “……대체 이걸 왜 가위바위보로 정해야 하는데?”

    “가위바위보는 뭔가 하늘의 뜻 같지 않아요? 완전히 예측 불가능하니까요.”

    “하늘의 뜻이라기엔 너무 우연으로만 이루어지는 승부 아니니?”

    “한두 번이면 우연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섯 번이나 열 번 했을 때, 스무 번 했을 때, 백 번 했을 때 전부 다 이기거나 전부 다 지면, 그건 하늘의 뜻이거나 운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런 일에 운명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아저씨는 여전히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우연은 확신했다. 아저씨는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 가위바위보 열 판 정도만 해 볼까요? 제가 열 판을 다 이기면, 그 정도 확률이면, 제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는 하늘의 뜻으로 봐도 되지 않겠어요?”

    “그 확률이 얼마인지 알기나 해? 59049분의 1이야. 가능할 것 같아?”

    계산이 빠른 아저씨가 잠시 후 반박했다. 우연은 대답하는 대신 주먹을 귀 뒤로 빼며 씩 웃었다. 가위바위……, 우연이 운을 떼자 아저씨도 얼결에 가위바위보 준비 자세를 취한다.

    “보!”

    우연은 가위, 아저씨는 보. 1승을 기록한 우연은 숨 쉴 새도 없이 바로 연속 승부로 들어갔다.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보, 보, 보, 보, 보……!”

    아저씨는 엉겁결에 우연과 속도를 맞춰서 가위바위보를 했다. 가위, 바위, 바위, 보, 가위, 보, 바위, 보, 보. 정말 대중없이, 생각조차 없이 냈다.

    승부는 순식간에 끝났다. 아저씨가 낸 것은 보, 가위, 가위, 바위, 보, 바위, 가위, 바위, 바위. 순식간에 10연패를 해치운 운명의 사나이가 몹시 당황한 얼굴로 우연을 바라본다. 대체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우연은 이원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아저씨 타짜인가요?”

    “10연패를…… 했는데…… 무슨 타짜야.”

    아저씨가 얼빠진 목소리로 더듬더듬 반박한다.

    “아, 그렇죠. 타짜가 되시긴 어렵겠네요. 하지만 59049분의 1을 성공시켰으니, 제 부탁을 들어주시는 건 하늘의 뜻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정 그러면…….”

    이원은 암담하고 괴로운 얼굴로, 하지만 고분고분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속옷을 입고 가운을 걸친 후 화장실로 향한다.

    이것이 늘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장난질은 응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웃어넘겨도 상관없는데, 아저씨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고지식하고 곧이곧대로 약속을 지키는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아마 아저씨는 여전히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닌 듯했다.

    이제 진실에 거의 접근한 듯한 느낌이 든다.

    한 가지만 더 확인한다면 말이지.

    이원이 내키지 않는 얼굴로 변기 앞에 선다. 우연은 졸랑졸랑 따라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위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꼭 봐야겠어?”

    “아, 정 내키지 않으시면 대신 자위하는 걸 보여 주셔도…….”

    “알았어, 알았어. 할게. 해.”

    아저씨가 황급히 말을 끊으며 가운 허리띠를 풀었다.

    하지만 창피한 걸 이겨 내기까지는 한참 더 걸렸다. 한동안 꾸물대던 아저씨는 열 번쯤 한숨을 쉰 다음, 속옷을 끌어 내리고 페니스를 한 손으로 끄집어냈다.

    투르르르르.

    자신이 어젯밤에 그렇게 괴롭혀 댔던 붉고 작은 구멍 끝에서 황금색 물방울이 길게 미끄러져 내려왔다. 우연은 자칭 상변태답게 눈을 반짝이며 주먹을 꼭 쥐고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물줄기가 가늘어지다가 툭 끊어지고 남은 것들이 방울방울 떨어질 때까지, 입을 꽉 다물고 눈도 질끈 감고 있었다. 마지막 방울이 떨어질 때쯤, 그가 나직하게 신음을 삼키며 짧게 허리를 떨었다. 화장실에 들어설 때부터 붉어지기 시작한 얼굴은, 이 짧은 시간 동안 물러 터지기 직전의 토마토처럼 시뻘겋게 익어 버렸다.

