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101)화 (101/156)

100화. 세계의 틈(1)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방법도 모른다.

우선 나는 샐라임에게 오성석을 활성화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만약 실행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라면 너무나도 절망적일 것 같아 묻기가 두려웠다.

“샐라임, 이 작은 돌을 활성화하는 방법이 뭐죠?”

그러자 샐라임은 아주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특정한 어떤 장소를 찾으면 돼.”

“어떤 곳이요?”

“바로 ‘세계의 틈’이라는 장소야. 거기에 가서 돌을 던지는 거지.”

“그럼 끝이에요?”

“응.”

“‘세계의 틈’이라구요……?”

방법 자체는 간단한데, 무슨 말인지는 당최 감이 오지 않았다. ‘세계’는 뭐고, 또 ‘틈’은 무엇인가.

“샐라임은 300년 전에 오성석을 활성화한 사람을 보았다면서요. 그 사람이 갔던 ‘세계의 틈’은 어디예요?”

“음……. 그게…….”

샐라임은 대답을 하려다 말고 뜸을 들였다. 그러고는 머리를 굴리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사실은… 기억이 안 나. 삼백 년도 전의 일이라서 말이지.”

“뭐라고요?! 이런 말도 안 되는……!”

내가 순식간에 언성을 높이며 샐라임을 향해 소리치자 그가 나를 진정시켰다.

“진정해. 루나. 기억이 난다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어.”

“왜죠?”

“‘세계의 틈’은 그 시동자에게만 해당하는 장소이기 때문이야. 예전에 신계로 간 그 사람이 찾았던 장소랑은 전혀 관련이 없지. 너만 알고 있는 ‘세계의 틈’이 있을 거다.”

“젠장……. 그럼 사람마다 다 자기만의 세계의 틈이 있는 건가요?”

갑자기 찾아온 난항에 나는 머리를 싸맸다. ‘세계의 틈’이라니, 대체 그게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온갖 머리를 굴려 샐라임을 향해 말했다.

“틈이라면……. 공간과 공간의 사이일 텐데……. 공간과 공간이 맞닿는 곳이 어디죠?”

“글쎄다……. 나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너는 분명 알고 있을 거야. 시동자만이 알 수 있는 장소라고 했었어.”

“샐라임은 왜 제대로 몰라요!”

“그때 걔는 친화력이 약해서 나랑 대화를 못 했지! 말을 못 듣는데 어떻게 물어봐!”

샐라임 또한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게 미안한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뾰족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고, 나는 그렇게 몇 시간이나 말없이 생각에 몰두했다.

하지만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 세계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없는데 그런 공간을 내가 알 리가 있나!

그때, 샐라임이 말했다.

“그러지 말고, 친한 사람들한테 물어나 보는 건 어때?”

나는 그 말에 박수를 짝 쳤다.

그래, 도움을 요청하는 거야. 나만 고민하라는 법 없잖아?

누구든 물어보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게 있을 거야!

“그런데… 누구한테 물어보죠?”

나는 종이를 펴 펜을 잡았다. 내 친구들의 목록을 작성하기 위해서였다.

“…….”

그런데… 내가 꾸역꾸역 쓴 사람이라고는…….

“세이먼, 에르셈프, 잰퓨어, 레크리드, 베탄.”

“그럴 줄 알았다.”

“이 다섯뿐이라니……. 절망적이야.”

나는 머리를 싸매고 침대에 엎어졌다.

나에게 친한 사람이라고는 다섯 남주인공들밖에 없었다. 다른 애들이라고는 내 뒤통수를 쳤던 이블린밖에 없으니, 이것 참 난감할 따름이었다.

“그래. 다섯 남주인공들이라도 물어보러 가는 거야.”

다시금 처박았던 머리를 침대에서 들어 올린 나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세이먼은 지금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고……. 에르셈프부터 찾아가야겠다.”

나는 재빠르게 준비를 마친 뒤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학교는 아직 마물들에 의한 정비 중이었기에 주변이 어수선했다.

에르셈프가 왠지 이 주변에서 학교를 지키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그곳을 배회했다.

그리고, 쉽게 에르셈프를 만날 수 있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회색의 머리칼과 장신의 키 덕분이었다.

