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누드-27화 (27/47)
  • 27. Manic Episode(조증 삽화)

    “천천히 들어요.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송 여사는 우연이 허겁지겁 먹는 것을 지켜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2층 서재 탁자 위에는 따끈하게 데운 콩소메와 오트밀, 카스텔라, 딸기 요거트와 부드러운 푸딩 따위가 놓여 있었다. 우연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그릇을 끌어안은 채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음식을 입에 쓸어 넣을 때마다 코에서 시근시근 소리가 났다. 입이 그리도 짧던 아이는 이제 걸귀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죽이나 고깃국이라도 먹이고 싶었지만, 우연은 편식이 심하고 한식을 싫어했었다. 그나마 양식은 좀 먹는 편이었고, 제일 잘 먹는 건 케이크와 라면이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거리를 헤매면서 굶주렸던 사람에게 라면을 끓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교통 카드에 남아 있는 만 원으로 사흘을 지냈다고 했다. 뭘 먹었는지 어디서 잤는지는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이원은 가만히 앉아 우연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눈가와 코끝이 붉고 숨은 고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말 한마디 없이 차분히 아이를 보고 있었다.

    아니, 차분하지 않다. 그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우연을 보고 있다. 그의 시선은 우연의 얼굴, 음식을 줄줄 흘리며 손으로 집어 먹는 모습, 핏자국이 얼기설기 남은 팔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우연은 고개를 들더니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저씨. 아빠가 나왔어요. 삼일절 특사.”

    “그래.”

    “엄마는 아파트 팔아서 외국으로 갔어요. 이제 안 올 거예요.”

    “그랬구나.”

    “아빠가 제 카드 가져갔어요.”

    “그럼 신고해서 막아야지.”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돈 찾게 놔둬야 해요. 절대 막으면 안 돼요. 그럼 날 죽이러 찾아올 거예요.”

    질겁하는 반응에 이원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그래. 신고 안 할게. 절대 안 할게. 걱정 말고 편히 먹어.”

    우연은 아빠를 만난 후부터 며칠간 있었던 일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여전히 새롭게 겁에 질렸다. 그걸 볼 때마다 속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우연은 아빠를 한 번씩 만날 때마다 큰 폭으로 퇴행하고 있었다. 자유를 얻음과 동시에 거침없이 비상할 것 같던 영혼은 이제 작은 감옥에 완전히 갇혀 버렸다. 아빠가 근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만이 매 순간 현재 진행형이었다.

    “으으, 가려워, 아이 씨 진짜.”

    우연이 먹다 말고 짜증스럽게 소매를 걷어 올린다. 팔에는 길쭉한 상처가 어지럽게 나 있었다. 세탁을 위해 벗어 둔 와이셔츠의 소매에도 핏자국이 어지러웠다. 우연은 이원의 눈치를 힐끔 보더니 상처 위를 슬슬 긁기 시작했다. 뒤에서 지켜보던 송 여사는 눈썹을 찡그렸지만 나서지 않았고, 옆에 서 있는 민정은 덩달아 손을 움찔거렸다.

    이제 우연은 포크까지 집어 던지고 팔과 목을 박박 긁어 댄다. 에구머니 저걸 어째, 송 여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귀에 들어온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 우연의 움직임은 점점 격렬해진다. 아이 씨, 흐으, 씨이!

    “우연아, 그만.”

    이원이 일어나 팔을 잡았다. 우연은 크게 소스라치더니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손을 뿌리치려 흔들어 댄다. 하지만 가늘고 힘없는 손은 이원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아저씨. 가렵고 답답해요. 답답해서, 긁는 거야.”

    “그래, 많이 답답하지. 알아.”

    “아저씨가 알긴 뭘 알아요. 난 이렇게 답답해서 미치겠는데! 숨을 못 쉬겠어. 긁고 싶어 돌아 버릴 거 같아! 칼로 박박 긋고 싶어!”

    “긁으면 좀 괜찮아져? 시원해지니?”

    “시원해요! 터져서 피가 나는 거 보면 정신이 번쩍 나요! 왜 긁는 것도 내 맘대로 못 하게 해요!”

