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142)
  • 43화

    “역시 음악과 함께 하는 티파티는 무척이나 황홀해요.”

    “맞아요. 그래서 요새 매일이 무척 황홀하답니다.”

    슈라더 후작 부인이 들뜬 목소리로 말하자, 옆에 앉은 브랜차드 자작 부인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내가 처음으로 주최한 티파티의 게스트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지난 신문에 실린 우리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지 뭐예요.”

    “어머, 왜 놀랐는데요?”

    “그야 너무 마음에 들어서 놀랐죠!”

    “난 또. 무슨 소리인가 했네요. 호호호.”

    준비해 둔 신문을 두 부인들 앞에 펼쳐 보였다.

    봐도, 봐도 마음에 드는 그림이었다.

    지난번 황후 폐하의 탄신 연회에 참석했을 때의 기사에 함께 실린 그림은 신경질적으로 짜증 내는 표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됐었다.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림 속의 나는 우아한 자세로 앉은 채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슈라더 후작 부인과 브랜차드 자작 부인의 모습 또한 손색없이 잘 그려져 있어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그림이었다.

    “역시 그림을 볼 때 다들 자기 얼굴만 보는 경향이 있다니까! 난 그 그림에서 양쪽 눈이 짝짝이로 그려져서 별로였거든요. 이것 좀 보세요.”

    “아? 제 눈엔 괜찮아 보였는데… 다시 보니 정말 좀 그런 면이 없지 않네요.”

    슈라더 후작 부인의 목멘 소리에 머쓱해진 나는 턱을 긁적이며 민망한 미소를 만들었다.

    “왜 아니겠어요? 저도 그림에서 입꼬리가 너무 한쪽으로만 올라가서 비열하게 웃는 것 같아서 속상했거든요.”

    “어머… 이 정도쯤은 괜찮지 않나요? 그래도 마음에 안 드셨군요.”

    끄응, 괜히 말 꺼냈다가 나이 지긋한 부인들의 원성만 산 것 같아 부끄러웠다.

    부인들이 나를 향해 부드럽게 눈을 흘기며 호호호, 웃었다.

    그들의 투덜거림에서 작지만 확실한 애정을 느꼈기에 나도 그녀들을 따라 웃었다.

    방금 느낀 애정이 내 착각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호로록, 차를 한 모금 마신 슈라더 후작 부인이 찻잔을 내려놓더니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나저나 큰일입니다.”

    “무슨 큰일이요?”

    브랜차드 자작 부인과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슈라더 후작 부인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택 상주 악단 고용에 대한 문의가 폭발하고 있어요.”

    “어머나!”

    “저런!”

    “인력이 부족해서 악단 관련 일 처리만을 맡은 비서를 두 명 더 뽑아야 했을 정도라니까요.”

    슈라더 후작 부인의 ‘큰일입니다’는 행복한 비명이었다.

    신문 기사의 영향이었을까.

    꽤나 많은 사람들이 상주 악단 고용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현재 몇 개 가문 정도가 신청한 상태인가요?”

    “놀라지 마세요.”

    브랜차드 자작 부인의 물음에 슈라더 후작 부인이 두 눈을 이리로 도르륵, 저리로 도르륵 굴리며 뜸을 들였다.

    “무려… 서른 가문이랍니다!”

    “어머, 서른 가문이라니!”

    “놀랍군요!”

    “네, 맞아요. 정말 신기할 정도라니까요!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 못 했거든요!”

    잔뜩 상기된 얼굴의 슈라더 후작 부인이 소리쳤다.

    “그나저나 윌트슨 공작 부인의 선견지명이 대단하세요! 어쩜 이런 생각을 해낸 건지!”

    “그러게 말이에요. 파티나 특별 행사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던 악단을 집에 상주시킬 생각을 하다니요! 처음엔 매우 낯설게 들리던 생각이었는데, 직접 실행해 보니 그렇지도 않잖아요. 오히려 무척 자연스러울 정도였어요.”

    “맞아요. 게다가 사람들이 단번에 이렇게 큰 관심을 보이는 것만 봐도 그래요. 그들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욕망을 윌트슨 공작 부인이 끄집어낸 형국이라고 할까요.”

    쏟아지는 칭찬 세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하지만 기분은 몹시나 좋았다.

    칭찬은 언제나 옳으니까.

    “저는 그저… 평상시에도 계속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실현시키고자 했을 뿐인걸요. 이게 다 두 부인께서 제 생각에 함께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셋이 해낸 거예요.”

    “윌트슨 공작 부인은 말도 너무 예쁘게 잘하고, 겸손하시기까지 하죠!”

    “그러게 말이에요! 이렇게 예쁜 사람을 그동안 왜 몰랐을까 싶어요! 이런 모습 진작 보여 주지 그랬어요!”

    “염려 마세요. 앞으로 오래오래 보여 드릴게요.”

    호호호, 응접실 안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잠시 뒤, 슈라더 후작 부인이 내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제국 전역의 서른 개 가문으로 악단을 보내려면 마법 마차가 필요해요.”

