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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106/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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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화

    요소킨 운동 수업이 있는 날은 아니었지만, 운동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디아, 아니… 앨리슨, 조안, 맨디, 그리고 메릴! 다들 어서 와요!”

    며칠 만에 다시 만난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려니 사실 조금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존칭 대신 이름을 부르는데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았다. 

    “깜짝 손님도 함께 왔답니다, 짜잔!”

    “어머나!”

    앨리슨의 품 안에는 우리 세르안보다 하루 일찍 태어난 금발의 여자 아이가 안겨 있었다. 

    앨리슨에게 아기를 넘겨받은 나는 아기를 품에 꼭 안았다. 

    “우리 디나도 함께 왔구나! 오구, 오구!”

    “세르안과 친구 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잘 생각했죠?”

    호호호, 앨리슨이 명랑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그녀를 타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앨리슨! 벌써부터 윌트슨가와 사돈 맺으려는 밑그림이야?”

    “우리 가문이랑 사돈 맺기로 한 거 아니었어?”

    “어머, 이 친구 좀 봐!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로 사돈 운운하기는! 사돈 얘기 꺼내기 전에 먼저 애부터 만들라고!”

    앨리슨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조용했던 공작성에 친구들이 발을 들여놓자 금세 시끌벅적 활기가 돌았다. 

    언제나처럼 말이다. 

    신문 기자, 닐 베이스와 필립 빙거도 곧 도착했다. 

    인터뷰는 세르안의 방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신문 그림에는 나와 앨리슨이 세르안과 디나를 안고 있는 모습이 실릴 예정이었다. 

    우리 모두 기자와의 인터뷰가 처음이 아니었기에 인터뷰는 무척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수 있었다. 

    인터뷰가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을 무렵 닐이 결정적인 질문을 내뱉었다.

    “항간에는 요소킨 운동이 여성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의 목소리가 있더라고요.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나는 침착한 표정을 유지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그런 터무니없는 소문이 시작됐는지 모르겠네요. 요소킨 운동을 한 번이라도 접해 본 사람의 입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잠시 말을 멈춘 나는 앞에 놓인 찻잔으로 손을 뻗었다. 

    차를 홀짝이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닐에게도 내가 한 말을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적을 수 있게 시간을 벌어 주고 싶었다. 

    “설마 앨리슨과 저의 이른 출산이 그 악의적인 소문의 근거라면 저희는 무척 안타까워요. 제국의 여성들 중에서 의원이 알려 준 출산 예정일에 정확히 출산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질문을 던진 나는 내 왼편에 앉아 있는 매튜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매튜는 이런저런 조사 활동으로 바쁜데도 불구하고 흔쾌히 인터뷰 자리에 함께해 주고 있었다. 

    매튜는 그의 손에 들린 자료를 닐에게 보이며 입을 열었다. 

    “자료를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애초에 의원이 말해 준 출산 예정일에 맞춰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출산을 하는 여성은 10퍼센트가 채 못 됩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예정일보다 며칠 이르거나, 며칠 뒤늦게 출산을 하게 되지요.”

    “…정말 그렇군요.”

    매튜에게서 받은 자료를 살펴본 닐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애초에 의원이 제시한 날짜는 출산일이 아니라 ‘출산 예정일’ 이니까요. 그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매튜의 답변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도 해당 내용을 빠짐없이 수첩에 적어 내려가느라 손이 바빴다. 

    닐의 추임새 덕분일까. 

    매튜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런데 요소킨 운동 회원들이 출산 예정일보다 이른 출산을 했다는 이유로 요소킨 운동의 효능을 깎아내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자는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둘 중 하나라니요?”

    “비논리적 사고방식을 찬양하는 멍청이거나 요소킨 운동에 대해 짙은 악의를 품은 악한이거나요.”

    “호오.”

    닐의 눈동자가 흥미로운 빛을 발하며 반짝거렸다. 

    닐의 눈동자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모인 모두의 눈동자가 비슷한 상태였다. 

    나는 모두의 시선의 중심에 있는 매튜를 봤다. 

    매일 제크론을 마주하는 공작성 사람들에게는 매튜의 잘생긴 외모나 명석한 두뇌가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공작성 밖의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의 눈에 매튜의 찰랑거리는 은발과 희고 곱상한 얼굴은 무척 매력적으로 보이리라. 

    그들의 귀에 매튜의 똑 부러지는 말투와 방대한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기술은 무척 감미롭게 들리리라. 

    ‘오늘 이 인터뷰의 주인공은 매튜구나.’

    내 예상은 맞았다. 

    애초에 아기들을 안은 나와 앨리슨을 담기로 했던 그림에 매튜까지 합류한 것을 보면 말이다. 

    하긴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귀부인들의 모습이나 말보다 제국 의학계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매튜의 모습과 말을 부각하는 편이 이번 인터뷰의 효과를 배로 올릴 게 분명했다. 

    심도 있는 조사 내용을 곁들인 인터뷰는 한 시간 넘게 이어졌고, 인터뷰가 끝났을 때는 모두가 기진맥진한 상태가 됐다. 