    “그럼…….”

    이원이 소매를 걷어서 팔을 내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긁어. 여기, 긁고 싶으면 여기. 칼로 긋고 싶어도 여기에 해.”

    꽉 쥔 주먹에 힘줄이 돋아 있었다. 우연은 앞으로 내밀어진 굵은 팔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머뭇거렸다. 이원은 한마디 말도 없이, 눈을 가만히 내리깔고 매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흐으…….”

    우연은 얇은 입술을 꼭 깨물더니 손을 내밀어 그의 팔을 긁기 시작했다. 손톱이 짧지 않은지 붉은 자국이 길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씨, 흐씨, 씨! 우연은 무엇이 그리 분하고 화가 나는지 쌕쌕거리며 고부린 손가락에 힘을 주어 긁어내린다. 처음엔 조심스럽던 움직임은, 점점 빠르고 과격해지더니, 어느 순간이 지나자 발작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연이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목과 손을 다시긁으려 하면 이원이 손을 떼어 제 팔로 가져왔다.

    사람의 피부는 생각보다 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원의 팔엔 붉은 자국이 빼곡해지더니 팔뚝 전체가 불그레하게 부어올랐고, 다음에는 붉은 핏줄기가 희미하게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이원은 눈을 감은 채 돌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 핏줄기가 이리저리 모이더니 제방이 터지듯 툭, 모여서 팔을 타고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

    우연이 몸을 부르르 소스라치더니 손을 멈췄다. 몹쓸 짓을 저지르다 들킨 듯,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도한 듯, 복잡한 표정이었다.

    무서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안 아파요?”

    “……아파.”

    “그런데 왜 가만히 있어요?”

    “네 상처를 보는 게 더 아파서.”

    “아저씨, 나는, 내 팔은 안 아팠어. 아무리 긁어도, 피가 철철 나도 안 아팠어.”

    “…….”

    “피가 나면, 뭔가 매 맞을 걸 다 맞은 것 같고, 조금 후련하고…….”

    “그래, 그래.”

    “그런데 아저씨 팔은 아파……. 흐으, 씨, 왜 이렇게 아파? 아저씨, 미안해, 나 어떡해…….”

    우연은 그의 팔을 끌어안은 채 바닥에 고꾸라졌다. 어어엉, 흐어어엉. 우연은 그의 팔에 얼굴을 비비며 울부짖었다.

    “미안해요, 아저씨. 나 지금 제정신이 아닌 거, 나도 알아요. 미안해요.”

    이원은 한 손으로 우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연은 흐느낄 때 여전히 어깨를 파들파들 떨었다. 팔을 벌려서 그 어깨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여전히 너무나도 작았다. 자신의 팔에 새겨진 난삽한 핏자국이 보인다. 우연이 자신에게 직접 새긴, 그녀와 동일한 상처였다. 이원은 우연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아픈 건 괜찮아. 정말 괜찮아. 난 오히려…….”

    이원은 잠시 망설이다가 기어이 속의 말을 토해 냈다.

    “이 상처를 한 올 한 올 칼로 더 깊게 그어서 문신처럼 새겨 놓고 싶은걸.”

    우연이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드는 것을 보고서야, 이원은 자신이 미친 소릴 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 * *

    ‘대체 그 아이가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실종 신고 한 지가 언젠데! 왜 그 많은 인원을 동원하고도 추적이 안 됩니까! 이러다가 아버지 손에 잡히기라도 하면 대체!’

    우연이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은 후부터 이원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우연과 관련된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격렬한 분노가 터졌다. 아니, 분노만이 아니었다. 우연과 관련된 감정은 무엇 하나 격렬하거나 광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회사에서건 집에서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그동안 간신히 눌러놓고 있던 무언가가 우연의 실종과 동시에 폭발한 것 같았다.

    그리고 한번 폭발하고 나니 그 후로는 아무것도 통제되지 않았다.

