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142)
  • 58화

    제크론이 떠난 공작성은 적막, 그 자체였다. 

    사실 평소에도 널따란 성에서 그를 마주칠 일은 별로 없었다. 

    성 안에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몰랐다. 

    그런데 그가 여기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지금은 외로웠고, 그래서 힘들었다. 

    “후우….”

    자수 연습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튀어나왔나 보다. 

    케이트가 내 쪽을 보며 물었다. 

    “마님, 차나 디저트를 내올까요?”

    “아니, 괜찮아. 디저트를 먹으면 식사 시간에 밥을 많이 못 먹겠더라고.”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배가 많이 솟은 요즘은 위가 눌려 음식이 예전만큼 들어가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서 식사를 제때 챙기는 게 중요했기에 디저트 양을 줄이는 쪽을 택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우울할 때 달달한 디저트만 한 게 없지요. 마음이 바뀌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케이트가 따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눈빛도 목소리만큼이나 따스했다. 

    내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좋아. 케이크 한 조각쯤은 괜찮겠지. 부탁해, 케이트.”

    “네, 마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종종걸음으로 나가는 케이트를 보며 나는 신문을 접고 소파에 기대 누웠다. 

    후우, 또 한숨이 나왔다. 

    “벌써부터 보고 싶어서 큰일이네.”

    창문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지난밤의 일이 절로 떠올랐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던 뜨거운 키스가. 

    내 몸 여기저기에 닿았던 그의 숨결이. 

    모두 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했다. 

    “하아….”

    또 몸이 뜨거워졌다. 

    제크론을 떠올리기만 하면 발현되는 증상이었다. 

    마치 사랑의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가만…. 사랑이라니? 말이 되지 않잖아?’

    피식, 스스로에게 웃음이 났다. 

    단지 잘생긴 주인공에게 마음을 뺏겼을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잘생긴 주인공이 한 침대를 공유하는 남편이라면 어느 누구나 비슷한 심정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도… 좋았단 말이지.”

    나는 배를 쓰다듬으며 다시 어제 일을 떠올렸다. 

    제크론은 열기를 가득 담은 눈을 하고 말했다. 

    “토벌에서 돌아오면, 그땐 매일 이렇게 한 침대에서 자는 거야. 알았지?”

    그의 물음에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했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과연 우리에게 다음이 있을까? 다시 그를 내 눈에 담을 수 있을까? 그의 체온을 또 느낄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오로지 시간이 흘러야만 알 수 있는 물음들이었다. 

    오로지 운명만이 답을 알고 있는 물음들이었다.

    제크론은 대답 없이 입을 다물고 있는 나를 끌어안으며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엘프윈, 응? 대답해 줘.” 

    그가 대답을 보챘다. 

    목덜미에 닿은 입술이 움직일 때마다 숨결이 스치는 바람에 간지러워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묻고, 또 물었다. 

    어쩔 수 없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다음이 있다면요. 마지막 말은 목구멍 안으로 삼켰다. 

    대답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목덜미에 닿았던 입술이 더욱 깊이 들어와 살갗을 깨물기 시작했다. 

    아릿한 통증은 금세 기분 좋은 자극으로 바뀌었다. 

    젖은 비음이 새어나올 것 같아 입술을 깨물었지만 헛수고였다. 

    혼자 남은 방. 

    당시를 떠올리며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그의 잇자국이 옅게 남아 있는 살갗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집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패트릭입니다, 마님.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응, 들어와.”

    집사장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몸놀림으로 들어와 내 앞에 섰다. 

    하얀 장갑을 낀 그의 손에는 은쟁반이 들려 있었고, 쟁반 위에는 묵직한 봉투가 놓여 있었다. 

    집사장이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멀론 경이 남기고 갔습니다. 마님께 전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고마워.”

    묵직한 봉투를 집었다. 

    용무가 끝난 집사장이 밖으로 나가자 나는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먼저 편지가 보였다. 

    각하와 마님을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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