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142)

76화

“아윽!”

디아브 백작 부인이 갑자기 배를 움켜잡으며 신음을 내뱉었다. 

곁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졌다. 

그리고 메릴 선생님이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어머나, 양수가 터진 것 같아요!”

모두 경악했다. 

우리들 중 아무도 출산 경험이 없었기에 우왕좌왕거리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상황은 곧 진정됐다. 

운동실 옆에서 대기 중이던 매튜가 바로 달려와 줬기 때문이었다. 

재빨리 디아브 백작 부인의 상태를 파악한 매튜가 외쳤다. 

“출산이 임박한 상태에서 백작저로 돌아가는 마차에 타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출산을 준비하셔야 하겠습니다.”

“그런…!”

호탕한 성격의 디아브 백작 부인조차 이런 상황에서는 잔뜩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백작저가 아닌 다른 곳에서의 출산을 단 한 번도 상상한 적 없었기 때문이리라. 

“디아브 백작저에는 바로 사람을 보내 백작님과 주치의를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매튜가 디아브 백작 부인을 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땀범벅이 된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겨우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럼 여기 잠시 앉아 계십시오. 심호흡을 규칙적으로 크게 하세요. 저는 가서 게스트룸을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네….”

우리들 중 그래도 가장 평정심을 유지한 이는 메릴 선생님이었다. 

그녀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주치의 선생님 말씀대로 다 같이 심호흡을 크게 해 봐요! 흐읍…. 후우…!”

우리는 메릴 선생님을 따라 다 같이 심호흡을 크게 했다. 

디아브 백작 부인도 식은땀을 흘리면서 심호흡을 열심히 따라 했다. 

발 빠른 매튜 덕분에 게스트룸은 바로 준비됐고, 디아브 백작 부인은 하인들이 가져온 들것에 실려 갔다. 

진통은 좀 괜찮았다가 심해졌고, 잠시 후 괜찮았다가 또 심해지기를 반복했다.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더 쉽지 않네요! 으으…. 으윽!”

디아브 백작 부인은 겨우 빙그레 미소 지었다가도 곧장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토해 냈다. 

그녀의 양옆에는 프렛 백작 부인과 데이비스 자작 부인이 지키고 앉아 손을 꽉 잡아 주었다. 

“아가야, 엄마 많이 힘들게 하지 말고 얌전히 나오렴.”

“그래, 아가야. 다 같이 기다리고 있단다. 어서 나오렴.”

진통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면 우리는 디아브 백작 부인의 배를 슬슬 쓰다듬으며 아이를 달랬다. 

걱정과 기대가 교차하는 프렛 백작 부인과 데이비스 자작 부인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도 입은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디아브 백작 부인은 깔깔 소리 내어 웃다가도 다시 진통이 찾아와 숨을 삼키기 일쑤였다. 

마침내 문이 벌컥 열렸고, 연락을 받고 헐레벌떡 달려온 디아브 백작이 게스트룸 안으로 들어왔다. 

백작저의 주치의도 함께였다. 

“여보! 당신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디아브 백작은 오는 길에 울었는지 두 눈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남편 얼굴을 보자 안심이 됐는지 디아브 백작 부인의 미간에 잔뜩 잡혀 있던 주름이 조금 옅어졌다. 

곧 뎀프샤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산파도 와서 디아브 백작 부인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아이가 나오려면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합니다. 산모의 안정을 위해서 방 안에는 남편분만 남아 주시고 나머지 분들은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프렛 백작 부인과 데이비스 자작 부인은 못내 아쉬워했지만 베테랑 산파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진통은 몇 시간 동안 계속 이어졌다. 

산모도, 기다리는 사람도 모두 다 지쳐 가고 있을 때였다. 

이미 어둑해진 창밖 하늘을 보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내 방 안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으으애애애앵!”

우렁찬 소리였다. 

기다리던 우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산파의 품 안에 핏덩이 어린 아기가 들려 있었다. 

“드디어!”

“어머, 세상에…!”

“오!”

한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은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그 위대하고 찬란한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밖에 없었다.

“건강하고 어여쁜 아가씨세요.”

산파는 능숙한 손길로 아기의 몸을 닦으며 말했다. 

포대기에 쌓인 조그마한 아기가 마침내 디아브 백작 부인의 품 안에 안겼다. 

디아브 백작 부부는 감격의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부모의 품 안에 안긴 아기는 더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

“어머나, 아기가 웃고 있어요!”

“코는 디아브 백작님을 닮아 오뚝하고, 머리카락은 백작 부인과 우리를 닮아 금발이네요.”

