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133)화 (133/156)
  • 132화. 베라일 공국(3)

    [‘무기고를 향하라’ 서브 퀘스트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무기고 잠금장치 해제’가 이루어집니다!]

    퀘스트 알림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철컥!

    누가 봐도 굳게 닫힌 문이 저절로 열리자 에르셈프는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했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말도 안 돼. 루나 네가 어떻게 이걸 열 수 있었던 거지? 설명을 좀 해 봐.”

    “일단 들어와요.”

    에르셈프와 나는 비밀 무기고 안으로 들어와 문을 굳게 닫았다. 안쪽에서 잠금장치를 걸어 잠그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나는 네가 베라일 공국으로 침입하자고 했을 때 어떻게 ‘게릴리온’을 찾을 건지에 대해 수도 없이 고민했어. 찾기까지의 시간을 일주일이나 잡았고 불가피한 살인까지도 예상했다고. 그런데 어떻게 너 혼자서 여기까지 나를 이끌 수 있었던 거지?”

    더 이상 설명을 회피하지 못하게끔 내 손목을 잡은 그에게 나는 차분한 얼굴로 바라봤다.

    “에르셈프를 만나기 전에 정보를 알아내려 노력했어요. 수년 전 잃어버린 보검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요. 운 좋게 베라일 공국의 비밀 무기고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전 이곳으로 와야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나 또한 알아내지 못한 사실이야. 그런데 어떻게 네가.”

    “의심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으로서 제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저를 믿으라는 말밖에는 없어요. 저는 오늘 순전히 에르셈프를 돕기 위해서 온 거예요. 오늘 하루만큼은 저를 맹목적으로 믿어 주면 안 돼요?”

    나는 합당한 설명을 하는 대신 감정에 호소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당장 시스템에 대해서 말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부터의 이야기를 모두 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할 리도, 에르셈프가 믿을 리도 없었다.

    나에게 가능한 것은 오직…….

    “일이 다 끝나면 모두 설명할게요.”

    이 퀘스트를 무사히 끝마치는 것뿐이었다.

    +

    호감도: 82%

    +

    내가 알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날 믿어 달라고 호소했기 때문일까. 에르셈프의 호감도가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느덧 호감도는 벌써 80%대에 진입했고, 곧 있으면 애뮬릿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무탈하게 에르셈프의 신뢰를 지키고 있어야만 했다.

    “알겠어. 대신 이 모든 일을 끝마치면 꼭 말해 줘야 해.”

    에르셈프는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제야 표정을 풀며 에르셈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저는 이 일을 무조건 성공시킬 거예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요.”

    “…고마워. 루나 너만 믿고 있을게.”

    “……!”

    예상치 못한 그의 대답에 내 마음이 울렁거렸다.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대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 또한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어서 ‘게릴리온’을 찾아봐요. 여기에 있는 게 분명해요.”

    무기고 안에는 다양한 칼과 활, 도끼와 같은 무기들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반 병사들이 쓰는 것과는 달리 무언가 특별해 보이는 빛을 가진 것들이 대다수였다.

    “이, 이건…….”

    무기를 살펴보던 에르셈프의 손짓이 어느 한 곳에서 멈추었다.

    “뭐죠?”

    “이건 율리우스 제국의 마크야. 왜 타국의 것들이 여기에 모여 있는 것이지?”

    에르셈프는 다른 것들도 이어서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이건, 이건 카리브 제국의 것이야. 아무리 속국이라고 해도 카리브 제국의 보물을 이렇게 숨기고 있다는 건 말이 안 돼.”

    “설마 여기에 있는 모든 건…….”

    그러자 에르셈프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다 타국의 것이야. 몰래 훔쳐 온 것을 여기에 보관해 놓은 것이 분명해.”

    “이런…….”

    타국의 무기라 함은 흔히들 말하는 문화유산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전생에서도 전쟁이나 침략 시기에 다른 나라의 문화유산을 빼돌려 오는 경우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와 똑같은 상황인 것 같았다.

    “파렴치한 놈들…….”

    왕궁에 소속된 왕족으로서 에르셈프는 참을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진열되어 있는 무기들을 파헤치며 ‘게릴리온’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려 했다.