    그리고, 어젯밤 수도 없이 시달려서 정말 흐느적흐느적하던 성기는 순식간에, 정말 그 몇 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터질 듯이 부풀었다. 달라붙는 속옷 안에 얌전히 수납되어 있던 그것은 속옷으로 밀어 넣어도 허리 밴드 위로 삐져나올 만큼 무섭게 부풀었다.

    드디어 결론이 났다. 우연은 그가 물을 내리고 손을 씻고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생긋 웃으며 물었다.

    “아저씨, 이딴 걸 구경하고 싶은 게 더 변태인가요, 구경당하면서 발기하는 게 더 변태인가요?”

    “…….”

    “아저씨, 야한 벌칙을 열심히 개발해 내는 게 더 변태인가요, 야한 벌칙을 당하고 싶어서 승부사의 기질을 총동원해서 게임마다 지는 게 더 변태인가요?”

    “…….”

    “체스 챔피언이 저 같은 개초보한테 연전연패하는 것도 무지 힘드셨을 텐데요, 네? 5만 9천분의 1의 확률로 연패를 거머쥐기도 정말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네? 이야. 이 정도면 진짜 세기의 타짜 아니신가요?”

    후우. 아저씨가 손등으로 시뻘게진 뺨을 힘껏 문지른다. 우연은 그 모습이 미칠 듯이 사랑스럽고 섹시해서 죽어 버릴 것 같았다.

    “아저씨, 창피하면 서죠? 엄청나게 쪽팔리면 엄청나게 서죠?”

    “……응.”

    “아파도 서죠? 간지러워도 서죠?”

    “응.”

    “아저씨도 변태 맞죠?”

    “……맞는 거 같아.”

    길고 암담한 한숨과 함께, 이원이 시인했다. 우연은 쪼그리고 앉은 채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역시나, 고수는 재야에 숨어 있는 법이라더니. 진짜 변태력이 높은 건 자신이 아니라 아저씨였다. 이 아재에 비하면 자신은 그냥 호기심이 많고 창의력을 발휘해 이것저것 해 보고 싶은 게 많은 초급 변태일 뿐이었다.

    아저씨는 자신과 달리, 아주 뿌리 깊은 진성 변태이며 점잖은 척하지만 말할 수 없이 밝히는 내추럴 본 짐승 같은 남자였다. 그동안 엄하게 자신을 다스리며 수줍게, 아니 점잖게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어서, 이성으로는 그런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할 뿐이다. 그래서 게임의 벌칙이라는 수단으로 그것을 한껏 누리게 된 순간부터, 아저씨의 본능은 너무너무 고마워하며, 이성 몰래 열일하는…… 아니 폭주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깨닫고 이렇게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르는 것이다. 이 또한 얼마나 변태답고 사랑스러운가. 우연은 눈가에 매달린 눈물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사르르 웃었다.

    “다행이네요. 우린 정말 천생연분이에요. 다른 여자를 만났으면 이 엄청난 변태력을 꽃피우지도 못하고 어쩔 뻔했어요.”

    이원은 고개를 숙인 채 주먹만 쥐었다 폈다 한다. 입가와 미간이 묘하게 꼼틀꼼틀한다. 몹시 수치스럽고 암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기대감과 흥분이 눈가와 입가로 스멀스멀 스며 나오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우연은 이원의 속옷 허리 밴드 사이로 비죽 튀어나온 반항아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쓰다듬은 후, 통 튕겼다. 그러자 불룩하게 부푼 살덩어리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부르르 요동친다.

    “걱정 마세요. 제가 남은 99년 동안 아저씨의 엄청난 재능을 찬란하게 꽃피워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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