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42)
  •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 

    10화

    ‘히… 설렌다!’

    마차를 타는 것도, 게다가 마법 마차를 타는 것도 다 처음이었다.

    영지 내의 근거리는 일반 마차를 타도 됐지만, 영지 밖 다른 도시로의 이동은 워낙 거리가 멀어 마법 마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했다.

    윌트슨 공작성의 경우, 공작이 워낙 자주 제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방문해야 하는 일정이 많아서 마법 마차 길드와 1년 계약을 하고 사용 중이라고 했다.

    겉모습은 일반 마차와 비슷했지만, 마차의 무늬가 마법진이었다.

    마부석에는 일반 마부 대신 마법사가 앉았다.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해서 이동 시간을 매우 단축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대신 요금이 무척 비쌌다.

    그래서 일반 평민들은 꿈조차 꿀 수 없었고 귀족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중요한 일정에만 이용할 수 있는 최고급 마차였다.

    기본 왕복 요금은 500데론으로, 이곳에서의 500데론은 평민 4인 식구들이 한 달 치 생활비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1년 계약을 했다고 했으니, 1년 치 요금은 어마어마하겠지?

    원래 제도까지는 일반 마차로 일주일을 달려야 하는데, 마법 마차로는 10분이면 도착하는 식이었다.

    두근두근.

    마차에 올라타는 내 심장이 기분 좋게 뛰었다.

    ‘아아… 좋아라!’

    마치 어릴 때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신났다.

    내 입꼬리는 귀에 걸린 채 내려올 줄을 몰랐다.

    맞은편에 앉은 매튜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오늘 외출은 매튜가 함께하기로 했다.

    내 건강 상태와 관련된 사안인 만큼 그의 동행은 필수였다.

    나를 보는 그의 시선에 의아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마님?”

    “물론이죠! 내가 이 마차를 얼마나 타 보고 싶었는데요!”

    “그것참 이상하네요.”

    매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요?”

    “마님께서는 이 마차를 많이 타 보셨거든요. 이 마차를 타고 싶었던 기억은 있지만, 이 마차를 탔던 기억은 없으신 거잖아요.”

    “그…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아차. 이게 말이 좀 이상하게 되는 건가?

    나도 매튜를 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사람, 뭐 이리 예리하고 난리야?’

    하긴 매튜는 공작성의 주치의였으니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는 공작 부인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그의 일인 것은 맞았다.

    게다가 그는 보통 주치의가 아니라 왕립 아카데미 의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였으니까 보다 더 예리하겠지.

    앞으로 언행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겠다.

    “이럇!”

    마법사 마부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드디어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법 마차는 임산부에게도 괜찮을까요?”

    “승차 시간이 줄어드니 오히려 일반 마차보다 훨씬 좋지요. 그리고 순간이동 마법이 임산부의 몸에 무리를 끼친다는 내용은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마님.”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저도 내내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오랜만에 출장을 나가게 되니 좋군요.”

    “어머, 그것참 잘됐네요!”

    “출장의 목적도 달성하고 돌아오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달성할 거예요. 걱정 마세요.”

    걱정하는 매튜를 향해 생긋 웃어 보였다.

    매튜가 손가락을 들어 안경을 추어올리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이런 운동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마님? 저에게도 생소한 운동법이거든요.”

    “아, 그건….”

    ‘전생에서 임산부였던 우리 언니가 추천해 준 운동이거든요!’라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었다.

    ‘사실 이 세계는 내가 죽기 전에 읽었던 소설 속 세계인데, 그 소설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거든요!’라는 말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가십지에선가 제국 신문에선가, 아무튼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아요.”

    “오, 그러셨군요.”

    이 운동법에 대해서 읽은 적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지만, 가십지나 제국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요즘 하루도 빠짐없이 여러 종류의 정보지들을 열심히 읽는 중이었다.

    이 세계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보가 필요했는데, 최신의 정보를 다루는 가십지와 신문을 공략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엘프윈은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할 친구가 없는 것 같아서 내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읽어 두는 수밖에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마차 문을 열어 줘서야 벌써 도착했음을 알았다.

    순간 나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매튜와 마부를 번갈아 봤다.

    ‘이렇게나 빨리? 짧은 대화가 몇 마디 오고 갔을 뿐인데 벌써 도착했다고?’

    마차가 달리는 감각도, 마법진이 만들어 낸 통로를 통과하는 감각도, 달리던 마차가 멈춰 선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뭐야? 이게 다야? 섬광이 번쩍이고, 바람이 휘이잉 불고… 뭐 그런 거 좀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몹시 아쉬웠다.

    잔뜩 기대하며 놀이기구를 탔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벌써 다 끝났다며 타자마자 바로 내리라는 것 같았다.

