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124)화 (124/156)

123화. 여동생을 찾아줘(2)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사이렌 소리에도 발소리가 가려지지 않고 다 들리는 걸 보니 한두 명이 아닌 것 같았다. 나와 잰퓨어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너무 놀라 아직도 서로를 쳐다보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천장에 있는 환풍구처럼 생긴 통로였다.

“저기다! 저기로 가자!”

“콜록, 콜록! 나는 운디네를 이용해서 올라갈 수 있다고 쳐도, 루나 너는?”

“나도 괜찮아. 샐라임!”

한마디 외치자마자 허공에서 나타난 샐라임은 도넛 모양의 빵을 입에 넣고 있는 모습이었다. 뭐야, 정령이 빵도 먹어?

“타이밍 참 좋네. 여긴 또 어디야, 루나?”

“그런 말 할 시간 없어. 날 여기 위로 좀 올려 줘.”

뿌연 연기가 점점 가득 차고 있었고, 숨이 막혀 오는 것이 느껴졌다. 샐라임은 눈썹을 찡긋거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이내 군말하지 않고 나를 번쩍 들어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 주었다. 장신이기도 하고 일반적인 인간보다 힘이 월등하게 센지라 가능한 일이었다.

“와……. 상급 정령 처음 봐요.”

“그래? 난 널 많이 봤는데.”

가만히만 있어도 아우라를 뿜어내는 샐라임을 보며 잰퓨어는 감탄했다.

“잰퓨어, 어서! 이러다 잡히겠어!”

잰퓨어는 운디네를 불러 자신을 위로 올려 달라고 부탁했고, 우리는 좁디좁은 환풍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샐라임, 좀 작은 동물로 변신 못 해요?”

“뭐?”

“지금은… 너무 크잖아요. 전투할 때도 아니니까 좀 작아졌으면 좋겠는데.”

“그래? 그렇다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샐라임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바닥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햄스터!”

작은 햄스터로 변한 샐라임은 내 손 위로 능숙하게 올라오더니 그대로 어깨까지 타고 올라갔다.

“빨리!”

나와 잰퓨어는 환풍구 통로 안에서 환풍구 뚜껑을 닫았고, 앞으로 펼쳐지는 시꺼먼 동굴 같은 통로를 보았다.

다행히 밑에서는 우릴 잡으러 온 사람들이 환풍구를 못 본 채 텅 빈 방을 보고는 욕설을 내뱉는 것이 들려왔다. 하지만 침입자가 들어온 이상 비상이 걸린 것은 분명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동생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음…….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지?”

그렇게 혼잣말로 내뱉었을 때였다. 퀘스트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브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

# 제2 서브 퀘스트

제목: ‘보스룸으로 가는 길’

내용: 맵에 나타난 길을 따라가 보스룸으로 안전하게 진입하시오.

제한 시간: 없음

보상: 없음

페널티: 없음

+

이상하게 요새 들어서 퀘스트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같았으면 날 죽이기 위해서 안달이 나 있어야 하는데……. 내가 오성석을 얻고 훈남 신이랑 만나고 난 뒤부터 묘하게 나를 이 시스템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느낌이란 말이야. 혹시 이게 그 신이 말했던 ‘선물’이라는 건가?

“루나, 왜 그래?”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자 잰퓨어가 나를 툭툭 치며 물었다.

“아냐. 여기로 가면 될 것 같아.”

환풍구 통로는 비좁고 낮아서 엉금엉금 기어야 했고, 온갖 먼지들이 날아다녔다.

그 와중에도 저번에 정령국에 갔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시야에 분홍색 선이 쫙 펼쳐졌다. 오른쪽 하단에 미니 맵 또한 생겨났고, 내 위치가 어디 있는지, 이 던전이 어떤 형태인지 또한 보여 주었다.

“완전 미로잖아…….”

이곳의 지형은 지도가 없으면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시스템이 아니었더라면 여기서 어떻게 에리피아를 찾을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이쪽이야.”

“루나, 흑마법의 기운 때문에 탐지가 되지 않아. 내가 먼저 앞으로 가서 길을 보고 올게.”

“괜찮아요, 샐라임. 저에겐 길이 다 보여요.”

“어떻게 그런……?”

