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화 (108/142)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

108화

“요소킨 운동이 그렇게 별로인가요? 원래는 저희도 윌트슨 공작성에서 하는 운동 수업에 참여할까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기사를 읽고 하고 싶었던 마음이 쏙 들어갔지 뭐예요.”

“운동인데 오히려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니! 최악이에요, 정말!”

영애들의 작고 고운 얼굴이 와그작 구겨졌다. 

아직 어린 이 영애들은 메리엔과 제나의 인터뷰 기사만 읽고 ‘제국 가십지’에 실린 엘프윈의 인터뷰 기사는 읽지 않은 모양이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제나가 입꼬리를 느른하게 올리며 입을 열었다. 

“어머, 우리는 그저 느낀 바를 말했을 뿐이에요. 요소킨 운동도 역시 좋은 운동이겠죠. 윌트슨 공작 부인께서 적극 후원하시는 운동이니 어련하겠어요?”

제나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신나게 말했다. 

한번 터진 입에서는 그럴 듯한 말이 청산유수처럼 흘러 나왔다. 

메리엔은 침실에서 땅굴을 파던, 지금과는 너무 비교되는 제나의 모습이 생각나 속으로 웃었다. 

우연히 만난 귀족 영애들은 두 눈에 불을 켜고 제나의 말에 집중했다. 

제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도해 봤던 것이고요. 하지만 우리랑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런, 그러셨군요! 고생하셨겠어요!”

“핸더슨 공녀께서 안 맞은 운동이 저희라고 맞을까요? 시도하는 것도 좀 꺼려지네요. 그렇지?”

금발과 은발의 귀족 영애들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영애들은 선망의 대상을 닮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했다. 

제나와 메리엔은 시선을 마주쳤다. 

서로에게서 승리감에 도취된 미소를 머금은 눈빛을 확인했다. 

‘그래, 이 느낌이지!’

제나는 역시 메리엔이 내민 손을 잡고 침대를 벗어나 쇼핑까지 나오게 된 스스로의 선택을 칭찬했다. 

엉망진창으로 시작된 하루였지만, 어쩌면 그 마무리는 좋은 기분으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잠깐의 착각일 뿐이었다. 

그날은 제나의 뜻대로 흐르지 않는 하루였다. 

라하브에서 가장 큰 장신구 가게답게 가게는 총 3층짜리 건물이었는데, 2층 중앙에는 쇼핑을 즐기던 손님들이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거기에서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호호호호!”

“푸흡, 하하하!”

손님 몇 명이 쉬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나와 메리엔의 시선이 또다시 마주쳤다. 

이번에도 역시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메리엔이 일행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잠시 2층에 올라가서 쉬는 게 어때요?”

“좋아요.”

“안 그래도 다리가 아프고, 목이 마르려던 참이었어요.”

“저희도 함께 가도 될까요?”

금발과 은발의 어린 영애들이 두 쌍의 눈동자를 반짝이며 물었다. 

메리엔은 입꼬리를 바짝 올려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 뭐 해요. 우리야 너무 기쁘죠.”

메리엔의 입에서 긍정의 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린 영애들은 꺄아, 손뼉까지 치면서 좋아했다.

제나와 메리엔은 일행을 대동하고 2층으로 향했다. 

마치 고급 디저트 가게처럼 소파와 테이블이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는 휴게 공간에는 한 무리의 귀부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앞장서서 걷던 제나는 미리 와 있던 귀부인들 곁으로 다가갔다. 

‘아?’

그리고 바로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왜냐하면 거기에 있던 귀부인들의 중심에는 엘프윈 윌트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정말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출산 후 3개월 내내 침실에서만 갇혀 지냈다. 

지난주부터 정원 산책과 요소킨 운동이 허락됐다. 

천천히 걷거나 스트레칭을 하며 땀 흘리는 운동도 거뜬히 해내는 것을 본 매튜가 마침내 외출도 허락했다.

물론 아직은 일주일에 1회 정도로 한계를 설정해 두긴 했지만 말이다. 

황립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수업 때문에 빠진 메릴을 제외하고, 앨리슨, 조안, 맨디, 그리고 브렌트까지 함께했다. 

1차 쇼핑을 마치고 한창 기분 좋게 떠들고 있는데 이쪽을 보는 시선이 있어 고개를 돌리니 핸더슨 공녀와 도론 공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난감했는지 그녀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내 얼굴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입술이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앨리슨이었다. 

“어머, 핸더슨 공녀와 도론 공녀 아니세요! 그리고 친구 분들까지! 쇼핑 나오셨나 봐요!”

앨리슨의 목소리는 몹시 유쾌했지만, 눈빛은 그러지 못했다. 

우리에게 핸더슨 공녀와 도론 공녀는 유순한 메릴을 괴롭히는 악당으로 비쳐질 뿐이었으니까. 

