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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156)화 (156/156)

155화. 게임의 끝(7)

나는 떨리는 눈동자로 신을 쳐다보았다. 전생에 갈 수 없게 된다…라. 나는 원래 전생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옛날처럼 거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아예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것은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이번처럼 에르셈프가 또 감염이 된다거나, 내가 전생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돌아갈 수 없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내 페널티보다 에르셈프를 살리는 일이 더 가치 있게 느껴졌다. 전생이야 돌아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 거지?

“…….”

나는 내가 언제라도 전생에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싫어서 돌아가지 않았을 뿐이지, 방법을 찾는다면 무조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신이 나타나 근엄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시는 전생으로 갈 수 없다고 하니 마음이 굉장히 기묘해지는 것이다.

다시는 친구들을 볼 수도 없고, 엄마도 찾을 수 없으며, 한국의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내가 라인하르트 왕국에 떨어졌을 때는 전혀 필요가 없다고 느꼈던 것인데 이제는 왜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지는 거지?

“어서 선택하거라.”

하지만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전생이야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지금은 그것보다 한시라도 빨리 에르셈프를 살리는 일이 더 중요했다.

“에르셈프를 살려 주세요. 제가 전생으로 돌아가지 않든 말든 상관없어요.”

“그래? 좋다.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지.”

신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뭐야, 이렇게 대답하면 바로 끝인 거야? 에르셈프를 찾아가서 뭐 힐이라도 넣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냥 자고 일어나면 바로 나아 있는 상황이 되는 건가?

“헉!”

그때였다. 나는 눈을 터질 듯이 크게 뜨며 자던 몸을 확 일으켰다. 꿈에서 깬 것이었다. 마치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내 몸에는 땀이 축축하게 흐르고 있었다. 신을 만난다는 건 이렇게까지 부담이 되는 일이라는 것 같았다.

“메리어트 섬으로 가야 해!”

나는 일어나자마자 그 생각부터 했다. 그러고는 빠르게 방 밖으로 나가 1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엔 샐라임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는 나를 보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

“어떻게 되었어! 루나!”

나는 그를 보자마자 그를 덥석 안으며 소리쳤다. 성공의 기쁨을 같이 느끼고 싶었다.

“해냈어요! 신을 만났다고요!”

“뭐?! 정말이야? 그럼 너 이제 전생으로 갔다 오는 거야?”

“그건 아니에요. 제가 에르셈프를 바로 살려 달라고 빌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이제… 절대로 전생으로 못 돌아가는 몸이 되었어요.”

“전생으로 못 돌아간다니?”

“그게 대가였거든요. 하지만 에르셈프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전생이야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되죠.”

하지만 샐라임은 내 말을 듣자 표정을 안타깝다는 듯이 구겼다. 그러고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루나. 네가 여기 이 세계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건 알아. 하지만 알다시피 이곳은 너와 연고조차 없는 세계야. 그런데도 전생이 그리울 것 같지 않아? 여기서 잘 살 수 있겠어?”

나는 그의 말에 애써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것이 대체 무엇이 중요할까. 현재가 중요하지.

“이렇게 샐라임이 곁에 있는데 제가 왜 전생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먹겠어요. 제가 진작에 전생으로 돌아가고 싶었더라면 오성석으로 소원을 빌 때 전생으로 가게 해 달라고 빌었겠죠. 하지만 전 여기가 더 좋아요. 여기서 살 거라고요.”

“사람 마음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거야. 언젠가 네가 전생을 너무 그리워할 날도 생길 수 있는 거라고. 그런데도 그 대가를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어?”

“…네. 하지만 저에게는 에르셈프를 살리는 일이 더 중요했어요. 그리고 소원을 빌면 대가가 있다는 것도 한몫했고요. 저는 이 선택, 후회하지 않아요.”

“…네가 그렇다면 다행이야.”

샐라임은 자기가 졌다는 듯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고 해서 마음이 결코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좋은 걸 얻으려면 내 큰 걸 내놓아야지.

“어서 빨리 메리어트 섬으로 가야 해요. 지금쯤이면 에르셈프가 다 나아 있을 게 분명하다고요.”

“전쟁터로 가겠다는 거야? 너무 위험해.”

“아니에요. 한시라도 빨리 에르셈프를 보고 싶어요. 이제는 더 이상 마음을 숨길 수 없어요. 그가 빨리 보고 싶다고요.”

나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말 그대로였다. 정말로 나는 에르셈프가 보고 싶어서 미쳐 버리기 직전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갈 것이다. 그가 오기 전에 내가 먼저…….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내가 고개를 틀어 문쪽을 바라보았다. 이 시간에 누구지? 혹시 에르셈프…는 아니겠지?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

“안녕하세요. 루이아나 님.”

역시나 에르셈프는 아니었다. 문을 두드린 사람의 정체는 에르셈프의 소식을 전달해 주던 왕실의 대리인이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에르셈프 왕자님의 몸이 다 나으셨다는 소식입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사실로 전해 들으니 나 또한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정말이에요?! 정말입니까?!! 어떻게 가능했던 거죠?!”

“에르셈프 왕자님의 신성한 육체 덕분이겠지요. 오늘 자고 일어났는데 아무런 일도 없던 것처럼 나았다고 하십니다.”

