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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4화 (14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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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전 4화

    “당신이랑 이렇게 오전 내내 침대 위에 있을 수 있다니! 진짜 휴가인 게 실감 나요!”

    제크론의 품에 폭 안기며 조그마한 탄성을 내질렀다. 

    그는 내 이마 여기저기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 동안 내가 많이 바빴지? 일을 줄여야지 생각은 계속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네. 미안해.”

    “내 남편 능력이 출중해서 그런 걸 어떡해요? 다 이해해요. 그리고 저 사실 능력 있고 자기 일로 바쁜 사람 좋아해요.”

    “당신 취향 참… 독특하군. 그래서 다행이야. 적어도 바쁜 일정 때문에 미움받을 일은 안 생기겠군.”

    “어? 제크론? 원래 사람 마음이란 게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변한다는 말 들어 본 적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취향이 바뀔 수도 있으니 너무 방심하지는 말아요.”

    “뭐어?”

    내 얼굴 주위를 맴돌던 그의 입술이 멈춰 섰다. 

    나에게로 향한 그의 눈동자에 억울한 빛이 역력했다.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당신 취향이 안 바뀌려나?”

    “그야… 저도 잘 모르죠. 원래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잖아요? 자기 마음도 자기가 스스로 알기 어렵다고요.”

    제크론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웃음을 참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며 참아 냈다. 

    곧 나는 제크론의 볼을 가볍게 감싸 쥐었다. 

    그리고 그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속삭였다. 

    “당신이 우리 세르안 동생들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면야, 뭐… 계속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단 말이지?”

    제크론의 붉은 입술이 씨익 매끄러운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 바로 몸을 굴려 내 몸을 두 팔로 가두며 위에 자리 잡았다. 

    “진작 말하지 그랬어? 당신이 원하는 걸 바로 줄 수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요?”

    원래 반응 속도가 빠른 건 알았지만 매번 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그의 몸에 비해 내 몸은 반응 속도가 느리다. 

    제크론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의 입술과 손이 바빠졌다. 

    귓가와 목 언저리를 누비던 입술이 서서히 아래로 향했다. 

    쇄골과 어깨에 그의 숨결을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어깨를 다정하게 쓰다듬던 손도 천천히 밑으로 내려갔다. 

    옆구리를 살짝 주무르다가 배를 슬슬 쓸어내리기도 했다. 

    제크론은 이제 내 몸을 나보다 더 잘 알았다. 

    어디를 자극하면 내가 좋아하고 금방 달아오르는지를 말이다. 

    온몸이 후끈거리며 들숨과 날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제크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몸에 닿은 그의 말캉한 입술이, 친절한 손길이, 단단한 몸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하아…. 제크론….”

    제크론은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그의 자극에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내가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 때까지 그는 그저 내 몸을 구석구석 음미하는 데 집중했다. 

    곧 우리 두 사람의 몸은 뜨거운 화염에 휩싸였다. 

    서로를 부둥켜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한 치의 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우리는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 우리가 누구인지도 잊은 채 그저 뜨거운 숨결을 하나로 얽는 데만 열중했다. 

    *   *   *

    하이그린 백작성에서 부모님과 언니, 오빠와 오후 티타임을 가진 후 우리 세 식구는 바로 해변으로 향했다. 

    “와아…!”

    따뜻한 바닷물이 맨발을 기분 좋게 감쌌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것은 무척 오랜만이었기에 내 입에서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세르안은 나보다 더했다. 

    아이의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바다였으니 당연했다. 

    처음엔 좀 무서워서 주춤하던 세르안은 금방 적응하고는 꺄르르 웃으며 이리저리 날 듯이 뛰어다녔다. 

    세르안의 넘치는 기운은 실로 대단했다. 

    하루 종일 첨벙첨벙 물장구도 치고 여기로 저기로 뛰어다니며 공놀이도 했지만 지칠 줄을 몰랐다. 

    마침내 먼저 지쳐 버린 내가 외쳤다. 

    “모래성 쌓기 하자!”

    “모래성이 모예요?”

    다행히도 세르안이 두 눈을 초롱초롱 반짝이며 관심을 보였다. 

    아이의 관심이 사라지기 전 제대로 붙잡아 둘 요량이었을까. 