    “도저히 보이지 않아. 어디에 있는 거지? 웬만한 것들은 다 살핀 것 같은데.”

    “저는 이쪽을 보고 있을게요.”

    벽에 진열된 것들뿐만 아니라 서랍에도 여러 물건들이 있었다. 나는 ‘게릴리온’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만약 찾는다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 느꼈다.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자동으로 열람됩니다. 3…2…1…….]

    그리고 곧이어 퀘스트가 도착했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을 열람했다.

    +

    # 제4 서브 퀘스트(3/6)

    제목: ‘보검의 위치’

    내용: 비밀 무기고 속 꽁꽁 숨겨져 있는 ‘게릴리온’이 위치한 서랍을 찾아내시오.

    기회: 3회

    보상: ‘게릴리온’ 획득

    페널티: ???

    +

    “뭐야, 왜 제한 시간이 없고 기회가 주어지는 거지?”

    나는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렸다. 오른쪽 시야에는 예전에 북쪽 숲의 내장에 떨어졌을 때와 같이 서랍 모양의 그림이 세 개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분명 ‘게릴리온’이 위치한 서랍을 찾으라고 했다. 내 눈앞에는 열 개의 커다란 서랍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서 총 세 번의 기회로 ‘게릴리온’을 찾으면 된다.

    “다 똑같이 생겼고, 뭐 하나 다른 게 없어.”

    겉으로는 특이한 점을 찾지 못한 나는 떨리는 손으로 서랍 겉을 훑었다. 실패하면 알 수 없는 페널티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 북쪽 숲 때와 마찬가지로 첫 번째 시도는 운빨이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열 개의 서랍 중 가장 가운데에 있는 것을 벌컥 열었다.

    그러자 시야에 있는 서랍 모양의 그림이 하나 지워졌다.

    “…….”

    게다가 퀘스트를 성공했다는 시스템의 음성도 뜨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번 시도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었다.

    혹시나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연 서랍을 뒤져봤지만 여러 개의 무기들만이 철컹거리는 소리를 낼 뿐 ‘게릴리온’은 없는 듯했다.

    “후…….”

    두 번째 시도다.

    이번에 실패하면 단 한 번의 기회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웬만하면 이번에 성공했으면 했다. 하지만 성공 확률은 무려 1/9. 너무 낮은 확률에 절망해하며 나는 신중하게 서랍을 골랐다.

    “루나, 왜 서랍을 확인하고 있지 않은 거야?”

    그때 에르셈프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고는 내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서랍이 아닌 다른 편의 손잡이를 잡더니 확 열었다.

    “자, 잠깐만!”

    하지만 때는 늦었었다. 시야에 잡히는 서랍 그림은 고작 한 개가 남아 있었고, 보나 마나 실패한 것 같았다.

    “…에르셈프. 열 서랍을 잘 골라야 해요. 함부로 아무거나 열었다가는 실패할 거라구요.”

    “왜지? 그냥 다 확인해 보면 되잖아.”

    “…무기엔 여러 신비한 기운들이 깃들어져 있어서 마음대로 서랍을 열었다가는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눈치를 채고 말 거예요.”

    나는 그럴싸한 말로 임기응변을 했다. 에르셈프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내 말을 듣겠다면서 서랍에서 손을 뗐다.

    “모르는 게 없군.”

    “제가 고를게요.”

    그리고 꽤 오랫동안 고민을 하던 나는 결국 가장 끝의 서랍을 잡고는 열었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서랍은 열렸고, 동시에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게릴리온의 행방’ 서브 퀘스트에 실패하였습니다!]

    [페널티로 ‘고위 기사의 출현’이 이루어집니다!]

    “미, 미친.”

    짧은 욕을 내뱉었을 때였다. 갑자기 바깥에서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안에 누가 있나 본데.”

    낮고 두꺼운 음성은 무기고 안까지 울려 퍼졌고, 나와 에르셈프는 서로 짠 것처럼 몸을 멈춘 채 귀를 기울였다. 분명 시스템이 말한 고위 기사임이 분명했다.

    철컥. 철커덕.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문이 열렸다. 커다란 몸집의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사님들이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여기는 보안 열쇠가 없으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곳인데.”