    그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혹시 그 아이가 집으로 도망쳐 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창을 열어 보았다. 밤늦게 회사에서 돌아와 대문을 열면, 자신의 하얀 셔츠를 입은 아이가 짧은 단발을 나풀거리며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서재에서 뒹굴뒹굴하며 억지로 어려운 책을 읽다가 꾸벅대고 조는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인형을 안고 기도실 앞에 주저앉은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눈을 들면, 꽃밭처럼 화사한 얼룩을 드러낸 나신의 아이가 그림 속에서 손을 내밀며 웃고 있었다.

    볼 때마다 심장에 칼이 꽂히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그림을 치울 수도 없었다. 자신의 영혼은 이 그림에, 아니, 그림 속 여자에게 족쇄처럼 매여 있었다.

    이럴 줄 알았어야 했다. 어느 때든, 어떤 방식으로든 후폭풍이 올 거라는 걸 예견했어야 했다. 너를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다. 너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지켜 주겠다 장담하지 않았던가. 관심을 끊을 수 있다고 자신하던 꼴이 우습고 가증스러웠다. 이제는 그날 그녀를 끊어 낸 자신의 혀를 끊어 버리고 싶었다.

    아빠와 만난 다음 날 새벽, 우연은 첫 버스를 타고 도망쳤다. 학교 CCTV를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사람을 푸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일생이 걸린 결혼과 회사의 사활이 걸린 대규모 일반 분양을 진행하는 그에겐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숨을 쉴 때마다 구토가 올라왔다.

    ‘회사 로비에 우연이가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전무님.’

    보고를 듣는 순간 심장이 멈춰 버리는 것 같았다. 무슨 정신으로 내려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로비를 향해 달려갈 때,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던 기억만 난다.

    ‘아저씨……?’

    퀭하니 초점이 풀린 까만 눈동자가 자신을 올려다본다. 넋이 나간 듯한 얼굴이다. 자해의 흔적 때문인지 흰 소매에는 핏자국이 가득했다.

    ‘아, 아저씨, 나 찾았어요……?’

    거칠고 허옇게 뜬 작은 입술이 달싹거린다. 이원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 목구멍에 벌건 쇳물을 들이붓는 것 같다.

    ‘아저씨, 미안해, 어떡해요, 아저씨.’

    ‘아빠가, 아빠가 나왔대요. 중간에 나왔어, 어떡해, 아저씨 가, 가만 안 둔다고.’

    이원은 과거의 자신을 저주했다. 난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아저씨는 몰라.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사람이, 꼭지가 돌면 정말 무슨 짓을 하는지, 아저씨같이 착한 사람은 절대 몰라요.’

    ‘아저씨, 무서워. 나는 무서워요…….’

    지저분하게 얼룩진 뺨 위로, 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순간, 이원은 우연을 포기하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했다. 애초부터 의지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냥, 이것은 이렇게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 태초부터, 우주가 생겨날 때부터 이렇게 정해져 있는 거였다. 안 그러면 이 모든 의지와 노력과 당위가 이리도 무참하게, 이렇게 단숨에 무너질 리가 없다.

    이원은 로비에 꿇어앉아 우연을 끌어안았다. 다시는, 이제 다시는 놓치지 않는다. 그는 품에 갇힌 그 작은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팔에 힘을 주었다. 미친 듯이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눈물로 얼룩진 하얀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진우연이라는 거대한 폭력에 굴복했다.

    * * *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평온한 목소리가 들린다. 퍼뜩 정신을 차리니, 우연이 아까보다는 훨씬 안정된 표정으로 자신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좀 괜찮아? 정신이 들어?”

    “……네.”

    눈에 맑은 빛이 돌아온 게 보인다. 그녀를 짓누르던 절대적인 공포가 천천히 사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야 우연의 무의식은, 그녀가 안심할 만한 공간으로 들어왔음을 인식한 것이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며칠 동안, 너 혼자서 얼마나.

    이원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 입가에 묻은 음식 부스러기를 닦아 주었다. 우연은 이원의 팔에 새로 생긴 상처들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미안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로 감당이 안 될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놀라운 그림을 그려 대던 그녀의 손은 여전히 너무 희고 너무 작아서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아저씨.”