    제크론이 후다닥 움직여 모래밭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근육으로 꽉 찬 기다란 팔다리를 재빨리 움직이는 모습이 우아했다. 

    이 남자는 모래밭을 뒹굴어도 어쩜 저렇게 기품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설마 콩깍지 때문은 아니겠지?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니겠지?’

    순간 너무 팔불출 같은 생각에 얼굴에 열이 올랐다. 

    손부채를 팔랑이며 남편과 아들이 모래 놀이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입가에 미소가 절로 걸렸다. 

    잘생긴 아빠의 이목구비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들의 귀여운 모습 때문이었다. 

    ‘아… 나 아무래도 그냥 팔불출 해야겠다.’

    인정하고 나니까 속이 편했다. 

    제크론이 기초 공사를 시작하며 세르안을 향해 말했다. 

    “여기 있는 모래들로 집을 짓는 거란다!”

    “와아! 모래 마니 마니 이쓰니까 우리 집 크게 크게 지을 수 이게써요!”

    “그래! 엄마는 특히 큰 집이 좋으니까 모래성도 이… 만큼 크게 지어 줘!”

    “응, 엄마! 이… 만큼 크게!”

    내가 팔을 쭉 뻗으며 커다란 원을 그리자 세르안도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팔을 쭉 뻗었다. 

    고사리같이 작은 손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크론이 하는 모습을 유심히 봤다가 그대로 따라 만드는 모습이 기특했다. 

    ‘관찰력도 좋고! 학습능력도 좋고! 집중력도 좋고! 지구력도 좋아야 할 텐데!’

    어느새 내 머릿속에는 세르안의 장점들로 가득 찼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모습들이 다 장점들뿐이었다. 

    타고난 팔불출 성향은 절대 감춰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 세계 남자 주인공의 아들인데 어련하겠어?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라서 한 15년쯤 후에는 아버지한테 남자 주인공의 자리를 물려받으렴!’

    *   *   *

    “으으…. 햇볕에 너무 오래 있었나 봐요!”

    샤워 후, 나는 거울 속 우리 세 식구의 얼굴을 보며 우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세 사람의 얼굴 모두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나게 노느라 피부가 타는 것도 몰랐다. 

    “왜 진즉 신경 쓰지 않았을까!”

    나 스스로를 나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곁에서 듣고 있던 케이트와 주디의 어깨가 움찔거리며 말렸다. 

    “죄송해요, 마님! 저희가 양산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저희도 해변 놀이가 처음이라서 미처 신경 쓰지 못했어요.”

    아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나는 하녀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너희들 때문이 아니야. 너희들 탓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표정 좀 풀어.”

    “그렇지만….”

    “네….”

    “나도 바닷가 물놀이가 오랜만이라 방심하고 있었어. 그리고 원래 바닷가에 오면 이 정도 그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이렇게까지 말해도 하녀들의 쩔쩔매는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었다. 

    그녀들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서는, 일거리를 만들어 줘서 잡생각을 못 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주방에 가서 오이를 동그랗게 썰어 와 줄래? 얼굴 마사지용이니까 얇게 썰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마님.”

    “빨리 준비하고 오겠습니다.”

    우렁찬 대답이 바로 따라붙었다. 

    금방이라도 달려갈 것처럼 몸을 돌리고 있는 하녀들을 향해 나는 한 마디 더 외쳤다. 

    “빨리하려다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천천히 해!”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역시 내 전속 하녀들은 다리도 손도 빨랐다. 

    10분 뒤 얇게 썬 오이를 한 그릇 가득 가져왔다. 

    뛰어왔는지 그녀들은 가쁨 숨을 애써 삼키고 있었다. 

    오이가 담긴 그릇을 받아 든 나는 하녀들을 내보냈다. 

    “고마워. 마사지는 내가 직접 할 테니까 너희들은 가서 저녁 식사 시간까지 쉬어.”

    “네, 그럼 오붓한 시간 보내세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바로 부르시고요.”

    공손히 허리 숙여 인사한 하녀들이 나가고 우리 식구만 남게 됐다.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벌컥벌컥 들이마신 세르안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외쳤다. 

    “아으, 차가워!”

    “그러니까 천천히 마셔야지, 세르안.”

    꺼억, 진한 트림을 내뱉은 세르안이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워 아이의 머리를 살짝 헝클며 쓰다듬었다. 

