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5/142)
  •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 

    45화

    다음 날, 마법 마차 계약 건으로 길드 ‘알타라스’를 찾았다.

    “흐읍… 후우….”

    처음 내 힘으로 진행하는 일이어서 그런지 자꾸만 긴장이 됐다.

    편안한 숨쉬기가 힘들어 계속 심호흡을 해야 했다.

    “긴장되십니까? 긴장 완화에 좋은 약을 드릴까요?”

    “약을 먹어야 할 정도는 아니에요. 괜찮아요. 고마워요, 매튜.”

    은발의 주치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했지만 입가 근육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이내 포기했다.

    내가 직접 이번 계약을 진행함에 있어 제크론이 내건 조건이 한 가지 있었다.

    주치의 매튜와 동행할 것.

    “언제 어디서 급격히 건강 상태가 안 좋아질 수 있는 일이니 매튜와 함께 다니면 좋겠어.”

    제크론은 부드러움과 단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공작성의 주치의는 매일 바빴다.

    수많은 고용인들이 이런저런 사고로 다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아프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외출할 때마다 매튜를 나 혼자 독차지하는 것이 신경 쓰였다.

    하지만 제크론이 내건 단 한 가지 조건이었기에 거절할 수는 없었다.

    ‘속전속결로 마치고 돌아가는 수밖에.’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각오를 다졌다.

    “이렇게 있으니 메릴 스웨이드 선생을 만난다며 왕립 아카데미로 갔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매튜와 함께 갔었네요.”

    “네, 그랬습니다.”

    매튜가 회상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그날 기대에 부푼 채 마법 마차를 탔고, 별다를 것 없이 짧았던 탑승에 실망했었다.

    불과 세 달 전에 있었던 일인데 벌써 까마득 멀게 느껴졌다.

    ‘세월 참 빠르네.’

    이제 임신 8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출산까지는 앞으로 2개월 정도가 남았다.

    그동안의 내 노력이 원작을 비틀기에 모자란 정도였다면,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은 2개월뿐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으… 좋은 날에 나쁜 생각일랑 집어치우자!’

    마음을 다잡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흐읍… 후우… 다시 심호흡에 집중하고 있는데, 매튜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처럼 오늘도 잘 해내실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처럼?”

    “네. 그날도 강의 스케줄이 꽉 차서 마님의 운동을 도와줄 수 없다는 메릴 스웨이드 선생을 결국 설득시켰잖습니까? 그날의 마님, 아주 멋지셨거든요.”

    “내가 그랬나요? 하, 하하….”

    칭찬은 언제나 옳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훅 들어온 칭찬에는 민망해지기 일쑤였다.

    내 긴장을 덜어 주려는 매튜의 노력 덕분에 자신감이 조금씩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 왠지 오늘 계약도 아주 잘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매튜.”

    *   *   *

    수도 변두리에 위치한 1층짜리 건물에 ‘알타라스’라는 간판이 크게 달려 있었다.

    건물 앞마당에는 마법 마차 대여섯 대가 서 있었다.

    매튜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섰는데, 내부는 별다른 장식이 없어서 좀 휑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바로 사장의 집무실로 안내됐다.

    “카일러 휴스턴입니다. 어서 오세요, 윌트슨 공작 부인.”

    “반갑습니다, 길드장님.”

    보라색 머리카락이 특징적인 중년 사내는 허리를 숙여 내 손등에 입술을 갖다 댔다.

    엘프윈의 몸에 밴 습관 때문에 동작은 자연스러웠지만, 손등에 닿은 입술의 감촉에 닭살이 쭈뼛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차를 준비하라고 할까요, 공작 부인?”

    “차는 생략하기로 해요. 서로 바쁘니까요.”

    “차를 마다하는 귀부인이라니 새롭군요.”

    그가 허허허, 웃으며 나와 매튜를 소파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윌트슨 공작성과 알타라스의 장기 계약의 범위를 추가하고 싶어요.”

    “이미 두 달 전에 한 차례 추가했고, 한 달 전에 또 한 차례 추가했는데… 거기서 더 추가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이런저런 일이 많았구나.

    두 달 전, 공작성에서 주말마다 요소킨 운동 수업을 시작하면서 메릴 선생님과 다른 귀부인들의 이동을 위해 마법 마차를 추가 사용했다.

    한 달 전에는 실내악단 단원들이 공작성으로 출퇴근하면서 마법 마차를 추가 사용하기 시작했고 말이다.

    이번 추가는 벌써 세 번째였고, 그 규모는 앞의 두 경우보다 훨씬 컸다.

    앞으로 내 입에서 나오게 될 계약 범위를 들으면 사내의 붉은색 눈동자가 어떻게 변할까, 내심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윌트슨과 슈라더, 그리고 브랜차드에서 실내악단을 고용한 사실을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장안에 화제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얘기는 갑자기 왜… 아, 실내악단을 고용하겠다는 귀족들이 늘었군요? 그래서 마법 마차가 필요한 것이고요? 그렇죠?”