    “그래.”

    “보고 싶었어요.”

    “그래.”

    “많이 보고 싶었어요.”

    그래, 다시 대답하려던 이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 자신의 대답은 늘 비겁했다. 우연은 제 감정에 솔직하고 무모하리만치 용감했으나 이원의 비겁함은 한 번도 탓하지 않았다. 이원은 우연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사랑해, 우연아.”

    새까만 눈동자에 찬찬히 물이 스며든다. 동그란 우물 속, 까만 밤하늘에 뜬 별이 맑았다. 이원은 다른 한 손마저 들어 우연의 뺨을 감쌌다. 자신에게만 향하는 그 시선을 더는 피하지 않고 온전히 맞받았다. 목소리가 점점 잠기는 바람에, 그는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속삭였다.

    “사랑해.”

    아…… 하하, 하하하.

    우연은 조심스럽게 웃었다. 가는 두 팔이 이원의 목을 감는다. 뺨에 우연의 얼굴이 와 닿는다. 습기가 번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원은 우연의 허리를 끌어안고 몸을 바짝 붙였다.

    사랑해. 사랑해. 우연아, 사랑한다.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이원은 뒤에 송 여사와 민정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런데 그들이 있건 없건, 이상할 정도로 아무 느낌이 없었다.

    우연이 자신의 삶에 들어온 후부터, 이원은 자신의 삶이, 에고가, 아이덴티티 자체가 계속 붕괴해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머리채를 잡혀서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은 진우연이 아니라 한이원이었다.

    나는 미현이와 결혼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우연이를, 눈앞의 이 아이만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생명의 다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렇게 정해져서 흘러가고 있던 것을, 왜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이원은 자신을 이루고 있던 것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것들이 눈앞에서 급속도로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열두 살이라는 나이 차이도, 너무나 다른 환경도, 서로에게 족쇄처럼 매달린 상황도, 아버지의 유언도,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도 너무나 부질없다.

    이 괴악한 감정이 끝까지 도달했을 때, 나 자신은 과연 얼마만큼이나 남아 있을까.

    우연이 그의 뺨에 얼굴을 바짝 맞대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속삭인다.

    “아저씨. 아무리 생각해도 난 지금 조증인 것 같아요……. 아니, 아저씨를 만난 후부터 2년 내내 조증이었나 봐요.”

    그럴 리가 없다. 지금 우연은 조증은커녕 우울감과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이원은 몸을 꼭 붙인 채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니?”

    “지금 아저씨하고 섹스를 하고 싶거든요.”

    “…….”

    “조증이면, 그렇게 섹스를 하고 싶다면서요. 저는 아저씨하고 매일매일 섹스를 하고 싶었어요.”

    이제 우연은 이원과 달리 사랑한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은 어떤 고백보다 절절하고 강렬했다.

    이원은 우연의 얼굴을 깊게 끌어당겼다. 하, 하, 아하하. 우연이 뺨을 댄 채 웃는다. 자그마한 입술이 그의 입술에 와 닿았다. 맞닿은 곳에서 메마르고 헐떡대는 소리가 났다.

    이원은 그녀의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실은 나도 2년 내내 조증이었던 것 같아.”

    * * *

    아저씨는 우연에게 입술을 떼지 않은 채 한쪽 팔로 침실의 문을 열었다. 눈앞에는 아저씨의 침대가 있었고, 그 옆에는 전시회에서 팔렸다던 그림 세 점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누웠을 때 시선이 바로 닿는 곳이었다.

    아저씨의 침대는 너무 희고 정갈해 몸을 눕히는 것만으로도 죄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세 점의 그림은 그 강박적인 결벽을 완벽하게 파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저씨는 저 세 개의 그림을 매일 보고 있었을까. 하루의 시작과 끝을 저 그림들과 함께하면서, 아저씨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 흡!

    침대에 몸이 기대지면서부터 갑작스레 입맞춤이 깊어졌다. 눈앞에서 연막탄이 터진 것처럼 허옇게 물든다.

