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누드-39화 (39/47)
  • 39. 아저씨, 괜찮아요

    아저씨는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 전화는 할지도 모른다. 사람을 마음에서 완전히 잘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아무리 단단한 땅이라도 가끔 지진이 날 수도 있고, 조금은 갈라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그 갈라진 틈으로 마그마가 몇 방울쯤 튀어 오를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그게 오늘일지도 모른다.

    한참 전화기를 내려다보던 우연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돌렸다. 눈이 시고 뻑뻑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전화기만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점점 시간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다. 이 방은 너무 조용해서, 시간마저 살금살금 피해 지나가는 듯했다.

    일상은 평화롭고 조용했다.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종일 말을 안 해도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텔레비전조차 켜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세상은 너무 시끄럽고 난폭했다.

    침묵이 지배하는 시공은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말이 사라지자 아픔도 사라진 것 같았다. 감정은 증류수처럼 투명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고요했다. 알툼 실렌티움(Altum Silentium), 대침묵이라 했던가. 아저씨가 어둠에 잠긴 대침묵 시간을 사랑한 이유를 드디어 알 것 같았다.

    우연은 과천에 있는 ‘이원 아트빌리지’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아트빌리지는 한적한 변두리에 자리한 7층짜리 건물 두 동이었는데 예쁜 정원과 앤티크 소품이 많은 카페, 그리고 피트니스 센터와 무료 상담실도 같이 있었다. 우연에게는 천장이 높고 볕이 잘 드는 작은 작업실과 그곳에 딸린 방 하나가 주어졌다.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도우미 아주머니 한 분, 슈퍼마켓, 택배 기사들뿐이었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우렁각시처럼 나타나서 청소와 빨래와 반찬을 해 놓고 사라졌다. 불편한 것은 전혀 없었다. 가끔 도우미 아주머니가 불편한 것이 있느냐 물었지만, 대답을 안 해도 전혀 상관없었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이상하게 흘러갔다. 한 시간 한 시간은 너무나 길고 지루한데, 어느새 저녁이고, 어느새 아침이고, 어느새 주말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흘러가면, 순식간에 환갑과 백 살 잔치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 살다 죽으면 머리에 남은 것은 이 집의 흰 벽과 화이트보드처럼 말갛게 지워진 기억뿐이겠지만, 그것도 썩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첩첩이 저장된 기억들은 끌려 나올 때마다 하나같이 아파, 아파, 아파 죽겠다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우연은 이제 시끄러운 것이 싫었다. 저장된 모든 장면이 싫었다. 반짝이는 빛 조각들이 굵은 소금처럼 뿌려진 검푸른 한강과, 이상한 글자들이 춤을 추는 하얀 난간과, 그곳을 배경으로 한 어떤 장면이 특히 싫었다. 그곳에서부터 길게 이어지는 무수한 장면은 더더욱 싫었다. 그것들은 유난히 시끄러웠고, 잘 지워지지도 않았다.

    우연은 시끄러움을 견디지 못하면 그림을 그렸다. 작은 스케치북을 한 권 들고 아무 곳에나 앉아 그림을 그렸다. 세목 아르쉬의 표면은 항상 매끈하고 고요했다. 아트빌리지 안의 세상도 그랬다. 스케치북 속의 시간은 늘 한 지점에 멈춰 있었고, 아트빌리지 안의 시간도 그랬다.

    우연은 그곳에 색을 빼곡하게 채웠다. 사각의 틀 안에 그려진 일그러진 색 덩어리들이 무엇인지, 도우미 아주머니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림이 열 장, 스무 장, 백 장이 될 때까지 앞뒤 좌우조차 분간하지 못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특별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미끄러져 바닥에 넘어졌던 것이다. 아, 입이 커다랗게 벌어지며 비명이 나올 뻔했다. 선명한 아픔은 이 고요하고 정지된 시간을 순간 깨뜨렸다.

    물을 마시다가 유리컵을 놓쳤다. 떨어진 유리컵은 챙,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났다. 잠시 후, 총각김치를 먹다가 볼살을 씹었다. 휴지에 묻어나오는 붉은 피를 보며, 머리가 천천히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오늘 아저씨에게 전화가 올지도 모르겠다.

