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게임의 끝(6)
샐라임은 커다란 눈동자를 하며 나에게 되물었다. 지금 자기가 들은 게 맞냐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뭐, 뭐? 전생에 살던 세계에 갔다 올 거라고?”
그래서 나는 비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굳은 의지와 결심이 나타나도록 말이다.
“네. 제가 살던 세계는 여기보다 훨씬 의학이 발달되어 있어요. 갈 수만 있다면 가서 에르셈프의 감염을 낫게 만드는 약을 구해 오고 말 거예요.”
“그게,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데?”
샐라임은 뜬구름을 잡는 사람에게 말하듯 말했다. 나 또한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게 이해가 되긴 했다. 사실 어떻게 전생에 갔다올 수 있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으니까.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저번에 훈남 신과 레크리드에게 빙의를 했었던 헤리우스를 만났을 때 어느 정도 들은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전생에 돌아갈 수 있는 게 진작에 가능했다면 너는 이미 돌아갔을 거라고.”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생? 전생 좋지. 내가 알던 친구들도 있고, 내가 즐겨 하던 게임도 똑같이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하지만…….
“그곳은 지옥이에요. 절대로 돌아갈 곳이 아니라고요.”
“왜?”
“아빠 때문이에요. 물론 나를 낳아 준 사람이긴 하지만… 죽어도 다시는 그 인간을 보고 싶지 않다고요.”
정말로 전생에서는 아빠 때문에 죽음을 결심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아빠는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였고, 창창한 내 미래를 가로막을 정도의 위험한 인물이라고 해도 다름없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으로서도 아빠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곤 했으니까. 전생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절대 없을 거다. 내 목표는 들렀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야. 에르셈프를 위해.
“그래서 네가 생각한 방법은 뭔데?”
샐라임이 묻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나를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신들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바라보며 유희 거리로 삼는다고 했고. 그렇다면 시스템이 파괴된 지금은 나를 바라보지 않고 있을까?
“…….”
그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성석을 집어 던졌을 때 신을 만났던 것처럼 나는 다시 한번 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분명 나를 지켜보고 있다면 내가 죽는 게 싫을 거야. 지금까지 아등바등 살아왔던 계집애가 갑자기 죽는다고 하면 허무함을 느낄 테니까. 왠지 제 예상으로는 저한테 돈을 건 신들도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여느 성좌물을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전생에 있을 때 소설이나 만화로 접했던 장르였다. 하찮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고 즐기는 성좌들. 여기선 신이겠지만. 그리고 그게 누구든 그런 위의 존재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의 방법이 있었다.
“말을 거는 거예요.”
바로 단독으로 독대하는 것. 내가 필사적으로 말을 건다면 나를 재미있게 봐 왔던 신 중 한 명은 나를 위해 만나러 와 줄 것이다. 그들에게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어떻게 말을 걸 건데?”
나는 가만히 눈을 부릅뜨고 샐라임을 쳐다보았다. 내 눈빛을 본 샐라임이 괜히 움찔하며 왜 그렇게 쳐다보냐는 말을 했다.
“그냥 거는 거죠. 오늘 밤에 도전할 거예요. 결과는 내일 아침에 말해 줄게요.”
“이게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닐 것 같은데……. 루나 너 신을 만나기 위해 힘들게 오성석을 얻었던 건 기억하지?”
“그건 맞아요. 하지만 제가 신들의 유희 거리 안에 있는 존재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죠. 저도 그들을 만날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혹시 샐라임, 작은 칼 있어요?”
“칼? 칼은 왜.”
샐라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내가 이유는 됐다며 어서 달라는 말을 했다. 샐라임은 나에게 작은 단도를 건네주었고, 나는 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내일 아침에 봐요, 샐라임.”
* * *
어둑어둑한 밤, 커튼을 쳐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방이었다. 나는 침대에 가만히 몸을 앉히고는 무릎을 꿇었다. 나는 일종의 의식을 치를 것이다. 무슨 의식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방법은 없지만, 내가 생각해 낸 방식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신을 만나는 것. 그것뿐이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하며 주머니에서 작은 단도를 꺼냈다. 그러고는 손가락 끝을 살짝 베었다.
“으!”
힘 조절을 잘못한 탓에 피가 주르륵 흘렀다. 침대에 똑똑 떨어지는 피를 감싸며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누구든지 저를 바라보고 있는 신과 만나고 싶습니다. 그 어떤 신이든 상관없어요. 저번에 제가 힌트를 달라고 했을 때 바로 주던 것처럼 당신들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고 있잖아요? 이번엔 당신들이 저를 도와줄 차례입니다.”
“…….”