“에르셈프,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또 다른 마물이 나타나는 걸 대비해서 감시를 하고 있었어. 마물들은 한 번 세상에 내려오면 자신의 새끼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뿌려놓는 경우가 많거든. 한 번이라도 마주칠 시엔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나지.”

그는 여전히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는 이 학교가 공격당한 것에 대해서 아주 큰 우려와 걱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에르셈프,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어요.”

“뭐지? 루나. 나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니.”

“혹시… ‘세계의 틈’이 뭔지 알아요?”

“‘세계의 틈’?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지?”

“그건 말할 수 없고, 그냥 생각나는 거나 말해 줘요.”

“음…….”

그는 내 말에 턱에 손가락을 얹고 잠시 고민했다.

몇 초간 고민했을까, 그가 손가락을 튕기더니 대답했다.

“‘세계의 틈’이라…….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왕궁에 소속되어 있던 전설의 전사가 있었어. 단 일격에 산을 갈랐던 용감한 기사였는데, 그가 가른 그 산맥의 틈은 아직도 물도 흐르지 않고 풀도 자라지 않고 있지. ‘세계의 틈’이라면 바로 그곳이 아닐까?”

“오! 그렇군요.”

생각보다 쓸모 있는 대답에 나는 감탄사를 외쳤다.

“고마워요! 에르셈프.”

“별로, 옛날 생각이 났던 것일 뿐이야.”

나는 종이에다가 그가 말한 산맥의 이름과 위치를 꼼꼼하게 적어 두었다.

그리고 다음은 잰퓨어의 차례였다.

남자 기숙사 쪽으로 가서 샐러맨더를 통해 운디네를 부른 나는 쉽게 잰퓨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기숙사의 입구에서부터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달려왔다.

당장이라도 나를 안아 버릴 것처럼 달려온 그를 잽싸게 피하며 그를 멈춰 세웠다.

“루나아아!!”

“안아 줄 수 있잖아. 오랜만이잖아. 응?”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 잰퓨어의 팔뚝을 퍽 때리며 나는 물었다.

“잰퓨어, 혹시 ‘세계의 틈’이라고 알아?”

“그게 뭔데? 새로 부여받은 임무야?”

“아니, 이 난리가 났는데 임무는 무슨 임무. 장소인데 생각나는 게 있으면 아무거나 말해 줘도 돼.”

“음…….”

에르셈프와 마찬가지로 잠시 고민하던 잰퓨어는 이내 므흣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세계의 틈’이라… 닿을 수 없는 그곳, 바로 그대와 내 입술 사이가 아닐까? 루나?”

“…….”

나는 그의 등을 퍽퍽 때렸다.

아주 그냥 맞아도 싸! 

그러자 잰퓨어가 아프다며 우는 소리를 냈다.

“아야야야야, 미안, 미안! ‘세계의 틈’이라면 며칠 전에 마물이 내려온 곳이 아닐까? 마물의 세계와 이 세계의 사이라고 볼 수 있잖아.”

“흐음…….”

생각해 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었다. 나는 종이를 꺼내 그의 말을 적어 놓은 뒤 집어넣었다.

“고마워, 잰퓨어. 이만 난 가 볼게.”

“뭐? 루나, 벌써 간다고? 오랜만에 만났는데 밥이라도……! 아니 산책이라도……!”

“어서 가 봐야 해. 바쁘단 말이야.”

단호하게 그의 손길을 거절하고 나온 나는 레크리드에게 향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그의 집은 가 본 적이 있는 터라 다시 찾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제 이 집에서 나왔으면서 다시 찾아오려니 조금 민망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의 집 앞에 다다라 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는 ‘잠시만요!’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귀여운 얼굴이 문을 열고 빼꼼 나왔다.

“어어?! 루나?!”

나를 보자마자 눈이 튀어나올 듯이 확장된 레크리드는 환하다 못해 찢어질 듯한 미소를 지었다.

“어쩐 일이에요! 루나! 제 말을 듣기로 한 거예요? 제가 씻겨 주고 먹여 주고 재워 주고 깨워 주고 할 수 있다는 그 말?!”

“미안하지만… 아니에요. 그저 물어볼 게 있어서 온 거라구요.”