도론 공녀가 어색한 미소를 가감 없이 비치며 입을 열었다. 

“장신구 가게에 쇼핑하러 오지 뭐 하러 오겠어요?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반가워요, 모두들.”

지금의 만남이 영 유쾌하지 않음을 대놓고 표현하는 식의 인사가 어이없었다. 

‘귀족으로 나고 자란 사람이 저렇게 속내를 감추지 못해서야, 원! 아니지… 일부러 감추지 않는 걸지도?’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여자다. 

서로의 분위기를 살피며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또 다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핸더슨 공녀, 도론 공녀, 오랜만이에요! 어머나, 윌트슨 공작 부인까지 있었군요! 이런 곳에서 다 만나네요!”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한 번에 향했다. 

거기에는 슈라더 후작 부인이 놀라 휘둥그레진 눈을 하고 서 있었다. 

라하브에서 가장 크다는 이 장신구 가게는 핫 플레이스인 모양이었다. 

처음 이곳에 들어섰을 때 현대 사회의 백화점과 비슷하다는 첫인상을 떠올리면 충분히 납득이 가능했다. 

나도 후작 부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랐지만, 나보다 핸더슨 공녀와 도론 공녀가 더 놀란 눈치였다. 

당황해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꽤 흥미로웠다. 

‘오, 좀 재밌을 것 같은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대감에 입꼬리가 자꾸만 위로 말려 올라갔다. 

미소를 감추지 못한 나는 결국 들고 있던 부채를 펴서 입가를 가려야 했다. 

슈라더 후작 부인은 두 명의 일행과 함께였는데, 모두 후작 부인과 비슷한 연배의 중년의 귀부인들이었다. 

우연히 마주친 귀부인들이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느라 잠시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마치 어느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한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인사가 대충 마무리되자 핸더슨 공녀 일행은 서로에게 눈길을 보내며 자리를 피할 궁리를 하는 눈치였다. 

하긴 나이 어린 귀족 영애들의 입장에서 중년 귀부인들과의 길어지는 대화가 반가울 리 없으리라. 

하지만 어린 영애들의 바람을 읽지 못한 슈라더 후작 부인은 들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후작 부인의 시선이 나와 앨리슨에게 닿았다. 

“오늘 인터뷰 기사 잘 읽었어요! 그림 분위기가 어쩜 그렇게 좋아요? 그림 속에 함께 나온 분이 옆에 계신 디아브 백작 부인 맞죠?”

“네, 맞아요. 알아봐 주셔서 감사해요. 신문에 실린 그림치고 너무 잘 나와서 저도 오려서 고이고이 모셔 뒀지 뭐예요?”

호호호, 앨리슨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휴게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신문에 실린 그림을 오려 두기까지 했다니!

‘하긴 세르안이 처음으로 신문 기사에 데뷔한 사진이니 나도 오려서 잘 간수해 둬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서 있을 때였다. 

이번엔 슈라더 후작 부인의 일행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해리스 남작 부인이라고 했던가. 

“제국 가십지에 실린 기사 맞죠? 저도 그 기사 읽었어요! 요… 무슨 운동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운동이 정말 그렇게 좋은가 봐요?”

이때다 싶었다. 

눈앞으로 날아드는 훌륭한 기회를 이대로 놓친다면 바보다.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요소킨 운동이요. 제겐 정말 잘 맞는 운동이에요. 관심 있으시면 가벼운 마음으로 참관해 보시는 것도 괜찮으세요.”

“참관이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네, 시험 삼아서 한두 번 해 보시면 할 만한지, 아닌지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어머, 그럼 나도 이번 기회에 한번 해 볼까 봐요.”

귀부인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 슈라더 후작 부인이 핸더슨 공녀와 도론 공녀를 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핸더슨 공녀와 도론 공녀도 요소킨 운동을 하고 있지 않나요?”

순간 거기 모인 모든 귀부인들과 영애들의 시선이 핸더슨 공녀와 도론 공녀에게로 꽂혔다.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공녀들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여과 없이 떠올랐다. 

슈라더 후작 부인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어떠세요? 괜찮은 것 같은가요? 나이 많은 내가 해도 무리 없이 할 수 있을까요?”

슈라더 후작 부인은 오늘 발간된 가십지 중에서 ‘제국 가십지’만 읽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핸더슨 공녀와 도론 공녀가 요소킨 운동의 효과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인터뷰 기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난색을 표하던 핸더슨 공녀가 표정을 갈무리하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저와 제 친구들은 요소킨 운동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난주부터 더 이상 운동 수업에 참여하고 있지 않아요.”

“어머나!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전혀 몰랐네요.”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하게 된 슈라더 후작 부인이 두 손을 모아 입을 가리며 말했다. 

동그랗게 뜬 눈동자를 굴리며 핸더슨 공녀와 내 눈치를 번갈아 살피는 것을 보니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