데이비스 자작 부인의 ‘우리를 닮았다’는 말에 모두가 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   *   *

늦은 밤에야 겨우 침실에 들 수 있었다. 

디아브 백작 부부와 아기는 게스트룸에서 며칠 더 머무르기로 했고, 다른 사람들은 귀가했다. 

몹시 긴 하루였다. 

주디가 운동실에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던 꽃바구니를 게스트룸의 테이블에 올려놓는 모습을 보고 꽃바구니를 만드느라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던 것이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후우….”

지친 몸을 바로 침대에 눕히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감동의 물결로 가득했다. 

눈을 뜨고 있을 힘도 없어 꾹 감았지만 입꼬리만은 히죽히죽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겨우 팔을 움직여 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아리야! 우리 아리도 곧 세상 밖으로 나오겠지? 엄마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고 있단다! 빨리 만나고 싶구나, 아리야.”

졸음이 서서히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아…. 아암…. 길고 짙은 하품이 터져 나왔다. 

그때였다. 

탁자 위에 얌전히 놓여 있던 통신석이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오랜만의 통신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벌써부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얼른 손을 뻗어 통신석을 집어 들었다. 

“제크론!”

-엘프윈!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지?

“네, 전 잘 지냈어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아세요? 글쎄, 디아브 백작 부인이….”

하려던 말을 마저 끝낼 수 없었다. 

갑자기 배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미처 삼키지 못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으…. 으윽…!”

-엘프윈? 왜 그래? 괜찮아?

“괜찮아요. 으으…. 이러다가 말 거예요. 잠시만요. 으….”

가끔 이런 적이 있었기에 나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배를 슬슬 쓰다듬었다. 

“쉬이…. 괜찮아, 아리야. 착하지, 우리 아리…. 으으….”

하지만 고통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심해졌다. 

뭔가 이상했다. 

-엘프윈, 어서 매튜를 불러! 

제크론이 외쳤다. 

결국 나는 설렁줄을 당겨 하녀를 호출했다.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케이트가 명랑하게 물었다.

“마님, 부르셨어요? 식사를 준비할까요?”

“가서 매튜를 불러와!”

“아, 알겠습니다! 마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케이트는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사이에도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엘프윈? 엘프윈!

통신석 속의 제크론이 계속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힘이 빠진 내 손에서 통신석이 떨어져 나갔고, 통신은 그대로 끊어졌다. 

“하아…. 하아…!”

나는 배를 움켜잡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곧이어 침실로 들어서는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매튜와 케이트가 외치는 소리도 함께였다.

매튜에게 내 상태를 설명해야 하는데,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내 의식은 점점 깊고 까만 수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그대로 까무룩 기절하고 말았다. 

*   *   *

“엘프윈! 엘프윈!”

제크론은 통신구에 대고 엘프윈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통신구는 이미 연결이 끊겨 있었다. 

엘프윈이 고통스럽게 내지르던 신음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진통이 시작된 것 같았다. 

‘아직 출산 예정일은 한참이나 남았는데!’

여성의 출산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는 제크론이지만, 조산이 산모나 아이에게 위험한 것이라는 것쯤은 알았다. 

쿵쾅쿵쾅, 제크론의 심장이 요동쳤다. 

통신구를 붙잡고 있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엘프윈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저는 지금 너무 먼 곳에 있었다.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곁에 있어주는 것마저도 못 하는 스스로가 무척 한심했다. 

그녀에게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했다. 

그때였다. 

조쉬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각하,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내일 아침 회군하려면 일찍….”

하얗게 질린 채 땀범벅인 제크론의 얼굴을 본 조쉬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섰다. 

통신구를 단단히 붙잡은 제크론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으로 보아 엘프윈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고통에 찬 제크론의 눈동자가 조쉬에게로 향했다. 

“조쉬….”

“말씀하십시오, 각하. 마님께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제크론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조쉬의 온몸이 바짝 긴장했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제크론의 눈동자가 마침내 조쉬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성으로 돌아가야겠다. 지금 당장.”

제크론의 명령은 짧고 굵었다. 

아, 역시! 조쉬는 꾹 다문 어금니에 바짝 힘을 줬다. 

“알겠습니다, 각하. 통신 장치로 라하브에 있는 마법 마차 길드에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할 말을 마친 조쉬는 쏜살같이 막사를 나섰다. 

혼자 남은 제크론은 그대로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떨리는 두 손을 모든 채 눈을 감았다. 

“제발 엘프윈을 살려 주십시오! 제발!”

일평생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기도를 드렸다. 

절박한 진심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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