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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5화(완결) (14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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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5화(완결)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믿을 수 없어! 이상해! 진짜 말도 안 돼! 어쩜 그래?”

하녀들에게 몸을 맡긴 채 거울 앞에 앉아 있는 내내 나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지금 이 상황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결혼식이라니? 제크론과 나의… 우리 결혼식이라니! 그게… 말이 돼? 도저히….”

나는 내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조금 전 제크론의 입에서 흘러나온 청혼의 말을 떠올렸다. 

*   *   *

행거를 끌고 침실 안으로 들어왔던 케이트와 주디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침실 안에는 나와 제크론만 남았다. 

제크론이 내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우리 결혼식을 기억 못 하고 있다는 게 내내 마음에 걸렸거든.”

“제크론….”

쉬이 말을 이을 수 없었던 나는 그저 제크론을 바라봤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 언제면 좋을까, 어떤 식이면 좋을까 오랫동안 고민했었어. 그리고 오늘 깜짝 선물로 준비한 거야. 어때? 마음에 들어?”

“미리 말해 주지 그랬어요! 너무 놀랐잖아요.”

“미리 말하면 깜짝 선물이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가볍게 눈을 흘기며 뾰로통하게 말했다. 

눈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안 그러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제크론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오늘뿐만이 아니야. 앞으로도 계속… 우리 함께 새로운 기억들을 만들어 가자고. 매일매일. 차곡차곡.”

“당신 정말….”

“오늘 다시 열리는 결혼식은 당신이 잊지 않으면 좋겠지만, 잊는다고 해도 괜찮아. 또다시 하면 되니까 말이야.”

“제크론….”

“그러니까 다른 건 다 잊어도 괜찮아.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해.”

“…….”

“당신은 내 아내이고, 난 당신 남편이라는 사실 말이야. 이것만큼은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참고 있었던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번 시작된 눈물 줄기는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어느새 제크론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앉았다. 

그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는데 상자를 열자 블루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가 나왔다. 

제크론은 여전히 침대에 걸터앉은 채 울고 있는 나를 올려다봤다.

온전히 나만을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가 은은한 빛을 발했다. 

크흠, 목청을 가다듬은 제크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엘프윈 윌트슨 공작 부인. 우리는 이미 3년 전에 결혼식을 올린 부부입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 당신에게 다시 한번 더 묻고자 합니다.”

“…….”

“엘프윈, 나와 결혼해 주겠습니까? 오늘 또 결혼해서 앞으로 평생 내 곁에서 내 아내로 남아 주겠습니까? 응?”

내 대답을 기다리는 제크론의 눈동자도 촉촉이 젖어 갔다. 

제크론이 물었으니 이젠 내가 답해야 할 차례였다. 

하지만 목청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제크론은 부드러운 눈빛을 내게 고정한 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줬다. 

심호흡을 몇 번 한 나는 겨우겨우 목청에 힘을 모았다. 

“…물론이에요, 제크론. 내가 있을 곳은… 당신 옆자리뿐인걸요. 당신과 결혼할게요. 두 번도, 세 번도, 네 번도…. 계속 당신이랑 결혼할게요.”

“좋아.”

제크론은 내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고는 손등에 입술을 갖다 댔다. 

그는 그렇게 한참 동안을 내 손등에 입을 맞췄다. 

*   *   *

제크론은 원래 결혼식의 증인으로 가족 이외에 한 사람만 초대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앨리슨 디아브 백작 부인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앨리슨은 이 놀라운 소식을 혼자서만 알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앨리슨 덕분에 제크론이 깜짝 결혼식을 준비한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엘프윈의 결혼식에 앨리슨만 증인으로 참석하는 건 뭔가 이치에 맞는 것 같지 않았어요.”

“맞아요. 앨리슨은 자주 깜빡깜빡하거든요.”

“앨리슨을 혼자만 보낼 수 없어서 같이 왔답니다.”

“네, 그렇게 됐네요.”

앨리슨이 곁에 선 요소킨 운동 친구들, 메릴과 조안 그리고 맨디를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슈라더 후작 부인과 브랜차드 자작 부인도 빙그레 웃는 얼굴로 거들었다. 

“앨리슨이 말해 주지 않아서 나중에 다 끝나고 나서 전해 들었다면 몹시 서운할 뻔했어요.”

“이런 역사적인 순간엔 친구가 함께하는 게 정상 아니겠어요?”

슈라더 후작 부인이 실내 악단도 대동하고 온 덕분에 정원에는 벌써 감미로운 선율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새 귀부인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진 화가 브렌트 투치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명색이 윌트슨 공작가의 전속 화가였던 몸인데 이런 중요한 자리에 빠질 수야 없지요. 축하드립니다, 두 분. 오래오래 행복하셔야 합니다.”

원래 양가 부모님들만 참석하는 간소한 가든파티 형식의 결혼식을 계획했다 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손님들의 참석으로 정원에는 의자가 모자랄 정도였다. 

