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누드-8화 (8/47)
  • 8. 꿈☆은 이루어진다

    꿈☆은 이루어진다.

    낡고 오래된, 멍청할 정도로 낙천적인 이 문장은, 우연이 유치원에 다닐 때 유행했던 마법의 주문이었다. 우연은 월드컵 광풍 따위는 몰랐지만, 사람으로 꽉 찬 광장이 빨간 것들로 가득했던 장면과 리듬감 있는 박수 소리, 그리고 아빠가 열심히 세뇌했던 저 마법의 주문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우연은 마법의 주문대로,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아빠 엄마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경희네 집에서 살고 싶어요. 미연이로 다시 태어나면 좋겠어요. 유치원 선생님하고 살고 싶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 아빠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하는 소원이 불쑥 치받아 오를 때가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화들짝 놀라 얼른 반성하고 잊으려 애썼지만, 불쑥불쑥 치솟는 횟수는 점점 많아지고 죄책감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러다가 루돌프와 산타의 정체를 알게 될 때쯤, 우연은 빌기를 그만두었다. 저 멋진 마법의 주문이 당시 대한민국을 매혹하고,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진짜 이유를 알아차리고 말았던 것이다.

    원래 꿈이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광했던 거였다. 소원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사람들이 열광할 리가 없다. 밥을 먹으면 똥이 나오는 것처럼 당연한 일에 대체 누가 열광한단 말인가? 한국말에서 꿈과 꿈이 같은 발음인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래서 우연은 난데없이 꿈이 이루어지면 당황스러웠다. 요정이 눈앞에 뿅 나타나 호박 마차를 만들어 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꿈이란 깨지라고 있는 것이고, 꿈속에만 처박혀 있어야 옳은 것이다. 꿈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면, 그 현실이 꿈 같고, 정상이 아닌 것 같고, 12시가 되면 다시 찌그러진 호박이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우연은 쉼터에 숨어 있는데도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빠는 뒤끝이 길고 집요하기로 소문이 파다했다.

    언제가 엄마가 우연까지 버리고 도망을 친 적이 있었다. 아빠는 생전 처음 가 보는 강원도 찜질방에서 기어이 엄마를 찾아내 끌고 왔다. 만용의 결과는 참담했다. 엄마는 코뼈가 주저앉고 세 군데 뼈가 부러졌다. 어떤 새끼랑 눈이 맞았느냐, 눈깔을 파버리겠다, 신고하거나 또 가출하면 그때는 처가 식구 사돈의 팔촌까지 사시미칼로 쑤셔놓겠다, 기름 붓고 불 질러서 셋 다 같이 죽고 말겠다……. 그 협박이 실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연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를 신고하는 대신 주변 사람들에게 아파트 계단에서 굴렀다고 말했고, 우연은 엄마 말이 맞다며 옆에서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아빠는 그때 엄마를 어떻게 찾아낸 걸까.

    우연은 아직도 그것이 궁금했다.

    아빠가 나를 찾아내면 난 어떻게 될까.

    ……그것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불안감이 휘몰아칠 때마다 우연은 연습장을 꺼내 그림을 그렸다. 이제는 아저씨를 그렸다. 아저씨만 그렸다. 지금까지 딱 한 번 만난 것뿐인데 어쩌면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지 몰랐다.

    아저씨의 얼굴은 선이 정갈하고 아름다웠으며, 표정은 온화했다. 그 깊고 따뜻한 갈색 눈동자를 생각하면 불안감이 천천히 가라앉았고,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떠올리면 괜히 눈물이 났다. 손끝에서 나오는 아저씨의 얼굴은 다른 사람들의 그림과 달리 늘 따스하고 평화로웠다.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 아빠는 여기가 어딘지 몰라. 알려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어.”

    나이가 지긋한 신민희 복지사는 우연의 등을 다독이며 달랬다.

    ― 우연아, 너 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밥은 잘 먹고 있니? 이 불쌍한 게 대체 어디에서 무슨 고생을 하고 있는 거야.

    아빠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올 게 왔구나.

    엄마 아빠와 관계된 번호는 다 차단해 놨는데, 031 번호라서 서림예대인 줄 알고 전화를 받은 게 화근이었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온 소리가 귓가에 친친 거미줄을 친다.

    ― 우연아, 너 잘 있는지만 확인할게. 제발 얼굴 한 번만 보자, 응? 있는 데가 어디냐.

