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126)화 (126/156)
  • 125화. 여동생을 찾아줘(4)

    나 또한 그녀의 몸속에 있는 것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강한 예감으로 그녀의 몸속을 헤집어야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목젖을 건드려 토하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손가락을 그녀의 입 안에 넣자 그녀의 목젖이 느껴지기는커녕 몽글몽글한 무언가가 그녀의 목구멍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욱! 우욱! 욱!”

    에리피아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망아지라고 해도 다름없을 정도로 날뛰며 한 손에 든 단검으로 내 등을 마구 찔러 댔다.

    “미, 미친! 악! 아프다고!”

    제정신이 아니고, 몸도 제압당한 탓에 날 제대로 찌르지는 못했지만 계속해서 얕은 생채기가 났다.

    그렇게 그녀의 입 속에 있는 꿈틀거리며 미끄러운 형체를 잡기 위해 계속 손을 움직였다. 조금만 더 하면 무언갈 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혹시 도와줄 사람이 더 있을지 주위를 둘러보다가 잰퓨어와 눈이 마주치며 호감도를 확인하게 되었다.

    +

    이름: 잰퓨어 이브

    나이: 18

    직위: 엔리에타 황립 아카데미의 학생

    호감도: 50%

    +

    잰퓨어의 호감도가 오르고 있었다. 내가 에리피아의 칼부림을 참아 가면서 그녀를 도와주고 있긴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잰퓨어의 호감도가 올라가고 있는 것은 기묘한 일이긴 했다.

    “조, 조금만 더!”

    무언가가 손에 잡힐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에리피아는 이제 이빨로 내 손을 와구와구 물고 있었다.

    “아프다고! 제발 가만히 좀 있어! 네가 개냐!”

    “으으윽……! 윽!”

    +

    호감도: 55%

    +

    그리고 내가 드디어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잡은 뒤 빼내려고 할 때였다. 에리피아가 단검을 쳐들어 올리더니 나를 향해 정통으로 찔렀다. 아니, 찌르려고 했다. 나는 반대편 손으로 간신히 막았지만 칼날을 잡은지라 손에 큰 상처가 나고 말았다.

    +

    호감도: 57%

    +

    짜증이 치솟을 대로 치솟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으로 그녀의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잡고 확! 빼냈다.

    “우어어억! 억!”

    “!!!!”

    그 광경을 본 모두가 놀랐다. 그녀의 몸속에서 거대한 검은색 벌레 같은 것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에리피아의 몸을 숙주로 삼은 기생충인 것 같았다. 밖으로 빠져나온 벌레는 바닥에서 마구 꿈틀거렸다.

    “와……. 진짜 비위 상해.”

    벌레를 빼내고도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하던 에리피아는 이내 눈을 크게 뜨더니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이, 이게 무슨 일이죠? 제 몸속에 이런 게 있었단 말인가요?”

    “그래. 아마도 저 대사제란 놈이 이 벌레를 매개로 해서 너를 조종하고 있었던 것 같아.”

    나는 대검을 들어 거대한 벌레를 반쪽으로 썰어 버렸다. 벌레는 기이한 소리를 내며 힘없이 죽어 버렸고, 나는 에리피아를 향해 돌아보았다.

    “언니는 누구죠? 절 살려 주신 건가요? 이전의 기억들이 잘 떠오르지 않아요.”

    “괜찮아. 다 이 벌레 때문인 것 같으니까. 이제는 잰퓨어를 부축해서 여길 빠져나가는 일만 남았어.”

    “오빠……!”

    에리피아는 서둘러 잰퓨어에게 다가가 그의 배를 틀어막았다.

    “설마 이것도 내가……!”

    “괜찮아. 이런 것쯤이야 병원 가면 한 번에 나을걸.”

    그때 뒤에서 샐라임이 여유롭게 걸어오며 말했다.

    “늦으면 과다 출혈로 생명에 지장이 가고 말걸? 여동생 상봉하고 바로 저세상 가고 싶지 않으면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대사제는 잘 처리하고 온 건지 저 뒤쪽을 보자, 그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늙은이라 그런지 급소를 찼더니 바로 기절하더라고. 곧 있으면 깨어날 거야. 어서 나가자.”