    달력을 보았다. 5월 15일. 아저씨가 결혼하기로 한 날이었다. 내가 끼어들지 않았으면 아저씨는 오늘 카탈로그에서 보았던, 깃에 은빛 자수가 놓이고 긴 꼬리가 달린 옷을 입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아저씨는 화려한 드레스가 어울리는 그 언니에게 알이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장면들은 상상마저 너무나 시끄럽고 악착스러웠다.

    “잘 지냈니, 우연아.”

    인터폰에 비친 아저씨의 모습에 우연은 멀거니 눈만 깜박거렸다.

    이건 아닌데.

    아저씨가 이곳에 직접 나타나는 건 예정에 없었다. 여긴 어떻게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아저씨가 웃으며 말을 덧댄다.

    “……내가 여기 운영자라 들어올 수 있었던 거야. 보안에는 지장 없어.”

    아. 우연은 저도 모르게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가 이곳 운영자라는 사실이 아저씨가 눈앞에 보이는 마땅한 이유라도 된 것 같았다.

    “괜찮다면 문 좀 열어 주겠니?”

    “…….”

    “그래. 이야기하는 게 힘들면, 여기서 용건만 얘기하고 갈게.”

    다른 사람 같으면 짜증스러워할 법한데 아저씨는 우연이 말을 잃어버린 것을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덜컹.

    우연은 아저씨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다리 위에서 처음 만났을 때 한참 올려다봤는데, 지금도 같은 각도로 올려다봐야 하는 건 여전했다.

    아저씨의 옷도 마찬가지였다. 아저씨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아래위로 티 하나 없이 새까만 옷을 입고, 검은 민무늬 실크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홍연 아저씨도 없이 혼자였다.

    아저씨가 무슨 일로 이곳에 나타났는지 천천히 감이 온다. 짙은 갈색 눈동자에 깊은 그늘이 내려앉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우연은 가만히 아저씨의 눈만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조용조용 설명을 계속했다.

    “어제 오후에 간병인한테 4층 야외 휴게소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더구나. 꽃을 보고 싶다면서.”

    “…….”

    “그래서 휠체어로 데려다주었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난간을 넘어서 뛰어내렸어. 붙잡을 틈도 없었다고 해.”

    “…….”

    “아마 고통 없이 단번에 죽었을 거야. 병원은 발칵 뒤집혔지만.”

    우연은 이 말을 태연하게 듣고 있는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지나치게 차분하고 담백한 저 말투 탓일까. 혹은 지나치게 오래 기다렸던 소식이어서일까. 알 수 없었다.

    “유서는 없어. 유산도 없고.”

    다행이다. 몸뚱이와 몸뚱이를 채운 유전자 말고 또 뭔가를 물려받아야 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장례식 갈 생각 있니?”

    가만히 눈만 깜박거렸다.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윙윙대던 소리가 서서히 멎는다. 장례식. 장례식. 장. 례. 식. 그렇다. 죽은 사람이 누운 관이 있고, 국화를 놓고, 향도 피우고, 절도 하고, 그 영혼을 천국으로든 지옥으로든 빨리 쫓아내고, 다시는 세상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기도도 하고 염불도 해 주는 일. 장례식.

    그런데 ……정말 죽었을까?

    “정말 돌아가셨어.”

    아저씨는 입 밖으로 나오지도 않은 말을 잘 알아들었다.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다. 꿈 같다. 아빠는 전지전능의 불사신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아주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지만,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일, 바라서도 안 되었던 일은 너무 어이없게 일어났다.

    놀랍게도 놀랍지 않았다. 우연은 그 일에 대해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 더 이상한 것은, 아빠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고가 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뭔가를 너무 많이 잊어버린 것 같다.

    우연의 혼란한 얼굴을 보며 이원이 다시 물었다.

    “가기 힘들면 안 가도 돼. 가고 싶으면 가는 거고. 어떡할래?”

    우연은 가늘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고,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같이 가자.”