그는 마치 우리 왕자님은 아주 자랑스럽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게 다 내가 신을 만나서 소원을 빌었기 때문이라고 알 턱이 없었지만 그는 신성한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하다는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에르셈프 왕자님은 어디에 있는 거죠?”

“아직 메리어트 섬에 계십니다. 원래 같았으면 몸 상태를 호전시키려 궁으로 부르는 게 맞지만… 메리어트 섬에 계속 있으라는 팔렌티움 왕자님의 명이 있으셨습니다.”

그놈의 팔렌티움. 아직까지도 에르셈프의 앞길을 막다니! 

나는 괜스레 팔렌티움을 향한 미움이 들었지만 그래도 에르셈프가 나았다는 말에 기분이 너무 좋아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메리어트 섬으로 가보던가 해야 할 것 같아요.”

“네? 메리어트 섬으로 가신다고요? 그 위험한 전쟁터에 왜…….”

“이러다가 에르셈프가 또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기 전에 에르셈프를 봐야겠어요.”

“하지만 루이아나 님. 그건 너무 위험한…….”

“아니에요.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감사했습니다! 저는 바빠서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는 빠르게 그를 보낸 뒤 집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러고는 나갈 채비를 했다. 메리어트 섬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경로를 짜야 할지 지도를 펴고 확인했다.

“뭐야, 게이트가 없잖아.”

메리어트 섬으로 가는 게이트가 없었다. 전쟁 때문에 게이트를 폐지한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없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샐라임?”

그때 뒤에서 샐라임이 다가왔다. 그는 작게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한 손으로 내 어깨를 감싼 뒤 입을 열었다.

“정령 두고 뭐해?”

“네?”

“날아가야지.”

“!!”

그렇다. 샐라임은 불사조로서 날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기쁜 마음에 소리를 꺅 지르며 샐라임을 꽉 안았다.

“야, 야. 너무 세게 안지는 말고. 내 몸 소중하거든?”

“에이, 비싸게 굴어요, 왜.”

나는 실실 웃으며 빨리 나가자고 그를 보챘다. 나는 이미 준비를 다 끝낸 상태였다. 샐라임은 바로 나가자며 나를 바깥으로 이끌었다.

“준비됐지?”

“네. 그럼요.”

펑! 샐라임은 연기를 뿜으며 순식간에 사람에서 커다란 불사조의 모양으로 변했다. 기분 탓인지 저번보다 크기가 더 커다래진 것 같았다.

“야, 타.”

나는 킥킥 웃으며 그의 뒤에 올라탔다. 그는 금세 날갯짓을 했고, 빠르게 하늘로 올라갔다. 허공으로 붕 뜨는 기분에 나는 아찔함을 느끼며 그의 날개를 더욱 꽉 쥐었다.

“목적지는 메리어트 섬이에요.”

“응.”

나와 샐라임은 푸른 하늘을 펄럭펄럭 날았다. 가끔 새가 옆으로 지나갔고, 하얀 구름으로 보이는 곳을 통과했다. 더없이 기쁜 마음과 황홀한 기분에 나는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좋아? 그렇게 좋냐고.”

“네. 너무 좋아요! 이렇게 샐라임의 등을 타고 가니까 더 좋은 것 같아요! 빨리 정식 상급 정령술사가 되어야 겠네!”

지금 그 누가 나보다 행복할까. 나는 내가 세상에서 지금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에르셈프의 얼굴만 본다면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메리어트 섬을 그리 멀지 않았고, 샐라임의 속도는 아주 빨랐다. 금세 새로운 섬에 도착한 우리는 땅에 내리자마자 입을 막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황폐화된 땅만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저곳에는 폭탄의 흔적이 보였고, 나무들은 처참하게 쓰러져 있었다. 자칫해서 이상한 곳이라도 밟았다간 지뢰에 당할 것 같기도 했다.

“여기서 에르셈프를 어떻게 찾지?”

그리고 그때였다.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루…나……?”

너무나도 반갑고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나는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를 것 같은 기분으로 뒤를 확 돌았다. 그리고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

보랏빛의 예쁜 눈동자를 한 남자. 한 나라를 위해 전쟁을 이끄는 위대한 기사. 에르셈프 카이센 비젠티아가 내 눈앞에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여기에…….”

그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한다는 듯 메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그의 눈가도 왠지 모르게 촉촉해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를 향해 뛰어갔다. 이 땅바닥에 지뢰가 있다고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지금은 저 앞에 있는 에르셈프를 꽉 끌어안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루나!”

내가 뛰어가 온 힘을 다해 그를 끌어안자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는 정말로 병이 다 나았다는 듯 말끔한 몸 상태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소리쳤다.

“당신을 보러 왔어요! 에르셈프!”

“너, 내가 분명히 이곳에는 발도 들이지 말라고,”

예상대로 나에겐 그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의 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내 입술로.

“으읍…….”

그는 내 허리를 감싼 채 내 키스를 이어 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헐떡이는 숨을 내뱉으며 그의 고개 바로 앞에서 작게 속삭였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말. 지금까지 하고 싶어서 미쳐 버릴 것 같은 말이었다.

“우리 결혼해요. 에르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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