    당 충전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뛰어난 공작성의 하녀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티 테이블을 세팅했다. 

    참여 인원이 많은 만큼 거의 티 파티 수준의 디저트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역시 윌트슨 공작성의 티타임 디저트들은 훌륭합니다.”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를 한입 베어 무는 닐의 두 눈동자에 광기 비슷한 것이 어른거렸다. 

    떨어진 당을 보충하는 긴박한 와중에도 나는 칭찬에 대한 답례를 잊지 않았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기자님.”

    “그런데 신문 기사는 언제 나가게 될까요?”

    질문하는 메릴의 눈동자에 가볍지 않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 

    분명 도론 공녀 일행의 인터뷰 기사가 먼저 나오게 될 것을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녀가 걱정하는 바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닐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번졌다. 

    입 안에서 우걱우걱 씹고 있던 케이크를 꿀꺽 삼킨 닐이 냅킨을 들어 입 주위를 정리하고는 말했다. 

    “걱정 마세요. 요소킨 운동에 대한 또 다른 기사는 이틀 뒤에 실린다고 합니다. 우리 기사도 준비해서 이틀 뒤, 같은 날에 뿌릴 작정이니까요.”

    닐은 한쪽 눈을 찡긋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릴의 걱정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았다. 

    메릴이 다시 물었다. 

    “그 정보 확실한 게 맞나요? 이틀 뒤에 나온다고 했는데, 바로 내일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신중한 메릴이 할 수 있을 법한 생각이었다. 

    당황했는지 닐의 눈동자가 잠시 커졌다가 돌아왔다. 

    닐이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보는 확실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정기적으로 타 신문사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들인 돈이 어마어마하거든요.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정보는 확실할 것입니다.”

    “네,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메릴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마음이 아팠다. 

    괜히 나 때문에 메릴이 마음고생을 하는 것 같아 속이 쓰렸다. 

    나는 메릴의 손 위에 살포시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메릴, 일단 믿어 봐요. 제국 최고 신문사의 베테랑 기자, 닐을 믿어요. 제국 최고의 의학 인재인 매튜를 믿어요. 여기 모인 친구들을 믿어요.”

    “엘프윈….”

    메릴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기 시작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다음 말을 덧붙였다. 

    “아. 제 말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가장 중요한 말이 남았어요. 메릴, 다른 무엇보다 당신을 믿어야 해요.”

    “…고마워요.”

    흐흑, 결국 메릴은 눈물을 터트렸다. 

    그녀를 울리려던 건 아니었는데, 조금 민망해졌다.

    내 생각을 읽었던 것일까. 

    앨리슨이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엘프윈! 지금 메릴을 울린 거예요?”

    “어머나! 이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우리 소중한 메릴을 울리다니요!”

    앨리슨을 필두로 조안과 맨디까지 가세해서 날 궁지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두 눈에서 불꽃이 이글거렸다. 

    소매를 걷어붙이며 따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메릴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내 앞을 막아선 그녀가 팔을 양옆으로 쫙 벌리며 외쳤다. 

    “그 누구도 우리 엘프윈을 이런 식으로 공격하는 건 용납할 수 없어요! 엘프윈을 공격하고 싶거든, 나부터 넘어뜨려야 할 거예요!”

    울었던 탓에 두 눈과 코가 벌겋게 달아오른 메릴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푸흡, 푸하하하! 호호호! 순간 방 안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날것의 웃음소리가 여과 없이 터져 나왔다. 

    *   *   *

    제나 핸더슨은 아침 일찍 눈 뜨자마자 설렁줄을 당겼다. 

    하녀가 바로 종종걸음으로 들어왔다. 

    “아가씨, 안녕히 주무셨어요?”

    “지금 당장 가서 신문 가져와.”

    “네, 알겠습니다.”

    제나의 명령에 하녀는 보폭을 더 크게 하며 황급하게 걸어 나갔다. 

    사라지는 하녀의 뒷모습을 보며 제나는 쯧, 혀를 찼다. 

    하녀의 느려터진 걸음걸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야. 고작 하녀의 걸음걸이 따위로 기분을 망가뜨리면 안 돼!’

    제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침대에서 나왔다. 

    촤악, 커튼을 걷자 눈부신 햇살이 그대로 방 안으로 쏟아졌다. 

    창문을 열었다. 

    아침 공기가 찼다. 

    하지만 그래서 더 상쾌하기도 했다. 

    “흐음… 하아…!”

    상쾌한 공기를 한 모금 깊게 들이마셨다.

    머릿속까지 청량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휘이잉,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속절없이 휘날렸다. 

    “어맛! 어? 어엇!”

    그러다가 머리카락 몇 가닥이 창틀에 끼어 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아오 씨, 터져 나오려는 욕지거리를 꾹꾹 삼키며 한 가닥, 한 가닥 조심스럽게 빼 나갔다. 

    머리카락이 당겨지는 바람에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하지만 애써 입매 끝을 바짝 위로 올려 미소 비슷한 것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오늘처럼 좋은 날, 고작 이런 일로 기분을 망쳐 버릴 수는 없었다. 

    엘프윈 윌트슨, 그 여자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는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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