    샐라임은 바닥에 앉아 있는 잰퓨어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으며 부축했다. 나와 에리피아는 샐라임과 잰퓨어의 앞에 서서 지도를 펼쳤다.

    “언니, 여기는 미로나 다름없어요. 잘 찾을 수 있겠어요?”

    그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까 마구 날뛰고 싹수없던 여자애였다고는 믿기지 않을 모습이었다.

    “잠시만, 이쯤 되면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그렇게 대답했을 때였다. 타이밍 좋게도 그것은 나에게 바로 도착해 주었다.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자동으로 열람됩니다. 3…2…1…….]

    +

    # 제3 서브 퀘스트

    제목: ‘집으로 가는 길’

    내용: 맵에 나타난 길을 따라 출구를 통해 무사히 빠져나가시오.

    제한 시간: 없음

    보상: 없음

    페널티: 없음

    +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길을 알려 주는 퀘스트가 도착했다. 왜 계속해서 나를 도와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에 나에겐 좋은 일이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이쪽으로 와. 내가 길을 알아.”

    “어떻게 아는 거죠?”

    내가 말없이 에리피아의 손목을 잡고 끌자 그녀는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잔말 말고 이리 와.”

    내가 뒤를 슬쩍 돌아보자 그녀가 묘한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저 표정은 대체 뭐야?

    우리는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서 출구를 향해 뛰어갔다. 몇 번이나 잰퓨어가 바닥에 엎어졌지만 나중에는 샐라임이 그를 들쳐 업다시피 하고는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저쪽이야! 저쪽이 출구다!”

    “어서! 이쪽으로 몸을 숨기자!”

    처음 들어왔던 장소가 아닌 다른 쪽문으로 나온 우리는 빠르게 움직여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

    나와 에리피아, 잰퓨어, 샐라임은 풀숲에 서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러자 샐라임은 에리피아를 보며 중얼거렸다.

    “너 아까 진짜 때리고 싶었다. 조용히 나가면 될 것이지 안 간다고 생떼를 부리지 않나, 대사제가 나타나니까 지 오빠를 칼로 쑤시질 않나……. ”

    에리피아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건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만해요, 샐라임. 기억도 안 난다고 하고, 아까 그 큰 벌레가 얠 조종하고 있었는데 별수 있겠어요.”

    “그치만…….”

    내가 에리피아를 옹호하자 샐라임은 금세 입을 다물었고, 에리피아는 약간은 감동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고마워요, 언니……!”

    “뭘, 드디어 잰퓨어랑 너랑 만나게 돼서 다행이다. 일단 잰퓨어 상태가 너무 안 좋은 것 같으니 병원부터 데려가야겠어.”

    잰퓨어는 아까부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우리는 풀숲 바깥을 보며 누가 따라오지 않는지 확인한 채 병원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 * *

    병원으로 잰퓨어를 데려다준 샐라임은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정령계로 사라졌다. 잰퓨어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수술을 받았고, 나와 에리피아는 수술실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몇 년 만에 만나는 오빠를 제 손으로 다치게 하다니……. 저는 죽어도 싸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우리가 널 구하려고 이 짓거리를 했는데. 죽기만 해 봐. 가만 안 둬.”

    그러자 에리피아는 미안함 반, 민망함 반이 섞인 표정으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오빠를 보니 너무 좋아요. 드디어 내 가족을 만난 거잖아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다니……. 너무 고마워요, 언니.”

    “…괜찮아. 그러는 너는 어쩌다가 이곳에 잡혀서 이런 꼴을 당하고 있던 거야?”

    “어렸을 때였지만 똑똑히 기억나요. 할머니 손을 잡고 배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모르는 사람들에게 붙잡혔어요. 제 눈이 초록색이라는 이유를 들면서 돈을 주면서 저를 막무가내로 끌고 갔고요. 저는 할머니의 손을 놓치고 말았고 그렇게… 끌려왔어요. 그 후로 몇 번이고 거주지를 옮기다가 여기에 갇히게 된 건 얼마 안 된 일이에요.”

