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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146)화 (146/156)
  • 145화. 마지막 남자(1)

    “네가 필요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잰퓨어는 마치 내가 그에게 애뮬릿을 얻어야 할 목적이 있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병원에서 혼자 나갔잖아. 외롭지 않냐구. 그래서 내가 필요할 것 같아서 그랬지.”

    “아.”

    다행히 아무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혼자 지내는 것이 힘들까 봐 걱정한 것일 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설마 잰퓨어가 알 리가 없지.

    +

    호감도: 70%

    +

    잰퓨어의 현재 호감도는 70%였다. 30%나 올려야 할 생각에 막막함이 몰려왔다. 다른 남자 주인공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잰퓨어와는 정말 위험한 일을 펼쳤었다. 케이오스의 소굴에 들어가 대사제와 결전을 벌였던 걸 생각하면 아찔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도 아직 호감도가 70%라니!

    “그게 정말 날 부른 이유야?”

    “응. 그냥 보고 싶어서 부른 건데?”

    잰퓨어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러고는 디저트를 한 입 떠서 내 입가에 갖다 대었다.

    “좀 먹어.”

    나는 입을 벌려 그가 주는 디저트를 받아먹었고, 잰퓨어는 뿌듯하다는 듯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지내고 있어?”

    입을 우물거리며 내가 물었다. 율리우스 제국에서 라인하르트 왕국으로 넘어왔기에 새로운 거처가 필요할 것이었다.

    “마을 근처에 집을 하나 빌렸어. 에리피아와 함께 살고 있지. 에리피아가 라인하르트 왕국에 관심이 많아서 당분간 여기서 살자고 하더라고.”

    나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게임 속 장면이 떠올랐다. 게임 속 잰퓨어가 살고 있던 곳은 정말로 라인하르트 왕국이 맞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난 일은 바로…….

    “위험하진 않아?”

    에리피아가 납치당하는 일이었다. 에리피아를 빼내 간 잰퓨어에게 분노한 흑마법사들은 에리피아를 납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잰퓨어에게 마법 공격을 쏘지. 게임을 플레이할 당시에는 그 흑마법사의 정체가 뭔지 알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들은 케이오스였다.

    하지만 그 마법 공격은 잰퓨어가 맞는 게 아니라 내가 맞게 된다. 그리고 나는 바로 사망 엔딩이지.

    “위험하냐니, 뭐가?”

    그러나 레크리드가 게임에 개입하면서 스토리가 틀어졌다고 했다. 스토리가 얼마나 비틀어진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는 스토리 대로 가진 않을 것이긴 했다. 이는 세이먼의 경우를 보면 안다. 나는 며칠 전 제나에게 독살을 당할 뻔했다. 정확히는 히아신스의 하녀에게 말이다. 그 말은 스토리가 틀어졌다고 해도 히아신스의 계략에 의해서 내가 독살을 당한다는 엔딩은 바뀌지 않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베탄과는 달랐다. 그와는 원래 그가 자주 가던 산을 따라가다가 내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져 죽는 엔딩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아주 무난하게 애뮬릿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잰퓨어와의 엔딩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기존 스토리와 비슷하게 흘러갈지, 아니면 아예 새롭게 바뀔지 말이다.

    “아, 요새 마을 치안이 안 좋다고 하길래 걱정되어서.”

    내가 대충 얼버무리자 잰퓨어는 그러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문제없어. 내가 외출할 때도 에리피아는 집 안에 안전하게 남아 있으니까.”

    무언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에리피아를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정말로 케이오스의 흑마법사들이 에리피아를 노리러 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에리피아를 혼자 두지 마.”

    “응?”

    동그란 눈으로 되묻는 잰퓨어에 나는 아차, 싶었다.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말하면 이해하지 못할 게 분명한데.

    “아니, 어쨌든 간에 에리피아는 케이오스의 제물이었잖아. 그들이 다시 에리피아를 노리러 올지 모른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에리피아를 가둬 둘 수도 없잖아.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바깥세상에 나온 건데, 세상 구경도 하고 그래야지.”

    잰퓨어는 정말 천하태평하게 말했다. 자기 동생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인데도, 에리피아를 자유롭게 키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잰퓨어, 너희 집으로 가자.”

    “그게 무슨 소리야?”

    케이크 한 조각을 떠먹던 잰퓨어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나는 에리피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동생을 놔두고 디저트 가게에서 평화롭게 케이크를 먹을 때가 아니라고!

    “에리피아를 만나야겠어.”

    “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잰퓨어는 이번에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걱정이라고는 없는 사람 같았다.

    “해 줄 말이 있어.”

    “뭔데? 나한테 먼저 말해 봐.”

    “됐어. 에리피아에게 직접 말해야만 해.”

    사실 그녀에게 할 말 같은 건 특별히 없었다. 그저 몸을 조심하라고 말하는 정도가 다였다. 하지만 내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녀를 지켜야 한다고.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그때였다. 퀘스트가 도착하는 알림음 소리가 들렸다. 왜 이 타이밍에 퀘스트가 도착하는 거지?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퀘스트를 열람했다.

    +

    # 제5 서브 퀘스트

    제목: ‘에리피아를 구하라.’

    내용: 케이오스의 흑마법사들의 표적이 된 ‘에리피아 이브’를 구하시오.

    제한 시간: 이틀

    보상: ???

    페널티: 사망

    +

    역시나였다. 불길한 마음은 기우가 아니었다. 퀘스트가 이렇게 내려온다는 것은 정말로 에리피아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잰퓨어에게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너희 집으로 가자.”

