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여동생을 찾아줘(1)
살벌하게 대꾸한 것과는 반대로 베탄은 평화롭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이 변했지. 나는 널 건드릴 수 없어.”
“…왜요?”
“그야…….”
베탄은 말을 이어 나가지 못한 채 얼버무렸다. 그는 더 이상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나 또한 그의 품에서 나와 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저는 ‘케이오스’의 계획을 알아요. 그들의 정체가 대체 뭐죠? 선생님은 왜 그들을 도운 거고요?”
“미안하지만 내가 왜 그들을 도왔는지는 설명할 수 없어. 확실한 건 ‘케이오스’를 담당하고 있는 볼프문트의 세력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그 계획을 미리 알았더라도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거라는 거지. 그래서 램클리프 입장에서는 그들이 학교를 무너뜨리려 하는 것을 두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니…….”
“루나, 방금 말했듯이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거야. 게다가 난 병상에 있었고. 그런데 ‘케이오스’에 관해서는 왜 묻는 거지?”
“도와야 할 사람이 있거든요.”
내가 ‘케이오스’에 대해 묻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케이오스’로 향할 잰퓨어를 돕기 위해서였다. 나는 잰퓨어를 도와 그의 마음을 얻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귀신 같은 타이밍이었다. 내가 베탄과 ‘케이오스’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마자 퀘스트가 도착했다는 음성이 들렸다.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자동으로 열람됩니다. 3…2…1…….]
+
# 돌발 퀘스트
제목: ‘내 여동생을 찾아줘’
내용: 여동생을 애타게 찾고 있는 ‘잰퓨어 이브’와 함께 적의 본거지로 들어가 여동생을 구출하시오.
제한 시간: 3일
보상: 없음
페널티: 사망
+
시스템은 나와 베탄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듣고 있는 것처럼 바로 잰퓨어를 도우라는 퀘스트를 내려 주었다. 모든 게 시스템의 뜻대로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일단 잰퓨어와 만나는 것이 목표인데. 율리우스 제국으로 떠난 잰퓨어를 무슨 수로 찾냔 말인가.
그때 내 머리에 무언가가 탁! 치고 가는 것을 느꼈다.
“울리프……!”
바로 레크리드의 새가 있었다! 그걸 이용하면 잰퓨어와 연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베탄과 헤어지기 전, 그에게서 캐내야 할 정보들이 있었다.
“선생님. 물어볼 게 있어요.”
“뭐지?”
전 연인에 대한 추억을 곱씹고 있는 건지 아무 말이 없던 베탄에게 내가 말을 걸자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질문들을 던졌고, 베탄은 탐탁지 않은 얼굴을 했지만 이내 대답을 해 주었다.
* * *
다음 날, 베탄과 보내는 시간이 24시간을 넘기자 효과음이 들려왔다.
[카드2의 기능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카드2의 효과는 대단했다. 24시간 동안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한 건 물론이고, 호감도까지 대폭 올렸으니 엄청난 수확이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병원에서 나와 갈림길에 선 나와 베탄은 이제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 상점에 가 보려고요.”
“가자. 데려다줄게.”
“아녜요. 혼자 갈 거예요.”
데려다주겠다는 베탄의 호의를 극구 사양하며 그에게 인사를 하자 그가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
“널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귀여운 그의 말에 나는 푸흣, 하고 웃었지만 그는 꽤 진지한 것 같아 나도 웃음을 참은 채 대답했다.
“제가 곧 찾아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작게 고개를 끄덕인 베탄은 나에게 포옹을 했고, 잠시 동안 끌어안고 있던 나는 정말로 가겠다는 인사를 했다.
“또 봐, 루나.”
그리고 나는 곧장 레크리드의 상점으로 향했다.
‘매그넘 마법 상점’에 도착한 나는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레크리드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편지를 보낼 방법을 묻자 그가 친절하게 절차를 알려 주었다. 다행히 잰퓨어는 테일러 마을에 들어와 통신 수단을 이용한 적이 있어서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해당 코드를 이용해 편지를 보내면 똑똑한 울리프가 편지를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
“여기요. 시간은 얼마쯤 걸릴까요?”
“루이아나 씨 부탁이니까 지금 바로 보내 드릴게요. 잰퓨어 씨가 바로 확인을 한다면 금방 답장이 올 거예요. 자, 울리프. 부탁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간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무심결에 그의 눈동자를 보며 호감도를 확인했다.
+
이름: 레크리드 니엘
나이: 18
직위: 매그넘 마법 상점의 주인
호감도: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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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감도가 50%? 분명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는 40%였는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그의 상점을 찾아왔다고 해서 10%나 오를 리도 없을 테고. 내 생각을 많이 할 만한 계기가 있었나?
결론적으로 호감도를 올리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잘된 일이었지만 이유가 궁금했다. 어쩌다가 호감도가 오른 건지.
“전 루이아나 씨가 참 재미있어요.”
물건을 정리하던 레크리드가 나를 보며 넌지시 말을 던졌다.
“…….”
“저는 관찰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
“루이아나 씨는 지켜볼 맛이 나요.”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굉장히 의미심장한 어투로 말했기에 그냥 넘기기에도 찝찝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내가 그에게 더 말을 이어 가라는 듯 얼굴을 쳐다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끝이에요.”
“아. 그렇군요.”
나는 자리에 앉아 손가락이나 꼼지락거리며 울리프가 답장을 가지고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폭한 새는 푸드덕거리며 창문으로 들어왔다. 새의 다리엔 잰퓨어의 답장으로 추정되는 쪽지가 묶여 있었다.
레크리드는 능숙하게 쪽지를 풀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동쪽 언덕 입구에서 기다릴게.]
“좋았어.”
