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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107/142)
  • 107화

    이를 앙다문 제나는 인내심을 갖고 머리카락을 빼내는 작업에 열중했다. 

    “아가씨, 신문들 다 가져왔어요! 여기요! 그런데… 지금 뭐 하세요?” 

    신문들을 소중하게 가슴에 안고 들어온 하녀가 제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상황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신문은 내게 줘. 그리고 넌 이리 와서 머리카락이나 빼.”

    “아, 네.”

    그제야 상황 파악을 마친 하녀가 신문을 제나에게 넘기고 창가로 와서 머리카락을 한 가닥, 한 가닥 조심조심 빼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하녀에게 맡긴 제나는 첫 번째 가십지를 펼쳐 들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손과 눈빛에서 기대감이 차올랐다. 

    제나는 이번 일에 이토록 열을 올리는 제 자신이 신기할 정도였다. 

    마침내 그들의 인터뷰 기사를 확인했다. 

    “뭐야… 다섯 번째 장이잖아? 이렇게 뒤에? 그리고 이렇게 작게?”

    기사 위치도, 기사 길이도, 사진 크기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두운 실망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니었다.

    “기사 제목은 괜찮군! 아얏!”

    제나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머리카락이 세게 당겨지는 바람에 날카로운 통증이 머리를 강타했다. 

    하녀가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어머, 죄송해요, 아가씨! 갑자기 움직이셔서….”

    “네가 잘못한 게 내 탓이라는 거야?”

    “아, 아닙니다. 조심할게요.”

    “똑바로 하자, 쫌!”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한 하녀는 다시 머리카락 빼기 작업에 집중했다. 

    더 이상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으리라. 

    제나는 다음 가십지를 펼쳐 들었다. 

    거칠게 페이지를 넘기던 제나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이번에 세 번째 면이네!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흡족한 미소가 그녀의 입매 가득 번졌다. 

    이번엔 기사 위치도, 기사 길이도, 사진 크기도 모두 적당해 보였다. 

    솔직히 좀 더 크면 좋겠지만, 그것은 욕심이리라.

    여인들의 운동에 대한 가십거리니 이쯤이면 충분하리라. 

    스스로의 생각에 납득한 제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녀는 반쯤은 만족스럽고, 반쯤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음 가십지로 손을 뻗었다. 

    ‘제국 신문사’에서 발간하는 ‘제국 가십지’였다. 

    딱딱하고 하나도 재미없는 이름이었지만, 그 인기만은 대단했다. 

    대부분의 가십지들이 뜬소문을 기사로 다루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반면, ‘제국 가십지’만은 달랐다. 

    다수의 증인과 명확한 증거가 있는 가십거리만을 기사화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한낱 가십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신뢰도가 높았다. 

    “이 가십지에는 기사를 의뢰하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안 실려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가십지를 폈다. 

    “이, 이게… 뭐야!”

    가십지 가장 첫 장에 실린 기사를 확인한 제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얼굴이 인정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거기에는 엘프윈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다. 

    1면 전체에 가득. 

    “마, 말도… 안 돼!”

    화가 치솟는 바람에 가십지에 실린 글자가 하나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아, 하아… 몸속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통에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그 숨소리를 곁에서 듣고 있는 하녀는 무서워서 어깨를 바짝 움츠렸다. 

    언제 불똥이 제게 튈지 몰랐다. 

    하녀의 손이 다급해졌다. 

    어서 빨리 머리카락을 다 빼고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했다. 

    이 다혈질의 아가씨에게서 떨어져야 했다. 

    하지만 긴장한 상태에서 서두르려니 손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실수가 생겼다. 

    “아앗!”

    머리카락이 당겨지자 제나의 입에서 신경질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야! 제대로 하라고 했지!”

    “아가씨, 죄송합니다! 빨리한다는 게 그만….”

    “제대로 좀 하라고! 제대로!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날카로운 고음이 침실 공기를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제나는 소리치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들고 있던 가십지로 하녀의 어깨를, 머리를, 얼굴을 툭, 툭 쳐대기 시작했다. 

    하녀는 날아오는 가십지를 막거나 피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서서 맞고만 있어야 했다. 

    “내가 우스워? 어? 말해 봐!”

    “죄송해요, 아가씨… 흐흑!”

    “죄송하다면 다야? 다냐고!”

    “흐흐흑… 아가씨….”

    “왜 제대로 말을 못해! 응?”

    제나의 손찌검은 점점 더 거세졌고, 팔을 휘두르는 행위에만 집중하던 제나는 결국 무게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어? 어… 아아앗!”