    ― 아빠 화 안 났어. 우리 딸 학비를 왜 안 주겠니. 그림을 그렇게 잘 그리는데. 그날 아침에 엄마가 쓸데없는 말을 지껄여서 홧김에 한 말이지. 3년 치 학비에 기숙사비에 미술 도구들도 다 준비해 놨어.

    익숙한 패턴이었다. 아빠는 평소에 얼마나 다정한지 모른다. 만약 집에 있었다면 이런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거나, 다음엔 아빠 기분을 잘 맞춰 줘야지, 다시는 아빠 화 돋우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했을 것이다. 저녁때 죽을 것처럼 맞다가 아침에 다정하게 달래 주면 허겁지겁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랬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믿음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놀랍게도 지금은 믿어지지 않았다. 저런 뻔뻔한 사탕발림에 번번이 넘어가고 희망을 걸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단지 집을 떠났고, 며칠 동안 떨어져 있었던 것뿐인데, 심 봉사가 개안이라도 한 것처럼 또렷하게 보였다.

    ― 우연아, 요새 엄마가 많이 아파. 지난번에 너 찾는다고 돌아다니다가 길에서 쓰러져서 입원했었어. 자칫하면 죽을 뻔했다 우연아…….

    끌려가면 끝장이다. 우연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 애걸에 한마디라도 휘말렸다가는 물귀신에게 발을 잡힌 것처럼 지옥으로 질질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인생에서 마포 대교 같은 이상한 행운은 두 번씩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우연은 한마디 대답 없이 전화를 끊고, 전화기를 쉼터에 맡겼다. 우연은 죽지 않고 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라면 천륜이든 만륜이든 가차 없이 잘라 내야만 했다.

    “진우연 너 어디 있어! 다 때려 부수기 전에 나와! 안 나와!”

    결국 아빠는 쉼터를 찾아냈다. 어떻게 찾아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아빠는 정문에서 큰 소리로 우연의 이름을 불러 대기 시작했다. 진우연! 우연아! 고래고래 악을 써 대는 소리는 고막을 터뜨릴 것처럼 끔찍했다. 직원들이 뛰어나가서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우리 얘긴 들어 보지도 않고 딸을 못 만나게 하다니 세상천지에 이따위 법이 어디 있어!”

    결국 아빠가 직원들을 밀치고 쉼터 안으로 들이닥쳤다.

    “내가 걔 아빠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지금껏 기른 친아빠라고! 당신들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애 엄마, 우연이 없어지고부터 시름시름 죽어 가는데, 왜 철도 안 든 애 말만 믿고 이래? 왜 부모 얘기는 들어 보지도 않아! 애 엄마 죽으면 당신들이 책임질 거야?”

    “애 키울 때 그 속 끓는 사정을 남들이 어떻게 알아? 당신들이 우리 우연이 친자식처럼 돈 싸발라서 키울 거야? 끝까지 학비 대고 생활비 대고 결혼 자금까지 대 주면서 키울 거냐고! 아니잖아! 엉!”

    직원 서너 명이 달라붙었지만 그의 난동을 쉽게 막을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술렁대는 소리,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비명이 복도 이곳저곳에서 간헐적으로 튀어나왔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던 우연은 나가지 못했다. 안 나간 게 아니고 못 나갔다. 복도에서 고함 소리가 쩡쩡 울리자마자 온몸이 뻣뻣하게 굳으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목을 감싸 쥐고 컥컥대며 바닥에 엎어졌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 * *

    정신을 차리니 병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고, 뒷일이 어찌 되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우연은 6인실 가장 구석에 놓인 침대에서 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쓴 채 덜덜 떨며 시간을 보냈다. 문이 열릴 때마다 목이 졸리는 것 같았다.

    아빠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 세상을 너무 대책 없이 믿었다.

    아빠가 그 깽판을 치고 갔으니, 쉼터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가면 당장 갈 곳도 없다. 생각해 보니 돈도 없다. 새터비니 회비니 돈 나갈 구석만 점점 많아진다. 우연은 무릎을 끌어안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이, 일단 아르바이트를 해야…….

    ‘아르바이트로는 학비는 고사하고 생활비 대기도 정신없을 텐데.’

    아저씨가 안타깝게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아저씨를 생각하니 조건 반사처럼 다시 눈물이 고인다.