    “그렇겠군요.”

    “윌트슨 공작이 마법 마차 길드와 계약 중이라고 들었어요.”

    후작 부인의 의중을 단번에 파악한 나는 목소리 톤을 높이며 물었다.

    “네, 맞아요. 그이한테 이번 건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요?”

    “그래만 준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악단 단원들을 고용하고, 일정을 짜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프거든요.”

    “그러시겠어요. 그럼 단원들의 이동 마차는 제가 맡아 볼게요.”

    “정말 고마워요, 공작 부인.”

    슈라더 후작 부인이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차를 호로록 마셨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브랜차드 자작 부인이 걱정스러운 눈길을 내게 보냈다.

    “몸도 많이 무겁고, 이런저런 출산 준비로 바쁠 텐데… 괜찮겠어요, 공작 부인?”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자작 부인. 하지만 몸 쓰는 일도 아니고, 입만 쓰면 되는 일인걸요, 뭐. 믿고 맡겨 주세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따뜻한 미소가 오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크랜베리 쿠키를 조심스레 씹어 먹었다.

    고상하고 기품 있는 귀부인들과 달콤한 디저트가 함께하는 티파티라니.

    ‘나 귀족 생활에 너무 잘 적응해 버린 것 같아. 귀족 생활에 재능이 있었던 거야!’

    푸하핫, 크게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억눌러 겨우 잔잔한 미소를 만들어 냈다.

    귀족적인 미소였다.

    *   *   *

    티파티가 끝난 후, 나는 제크론의 집무실로 향했다.

    마법 마차 계약에 대해서 빨리 논의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제크론은 집무실에 없었다.

    “공작 각하께서는 멀론 경과 함께 제도에 가셨습니다. 저녁 시간 전에는 돌아올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집사장의 말에 나는 벽시계를 봤다.

    이제 곧 저녁 시간이었다.

    “곧 돌아오겠네. 여기서 기다릴게요.”

    “알겠습니다. 차를 내오라 할까요?”

    “아니, 괜찮아요. 아까 충분히 마셨거든요.”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지 호출하십시오, 마님.”

    “고마워요.”

    낯선 공간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으려니 어색하고 좀이 쑤셨다.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집무실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염탐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결백했다.

    남편의 집무실인데 이 정도의 염탐쯤은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흐음… 여기서 술도 마시나 보네.’

    집무실 한쪽에 위스키를 비롯한 각종 술병이 진열된 유리장이 있었다.

    제크론에게서 술 냄새를 맡은 적이 없어서 좀 의아했다.

    어두운 집무실에서 달빛을 받으며 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제크론이라니.

    ‘…무척 섹시할 것 같아!’

    상상의 나래가 제멋대로 펼쳐졌다.

    흘러내리는 까만 머리카락과 우수에 젖은 푸른 눈동자.

    투명한 술잔을 집어 든 기다란 손가락과 술을 가볍게 넘기는 목울대.

    후후훗,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 웃음… 조금 음흉해 보이는데, 당신?”

    그때였다.

    별안간 저음의 목소리가 내 상상의 나래에 침범했다.

    “어머, 깜짝이얏!”

    화들짝 놀란 나는 어깨를 바짝 움츠리고 얼른 뒤를 돌아 침입자를 확인했다.

    제크론이 나를 내려다보며 빙긋, 웃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제크론에게는 다크하고 섹시한 멋이 풍겼다면, 내 눈앞에서 웃고 있는 그에게서는 맑고 깨끗한 멋이 풍겼다.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매력을 동시에 품은 육체라니!

    제크론의 존재는 매번 볼 때마다 나를 놀라게 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었기에 부르는 소리도 못 들어? 게다가 그 웃음소리… 무슨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제크론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채 물었다.

    그는 나를 놀리고 있었다.

    아주 약간 음흉한 생각을 한 것은 맞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올려다봤다.

    “음흉한 생각이라니요? 음흉한 생각이란 게 대체 뭐죠?”

    “…….”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당신이 음흉한 생각을 즐긴다고 해서 모두가 음흉한 생각을 즐길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랍니다.”

    칫, 입술을 뾰로통 삐죽거리며 톡 쏘아붙였다.

    그래도 부끄러움은 몰려와서 얼굴에 홧홧한 열기가 느껴졌다.

    “당신은 역시 천재야.”

    “네? 갑자기요?”

    “내가 음흉한 생각을 즐긴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표정을 잘 감추려 노력했는데, 역시 당신한테는 들켰군.”

    “…….”

    “내가 어떤 음흉한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 들려줄까? 아니면 같이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뭐, 뭐라고요? 장난 그만해요. 재미없어요.”

    뭘 한다는 거야, 정말!

    도끼눈을 뜨려고 두 눈에 힘을 빡 주려고 했지만, 얼굴 전체가 활활 타오르는 통에 얼굴 근육 어디에도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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