입장을 기다리던 나는 제크론을 향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놓고…. 내가 당신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내 물음에 제크론의 입이 힘없이 벌어졌다. 

“뭐어?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다니? 그런 상황은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라고 묻고 싶은 걸 참는 눈치였는지 제크론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에이, 그게 뭐예요? 그럼 애초에 내게 선택권이 없었던 거네요? 무슨 청혼이 그래? 원래 청혼은….”

“엄마, 아빠… 싸우지 마요! 흐으… 흐으윽!”

그때였다.

제크론과 내가 하는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상한 기류를 느끼고 무서웠던 것일까. 

제크론 품에 안겨 있던 세르안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흐아… 아아앙! 싸우는 거 시러요! 흐윽!”

아이의 눈에서 닭똥처럼 커다란 물방울이 후두두 떨어져 내렸다. 

나는 세르안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다급하게 속삭였다. 

“세르안, 울지 마! 엄마랑 아빠는 싸운 거 아니야. 그냥 장난친 거였어. 이렇게 좋은 날에 우리가 왜 싸우겠어. 응? 그러니까 어서 뚝 그쳐.”

“그래, 우리 아들! 이제 뚝! 엄마랑 아빠, 싸운 거 아니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장난이 좀 심했지만, 싸운 거는 아니야.”

“…징짜로? 약속?”

눈가에 눈물방울을 그렁하게 매단 세르안이 나와 제크론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진짜야! 약속해!”

“정말이야! 싸운 거 아니었어! 약속!”

우리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세르안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아이는 자그마한 손바닥으로 눈물을 야무지게 닦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엄마랑 아빠랑 뽀뽀해요.”

“응? 갑자기? 뽀뽀?”

“네! 징짜로. 안 싸웅 거니까. 뽀뽀요.”

눈물을 말끔히 닦아 낸 세르안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나와 제크론을 봤다. 

제법 야무지게 감시하는 눈빛이었다. 

아휴, 어린 아들 앞에서 시답잖은 장난이나 쳤다가 뽀뽀해야 하는 전개라니.

애들 앞에서는 장난으로라도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며 나와 제크론은 어정쩡한 자세로 입술을 맞댔다. 

“세르안 숫자 세요. 하나, 두울, 세엣….”

아이는 손가락 열 개를 폈다가 하나씩 접으면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어제 내가 열까지 셌던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리라. 

어제 일을 기억하는 것도, 숫자를 셀 수 있다는 것도 기특했다. 

하지만 내 행동을 바로 그대로 따라 하는 모습은 조금 섬찟하기도 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더니….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겠어.’

나와 제크론은 입술을 맞댄 채 천천히 숫자를 세는 세르안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이런 벌 같은 입맞춤은 처음이었다. 

제크론과 눈이 마주치자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세르안이 숫자를 다 세기 전에 입술을 떼면 안 됐기에 참아야 했다. 

제크론의 상황도 나와 비슷했던 것 같았다. 

우리는 입술을 계속 맞댄 채 쿡쿡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눌러 담았다. 

“…아홈, 열! 끝!”

세르안의 명랑한 외침에 마침내 우리는 입술을 뗄 수 있었다. 

나는 세르안을 꼭 껴안았다. 

“고마워요, 이쁜 내 새끼! 아주 효자야, 우리 아들!” 

그렇게 한참 동안 세 식구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케이트가 속삭였다. 

“자, 이제 곧 입장하실 시간입니다. 세 분 준비해 주세요.”

“그래.”

나는 세르안을 끌어안았던 팔을 풀고 바로 섰다.

제크론은 한쪽 팔로 세르안을 단단히 안고 있었고, 나는 그의 다른 쪽 팔에 팔짱을 꼈다.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두근두근 심장이 떨려 왔다. 

왜냐면.

‘사실 이번이 내 첫 결혼식인걸.’

떨리는 게 당연했다. 

꿈에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정말 그랬다. 

제크론과의 결혼식을 바랐던 적은 결코 단 한순간도 없었다. 

그와의 결혼식은 내 기억에는 없지만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짜로 결혼식을 하게 되다니!’

이 순간을 장식하는 밝은 햇살이, 살랑거리는 바람이, 들이마시는 공기가, 저 멀리서 들리는 이런저런 소리가, 팔에 닿는 촉감이, 모두 다 귀하고 소중했다.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당장 제크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제크론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거 알아요? 당신은 내 첫사랑이에요. 그리고 내 마지막 사랑이고요. 사랑해요, 여보.”

제크론의 입매가 씨익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리고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싱그러운 숨결과 함께 속삭였다. 

“이번엔 내가 당신의 첫사랑을 응원하도록 하지. 물론 당신의 마지막 사랑도 함께. 사랑해, 여보.”

햇살을 받은 제크론의 잘생긴 얼굴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제크론을 똑 닮은 우리의 아들, 세르안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행복이, 나의 인생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당신의 첫사랑을 응원한다고 했잖아요〉 외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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