당연히 아무런 응답은 없었고, 나만이 존재하는 작은 방 안에는 내 목소리만이 퍼졌다. 약간은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지만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죽을 겁니다. 재미있게 바라보던 아이가 죽는다니, 당신들도 큰 손해나 다름없겠지요? 가뜩이나 시스템을 파괴해서 퀘스트로 나를 조종하지도 못하는데, 당신들의 긴 삶에서 더욱더 재미가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레크리드에게 빙의해서 들어온 신도 있었는데, 그만큼 저는 당신들에게 재미를 주었던 존재가 아닙니까? 그러니 저에게 다가와 주십시오. 저와 대화를 하는 겁니다.”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모든 말들을 그냥 쏟아부었다. 무슨 말을 하든 간에 의미만 전달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무시하지 못하게 길게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 중요하고.
“방금 손가락을 그은 것처럼, 저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협박을 하는 거다. 내가 가지고 있는 패는 내 몸뚱아리 하나뿐. 그러니까 내세울 게 이거밖에 없는 거다.
“…….”
나를 위해 대답해 줄 존재는 아무도 없었고, 정적만이 방을 메웠다. 나는 계속해서 입을 열어 그들을 설득할 말들을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말이 끝났다 싶을 때,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고 누웠다. 무슨 반응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여기서 그 누구도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면 낭패지만, 그때는 또 그다음의 방법을 고안하면 된다.
어느새 나는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검은 바탕 화면에 빛이 나는 어떤 존재가 눈에 보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불렀는가.”
멀리서부터 그가 입을 열자 엄청난 기운이 풍겨져 나왔다. 내 몸을 휩싸는 듯한 파도 같은 힘에 나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신이 진짜 나타난 것이다. 역시나, 힌트를 달라고 했을 때 바로 주던 것처럼, 신은 나와 소통할 마음이 있는 게 분명했다.
“네. 제가 불렀습니다.”
“부른 이유가 무엇이지?”
가까이 다가가자 흰색의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하지만 온몸에서 흰빛을 뿜고 있는지라 눈에 부셔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꼭, 들어주셔야 할 부탁이요.”
“내가 왜 너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거지?”
내 말에 그는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하긴 신의 입장에서는 내 부탁을 들어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땡깡이라도 피워서 그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안 그러면 저는 죽을 거니까요.”
“허, 네까짓 거 하나가 죽는다고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나? 이 세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이 돌아가. 미물 하나가 없어진다고 해서 상관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나는 그에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가 죽는 걸 원치 않아 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무슨 자신감이지?”
“그러니까 여기에 나와주신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면 저를 신경조차 쓰지 않으셨겠지요.”
“내가 여기 나온 건 나를 부른 것에 대해 응답을 하기 위해서다. 어린 소녀들도 충분히 신을 만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당신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잖아요. 죽어 가던 사람을 살리고, 살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런 힘이요. 저를 위해 그런 힘을 써 주실 수는 없는 겁니까?”
그러자 신은 얼굴에 조소를 띤 채 나에게 물었다. 다행히도 내 말이 재미있게 들린다는 것 같았다.
“나는 절대 대가 없이 무언가를 제공하지 않아. 부탁을 들어준다면 너의 아주 소중한 것을 가져갈 것이다.”
소중한 것? 소중한 것을 가져간다니. 대체 무엇을? 하지만 그것은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죽어 가는 에르셈프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내가 희생을 감수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알겠어요. 제 소중한 것을 가져가세요. 그러니 제 부탁을 들어 달라고요.”
“하하, 당돌한 아이구나. 그렇다면 말이 달라지지. 그래서 너의 부탁은 무엇이냐?”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에르셈프를 살려 주세요.”
전생으로 가서 약을 가져 오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신을 이렇게 독대하게 된 지금, 그가 바로 에르셈프의 병을 고쳐 줄 수 있다면 그걸 비는 게 맞았다.
“저 아픈 아이를 말하는 것이구나. 저 아이에게는 며칠의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지. 너는 지금 생사의 그물망을 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위험한 짓을 정말로 원하느냐?”
“…네. 그가 죽는다면 저는 이 세계에서 살아갈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를 살려 주세요. 그 후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제가 책임질게요.”
신은 아까부터 짓고 있던 비웃음을 바꾸어 이번엔 소리를 내어 하하 웃었다. 하찮기 짝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네까짓 게 무슨 수로? 아무런 능력도 없는 계집애가 입만 살았구나.”
“…….”
“뭐, 좋다. 저 아이를 살려 주지. 하지만 너에게는 대가가 있을 것이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대체 나에게 어떤 페널티가 있을지 궁금했다. 눈 한쪽을 가져간다거나, 내 수명이 반으로 준다거나, 샐라임을 잃는다거나 하는 페널티면 어떻게 해야 하지?
“너는 앞으로 절대, 다시는 전생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
“네가 원래 전생으로 가서 약을 가져오려던 것도 알고 있었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평행 세계의 흐름에 아주 큰 문제점이 생겨. 세상이 악으로 덮힐 수도 있는 커다란 문제지. 하지만 가끔씩 그걸 원하는 어린아이들이 있단 말이야. 나 또한 골치가 상당히 아픈 일이거든. 그러니 너의 대가는 이것으로 하겠다. 너는 앞으로 절대 전생에 갈 수 없어. 알아듣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