    장례를 누가 준비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렇게 멋지고 젊은 아빠의 사진을 어떤 경로로 구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 사흘간의 행사에 대한 것은 먼지만큼도 궁금하지도 않아서, 우연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엄마의 장례식과 달리, 아빠의 장례식에는 친가 쪽 친척들이 적잖이 찾아왔다. 누가 어떻게 알아서 이렇게 부지런히 연락했는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쫀쫀한 그물처럼 엮여서 서로를 궁금해하고 챙기고 쫓아다니고 떠들어 대는지 모르겠다. 태평양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빈 배처럼, 둥실둥실 조용히 떠다니는 삶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장례식이 이게 뭐야. 상주도 없이 뭐가 이리 썰렁해?”

    “형식이 딸 어디 있어? 걔 혼자 남았다며.”

    “우연이? 지금 엄마 아빠 한꺼번에 죽고 제정신이겠어?”

    “걔 원래도 나사 살짝 나가지 않았어? 죽은 형식이가 걱정이 많았었는데.”

    촌수도 알 수 없는 먼 친척이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대고 빙빙 돌려 보인다. 혀 차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렸다.

    “쉿, 저기.”

    누군가 우연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자 일순 시선이 쏠렸다. 입을 슬쩍 가리고 수군대는 소리는 딱히 조심스럽지도 않았다.

    “아까 들어오면서 보기는 봤는데, 정말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아. 말 걸지 마.”

    “에이그, 형식이가 딸을 얼마나 끔찍하게 아꼈는데. 애가 좀 이상해서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그거 형수 닮아서 그렇겠지. 형수가 신경이 더럽게 예민하고 정신머리가 좀 이상했었다 하데. 아니나 달라, 형이 갇혀 있을 때 바로 이혼 소송 하고 아파트 팔아서 들고 튄 거 봐.”

    “붙잡힌 형수가 라이터로 불 질렀다잖아. 미친 거 맞지. 천벌받을 년. 형님은 여자 하나 잘못 만나서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형님, 서울에 아파트 있던 거, 그거 몽땅 저 애한테 가는 거야?”

    “쟤 몇 살이었지? 상속받으려면 보호자 필요한 거 아니야? 촌수로 제일 가까운 친척이 누구지?”

    “꿈 깨요, 꿈 깨. 걔 저래 쪼끄마해도 올해 스물둘일걸?”

    “그래도 살짝 이상하다며. 그럼 친척 중에 보호자 필요한 거 아니야……?”

    우연은 그들과 섞여 인사를 하는 대신, 눈에 띄지 않는 구석 자리에 앉아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냈다. 세상은 여전히 지나치게 시끄러웠지만, 뺨 위로 떨어지는 햇볕은 너무나 따스하고 간지러웠다.

    아저씨는 이틀 내내 자리를 지켰다. 하는 일은 없었다. 그냥 우연의 옆에서 말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우연이 햇빛을 받으며 눈을 가늘게 하고 웃으면 같이 웃어 주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졸았다.

    어쩌면 이렇게 아무런 느낌이 없을 수가 있을까.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심지어 놀랍지도 않았다.

    이 순간이 오기를 늘 꿈꾸었지만, 이 장면에서의 자신이 어떤 마음일지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빠의 죽음을 기다리며 매일 병실 문 밖에서 아빠의 상태를 확인하면서도 만약 아빠가 죽으면 어떤 기분일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다만 적어도 이것보다는 강렬한 감정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빠의 망가진 시신을 확인했으면 좀 더 슬프거나 놀랍기는 했을까?

    하지만 그조차 별로 보고 싶지도 않았다. 무서워서도 아니고, 몸서리나게 싫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관심이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되면 이 지경이 되는 걸까.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자신도 뫼르소처럼 아빠의 나이를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지나면 진형식이라는 이름도 잊을 테고, 조금 더 가면 아마 아빠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의 분골은 양평의 어느 수목장 공원에 갖다 버렸다. 양평에 딱히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를 서쪽 인천에 뿌렸으니, 아빠는 동쪽에 뿌리는 것이 좋으리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아빠는 저승의 8대 지옥에 떨어져서도 엄마를 스토킹할 위인이기 때문에, 최대한 멀리 떨어뜨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엄마를 위해 속초나 강릉까지 갈 만큼 시간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아빠는 이제 부피가 몹시 작아졌으며, 뽀얗고, 공기를 타고 훌훌 날아다닐 만큼 가벼워져서 꽤 선량하게 느껴졌다. 우연의 마음도 물기가 완전히 빠져나간 분골만큼이나 건조해져서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따라온 친척들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이럴 때 눈물이 나오면 좀 번듯해 보일까, 생각하던 우연은 조금 웃었다. 저 사람들에게 번듯해 보이면 또 무슨 상관일까. 여기서 춤을 추고 노래한다 한들 그건 또 무슨 상관일까.