잰퓨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에게 물었지만 나는 멋쩍은 미소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덥다…….”

“장난 아닌걸. 얼굴도 엉망이야.”

내부가 너무 더웠기에 얼굴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졌다. 게다가 기어 다녀야 했기에 무릎도 멍이 든 것처럼 아파 왔다. 그렇게 얼마나 지도를 따라갔을까. 분홍색 선이 끝나는 지점이 보였다.

“저곳이 보스룸……!”

우리가 있는 곳은 환풍구 통로였기 때문에 우리는 보스룸을 환풍구 구멍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나는 얼굴을 들이밀어 창살 사이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케이오스’의 의복으로 보이는 하얀색 로브를 다들 걸치고 있었고, 침입자가 나타난 상태에 대해서 서로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방 끝에는 책상 하나가 있었는데, 보스가 사용하는 집무용 책상인 것 같았다. 왠지 저 책상 안에 에리피아에 대한 자료가 있을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저 책상을 뒤져야 할 것 같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저 사람들을 전부 다 때려눕힐 수도 없고…….”

“내가 해 줄까?”

그때 찍찍거리는 귀여운 소리와 함께 햄스터가 입을 열었다. 너무나도 하찮아 보이는 햄스터가 저런 말을 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지만 가까스로 입을 막아 참을 수 있었다.

“웃어? 웃어? 안 도와준다?”

햄스터는 방방 뛰며 나에게 손가락질을 했고, 그 작은 팔조차 너무 짧다는 것이 웃겼다.

“샐라임이 어떻게 할 수 있는데요?”

“뭘 원하는데? 다 죽이면 되는 거야?”

“엑. 아뇨. 죽이는 건 좀……. 샐라임, 지금 근신 중인데 그게 또 무슨 말이에요.”

아무리 에리피아를 잡아가고 학교를 무너뜨린 악질 집단이라고는 하지만 죽이는 건 마음에 좀 걸렸다.

“그러면 잠시 기절시키는 정도?”

“오, 좋네요.”

“너도 참, 마음 약해서 세상 어떻게 살래.”

햄스터, 아니 샐라임은 그렇게 찍찍거리고는 환풍구 창살 사이를 쏙 빠져나갔다.

천장에서 벽을 타고 사람들의 곁으로 뽈뽈뽈 다가간 햄스터는 아주 빨랐고, 소리도 없었다. 눈치챌 리가 없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햄스터는 한 명의 신발을 타고 올라가 발목을 콱! 물었다.

“앗, 뜨거! 뭐야.”

발목을 물린 남자는 벌레라도 물렸다고 생각한 것인지 발목을 내려다보며 상처를 확인했다. 하지만 햄스터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간 상태였다.

그렇게 그곳에 있는 네 명의 사람들의 발목을 모두 문 결과, 그들은 짠 것처럼 기절하고 말았다.

“여기는 길잡이가 없으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곳이기에…….”

“아무래도 그렇……. 방금까지 무슨 이야기를 했…….”

“애초에 오메가들에게 잡히기도 전에 길을 잃어 해골로 발견되고 말 겁…….”

“왜 이렇게 머리가 어지럽죠…….”

이렇게 말이다. 바닥에 풀썩 쓰러진 사람들을 보며 나는 환풍구 문을 열고 내려갔다. 먼지투성이가 된 몸을 툭툭 털고, 보스룸의 문을 잠갔다.

“잰퓨어. 너는 책장을 뒤져. 나는 서랍을 뒤질게.”

“알겠어.”

그렇게 업무 분담을 한 뒤 책상을 뒤진 결과, 나는 가장 밑의 서랍이 자물쇠로 잠겨 있는 것을 보고는 열쇠를 찾기 위해 다른 서랍들을 뒤졌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딱 맞는 열쇠 꾸러미를 찾아낼 수 있었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자물쇠를 열 수 있었다.

“폐기 처분……?”

그리고 나는 ‘폐기 처분’이라고 적힌 서류철을 발견했다. 왠지 모를 예감으로 나는 그 서류철을 뒤졌고, 그것은 사건이 발생한 지 시간이 오래 지나 더 이상 쓸모없는 정보가 된 것들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디 보자…….”

그리고 옆에 있던 잰퓨어가 먼저 무언가를 찾았다는 듯 소리를 쳤다.