    아저씨와의 키스는 서툰 듯, 급한 듯, 꽤 거칠었다. 하지만 지난번과 다르게 느껴진다. 달다, 깊다, 끔찍하게 달고 깊었다.

    목구멍에서 울음인지 웃음인지 헐떡임인지 모를 괴상한 소리가 났다. 아저씨가 한 손으로 허리를 바짝 붙이고, 다른 한 손으로 머리를 힘껏 끌어당긴다. 젖은 혀가 우연의 입속으로 미끈하게 파고들었다.

    “……읏!”

    아저씨의 혀가 안으로 깊이 밀고 들어온다. 좁은 우리에서 날뛰는 짐승처럼 우연의 안을 힘껏 치받으며 휘젓는다. 그의 가파른 날숨이 뺨에 훅훅 끼친다. 그가 이렇게 강렬하고 탐욕스럽게 반응해 주는 것이, 우연은 기뻤다.

    입맞춤은 여전히 부드럽지 못했다. 거칠고 아팠다. 하지만 그의 몸이 맞닿은 곳마다 뻗쳐 오는 간지러운 감각은 무서웠다. 우연의 목에서 기침과 신음과 오열이 뒤섞여 튀어나왔다. 아저씨는 그것마저 남김없이 핥고, 맛보고, 집어삼켰다. 비벼지는 곳마다 감전된 것처럼 찌릿찌릿한 전류가 끼친다. 자극은 입에서 시작되었는데 왜 가슴과 허리와 하반신까지 튕겨 오르는지 모르겠다.

    하아……, 아아.

    우연은 두 팔로 아저씨의 목을 힘껏 끌어안았다. 눈앞에서 불꽃이 꽃밭처럼 퍼져 나갔다. 우연은 혀를 맞댄 상태로 혀를 움직여 말했다.

    아저씨, 좋아, 좋아해, 사랑해, 사랑해.

    아저씨는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우연의 혀를, 이를, 입천장의 요철을 문질러 댔다. 무수히 깔린 미뢰들은 오랫동안 기다렸던 짜릿한 쾌감에 미쳐 날뛴다.

    가슴과 하반신으로 내달리는 찌릿찌릿한 감각은 이제 손끝과 발끝까지 곱아들게 만든다. 아저씨의 혀끝이 목젖까지 깊이 파고들자 격렬한 기침이 나왔다. 아저씨는 그 기침마저 모조리 빨아들여 삼켜 버렸다. 으음, 음. 낮고 굵은 신음이 입속에서 엉긴다.

    “으읍, 흐으, 아저……, 흡.”

    늘 상상했다. 아저씨가 입속을 샅샅이 훑고 삼키며, 몸속 깊은 곳까지, 아주 깊은 곳까지 아저씨의 몸으로 꽉 채우는 것을. 상상 속 아저씨는 늘 점잖고 부드럽게 자신을 안았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서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고 입술과 혀를 뭉개지듯 빨아 대는 아저씨를 보니 별로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아저씨의 얼굴은 붉고, 미간은 우그러들고, 날숨은 뜨거웠다. 그의 허리가 지그시 아랫배에 눌린다. 헉, 우연의 몸이 저도 모르게 튀어 오르고, 아저씨는 난감한 듯, 괴로운 듯 눈을 감는다.

    후우우, 후우.

    그때와 같이 아랫배에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의 두 다리 사이로 팽팽하게 긴장한, 거대하고 뜨거운 욕구가 허벅지와 아랫배에 문질러진다.

    그때와 달리, 아저씨는 몸을 물리고 그것을 숨기는 대신, 몸을 꼭 붙였다. 하아아. 더운 날숨이 우연의 뺨을 길게 간질이며 지나갔다.

    이원은 눈을 감은 채 밭은 숨을 다스렸다. 머릿속은 우주처럼 적막하고 평온하여,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만 뚜렷하게 남았다. 오랜 시간 마음속에 찐득하게 괴어 있던 분노와 고통, 애처로움, 자괴감, 두려움, 미안함, 죄책감 따위의 온갖 감정이 생명이라도 얻은 것처럼 꿈틀대며 하반신으로 모여들었다.