    아저씨 말이 맞다. 알바를 죽어라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엄마가 한 달 사는 데만 150은 들 거랬다. 학비랑 비싼 재료비랑 저 잡다한 고지서들만 따져도 한 달에 100만 원은 모아야겠지. 학교는 지금 국가 장학금, 학자금 융자가 안 되는 상태고, 나중에 된다고 해도 부모님 동의가 없으면 신청 못 한다고 했으니까.

    “흐으, 씨, 알바로 한 달에 250을 어떻게 벌어, 25만 원도 아니고…….”

    눈물이 멎지 않는다. 500만 원 내는 것만도 꿈 같았는데 두 달마다 500만 원을 벌어야 한다니. 아빠 체육관에서 밤 10시까지 개쌍욕을 먹으며 일하는 현미 언니도 한 달에 145만 원밖에 못 받는데, 숫자에 약하고, 일도 야무지게 못 하고, 인사 하나 싹싹하게 못 하고, 말도 어물어물하는 내가 어떻게 그 큰돈을 벌어. 하다못해 이제는 무서워서 병실 밖에도 못 나갈 지경인데 무슨 재주로.

    결국 잘 버틴다고 해도 한 학기가 끝인 건가?

    마포 대교 위에서 아저씨에게 울며불며 고맙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미래는 온통 장밋빛으로 보였는데, 이제 눈앞에 보이는 것은 지옥도의 맹렬한 불꽃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장밋빛과 지옥도의 불꽃 색깔은 꽤 비슷하기도 했다.

    생명의 다리 위에서 느꼈던 감정도 그와 비슷했다. 한강의 색은 얼핏 보기엔 푸르고 싱싱한 생명의 색으로 느껴지지만, 눈을 잠시 착각하게 만드는 화이트 몇 조각의 반짝임을 제외하면 블랙, 다크 그레이, 인디고, 프러시안 블루 따위로 분해되는, 죽음에 어울리는 색깔이었다. 다리에 씌어 있던 아름다운 문장들은, 어두운 색깔을 잠시 망각하게 하는, 작게 반짝이는 하이라이트 조각일 뿐이었다.

    * * *

    “우연아, 좀 어떠니? 지금 좀 일어날 만해?”

    “시, 신민희 선생님……. 어?”

    멍하니 눈을 깜박거렸다. 복지사 선생님 뒤로, 검은 양복 차림의 낯익은 사람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이원 아저씨?

    우연은 인사도 하지 못하고 이불을 확 뒤집어썼다. 놀라서인지, 반가워서인지, 창피해서인지, 하여튼 심장이 크게 벌떡거렸다. 아저씨는 가까이 오려다 우연을 보고는 눈을 크게 뜨고 움직임을 멈췄다.

    “부……모님께서 쉼터까지 찾아오셨다고 들었어요. ……쓰러졌다고 해서 걱정 많이 했어요. 팔은 좀 괜찮아요?”

    “……네. 골프채에, 마, 맞았는데, 다행히 왼손만 부러졌어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아빠가, 술이 덜 깨서, 그, 빡대가리가, 오른쪽 왼쪽을 헷갈렸나 봐요…….”

    간신히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민 우연은 아저씨를 향해 애써 웃어 보였다. 하지만 웃음소리는 영 이상했다. 아저씨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참으려는 듯 입을 꽉 다물었다. 어금니에 힘을 얼마나 주었는지 턱에 복숭아씨 같은 무늬가 자잘하게 생겼다.

    ― 혹시 전화받으시는 분이 한이원 씨 맞습니까? 저는 신민희 복지사라고 합니다.

    이원은 삼우제 미사가 끝난 후에도, 며칠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앓던 중이었다. 하지만 우연이 입원한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는 말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병원이요? 쉼터가 아니고 병원이란 말입니까?”

    복지사는 우연의 부모가 쉼터에 찾아와 난동을 부린 일과, 우연이 ‘한이원 아저씨’와의 만남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는 의외의 소식을 전했다.

    ― 아저씨에게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다면서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어요.

    이원은 우연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눌리는 듯 둔통이 일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아니. 나야말로 할 말이 있는데.

    나는, 자리를 지키기로 결정했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내가 돌아가려 했던 그 길은, 네가 도망치라고 했던 길은, 힘들 때 도피하라고 만든 길이 아니라고. 그래서 미안하지만 네 충고를 받아들이진 못하겠다고.