“아…….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안으로 들어와서 차라도 마셔요.”

“그, 그럴까요? 고마워요.”

한시가 바쁜데 레크리드의 호의에 발이 묶여 버린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집에 입성할 수 있었다.

여기서 퀘스트라도 나오면 완전 낭패 중의 낭패인데…….

제발 그러지 않기를 빌며, 기도했다.

차를 내어 가지고 온 그에게 나는 재빠르게 물었다.

“레크리드, ‘세계의 틈’이라는 것에 대해 아는 게 있어요?”

레크리드라면 알 수도 있었다. 그는 이 동네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똑똑한 정보상이니 말이다. 무언가 참신한 대답이라도 나올 것 같은 생각에 나는 눈을 반짝이며 그를 쳐다보았다.

“음…….”

“…….”

내가 ‘어서! 빨리!’라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마 상인들이 자주 타고 이용하는 게이트가 아닐까요? 거기야말로 세계와 세계가 맞닿는 틈이죠!”

“…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진작에 게이트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곳이라면 게이트가 가장 대표적인데!

나는 다시 종이를 꺼내 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쉬운 길도 있었어. 내가 너무 어려운 것을 생각했었던 거야.

종이를 집어넣은 나는 레크리드에게 짧게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나왔다.

내가 가는 게 아쉬운지 풀 죽은 표정을 하는 레크리드를 향해 한번 악수를 해 주고는, 단호하게 등을 돌렸다.

이렇게 남주인공들을 하나씩 만나는 것이 마치 시스템을 파괴하기 전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도 말했지만 잘 지내요, 레크리드.”

어려운 발걸음을 돌리며 나는 마지막 상대를 향해 찾아갔다.

그곳은 바로 베탄이 있는 병원.

내가 다른 정보를 듣지 못했기에 베탄은 아직도 해독되지 못해 병원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아……. 마음이 무겁네.”

베탄을 찾아가는 길 위에서 나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나 때문에 다친 사람이 아직도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나를 힘들게 했다.

설마 아직도 중증 상태라고 하면 어떡하지.

아니면… 생명이 위험한 상태라고 하거나…….

아냐, 편지 같은 게 오지 않았으니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야.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마을의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의 입구에 도착하자, 예전의 히드라의 언덕에서 베탄을 꼭 끌어안고 텔레포트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정말 일촉즉발의 상황이라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그 생각을 떠올리니 자꾸만 얼굴이 굳었다.

머뭇거리는 발걸음을 힘겹게 옮기며 나는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베탄 오스가르드’라는 이름이 적힌 병실을 찾아내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그곳을 들어갔다.

4인실에는 두 사람이 침대를 쓰고 있었고, 나는 베탄의 침대로 추정되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

나는 이 세상 그 무엇을 보았을 때보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베탄이, 베탄이…….

“선생님……?”

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것이다.

흰 천을 얼굴 위로 덮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설마, 설마 지금 베탄이 죽었다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천을 올려놓은 거야?

기사단장에 걸맞은 큰 키부터 커다란 덩치까지, 베탄과 딱 맞았다.

베탄이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믿기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무뚝뚝하게 나를 가르쳐 주던 모습이 훤한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세상을 뜰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나를 구하려다가 말이다.

“서, 선생님……!!”

내 얼굴이 돌처럼 굳어 버리는 걸 느꼈다. 나는 그의 흰 이불보를 꼭 쥐어 잡았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여기서 베탄이 죽을 수가 있어. 내가 시스템을 파괴하면 베탄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는데…….

마치 나 때문에 죽은 것 같잖아.

비록 히드라를 죽이라고 명한 게 베탄이고, 나를 지켜 주겠다고 말한 것도 베탄이지만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은 어쩔 수 없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 채 고개를 감싸고 가만히 죽어있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엄청나게 익숙한 음성이었다.

“애먼 사람 붙잡고 거기서 뭐 하는 거지?”

“……?”

눈물이 얼굴 반쯤을 타고 흐른 상태로 고개를 들은 나는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런데 그곳에는…….

“베, 베탄?”

그가 서 있었다.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아니, 분명히 여기에 누워 있어야 할 사람이 왜 거기에 서 있는 거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