    그는 아직 우리가 베라일 공국에 소속된 마법사들이라고 느끼는 건지 완연한 적대감을 드러내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곧장 다가왔을 때였다.

    “뭐야. 당신들은…….”

    우리의 얼굴을 확인한 기사는 말끝을 흐리더니 단숨에 칼을 뽑아 들었다.

    촤랑!

    “누구냐. 어떻게 여기까지 침입한 것이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온 거냐!”

    기사는 쩌렁쩌렁 큰 목소리로 소리쳤고, 나와 에르셈프는 뒷걸음을 치며 그와 거리를 벌렸다.

    “오해하지 마시오. 우리는 여기에 발령된 마법사로서…….”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자동으로 열람됩니다. 3…2…1…….]

    말을 이어 가던 중 퀘스트가 도착하는 소리에 내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기사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칼을 겨눈 채 우리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

    제4 서브 퀘스트(4/6)

    제목: ‘제압 혹은 죽음’

    내용: 당신들을 처리하기 위해 찾아온 고위 기사 ‘프로티칸’을 제압하시오.

    제한 시간: 15분

    보상: ‘보검의 위치’ 퀘스트 기회 3회 추가

    페널티: 사망

    +

    “어쩔 수 없죠. 에르셈프. 이 사람을 제압해야만 하겠어요.”

    퀘스트의 내용을 숙지한 나는 에르셈프에게 작게 속삭였다. 우리가 비밀 작전이라도 짜고 있다고 생각한 건지 기사는 우리를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에르셈프의 눈이 커다래진 건 순식간이었다.

    “당신은… 프로티칸……?”

    기사가 가까이 오자 가슴팍에 붙은 견장을 보고 에르셈프가 입을 연 것이다.

    “왜요, 유명한 사람이에요?”

    “그래. 내가 프로티칸이다. 나를 아는가?”

    프로티칸은 고위 기사답게 다짜고짜 싸움을 걸지 않았고 우리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우락부락한 겉모습에 비해 이성적인 사람인 것 같았다.

    “당신은… 베라일 공국이 라인하르트 왕국에 쳐들어왔을 때 선두를 섰던 지휘관이 아닌가?”

    “……!”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지? 설마 네놈들……. 타국의 첩자냐?”

    에르셈프의 얼굴이 울긋불긋하게 피어올랐다. 라인하르트 왕국에 침입했을 때의 지휘관이라는 것은 그의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보검까지 빼앗아 간 적군 말이다.

    “이런 파렴치한 놈……. 당신 때문에 나는 아직도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내 어머니를 죽인 당신 때문에.”

    “지금 이놈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네 어머니가 누구라고 그러는 거지? 내 손에 목이 날아간 사람은 무성한 나무의 잎사귀만큼이나 된다.”

    에르셈프는 화를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아주 강한 전사라고 하지만 그것은 라인하르트 왕국이라고 한정했을 경우였다. 그가 프로티칸과 맞붙는다고 쳤을 때 누가 압도적으로 우세할지는 알 수 없었다.

    촤랑!

    에르셈프는 분노에 젖은 보랏빛 눈동자를 하고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그 때문에 망토의 모자가 스르륵 벗겨졌다.

    “어머니의 복수를 여기서 이루어 주마.”

    프로티칸은 그제야 에르셈프의 얼굴을 확인했는지 기가 차는 듯한 얼굴을 했다.

    “뭐야, 비젠티아 왕실의 내버려진 3왕자님께서 어째서 여기까지 와 있는 거지? 몰래 적국의 성안까지 침입할 정도면 명예도 모두 내다 버렸나 보군. 비젠티아의 수준을 알 만하겠어.”

    “입 닥쳐. 어차피 너는 오늘 여기서 죽을 목숨이니까.”

    “과연 그럴까? 매번 훈련된 병사들이랑만 싸우던 온실 속 도련님이 몬스터들과 함께 지내는 우리를 어떻게 상대한다는 거지? 라인하르트에 인재가 없어도 너무…….”

    프로티칸의 말이 전부 끝나기도 전이었다. 에르셈프는 그를 향해 장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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