    그래서 난 네가 원망스럽고…… 진심으로 고맙다고.

    이원은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

    “내일 바로 병원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마, 맙소사. 이게 무슨!

    병실에 들어선 이원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우연의 팔다리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새까맣게 물들었고, 왼쪽 팔에는 깁스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연은 아빠가 오른쪽 왼쪽을 헷갈려서 다행이라며 웃는다.

    하지만 이원은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목이 잠기고 입술 끝이 일그러진다. 이제는 남의 아픔에 이입하게 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으로 멍든 얼굴을 가리려고 애쓰며 중얼거렸다.

    “아저씨, 미안해요. 시, 실은 아저씨 전화번호 아빠한테 알려 줄 생각은 없었어요. 귀찮게 해 드릴 생각은 없었는데요…….”

    “귀찮기는 무슨, 내가 분명히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하라고 했잖아요.”

    이원은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내 잘못이다. 내가 도와준 방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런 방식으로 알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 나는 저 아이를 도와야 한다는 당위는 인식했지만,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다. 집에 가서 속수무책의 상황에 부딪치리라는 것까지 계산해서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적선하듯 500만 원을 주는 대신 경찰에 신고를 하고, 대학에 연락해서 지정 장학금 형식으로 전해지도록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저렇게 끔찍하게 얻어맞을 일도 없고, 신학기가 되면 안전하게 집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몹시 지친 상태였고, 문제를 그 자리에서 쉽게 해결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혹은 이 아이에게 인상적인 기억을 남기면서 가장 유리한 형태로 투자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한테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난 아무 일 없었어. 괜찮아요.”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아저씨까지 경찰에 잡혀갔었잖아요. 누가 모를 줄 알아요?”

    우연이 울먹이며 빽 소리를 높인다. 이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경찰에 잡혀간 적 없는데……?”

    “거짓말하지 마세요! 엄마가 톡으로 다 남겨 놨어요. 아저씨가 경찰서 구석에서 조사받는 거 봤대요! 경찰 아저씨는 인상 빡빡 쓰고, 아저씨는 한마디도 못 하고 앉아 있었다면서요! 엄마가 거봐라, 뒤가 구리니까 대답 안 하는 거다, 경찰한테 저렇게 버티면 감방에 처박혀서 천년만년 썩을 거라고 그랬단 말이에요…….”

    우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이원은 허둥허둥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야, 아니라니까. 붙잡혀 간 게 아니고, 걱정돼서 따라가 본 거예요. 정말이야, 설명도 충분히 했고, 별일 없이 잘 끝났어요. 그냥, 변호사 입회시키느라고 기다렸던 것뿐이에요.”

    울음소리가 멈춘다.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얼룩덜룩 멍든 얼굴이 흩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났다. 짠물에 잠긴 새까만 눈동자가 깜박깜박한다.

    “경찰이 물어봐도 대답 안 해도 돼요? 그럼 감옥에 가지 않아요?”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 진술 거부권, 아니, 어쨌든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저씨, 변호사도 사셨어요? 저 때문에요? 변호사 사는 데 돈 엄청 많이 든다는데, 막 몇백만 원씩 들지 않아요?”

    목소리가 안절부절못한다.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었어. 설마 그 돈까지 갚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이원은 황급해 둘러댔다.

    “……아니, 변호사는 음, 그, 그러니까 아버지, 친구분이에요. 돈…… 걱정 안 해도 돼요.”

    “정말이요? 그럼 아저씨 돈은 안 드는 거예요?”

    이원은 경찰의 조사를 받을 때보다 더 난감한 기분이 들었지만,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박 이사의 몸값이 고작 몇백만 원 단위는 아니었고 친구 아들이라 공짜, 그런 말이 통하는 바닥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회사에서 월급을 주는 거니 ‘아저씨 돈은 안 드는 거.’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아저씨 정말 감옥 가는 거 아니죠? 괜찮으신 거죠?”

    우연은 바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신 복지사가 곁에 앉아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우연아, 오늘 병원에서 퇴원하고, 쉼터에서도 퇴소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아무래도 아빠가 쉼터 위치를 아셨으니 언제 또 오실지 모르고…….”

    올 게 왔구나.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이 써늘해진다.

    “선생님, 그럼 전 이제 어디로 가요? 혹시 다른 쉼터에 갈 수 있나요?”

    “다른 쉼터에 가는 건 아니고, 사실 이 문제로 너하고 의논할 게 있는데…….”