    내 실망한 표정을 본 매튜가 푸흣,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것. 이것이 마법 마차의 묘미이지요.”

    “진짜요? 이게 끝이라고요?”

    내 일그러진 얼굴을 향해 매튜는 산뜻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왕립 아카데미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5층짜리 커다란 건물 다섯 채가 서로를 마주 보며 서 있었는데,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오각형 모양으로 보일 것 같았다.

    그 중심에는 널찍한 분수대와 잔디밭이 있었다.

    교정을 가로질러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화려한 모자를 쓴 귀부인 세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모자가 펄럭이자 ‘어머!’, ‘어머낫!’라고 외치며 셋이 동시에 두 손으로 모자를 꾹 눌러 잡는 모습이 귀여워 내 시선을 끌었다.

    게다가 그들 중 한 명은 나처럼 임산부였다.

    동그랗게 볼록 솟은 배를 보자 이름도 뭣도 모르는 그녀가 괜히 반가웠다.

    바람을 타고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정말 아쉬워요!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그러게요. 괜찮은 운동이라서 한번 시도해 보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일 년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그걸 어떻게 기다려요?”

    그들이 이곳에 온 목적도 나와 같았나 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에게도 들린 그녀들의 목소리가 매튜에게 안 들렸을 리가 없었다.

    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속삭였다.

    “우리도 저들과 같은 대답을 받을 게 뻔합니다, 마님. 시간 낭비가 될 것입니다. 그만 돌아가시는 게 어떠신지요?”

    “걱정하지 말래도요, 매튜. 우리와 저 귀부인들이 원하는 것은 같지만, 제안하는 바는 차원이 다를 테니까요.”

    “제안…이요?”

    “네. 제안.”

    후훗,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매튜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   *   *

    메릴 스웨이드는 수업 중이라고 했다.

    방금 그 귀부인들을 만나고 바로 수업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와 매튜는 대기실에 앉아 그녀의 수업이 끝나기까지 기다렸다.

    커다란 창을 통해서 보는 교정의 모습은 너무나 고왔다.

    싱그러운 봄 햇살에 닿은 모든 사물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부드러운 봄바람에 축 늘어진 느티나무의 나뭇가지들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친구들과 깔깔 웃으며 대학 교정을 거니는 모습을 상상하던 때가 있었는데….’

    미처 누리지 못하고 헛된 망상으로만 남은 꿈.

    따듯한 허브차를 호로록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화창한 봄 날씨 덕에 기분이 붕붕 떴다가 바로 다음 순간 착 가라앉아 버렸다.

    “임산부라서 그런 거야. 이게 다 호르몬 때문에 기분이 널뛰는 거라고.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 줘야지.”

    전생에서 친언니가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던 말을 떠올렸다.

    그때는 언니의 핑계에 혀를 끌끌 찼는데, 지금의 나는 그 핑계가 필요했다.

    모든 것을 호르몬 탓으로 돌리며 다시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한 시간 후, 문이 열리며 메릴 스웨이드가 안으로 들어왔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제가 오늘은 수업이 많은 날이라서요.”

    그녀는 작은 키에 마른 몸매를 지닌 30대 여성이었다.

    분홍색 머리카락과 분홍색 눈동자가 잘 어우러진 동글동글 귀여운 동안 얼굴 덕에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안녕하세요. 엘프윈 윌트슨입니다. 오늘 기다리는 거쯤은 괜찮아요.”

    우리는 서로 가벼운 묵례로 인사를 나누고는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선생님 운동 수업을 1년이나 기다리는 것은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저는 지금 당장 운동이 필요하거든요.”

    내가 바로 본론을 꺼내자 놀랐는지 그녀는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옆에 섰던 매튜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께서 바쁘신 것 같아서 빨리 본론을 꺼냈어요.”

    호호, 내가 생긋 가볍게 웃어 보이자 그녀도 표정을 풀고 같이 웃어 줬다.

    그리고 바로 그녀의 미간이 좁아지고 눈꼬리가 밑으로 내려갔다.

    미안한 말을 시작하려 할 때 짓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또 죄송해서 어쩌죠. 제가 주중엔 학교 수업이 있고, 주말에만 개인 수업을 진행하는데 그것도 꽉 차서요. 급하시면 다른 강사를 추천해 드릴 수도 있어요.”

    “아니요. 전 꼭 메릴 선생님이셔야 해요. 선생님께서 창시자이시고, 또 일인자이시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선생님께 제안을 드려 볼까 합니다.”

    “제안이요? 어떤…?”

    자, 지금이 윌트슨 공작가의 부와 권위를 이용해 먹을 타이밍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