    머리카락 몇 가닥이 창틀에 끼인 채 그대로 넘어지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뽑히는 불상사를 피할 수 없었다. 

    두피에서 불이 났다. 

    혹시 피가 나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마음에 두피를 문지른 손을 확인했지만 다행히 붉은 핏물은 보이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뽑히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이 상황 자체에 대한 짜증이 폭발했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상쾌한 아침일 줄 알았다. 

    눈엣가시 같았던 엘프윈 윌트슨에서 한 방 제대로 먹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한 방 먹은 것은 자신이었고, 게다가 멍청한 하녀 때문에 머리카락도 뽑혔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아악! 고막을 찌르는 듯한 비명이 이어졌다.

    *   *   *

    사태를 파악한 메리엔이 바로 핸더슨 공작저로 달려왔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제나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제나, 곧 티타임이야! 모임 있는 거 잊었어?”

    “모임? 못 나가. 아니, 안 나가. 아프다고 해. 몰라.”

    제나는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대로 잠에 들면 좋을 것 같았다. 

    수면에 좋은 차라도 마셔야 하나, 24시간 자고 일어나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이면 이미 세상은 신문 기사 따위는 다 잊었을 것 같았다. 

    메리엔이 이불을 훽 젖혔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몰라서 물어?”

    “설마 기사 하나 난 것 때문에 이러는 거야?”

    “…….”

    메리엔의 물음에 제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메리엔을 올려다봤다. 

    ‘얘는 어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바보라서 그런가? 그래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건가?’

    자신은 이리도 괴로운데 멀쩡해 보이는 메리엔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메리엔의 입술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가는 게 보였다. 

    ‘웃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웃을 수 있지? 

    제나는 지금 눈으로 직접 본 광경을 믿기 힘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아무렇지 않은 척 드레스를 빼입고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거라고 했던 건 너야.”

    “아….”

    “내가 날 패배자라고 인정하면서 그렇게 행동하면 타인들도 나를 패배자로 보고, 내가 날 패배자로 인정하지 않으면 타인들도 나를 패배자로 보지 않는다고 했던 것도 너야.”

    “…….”

    침대에 누운 채 메리엔의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제나는 스르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인터뷰 기사 하나 가지고 땅굴 파면서 숨어 있는 거 내가 아는 제나 핸더슨답지 않아.”

    메리엔이 제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나는 손을 뻗어 메리엔의 손을 잡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우리에겐 아직 남은 카드들이 많잖아? 일단 로저먼드 월시를 만나 보는 건 어때?”

    “그보다 먼저 쇼핑을 가자!” 

    “쇼핑? 갑자기? 티타임은 어쩌고?”

    제나의 제안에 메리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늦지 않게 여론 몰이를 하려면 대책이 필요한데. 

    친구들을 만나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쇼핑이라니?

    기분 전환이 필요해서 그런가?

    메리엔의 표정을 읽은 제나가 소리 높여 말했다. 

    “여론 몰이를 제대로 하려면 일단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야 할 거 아니야? 대책은 별거 없어. 네가 말한 그대로야.”

    “내가 말한 거, 뭐?”

    “우리는 틀리지 않았고, 패배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줘야지.”

    방금 전까지 제나의 눈동자는 죽어 가는 생선의 눈동자와 닮았다면, 지금은 먹이를 앞에 둔 포식자의 눈동자를 닮아 있었다. 

    메리엔이 좋아하는 제나의 눈동자였다. 

    “좋아.”

    씨익 웃은 메리엔은 제나의 뒤를 따랐다. 

    *   *   *

    호기롭게 쇼핑을 나섰던 제나와 메리엔은 곧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했다.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사건은 장신구 가게에서 벌어졌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제나와 메리엔은 친구들을 대동하고 라하브에서 가장 큰 장신구 가게로 향했다. 

    이번 주말에 열리는 파티에 착용할 장신구를 살 계획이었다. 

    화려하고 세련된 신상품이 필요했다. 

    제나와 메리엔 일행은 어딜 가든 뭇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그들 중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곁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금발과 은발을 길게 늘어뜨리고 화려한 꽃장식의 머리띠를 한 어린 귀족 영애 두 명이 다가왔다. 

    그녀들의 얼굴은 잔뜩 상기돼 있었는데, 평소에 제나와 메리엔을 동경하는 마음이 컸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오늘 가십지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더라고요. 잘 읽었어요.”

    “아, 그게 오늘이었나요? 인터뷰는 했는데, 정확히 언제 기사화 되는지는 모르고 있었어요.”

    메리엔이 능수능란하게 시치미를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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