    복지사 선생님이 살짝 웃으며 말꼬리를 길게 끌었다.

    순간 겁이 더럭 났다. 서, 설마, 개강 전까지 집에 가 있으라는 건가? 혹시 복지사 선생님도 아빠를 잘 설득했다거나, 그래서 집에 돌아가도 된다는 말씀을 하시려는 건가? 그러고 보면 임시 쉼터에 온 아이들은 대부분 가정으로 되돌아간다고 들었다.

    우연은 신 복지사의 손을 뿌리치고 침대 구석으로 물러앉았다.

    “다, 다시 집에 다시 가야 하나요?”

    “우연아. 잠깐만…….”

    “가기 싫어요. 아빠가 이번엔 진짜 가만 안 둘 거예요. 옛날에 엄마도 도망쳤다 강원도 찜질방에서 끌려왔는데 뼈가 개박살 나서 왔어요. 일주일 넘게 오줌 봉지 차고 기어 다녔단 말이에요. 돌아가면 전 끝장이에요. 이번엔 진짜로 손목 자를지도 몰라요. 으 씨…….”

    “맙소사. 우연아, 잠깐, 잠깐만.”

    뒤에 서 있던 아저씨가 지그시 주먹을 움킨다. 선생님이 허둥지둥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우연아. 그게 아니라, 어떤 회사에서 너를 4년간 후원하기로 했다고 연락이 왔어. 오늘 아침에.”

    “네?”

    우연은 입을 멍하니 벌린 채 복지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그 알지도 못하는 회사는 우연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 기숙사비, 식비, 미술 재료비뿐 아니라 개인 생활비도 지급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심리 치료비까지 전액 제공할 거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기숙사 입소 전까지, 회사에서 운영하는 장학관에서 지내도 된대. 신학기 전 봄 방학이라 공실이 있다더라. 거기는 경호원이 상주하는 곳이라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뭔가 이상했다. 우연은 눈물 맺힌 눈으로 복지사 선생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건 꿈일까, 아니면 거짓말일까.

    마포 대교 때부터 믿을 수 없는, 아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것 같다. 실감이 안 나니 감격이 다가오는 속도도 더뎠다. 우연은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왜요? 왜 그 회사에서는 그런 이상한 짓을 해요?”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고, 우연의 목소리는 조금 더 커졌다.

    “그 회사는 땅 파서 그런 일 하는 거 아니잖아요. 세금 걷어서 그런 일 하는 거 아니잖아요. 자기 지갑의 돈을 써서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이상한 짓을 해요?”

    그것이 궁금해진 이유는 뒤에 서 있는 아저씨 때문이었다. 사람이든 회사든, 아무 대가 없이 생판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려는 이유, 그 이해할 수 없는 호의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복지사 선생님은 대답하는 대신 묘한 얼굴로 뒤를 흘낏거리기만 한다. 아저씨한테 대신 대답해 달라는 건가? 왜?

    아저씨는 두어 번 헛기침을 하더니,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음……. 기업의 복지 사업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원하는 인재에 대한 선투자일 수도 있고, 세금 절감의 목적도 있고…….”

    그리고요?

    “종업원이나 지역 사회와 장기적으로 상생하려는 목적도 있겠고…….”

    아저씨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기업의 이미지 상승효과도 감안할 거고…….”

    설명이 길어질수록 우연은 점점 처량해졌다. 이따위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아저씨…… 그냥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준 거라고 하면 안 되나요?”

    아저씨는 말을 멈추고 우연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왜?’라고 따지는 것 같아서, 우연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고 조그만 소리로 대답했다.

    “아저씨처럼 순수하게 착한 마음으로 도와준 거라고 믿고 싶어서요. 오래오래, 많이많이 고마워하고 싶어서…….”

    아저씨의 미간이 깊이 일그러졌다. 우연은 아저씨가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는 한숨 소리에 이어 내키지 않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쩌죠. 나는 진우연 씨 생각만큼 순수하고 착하지 않은데.”

    마, 말도 안 돼! 목소리가 저절로 팩 치솟았다.

    “다들 진짜 웃겨요. 착한 사람은 자기가 못된 줄 알고, 못된 사람은 자기가 착한 줄 알아요. 아빠는 자기가 너무 착해서 마누라가 무시한다고 엄마를 패고, 엄마는 자기가 너무 착해서 맞고 사는데 딸년까지 무시한다고 저를 패죠. 저를 살려 주고 도와준 사람은 착하지 않다고 자학이나 하고 있고요.”