“에리피아가 있는 곳이 여기인 것 같아……. 식량을 보급하는 곳의 루트가 여기만 따로 나누어져 있어.”

“…….”

“루나?”

그런데 나는 잰퓨어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폐기 처분’ 서류철을 뒤지던 결과, 나는 아주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그건 바로…….

“베탄 오스가르드.”

왜 선생님의 이름이 여기에 적혀 있는 거지?

“의… 연인. 헬렌 루비아.”

그리고 빨간색 글씨로 크게 적혀 있었다. ‘사망’이라고.

“램클리프 마법 협회의 스파이로 고용된 ‘베탄 오스가르드’의 보안 유지를 위해 주변인들을 제거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위와 같은 이유로 그의 연인 ‘헬렌 루비아’를 제거함……?”

어제 분명 베탄은 자신의 연인이 적의 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했다. 그리고 베탄은 램클리프의 총기사단장이 아닌가? 그런데 램클리프의 스파이로 고용된 사람이었다고? 우리의 적이란 말이야?

“루나, 시간이 없어. 금방 다시 일어나고 말 거야.”

샐라임의 독촉에 따라 나는 계속해서 서류철에 달라붙는 시선을 억지로 떼어 냈다. 그리고 해당 서류를 뜯어내어 주머니 안에 넣었다.

“루나, 여기서 에리피아가 있는 곳이 가까워. 환풍구로 올라가지 말고 바로 가도 될 것 같아.”

잰퓨어는 확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에게 말했고, 나는 샐라임을 손에 안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그렇게 보스룸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고, 복도를 조금 걷자 다섯 개로 갈라지는 통로가 나왔다.

“여기서 왼쪽에서 두 번째.”

잰퓨어는 지도를 보며 차근차근 길을 찾았다. 길을 잘못 들어 몇 번이나 다시 뒤로 돌아간 적도 있지만 이렇게 심한 미로에서 이 정도면 양반인 것 같았다.

그리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서 걸었을까. 마침내 우리는 감옥 같은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파렴치한 놈들……! 저딴 곳에 에리피아를 가둬 놓다니……!”

잰퓨어는 벌써부터 흥분 상태에 들어간 것 같았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주먹을 부들부들 떠는 것이, 자칫하면 일을 치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둘만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아요.”

감옥 앞에는 간수 두 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다행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샐라임, 이번에도 부탁해요.”

“그래, 꼬마야.”

햄스터의 독을 이용해 간수 둘을 무사히 기절시킨 우리는 통로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

“……!”

그곳에는 작은 여자아이들이 거지꼴을 한 채 갇혀 있었다. 의식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탓에 삐쩍 마른 몸에 꾀죄죄한 상태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미친 인간들. 아니 인간이라고 부르기에도 아까워.”

“에리피아!”

잰퓨어는 감방의 끝으로 가더니 창살을 부여잡은 채 안에 있는 여자아이를 불렀다.

“오빠……?”

에리피아로 추정되는 아이는 비척비척 걸어와 잰퓨어의 앞에 섰고, 멍한 눈동자로 잰퓨어를 바라보았다.

“네 오빠야, 에리피아. 내가 지금껏 너를 찾아왔어. 보고 싶었어, 에리피아!”

“오빠라고……? 분명 오빠는 나를 버렸다고 들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버린 적이 없어.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에리피아. 내가 널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

“…….”

에리피아의 두 손은 수갑이 채워져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창살 밖으로 잰퓨어의 손을 잡았다.

“손이 너무 차갑잖아……. 어서 나가자. 오빠가 데리고 나가줄게.”

어느새 잰퓨어의 얼굴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그는 쓰러져 있는 간수의 옷에서 열쇠를 찾아낸 뒤, 에리피아의 감방을 열었다.

굳게 닫혀만 있던 문이 열리자 에리피아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리 와. 오빠랑 가자.”

잰퓨어는 누구보다 다정한 목소리로 에리피아에게 손을 뻗었다. 그에게선 진심으로 여동생을 사랑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보는 나까지도 눈가가 시큰거릴 지경이었단 말이다.

“하하.”

그런데 일순, 에리피아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러곤 잰퓨어의 손을 탁! 쳐 냈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응?”

“날 버리고 간 쓰레기. 저리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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