    역시 사업하는 사람답게 눈치가 빨랐고, 말이 잘 통했다.

    “네, 맞아요. 놀랍게도 정말 많은 귀족들이 실내악단 고용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몇 가문 정도 됩니까?”

    “서른 가문이요. 그중에 절반 정도는 수도에 있는 저택으로, 다른 절반 정도는 각 영지에 있는 성으로 연주자들의 출퇴근을 의뢰한 상태랍니다.”

    “서, 서른 가문이나요?”

    “네. 그중에 열다섯 가문 정도에서 마법 마차 이용이 필요해요.”

    “열다섯… 가문이나요?”

    놀랐는지 카일러의 입이 떡 벌어졌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세 가문으로 시작됐던 실내악단 고용이 이제는 서른세 가문으로 늘었으니 말이다.

    누가 봐도 초고속 성장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대, 대단한 성장세로군요. 그런데 저희는 마차도, 마부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러니 아직 그런 큰 계약은….”

    “사업체 점점 확장해 나가셔야죠.”

    카일러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끼어들었다.

    “지금은 서른 가문이지만 앞으로 100 가문, 200 가문으로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그렇게나 많이요?”

    “귀족들은 유행에 민감한 집단이죠. 뭐? 저 가문에서 새로운 취미 활동을 시작했다고? 그렇다면 우리 가문에서도 뒤처질 수 없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그건 그렇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니 실내악단 고용은 앞으로 유행처럼 번질 게 분명해요.”

    “당분간은 그렇겠지요. 하지만 유행이라는 것은 결국 그 끝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카일러는 다소 가벼워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꽤나 신중한 성격인 것 같았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리라.

    “맞는 말이에요. 문화라는 것은 돌고 돌면서 진화해 가니까요.”

    “네, 뭐.”

    “이제까지 마법 마차 사용은 귀족들 중에서도 부유한 이들에게만 사용이 국한됐었죠.”

    “…….”

    “아직까지도 마법 마차가 범접하기 쉽지 않은 영역에 속해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집니다. 우리가 달라지게 만들 수 있어요.”

    “달라지다니요? 어떻게 말입니까?”

    “그동안은 사람들이 이동이 불편한 지방 영지에 기거하기보다는 수도 저택에 기거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

    “하지만 실내악단 고용 건으로 마법 마차의 편리함을 한번 경험한 자들은 마법 마차를 사용하는 데 두려움이 감소하게 되리라 생각해요.”

    크흠, 말을 많이 했는지 갑자기 목이 말라 헛기침이 났다.

    눈치가 빠른 카일러가 재빨리 유리컵에 물을 따라 내게 건넸다.

    꿀꺽, 목을 축인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 는 얘기 들어 보셨나요? 어떤 일이든지 이미 경험해 본 사람이 쉽게 잘할 수 있다는 말이죠. 어떤 일이든지 경험이 중요하답니다, 경험이.”

    “…….”

    “사람들과 마법 마차 사이에 거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그들은 지방 영지를 조금 더 자주 왕래하게 될 것입니다. 한 달에 절반은 화려한 수도에 머물고, 다른 절반은 한적한 시골 영지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지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새로운 유행이 생길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군요.”

    “맞아요. 역시 이해력이 좋으시네요.”

    깊은 생각에 잠겼는지, 그의 붉은색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생각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할 것이다.

    다시 물을 홀짝이며 가만히 기다렸다.

    “좋습니다. 한번 해 보죠!”

    “어머, 잘 생각했어요!”

    그의 담백한 결단의 말에 나는 짝짝짝, 손뼉을 쳤다.

    그리고 전생에서 원작 소설을 읽을 때부터 내내 생각했던 것을 조심스레 꺼냈다.

    “한 가지 더 제안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거대 계약 고객님의 말씀은 무엇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허허허, 그의 얇은 입술을 뚫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마법 마차에 이름을 붙여 주면 좋을 것 같아요. 매번 마법 마차, 마법 마차 부르는 게 좀… 유행에 뒤처졌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유, 유행에 뒤처졌다니….”

    내 지적에 카일러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하얗던 그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마법 마차에 특징적인 고유 명사를 붙여 주면 사람들이 더욱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길드의 이름을 따서 ‘알타라스’라고 부르는 게 어떨까요?”

    “알타라스…요?”

    “네, 알타라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마법 마차를 타고 수도에 다녀와야겠어.’라고 말하는 대신 ‘알타라스를 타고 수도에 다녀와야겠어.’라고 말하게 되는 거죠.”

    “오호….”

    “어때요? 훨씬 어감이 살아 있고 친근하죠?”

    “그런 것 같습니다!”

    드디어 카일러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웃는 얼굴이 훨씬 보기 좋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