    “착한 사람인지 아닌지, 그런 건 간단하게 판단하기 어려워요.”

    “어려울 게 뭐가 있어요. 남을 아프게 하는 건 못돼 처먹은 거고, 남을 행복하게 하는 건 착한 거예요. 그 간단한 걸 괜히 꼬아서 생각하니까 세상이 엉망진창이 된 거라고요. 재미로 친구들 왕따 시키는 애들만 봐도 알아요. 걔들 착한 척 불쌍한 척 얼마나 피코 쩌는데요!”

    이원은 우연의 날카로운 대거리를 나무라는 대신 희미하게 웃어 주었다. 잔뜩 주눅이 들고 말할 때마다 심하게 눈치를 보던 아이가, 자신 앞에서는 이렇게 싱싱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기특했다.

    비록 날이 바짝 서고 다듬어지지 않은 반응이었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상처가 안에서 곪다가 인격마저 망가뜨리는 것보다는 이쪽이 나았다. 드러난 상처는 감추어진 상처보다 치료하기 수월하다 들었다.

    “그래요. 약한 것과 착한 것을 혼동하는 사람이 꽤 있긴 하죠. ……어쨌든 나는 착하다는 말을 듣기엔 너무 많이 부족해요.”

    “그래도 아저씨는 아무 이유도 없이, 생판 모르는 저를 도와주신 거 맞잖아요.”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지만……. 그 얘기는 이쯤 할까요.”

    이원은 불편한 기색을 살짝 드러내며 말을 끊었다. 우연은 대놓고 거절당한 기분에 다시 풀이 죽었다. 시무룩한 얼굴로 복지사 선생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 근데 그 회사 이름이 뭔가요?”

    “이원메세나재단이라고 해. 세경그룹이나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한세경 회장님 들어 봤지? 그 그룹 계열사인데, 예술인이나 어려운 학생을 돕는 사업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어.”

    “이원? 이원이요? 우와.”

    우연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 이름을 되풀이했다. 흥분한 목소리가 한껏 높아졌다.

    “아저씨, 대박이에요! 그 회사 이름도 이원이래요. 아저씨하고 이름이 똑같아요. 아셨어요? 진짜 대박! 아저씨도 들어 본 적 있어요?”

    아저씨가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난처한 표정을 짓자, 복지사 선생님이 실룩실룩 웃음을 참으며 대신 대답을 해 주셨다.

    “우연아. 네가 그 후원을 받아들인다고 하면 이 아저씨가 네 후견인 신청도 같이해 주실 거야. 네 생일 전까지 서너 달 정도는 법정 후견인이 필요해서.”

    엥? 우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뭔가를 잘못 들은 것 같다.

    “왜요? 왜 아저씨가……?”

    “후견인은 학생이 속한 곳의 시설장이나 후원받는 곳의 운영자로 지정되는 경우가 꽤 있거든. 그럼 부모님 접근 금지 명령도 바로 신청할 수 있고.”

    “그러니까, 그런데, 그래서 왜요?”

    문득 말을 멈췄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불쑥 치솟았다. 어? 뭔가? 뭐지? 머릿속에서 수백 개의 퍼즐 조각이 한꺼번에 후다닥 맞춰진 것 같은데, 짠 하고 나타난 그림이 너무 현실감이 없었다. 이원메세나, 한이원, 세경그룹,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한세경 회장, 아버지 장례식, 계열사, 이원 아저씨, 후견인, 돈 많은 어벤져스, 엄마야 맙소사.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면서 저도 모르게 고함이 튀어나왔다.

    “아, 아저씨! 대체 정체가 뭐예요!”

    “내 정체는 음…… 아재미 뿜뿜하는…… 중년 꼰대 아저씨예요.”

    눈 색깔이 아름답고, 웃는 모습이 멋지고, 몸의 비율이 근사한 황금비인 아저씨는 조금 뒤끝이 있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요.”

    아저씨가 머쓱하게 웃으며 손을 내민다. 살짝 웃는 아저씨는 이제 보니 꽃중년이라기보다 수줍음 많은 소년처럼 보였다. 우연은 홀린 듯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우연의 손을 다 감싸 안을 만큼 크고 따뜻한 손이었다.

    꿈☆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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