    순간 우연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맞다. 어머니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있었댔다.

    ‘아빠 장례식 날 울어야 하나요? 눈물이 안 나오면 어떡하죠? 관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싶으면 어떡하죠?’

    ‘아빠가 죽은 날, 뫼르소처럼 밤새 파티를 하고 싶으면 어떡하죠? 섹스가 미친 듯이 하고 싶으면 어떡하죠? 아빠가 지랄하던 대로 채팅 앱에서 아무 남자나 만나고 싶으면?’

    ‘그러고 싶어?’

    ‘그럴 것 같아요. 그리고 만약에 제가 진짜로 양극성 장애 환자가 맞고 조증 상태라면 그럴 가능성이 아주 크겠죠.’

    머리 위로 크고 따뜻한 손이 가만히 얹히는 것 같다. 아저씨가 그때 뭐라고 대답했었더라. 부드럽지만 어딘가 아픈 듯하던 목소리가 수면 위로 천천히 떠오른다.

    ‘그날, 너를 깊이 위로하고 따뜻하게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네 곁에 있기를 기도하마.’

    우연은 사방을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아저씨는 조금 떨어진 나무 아래서,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서 있었다. 우연은 그가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와 주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오고 싶진 않았겠지만.

    아저씨와 시선이 마주 닿는다. 우연은 웃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대신 그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망자에 대한 예의처럼 적절하게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저씨의 표정이 잠시 흩어진다. 우연은 조금 더 선명하게 웃었고, 이제 아저씨의 붉은 입술 선도 부드럽게 웃음을 머금는다. 왜인지 그 눈이 습기를 잔뜩 먹은 것처럼 느껴진다.

    아저씨와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이 둥실 떠오른다. 세상에 속한 풍경에서 이 공간만 덜렁 분리되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은 침침하고 탁한 흑백의 장면으로 가라앉는 것 같고, 세상의 공기와 바람은 아저씨와 자신 사이를 비껴 흘러가는 것 같았다. 두 사람 사이를 채우고 있는 시간도, 공간도, 공간을 채우고 있는 색깔들도 주변과 분리되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오로지 강렬하고 따뜻한 햇볕만 이 공간 안으로 밀려들어 온다.

    우연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이것을 비현실감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공포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저씨와 다시 시선이 닿는다. 우연은 문득, 아저씨도 지금 자신과 같은 장면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알았다. 우연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아저씨도 안다.

    5월의 햇살은 기이하리만큼 강렬했다. 살인, 사랑, 혹은 그 어떤 감정이라도 유발할 정도로 충분히.

    장례식이 끝난 후, 아저씨는 우연을 과천 아트빌리지까지 태워 주었다. 예정대로라면 아저씨는 며칠 전에 결혼해서 그 언니와 꿀 같은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었을 텐데. 세상엔 별 이상한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조금 내밀었다. 바람은 시원하고 햇볕은 따사로웠다. 만물은 행복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늘 꼬리처럼 달고 다니는 최 실장 아저씨가 없는 것은 이상했다. 우연을 아끼는 민정 언니나 송 할머니도 없었다. 세 사람 모두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저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한마디쯤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굳이 혼자 온 걸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순간, 옆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연아.”

    “…….”

    우연은 입술을 떼고 입을 벌려 보았다. 네, 하고 대답이라도 하고 싶은데,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제는 의지에 반하는 몸이 문제인지, 의지 자체가 문제인지 따지는 것도 부질없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네. 우연은 살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듣고 싶은 말은 아닐 거야.”

    그럼 하지 마요. 우연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안 할게.”

    아저씨가 눈을 돌려 웃는다. 눈꼬리로 가늘고 긴 주름이 잡힌다. 안 할게. 아저씨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되풀이하더니 새로운 요구 사항을 끄집어냈다.