    허벅지가 뻑뻑해지면서 한 지점으로 피가 엉기는 것이 느껴진다. 돌처럼 딱딱해지는 것도 모자라서, 치솟은 꼭대기가 터져 나갈 것처럼 아프다. 자위를 할 때는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감각. 이렇게 다급하고 강렬한 자극은 처음이어서 이원은 두려웠다.

    품에 안긴 작고 가는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절대 풀어 주고 싶지 않다. 이 몸뚱이를 샅샅이 핥아 맛보고, 깨물어 깊은 자국을 내고, 두 팔로 힘껏 짓눌러 아스러뜨리고, 그대로 삼키고 싶다. 이원은 이 악귀 같은 욕구가 무섭도록 낯설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아니, 사람조차 아닌 것 같다.

    “아저씨, 사랑해. 아저씨, 흐윽, 좋아, 좋아요. 너무 좋……, 하아아.”

    맞닿은 입술 사이로 힘겹게 중얼대는 말이 흘러나오다가 툭 끊어진다. 이원은 입술을 차근차근 아래로 끌어 내렸다. 핏자국처럼 선명한 입맞춤 자국이 새하얀 목덜미에 타박타박 찍힌다.

    “……아!”

    봉긋한 가슴과 가느다란 허리의 굴곡이 몸으로 느껴진다. 숨이 밭아진다. 헐떡헐떡 새어 나오는 소리가 너무 추잡해서 자신의 입에서 나는 소리 같지 않다. 하아. 미칠 것 같다. 남은 감정은 그것 한 가지였다.

    이원은 한 손으로 우연의 가슴을 가만히 더듬었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살덩어리가 셔츠 너머로 또렷이 느껴진다. 목욕을 시키고 새로 갈아입힌 셔츠는 너무 얇고 부드러워 재앙처럼 느껴졌다. 후우. 머리가 어찔하며 사방이 핑그르르 돈다. 코 뿌리가 욱신거린다.

    “아…….”

    손에 가만히 힘을 주자 우연의 허리가 파르륵 튀어 오른다. 옷에 감싸인 작은 가슴이 손안으로 감질나게 모인다. 손바닥으로 땀이 스며 축축해진다.

    너는 이런 느낌이었구나. 네 몸은 이렇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여리고 황홀하고 보드랍구나. 손에 조금 더 힘을 줘 보았다. 아, 아아, 아으윽. 이제 그녀의 몸은 경련하듯 소스라치다가 뻣뻣하게 굳었다.

    “아, 이런.”

    난데없는 거부 반응에 이원은 황급히 손을 뗐다. 우연의 몸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채였다. 맞다. 우연에겐 안 좋은 기억들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원은 손을 뗀 채 잠시 망연자실했다.

    우연이 가만히 눈을 뜬다. 하얀 셔츠를 입고 있는 그녀는 얼굴도 유난히 희었다. 붉은 것은 가늘게 물린 입술 한 줄, 목에 가시넝쿨처럼 얽힌 핏자국과 자신이 방금 만든 입맞춤 자국뿐이다. 실처럼 가늘게 벌어진 눈꺼풀 사이로 새까만 눈동자가 말끄러미 자신을 바라본다. 잠시 후, 붉은 입술이 달싹거린다.

    “아저씨, 괜찮아.”

    스스로를 달래려는 듯, 단단하고 비장한 목소리였다.

    “아저씨는 괜찮아요. 아저씨만은 나한테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아.”

    작은 손이 이원의 손을 잡아끈다. 다른 손으로는 셔츠의 단추를 풀어 내린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첫 번째, 두 번째 단추만 푼 우연은 손을 멈추고 눈을 꽉 감았다.

    이원은 눈썹을 찌푸렸다. 미간이 욱신대고 아래가 터질 것처럼 쑤셨다. 셔츠 아래에는 가슴을 가린 하얀 브래지어 하나뿐이었다.

    ……제기랄.