    “이런 미친놈들……. 인신매매나 다름없잖아.”

    “끌려오고 나서 매일 같이 울고 있었는데, 그때 제 몸에 무언갈 주입한 것 같아요. 그 후로는 모든 기억들이 흐릿해요…….”

    “괜찮아, 괜찮아. 이제 다 끝났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에리피아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녀는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코를 훌쩍댔다.

    “어, 수술이 끝났나 봐요!”

    그때, 의사가 수술실 안에서 나왔다. 의사는 우리 쪽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어서 오랜 휴식이 필요할 것 같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간호사의 안내를 따라 우리는 잰퓨어가 누워 있는 병실로 갈 수 있었다. 아직 잠이 들어 있는 그는 창백한 얼굴로 새근새근 숨을 내쉬고 있었고, 그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와 에리피아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한숨 돌렸다는 생각에 나는 의자에 앉아 상태창을 열었다. 잰퓨어의 호감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

    호감도: 60%

    +

    내가 그의 여동생을 구하는 것이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지, 호감도가 많이 상승해 있었다. 그리고 퀘스트에 성공했다는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내 여동생을 찾아줘’ 퀘스트에 성공하였습니다!]

    [남자 주인공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므로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특별 보상’으로 ‘잰퓨어 이브’의 호감도가 10% 상승합니다!]

    잰퓨어의 여동생을 구한 것은 그의 평생의 염원을 도와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보너스 효과가 내려온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세이먼이나 에르셈프, 레크리드, 베탄에게서도 ‘특별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건가?

    그러려면 남주인공들의 인생에 깊게 개입을 해야 하는데, 그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누워 있던 잰퓨어가 꿈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정신을 차린 거야?!”

    “에…리피아?”

    잰퓨어는 실눈을 뜨며 자신의 동생을 알아보았고, 곧이어 그는 눈물을 흘렸다.

    “좋은 날에 왜 울고 그래. 누구보다 기쁘게 웃어야지. 이제 우리는 함께할 거잖아.”

    그리고 잰퓨어와 에리피아는 서로 껴안았다. 에리피아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얼굴이 새빨개진 채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을 도와준 것처럼 뿌듯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흐뭇하게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애정 어린 눈빛의 잰퓨어가 나를 바라보았다.

    “루나, 다 네 덕분이야. 네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쉽게 해결하지 못했을 거야.”

    “에이, 내가 뭘. 나도 너희 둘이 만나서 드디어 마음이 놓인다.”

    잰퓨어는 예전보다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대했다. 호감도가 70%대라는 것은 나를 애정의 상대로 완전히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안아 줄래? 루나.”

    그의 말에 나는 주춤거리는 몸짓으로 다가가 그의 몸을 껴안았다. 얕은 소독약 냄새가 풍겨 왔고, 포근한 따스함이 느껴졌다.

    “정말, 정말 고마워. 잊지 않을게.”

    잰퓨어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나는 병원을 빠져나왔다. 에리피아와 잰퓨어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도록 만들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에 급하게 나온 것이다.

    그렇게 나는 병원 주변을 거닐다가, 기숙사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져 바깥은 어둑어둑했고, 유독 오늘따라 길거리에 사람이 적었다.

    “샐라임도 없으니 걷는 것도 허전하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걷고 있을 때였다. 순식간에 누군가가 내 뒤로 다가와 검은 천으로 내 눈을 가렸다.

    지금까지 나는 인기척을 잘 느낀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것이 무색하게도 나에게 다가온 괴한은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나에게 접근했다.

    “누, 누구야!”

    눈이 가려진 채로 듣는 괴한의 목소리는 아주 익숙했다.

    “안녕, 루나.”

    익숙하지만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내 뒤에서 두 팔을 제압하는 그에게 내가 소리쳤다.

    “세, 세이먼……?”

    그러자 괴한은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치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거예요.”

    그리고 난 한순간에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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