이젠 잰퓨어와 만나 그의 여동생을 찾으러 가면 된다.
“고마워요, 레크리드. 다음에 또 봐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미안했지만 나에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제한 시간은 고작 3일뿐이었기 때문이다.
“잘 가요. 루이아나 씨. 몸조심하구요.”
이상하게 레크리드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기분 탓이겠지?
나는 레크리드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와 동쪽 언덕으로 향했다.
* * *
동쪽 언덕에서는 잰퓨어가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나를 보자마자 와락 안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나도.”
여기저기 내 상태를 살피던 잰퓨어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내 동생을 구하는 걸 돕겠다고, 루나?”
“응.”
“무슨 수로? 나 또한 레인타운에 있는 그들의 본거지에 침입하지 못하고 있어.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돕겠다는 거지?”
“베탄에게서 정보를 들었어.”
“베탄……?”
“아, ‘케이오스’에 관해 아는 사람이야. 그가 준 정보라면 침입에 성공할 수 있을 거야.”
“…….”
“이렇게 하자. 일단 우리는 레인타운으로 가는 거야.”
“하지만 그곳엔 일반인은 애초에 침입이 불가능한 마법진이 쳐져 있다고 해.”
“괜찮아. 내게 다 계획이 있으니까. 나를 믿고 따라와 준다면 네 동생을 구할 수 있게 도와줄게.”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 난처해하고 있던 잰퓨어는 탐탁지 않은 얼굴이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내가 길을 알아.”
잰퓨어는 레인타운으로 가는 길에 앞장을 섰고 나는 그 뒤를 쫓았다.
게이트를 타고 들어가자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레인타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둑어둑했기에 으스스한 분위기가 우릴 감쌌다.
“루나, 뭐 하는 거야. 어서 모자를 쓰라구.”
“왜? 모자는 시야가 가려져서 답답한데…….”
“레인타운에서 내리는 비는 머리카락을 몽땅 빠지게 만든단 말이야.”
“뭐?! 말도 안 돼!!”
“대머리가 되고 싶은 건 아니겠지? 그런 게 아니라면 어서 모자를 써.”
나는 그의 말에 후다닥 모자를 뒤집어썼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을 줄이야. 탈모가 오는 건 사양이라고!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걸었을까. 우리는 ‘케이오스’의 본거지라고 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나다니는 번화가와는 거리가 아주 멀었으며 폐건물들이 많아 그 누구도 들어올 것 같지 않은 곳이었다.
“악! 쥐잖아!”
그늘진 곳에는 쥐가 찍찍거리며 빠르게 기어 다니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기분에 잰퓨어의 팔뚝을 부여잡았다.
“이쪽으로 와. 여기가 입구인 것 같은데, 아무리 잠복을 하고 기다려도 아무도 드나들지 않아. 어떻게 들어가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어.”
“아, 저기가 베탄이 말한 입구구나. 진짜 입구는 저곳이 아니라 지하로 통하는 문이라고 했어. 그리고 그곳은……. 아 저기인 것 같아.”
잰퓨어가 말한 입구 반대쪽에는 마치 간이 화장실처럼 보이는 문이 하나 달려있었다. 허름하고 낡아 빠져서 도저히 입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법한 것이었다. ‘화장실처럼 생긴 문’을 찾으라고 하더니, 진짜였잖아?
“정말 저게 입구란 말이야?”
“응. 다가가 보자.”
우리는 문 앞에 다가갔고 잰퓨어는 망설임 없이 손잡이를 잡았다.
“……!”
“왜 그래?”
“결계가 쳐져 있어.”
그의 말에 나 또한 손잡이를 잡아보았지만 정말 반투명한 방어막 같은 것이 우리를 막아서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그 마법진이란 말이지.”
나는 베탄이 알려 준 대로 손가락 끝을 이용해 특정 모양의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색으로 빛이 나는 선이 그려지며 하나의 모양을 완성하였다.
그저 입구를 관리하기 위한 잠금장치인 것이라 그런지 그리 복잡한 마법진도 아니었다. 모양이 완성되자 문은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이럴 수가.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야?”
“너를 돕기 위해서 왔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나는 속으로 베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잰퓨어와 함께 문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불빛이 달린 어두컴컴한 복도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과연 에리피아에 관한 정보는 어디서 얻을 수 있을 걸까…….”
“보스룸에 들어가면 관련된 증거를 찾을 수 있다고 했어. 그러기 위해선 가장 깊숙이 들어가야 해.”
마치 던전과도 같은 이곳은 연결된 방을 거쳐서 가장 깊숙한 보스룸으로 들어가야 하는 구조였다. 베탄의 말로는 ‘케이오스’의 일원들은 한 번씩 이 던전을 돌파했기에 그다음부터 드나드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처음 들어가는 사람은 여러 개의 관문을 깨야 한다고 했다.
“던전을 이용해서 본거지를 만들어 놓다니……. 신박한 방법이군.”
우리는 바로 앞에 놓인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정사각형으로 막혀 있었고, 그다음 방으로 연결되는 문이 달려 있었다.
“잠겨 있어. 열쇠를 찾아야 하나 봐.”
방의 정중앙에는 커다란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가 봐도 상자를 열면 몬스터들이 등장해 우릴 공격할 것만 같았다.
끼익-
잰퓨어는 망설임 없이 상자에 손을 댔다. 잠금장치 하나 없는 상자는 쉽게 입을 벌려 주었다.
“!!!”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몬스터가 생겨나기는커녕…….
삐이- 삐이-
귀를 찢을 듯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보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상자 안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고 독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침입자 경보. 침입자 경보. 방1A에 신원 미확인자가 침입하였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겁도 없이 이곳에 기어들어 온 우리들을 잡기 위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