    “대신, 듣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우연의 입이 저절로 뻐끔거려졌다. 무슨 말인가요? 무슨 말을 듣고 싶으세요? 말 대신 하악, 하악, 고양이가 쌕쌕대는 듯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아저씨는 한참 말을 아꼈다. 그 상태로 적어도 100만 킬로미터는 달린 것 같다.

    “‘이젠 괜찮아요.’ 하고 한마디만 해 줄래?”

    아저씨는 여전히 웃으며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간신히 끌어 올린 입술 끝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 정도면 얼마든지 말해 줄 수 있다. 실제로 괜찮으니까.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아저씨, 괜찮아. 난 이제 괜찮아요. 난 슬프지 않아, 아프지 않아, 아무 감정도 느낌도 없어.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괜찮아요.

    하지만 함묵증은 주인의 의지마저 묵살했다. 입술이 떨어지고 소리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연이 하악하악, 고양이처럼 할딱이며 애를 쓰자 아저씨의 얼굴에서 천천히 웃음이 사라진다.

    “말 안 해도 괜찮아.”

    아저씨는 음악을 틀었다. 침묵이 대답을 독촉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배려한 것임은 알았지만, 그래도 우연은 원하는 대답을 해 주고 싶었다. 해 주기 어려운 말도 아니었는데.

    이젠 괜찮아. 괜찮아요.

    아저씨, 난 이제 괜찮아요.

    하지만 어느 순간, 우연은 자신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젠 괜찮아.

    ……지금 그 말이 필요한 진짜 주인공은 누구지?

    우연은 운전대를 잡은 사람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 아저씨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왜?

    순간 머리가 띵, 울리며 낯선 고함이 머릿속을 가로지른다.

    ‘아저씨, 도망가요. 얼른…… 도망가라고!’

    ‘소화기는, 잠깐만, 저기 멀찍이 있는 집이 주인집인가……?’

    ‘아 씨, 이딴 시골집에 그딴 게 있을 거 같아요? 얼른 가요, 제발 나가서 신고나 좀 해 주세요!’

    자신의 입에서 튀어 나가던 유리 파편 같은 고함. 억지로 묻어 버리려던 장면, 말갛게 지워져 가던 기억이 꼬리를 잡고 줄줄 튀어나온다.

    펑, 펑, 펄럭펄럭, 아저씨는 슈트 상의를 벗어 들고 자신의 앞에서 불길을 후려치고 있다. 기름 위에 얹힌 붉은 불꽃은 들꽃처럼 여기저기 피어나고 나비처럼 팔락팔락 날아다닌다.

    옆의 탁자 다리에는 엄마와 아빠가 한 덩이로 얽혀 있다. 하지만 아저씨는 오로지 나를 구하는 일에만 신경을 쓴다. 불길이 더 빠르게 번져 가는 그쪽은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아빠의 고함이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물을 한 통 들고 들어온 아저씨의 얼굴에선 이제 초조한 기색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물을 받는 건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고, 불은 생각보다 빠르게 번졌다. 아저씨의 눈이 힐끗, 엄마와 아빠를 향한다. 신경도 안 쓴다 생각했지만, 아저씨는 분명히 엄마와 아빠의 존재를 신경 쓰고 있었고, 어느 쪽이 더 급한 상황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 물이 더 급한 쪽에 뿌려져야 한다면 그것은 엄마와 아빠 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연 앞으로 번지는 불에 직접 물을 붓지도 않았다. 아저씨는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지 결정하고, 이불 위에 물을 붓고 젖은 이불을 뒤집어 다가오는 불을 죽일 만큼 침착했다.

    ‘기름에 붙은 불은 물로 끄면 더 번진다. 이렇게 해 놨지만 얼마 못 가. 서두르자.’

    ……하지만 아저씨는 그 이불을 더 다급한 상태의 아빠에게 덮어 주지는 않았다.

    탁자의 다리를 부러뜨린 다음,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불길을 잡는 대신, 아저씨는 우연을 들쳐 메고 방에서 그대로 빠져나왔다. 우, 우연아, 괜찮아? 괜찮아? 아저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에 질기게 달라붙었다.

    그 뒤로…….

    그래. 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다.

    잊혔다 생각했던 기억들이 희미하게 깜박이다가 점점 선명해진다.