    “자자, 이제부터 엄마가 오이 마사지 해 줄 테니까 천장 보면서 바로 누워 봐.”

    “이러케요?”

    “좋아, 잘했어! 당신도 세르안 옆에 같이 누워요.”

    “그래.”

    나란히 누운 남편과 아들의 얼굴 위에 오이를 하나씩 얹기 시작했다. 

    “와아! 시원하다!”

    “그렇지? 시원하지? 이렇게 잠시 있으면 오이가 얼굴의 열을 식혀 주는 거야.”

    “고마워, 오이야!”

    그때였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제크론이 세르안 얼굴에 놓인 오이 조각들을 입으로 흡입하기 시작했다. 

    “아아! 아빠가 내 오이들 다 머거써요! 먹지 마, 먹지 마요!”

    “음냠냠! 음냠냠! 세르안 얼굴에 닿았던 오이라서 짭조름한 게 더 맛있는데! 음냠냠!”

    “와하하! 간지러워, 아빠! 간지러워! 하하하!”

    제크론이 흡입하는 것은 오이뿐만이 아니었다. 

    오이와 함께 세르안의 오동통 볼살까지 제크론의 입 속으로 쏙쏙 들어갔다. 

    “이제 보니 오이보다 우리 아들이 더 맛있네! 옴뇸뇸! 옴뇸뇸! 와앙냠!”

    “와하하하! 아빠! 그만! 그마안요! 푸하하!”

    침대 위는 완전히 난장판이 됐다. 

    제크론은 세르안에게 안 떨어지려 아이의 얼굴을 꼭 붙들었고, 세르안은 아빠에게서 벗어나려 허우적허우적 발버둥 쳤다. 

    나는 오이가 담긴 그릇을 무사히 사수하기 위해 침대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속으로 열까지 세면서 아빠와 아들의 다정한 한 때를 찬찬히 눈에 담았다. 

    ‘하나, 둘, 셋, …아홉, 열!’

    열까지 다 센 나는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굳이 목청껏 소리 지를 필요도 없었다. 

    단지 조금 딱딱한 어조로 또박또박 말하기만 하면 됐다. 

    “자, 이제 장난은 그만. 오이 마사지 시간으로 돌아갑시다.”

    내 목소리는 제크론과 세르안의 귀에 제대로 당도했고, 그들은 바로 내 말에 따랐다. 

    세르안의 볼살을 흡입하던 제크론이 하던 일을 멈추자 세르안도 절로 조용해졌다. 

    두 사람은 다시 처음처럼 천장을 본 채 바른 자세로 누웠다. 

    후다닥 재빨리 움직이는 남편과 아들의 모습에 나는 흡족하게 웃었다. 

    “내 말 잘 들어 줘서 고마워요, 다들.”

    제크론과 세르안이 안정을 찾은 것을 확인한 나는 오이 그릇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막 오이 조각 하나를 세르안의 얼굴 위에 얹으려고 할 때였다.

    세르안이 제크론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빠! 엄마 얼굴 먹자요!”

    “그럴까?”

    “응!”

    “좋아!”

    워낙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 몸을 피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붙잡힌 채 한 쪽 볼은 제크론에게 다른 한쪽 볼은 세르안에게 내줘야 했다. 

    “엄마 딱 열까지만 센다!”

    행복한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   *   *

    본디 휴가의 묘미란 늦잠이 아니던가. 

    다음 날도 나와 제크론은 오전 늦게까지 침대 위에서 뒹굴거렸다. 

    우리는 서로의 몸을 베개 삼고 누운 채 나는 소설책을, 제크론은 신문을 읽고 있었다.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케이트와 주디였다. 

    바퀴 소리도 들리는 것으로 보아 뭔가를 끌고 온 모양이었다. 

    “마님, 이제 슬슬 준비를 시작해야 할 시간입니다.”

    “준비? 무슨 준비?”

    스르르 몸을 일으킨 나는 눈앞의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다 뭐야?”

    “깜짝 선물이야. 우리를 위한.”

    내 물음에 답한 것은 하녀들이 아니라 내 옆에 누워있던 제크론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제크론을 바라봤다. 

    그는 두 눈을 반으로 곱게 접으며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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