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42)

6화

‘분명 사이가 좋은 부부는 아니라고 했는데….’

내 고개가 절로 갸우뚱 기울어졌다.

원작 소설에서 제크론과 그의 부인은 그다지 사이가 애틋하지 않았다고 서술됐었다.

제크론은 남과 관계 맺는 것에는 관심 없었다.

그는 전쟁 영웅으로 제국 군사들의 존경과 제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영지 관리와 국정 업무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또 한 번 제 실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늘 혼자였다.

부모‧형제와의 관계는 소원했고, 아내와의 관계는 싸늘했으며, 친구도, 애인도 곁에 두는 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공작 부인이 죽고 몇 년 후, 제크론은 어린 시절 첫사랑인 여자 주인공 베로니카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 처음으로 타인과 관계다운 관계란 것을 맺게 된 제크론은 그 관계에 모든 것을 바친다.

제가 가진 모든 재산과 권력을.

제게 있는 줄도 몰랐던 모든 마음과 열정을.

‘하지만 그건 베로니카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였고, 엘프윈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냥 차갑고 무관심한 사람이었지.’

어쩌면 엘프윈은 그런 남편을 짝사랑하고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제크론이 했던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심장이 예사롭지 않게 두근거리는 걸 보면 말이다.

‘좋아했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겠지.’

엘프윈은 뭐든지 제멋대로인 여자였으니, 상대에게 제 마음을 제대로 전하는 방법 따위 알았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제크론도 냉정하고 무심한 남자였으니, 그녀의 작은 변화들에 관심을 기울였을 리가 없었을 테고.

그래서 과거에는 본 적 없는 그의 다정한 모습에 그녀의 심장이 이리도 달콤하게 반응하는 것이리라.

‘혹시 일기장 같은 게 있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나는 엘프윈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에 대해서 되도록 많이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심장이 떨린다든지, 얼굴이 붉어진다든지 하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무척 난감하니까.

침실과 개인 응접실에 있는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어 봤다.

하지만 일기장처럼 보이는 것은 없었다.

아니, 책의 형태를 띤 것 자체가 별로 없었다.

‘어? 어쩌면!’

침실과 연결된 다른 방문을 열었다.

작고 아늑한 서재가 나왔다.

엘프윈의 개인 서재이리라.

그제야 책의 형태를 띤 것들이 보였다.

뭐, 많지는 않았지만.

귀족 문화와 예절에 대한 실용서적 몇 권과 소설책들이 몇 권 있었다.

책 제목들을 훑어봤다.

처음 보는 꼬부랑글자였지만, 아무 문제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이게 다 내 뇌의 2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엘프윈 덕택이리라.

<백작 영애의 은밀한 외출>, <거긴 안 돼요, 전하>, <성기사의 피곤한 하루>… 후후, 어째 엘프윈의 소설 취향이 나와 비슷한 것 같아서 내적 친밀도가 단번에 확 상승했다.

‘나중에 시간 나면 읽어 봐야지.’

지금은 일기장이 급했다.

책상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 봤다.

그런데 맨 아래 서랍이 잠겨 있어 열리지 않았다.

‘일기장이 있다면 여기겠네!’

괜찮은 예감이 들었다.

열쇠를 찾는 것은 쉬웠다.

맨 위 서랍을 열어 손을 안쪽으로 깊게 들이밀어 더듬거리니 차가운 금속성의 열쇠가 만져졌다.

마음이 급해졌다.

콩닥콩닥 가슴이 뛰었다.

마치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며 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처럼.

맨 아래 서랍의 열쇠 구멍에 열쇠를 끼워 넣었다. 

“빙고!”

역시 그 안에 일기장이 있었다.

얼른 일기장을 펼쳤다.

‘엥? 이게 다 뭐야?’

일기장을 훑어보던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내가 쓴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괜히 내가 다 창피했다.

그 내용은 이랬다.

… 제크론은 바보! 제크론은 똥멍청이! 제크론은 못됐어! 제크론, 너 어쩜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제크론은 못생겼대요! 그것도 엄청! 우웨에엑! 제크론은 말미잘! 제크론은 씹다 뱉은 오징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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