    마당에 세워져 있는 차가 낯이 익다. 유난히 검고, 유난히 크고, 항상 먼지 하나 없이 매끄러운 차. 아저씨는 축 늘어진 우연을 조수석에 앉히고 빙 돌아 운전석으로 향했다.

    아저씨의 등이 보인다. 셔츠는 너덜대며 타 버렸고, 등은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아저씨는 이를 악물고 헐떡대며 운전대를 잡는다.

    아저씨가 시동을 걸기 전, 뒤를 돌아 두 사람이 남아 있는 집을 보고, 우연을 내려다본다. 다시 한번 뒤를 보고, 다시 내려다본다. 의식이 자꾸 끊어지는 것을, 우연은 버텨 냈다.

    아저씨가 전화기를 꺼낸다. 아마도 소방서에 전화를 하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번호를 누르지는 못한다.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보며, 아저씨가 등이 많이 아픈 걸까, 하는 생각이 희미하게 들었다.

    아저씨가 창문을 연다.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이 이상할 정도로 기억에 남는다.

    아저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전화기가 창문 밖으로 툭 떨어진다. 우연은 이를 악물었다. 몸을 움직여야 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아저씨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지 마요. 그러지 마세요. 아저씨 제발 그러지 마세요.

    부르릉. 끼익.

    아저씨가 차의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킨다. 뒷바퀴 쪽에서 빠그작, 쩍, 하고 휴대 전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허으, 흑, 으윽, 흐으. 아저씨는 멈추는 대신 운전대를 잡은 채 눈을 부릅뜨고 헐떡이며 차를 몰고 나간다.

    얼마만큼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울퉁불퉁한 길. 그 집 근처는 도로가 나빴다. 아저씨가 길 한가운데 차를 멈춘다. 핸들에 이마를 댄다. 고개를 들고 뒤를 돌아본다. 우연은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아저씨는 다시 조금 더 가다가 차를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본다. 신음인지 흐느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만 계속 들렸다.

    부우우, 끼이익.

    아저씨는 다시 차를 돌린다. 울퉁불퉁한 돌이 바퀴에 깔리는 소리가 짜그르르르 요란하게 들린다. 아저씨는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차가 멈춘다. 아저씨는 차 문을 열고 무언가를 주워 올린다. 아까 바퀴로 깔아 버린 아저씨의 전화기일 거라 짐작했다. 그것은 켜지지 않는다. 아저씨는 그것을 옆에 내려놓고 우연에게 묻는다.

    ‘우연아, 저 집이 주인집이니?’

    ‘지금 저 집에 사람이 있니? 우연아.’

    무슨 대답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입이 움직이기는 했는지, 그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저씨는 더 묻는 대신 주인집 쪽으로 차를 몰고 간다.

    쾅쾅쾅, 쾅쾅. 쾅쾅쾅.

    ‘아주머니, 할머니, 소방서에 전화 좀 해 주세요. 저쪽 방에 불이 났습니다.’

    ‘제가 전화기가 고장 나서, 얼른 좀 부탁합니다. 안에 사람이 있어요.’

    ‘저는 지금 이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발, 얼른 전화 좀 부탁드립니다.’

    아저씨의 목소리는 끔찍하게 고통스럽게 들렸다.

    눈앞으로 아트빌리지의 야트막한 담장이 보인다.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는 예쁜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입술이 벌벌 떨렸다.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우연은 이제 아저씨의 저 담담한 웃음이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느껴졌는지 드디어 이해했다.

    대체 왜 그랬느냐고 묻지 못한다. 이유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젠 괜찮아, 라는 말이 필요한 건, 내가 아니었다.

    앞장선 아저씨가 건물 비밀번호를 누른다. 그리고 4층까지 올라와 우연의 방 현관문 앞까지 데려다준다. 하지만 건물의 주인이기도 한 아저씨는 딱 현관문 앞에서 멈춰 선다. 아저씨는 그대로 몸을 돌리더니 우연을 향해 가만히 웃어 보였다.

    “많이 힘들었지. 이제 들어가서 쉬어.”

