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5 • 쿠키와 쿠키 (70/154)

며칠이 지났다.

그 뒤로는 엘로이즈도, 칼도 조용했다.

대공가에 외부인이 드나들기는 하는 것 같았으나, 나나 라리사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 라리사도 많이 나아졌다.

어젯밤에는 드디어 중간에 깨어나지 않고 통잠을 잤고, 나나 소피아가 아닌 다른 하녀들이 눈에 띄어도 더 이상 긴장하지 않았다.

서서히 놀이방이나 서재, 드레스룸 등 대공비의 방 안 다른 방에도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젠 몇 시간 정도 내가 자리를 비워도 괜찮겠지.'

나는 라리사를 소피아에게 잠시 맡겨 두고 파비안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파비안, 저예요. 마르시아요."

파비안은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었는데, 포투스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마침 잘됐다.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할 말은 아니긴 하니까.

"시간을 좀 내줄 수 있으신가요? 아주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파비안은 만년필의 뚜껑을 닫아 내려놓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입니다. 여기 앉으시지요."

그는 내게 집무실에 딸린 안락의자를 권한 다음, 한편에 놓인 와인 캐비닛을 열었다.

장식장처럼 생겼지만, 양쪽으로 문을 열면 안쪽 선반에는 술이 놓여있고 문에는 잔이 크기별로 정리되어 걸려 있는 보관함이었다.

"마실 것을 좀 드릴까요?"

그의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전에 집무실로 찾아왔을 때는 시계부터 보고 시간을 확인한 다음, 모르는 사람 대하듯 했었던 파비안이었다.

'그래도 그사이에 우리가 조금 친해졌나 봐.'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와인 캐비닛 안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입을 벌렸다.

대공의 보관함답게 안에 놓인 술은 병당 몇백 골드는 호가할 법한 것들이었다.

꿀처럼 진한 황금빛 액체가 담긴 병을 보고 나는 침을 삼켰다.

닥치는 대로 비싼 술을 마셔대던 빌레인의 술 보관실에서도 못 본 것이었다.

'맛이 엄청나게 궁금한데…….'

하지만 파비안은 자연스럽게 그 옆에 놓인 다기와 찻잎을 꺼냈다.

'와인 캐비닛에 차를 함께 보관하다니…….'

언젠가 말해줘야지.

'나는 차보다 술을 좋아한다고.'

물론 임시 부인에 불과한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찻잎이 담긴 통을 들어 보이는 파비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능숙하게 차를 우려 잔에 따라 내주었다.

차는 흰 찻잔을 투명한 분홍빛으로 물들였고, 입가에 가져가니 은은한 향기가 났다.

'참 나, 차도 잘 타잖아.'

술이 아쉬웠지만 차 맛이 너무 훌륭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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