    그는 나머지 단추를 푸는 대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브래지어 안으로 손을 넣었다. 작고 따뜻하며 말랑말랑한 살덩어리가 직접 만져졌다. 으으, 우연이 고개를 비틀며 입술을 깨물었다.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면서, 새하얗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진다. 하지만 거부하는 기색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숨이 막혔다. 손끝이 떨리고 숨이 밭아진다. 이원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백치처럼 느껴졌다. 이럴 때 긴장을 잘 풀어 주면서 침착하고 부드럽게 이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지금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대체, 이게 무슨…… 망신이지.

    이원은 천천히 브래지어를 위로 올리고 드러난 맨살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난생처음 보는 그녀의 젖가슴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희었고, 연두부처럼 매끄럽고 보드라웠다. 한가운데서 느껴지는 갈색 젖꼭지의 선명한 색감, 톡 튀어나와 손가락을 간질이는 이질감에는 머리가 어찔했다.

    이원은 한 손으로 작은 가슴을 덮은 채 눈을 감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대체 이,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미칠 것 같았다.

    “아으, 아저씨…….”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우연이, 고양이처럼 낑낑거리며 이원의 손을 잡는다. 이원은 양쪽으로 젖가슴을 쥐고 지그시 힘을 주었다. 잡힌 것이 젤리처럼 손안에서 흐트러진다. 이원은 숨을 헐떡이며 한참 동안 가슴을 만졌다. 몸에서 욱신대지 않는 곳이 없다.

    “아저씨, 아, 아파, 아파. 잠깐만…….”

    우연은 이원의 손을 간신히 밀어 내고는 새빨개진 얼굴로 일어나 침대에 기대앉았다. 벌어진 셔츠 사이로 난삽하게 얽힌 상처 자국과 자신이 찍은 붉은 손자국이 보였다. 우연은 빨개진 얼굴로 할딱거리며 시선을 외면했다.

    이원은 우연이 입은 셔츠의 단추를 모두 풀고 브래지어를 벗겨 냈다. 그가 만지던 가슴이 환한 빛 아래 고스란히 드러났다. 작지만 예쁜 모양을 가진 새하얀 유방이 아래로 동그랗게 늘어진다. 옅은 갈색을 띤 조그만 유륜이 맺혀 있고, 그 가운데, 조금 더 짙은 갈색의 젖꼭지가 앙증맞은 포도송이처럼 딱 한 알 매달려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 것 같았다. 그냥 짐승이 된 것도 같다. 저 작고 말랑말랑하고 이상한 가슴을 억센 손으로 뭉그러뜨리고, 저 젖꼭지를 미친 듯이 비벼 대고 잡아당기고 우연이가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아니, 저 젖꼭지를 입에 넣고 퉁퉁 붓도록 빨아 대다가 그대로 씹어 먹고 싶었다. 저 사랑스러운 몸에 어떻게든, 무슨 짓이든 하고 싶었다.

    저 가늘고 하늘거리는 다리를 찢어지도록 벌리고 그 속을 샅샅이 구경하고 싶었다. 추잡하게 빨고 핥고 깨물고 미친 듯이 그 속을 헤집어 대고 내 몸을 저 아이의 턱 끝까지 박아 넣고 싶었다. 그곳에 내 몸이 못처럼 박혀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면 좋겠다. 저 깊은 곳까지 내 하반신을 한껏 박아 넣고 그대로 질펀하게 뿌리를 내려 버리고 싶었다.

    나직하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

    “하고 싶은 거 있죠.”

    “……그래.”

    이원은 작은 포도알 위에 주춤주춤 손가락을 댄 채, 쩍쩍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상이 온통 어지러웠다. 우연은 새빨개진 얼굴로 말갛게 웃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아저씨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해 봐요.”

    이 아이는 자신이 지금 어떤 도발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순수하게 부추길 뿐이다. 세상의 어느 요부보다 도발적으로, 사악하게. 헐떡헐떡, 숨이 밭다. 어지럽다. 페니스가 뻐근하다 못해 허벅지와 허리까지 프레스에 끼인 듯했다. 우연이 우는 것처럼 히득히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아저씨를 마음대로 할 거예요.”

    말이 끝나자마자, 이원은 우연의 가슴에 얼굴을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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