    입을 열었다. 말을 해 주고 싶었다. 말해 주어야 했다. 아저씨, 괜찮아요. 아저씨, 괜찮아요. 괜찮아. 하악, 하아, 하, 흡. 아저씨가 그때 어떤 마음으로 그랬고, 지금은 또 어떤 마음일지 우연은 너무 늦게 알았다. 하악, 아저씨, 괜찮아, 미안해, 고마워, 아저씨 괜찮아.

    “힘들게 애쓸 필요 없다. 괜찮아. 어서 들어가렴.”

    우연은 어깨를 툭툭 치고 몸을 돌리는 아저씨의 옷깃을 황급히 붙잡았다.

    “……왜?”

    아저씨는 뿌리치지 않고 가만히 내려다본다. 우연의 이런 반응에 놀라지도 않고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다만 기다릴 뿐이다. 지금까지 대답을 독촉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던 아저씨는, 이번에도 조용히 기다린다.

    “하악, 아, 아, 하, 개, 갠, 아즈…….”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입이 극렬히 반항한다. 말하고 싶지 않다고, 이제는 세상에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내고 싶지 않다고, 시끄러운 것을 나는 더 이상 못 견딘다고.

    아저씨 괜찮아요.

    우연은 두 손으로 슈트의 앞자락을 움켜잡고 바짝 끌어당겼다. 아저씨는 손을 내밀어서 우연의 뺨을 가만히 쓸어내린다. 긴 속눈썹이 어두운 갈색 홍채를 천천히 덮으며 그곳에 깊은 그늘을 드리운다.

    “……미안해. 네가 울면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우연은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입에서, 입속에서 뭔가 폭발할 것처럼 들끓었다.

    “아, 아저, 아저씨…….”

    드디어, 드디어 튀어 나간 말에 아저씨의 눈이 커진다. 아저씨, 아저씨, 더듬더듬, 다급하게 부르는 말에 아저씨의 속눈썹이 파르르 경련하듯 떨린다. 우연은 슈트의 깃을 꽉 붙잡고 필사적으로 말했다.

    “괘, 괜, 아저, 괜찮…….”

    “우연아. 천천히 말해. 숨 편히 쉬고, 옳지. 우연아.”

    “아저씨, 괘, 괜찮아. 괜……찮아. 아저씨, 괜……찮아. 미안, 미안해, 미안, 괜찮아. 다 알아. 괜찮아.”

    아저씨의 눈동자가 살짝 커진다. 숨 막히는 침묵이 한 뼘쯤 지나간 후, 아저씨는 천천히 물었다.

    “다…… 알아? 뭘…… 다 알아?”

    우연이 무슨 말을 덧대기도 전에 아저씨의 목소리가 튕기듯 한 계단 뛰어오른다.

    “대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니? 우연아. 대체 뭘, 뭘 안다는 거니. 대체 뭘!”

    우연은 설명할 수 없었다. 지금 반드시 해야 할 말만 하기도 벅찼다. 아저씨가 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말만 하기에도 너무 빠듯했다.

    “고마워, 아저씨, 미, 미안해요. 아저씨, 괜……찮아.”

    “……봤니? 그날?”

    이제 아저씨의 목소리는 아주 낮고 부드럽게 바닥에 깔린다. 우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필사적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미안해, 고마, 고마…….”

    눈물이 폭포처럼 넘쳐 말이 연결되지 않는다. 아저씨 얼굴에선 웃음기가 완전히 걷혔다. 그저 지글지글 들끓는 눈으로 우연의 달싹대는 입술만 노려보고 있었다.

    “아저씨, 사랑해.”

    “…….”

    “아저씨, 사랑해, 사랑해. 내가, 아저씨…… 사랑해!”

    단 한마디의 그 말은 다른 모든 말을 집어삼켰다. 우연에게는 그 말이 세상의 모든 감정을 합쳐 뭉뚱그린 낱말처럼 느껴졌다. 우연은 있는 힘껏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사랑해, 아저씨, 사랑해. 사랑해.

    “……흐으.”

    이원이 우연을 끌어안은 채 그대로 허물어진다. 우연은 그를 부둥켜안고 함께 주저앉았다. 흐윽, 윽, 흐으윽. 으으. 우연의 울부짖음 사이로, 그의 억눌린 흐느낌이 자분자분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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