    “벌써?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그가 아쉽다는 듯 디저트들을 바라보며 말하자 내가 그의 손목을 잡고 억지로 끌었다.

    “지금 저게 중요한 게 아니야. 목숨 구해서 구한 동생이 죽게 생겼는데 한가롭게 케이크를 먹고 있을 시간이 있어? 디저트는 일이 모두 끝난 다음에 다 같이 오자고.”

    그리고 가게 바깥으로 그를 이끌었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지만 이내 나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향하였다.

    잰퓨어의 집은 노란 벽돌로 이루어진 예쁜 집이었다. 겨울임에도 마법으로 피워 놓은 풀밭과 꽃이 눈에 띄었고 옆엔 작은 연못도 자리하고 있었다.

    “에리피아!”

    하지만 그의 집을 구경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나는 잰퓨어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를 찾았다. 잰퓨어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집 안에서 얌전히 오빠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

    그런데 내 외침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벌써 사라지고 만 것인가? 설마, 그렇다면 또다시 에리피아를 찾으러 나서야 하는 거잖아!

    그때, 부엌 안쪽 창고에서 누군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건 잰퓨어처럼 초록빛 눈동자를 빛내는 에리피아였다.

    “루나 언니?”

    그녀는 어떻게 내가 여기에 있냐는 듯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나는 숨을 크게 내쉬며 에리피아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누가 여기에 찾아오진 않았어? 수상한 자라든가!”

    내가 묻자 에리피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알았어요……? 오늘 어떤 남자들이 와서 여기가 잰퓨어 이브가 사는 집이냐고 물었어요.”

    “뭐?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내가 그녀에게 꼬치꼬치 캐묻자 잰퓨어가 대체 무슨 일이냐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니 케이오스가 아무리 간땡이가 부었다고 해도 이렇게 대놓고 여기에 찾아온단 말이야?

    “아니라고 했죠. 혹시 모르잖아요. 케이오스에서 빠져나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 사람들 분위기가 이상했어요.”

    “분위기가 어땠는데?”

    “음……. 뭔가 보통 사람들 같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이상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았어요. 마치 마물 같은…….”

    마물이라면 케이오스가 맞다. 그들은 이곳이 잰퓨어의 거주지인지 알기 위해 미리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왜 에리피아를 먼저 납치하지 않은 거지?

    나는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으로 이어지는 건지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하지만 딱히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았고, 나는 일단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여길 벗어나야 해. 이미 위치를 들켰어.”

    하지만 잰퓨어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루나. 자꾸 이해하지 못할 말들만 하는데. 납득이 가게 설명을 해 줘.”

    “케이오스가 아직 에리피아를 놓지 못하고 있어. 그리고 아마 잰퓨어 너에게 복수를 할 거야.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 다 위험해질 수도 있고.”

    “말도 안 돼.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알고? 나는 집을 계약할 때도 내 명의로 하지 않았다고. 혹시나 신상이 노출될까 봐.”

    나는 약간은 높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잰퓨어는 이 상황의 위험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설명해 줄 필요가 있었다. 일이 그르쳐지면 나는 무조건 죽는단 말이야! 에리피아를 구하지 못해도 페널티가 사망이라고. 그렇기 위해서는 일단 에리피아를 뺏기지 않는 게 중요해. 제한 시간은 이틀이라고 했으니까 이틀 동안 에리피아가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막으면 될 거야…….

    나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잰퓨어에게 설명을 했다.

    “정보를 들었어. 케이오스가 잃어버린 제물을 찾고 있다는 말을. 그 제물은 바로 에리피아일 거야. 그리고 우리가 케이오스의 본거지에 들어갔을 때 우리의 모습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우릴 찾는 건 식은 죽 먹기 일 거야.”

    “에리피아를 찾고 있다고?”

    “그래.”

    잰퓨어는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변했다. 이제야 위험성이 좀 인지가 되나? 아니, 생각해 보면 당연하잖아. 몇 년 동안 키운 제물이 사라졌는데 그걸 찾으려고 하지 않겠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잰퓨어가 초조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눈을 똑바로 뜨며 대답했다.

    “일단 간단한 짐을 싸서 여기를 나가자. 이곳은 이미 위험해. 아니, 이미 바깥에 사람이 깔려 있을 수도 있어.”

    “…알겠어, 루나.”

    내가 잰퓨어와 그의 여동생을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일까. 잰퓨어의 호감도가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호감도: 75%

    +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애뮬릿을 네 개나 모아 놓고 이 퀘스트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낭패 중의 낭패였다. 정말이지, 페널티로 사망은 너무하잖아!

    우리는 각자 큰 가방에 짐을 챙겼다. 필요한 옷가지와 세면도구들을 챙기고 다 같이 배낭을 멨다. 그리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쉿.”

    내가 문에 귀를 대고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었다. 바깥의 소리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

    바깥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용히 하고 있는 건지, 정말로 바깥에 아무도 없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가자. 내가 먼저 나갈게.”

    나는 먼저 앞장을 선 뒤 문을 끼익 열었다. 작게 틈을 벌려 고개를 내민 뒤 주위를 살폈다.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나는 뒤에 있는 잰퓨어와 에리피아에게 손짓을 하며 나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바깥으로 나왔을 때였다.

    푸슉!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란 눈빛으로 소리가 난 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엔 아주 날카로운 화살이 벽에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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