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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93)화 (93/156)
  • 92화. 토너먼트전(3)

    회색빛 하늘에선 빗방울이 톡, 톡 떨어지고 있었다.

    대기실에 있던 학생들은 전부 놀란 얼굴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꺄악!!”

    나는 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당장 나가게 가게 해 줘요.”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진…….”

    램클리프 소속의 기사단이라서 그런지 체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금 건물이 무너졌는데 여기 있으라고요? 당장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요!”

    그러자 그들은 우물쭈물하더니, 이내 문을 열어 주었다.

    경기장을 통해서 바깥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나를 비롯한 대기실에 있던 학생들은 전부 복도로 나와 경기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바로, 경기장에 놓여 있던 1, 2, 3등의 상품들.

    난리가 난 상황인데, 몰래 가져가도 되지 않을까?

    긴 복도를 지나 나는 커다란 경기장으로 도착했다.

    이곳 역시 벽과 천장이 무너진 채 흔들거리고 있었다.

    수많은 관객도 진정하지 못한 채 나가기 위해 출구 쪽으로 마구 모이고 있었다.

    하지만 출구는 너무 좁았고,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모이는 탓에 더욱 빠져나가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상품이 올려져 있는 상단을 바라보았다.

    곤봉 모양으로 된 빛나는 아티팩트 ‘듀이타나’가 1등 상품으로 있었고, 2등 상품 자리에는 오성석이 올려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3등 상품인 알 수 없는 책 하나도 있었다.

    나는 오성석을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크기는 컸고, 레크리드가 준 이성석과는 느낌이 달랐다.

    연분홍색이 아닌 붉은색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것, 저것만 얻으면…….”

    오성석을 향해 뛰어가며 보니, 직관석에 앉아 있던 램클리프와 볼프문트 마법 협회 사람들도 일어나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위로 보이는 회색 하늘에 검은색 선이 하나 그어진 것이다.

    거칠게 그어진 선은 이내 시커먼 입을 벌렸고, 하늘이 찢어지며 그 안에서 무언가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

    거대한 도마뱀 같기도 하고, 새 같기도 하고, 공룡 같기도 한 마물들이 마구 쏟아져 내려왔다!

    마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학교 안으로 들어와 경기장으로 쿵, 쿵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저, 저게 뭐야! 살려 줘!”

    사람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소리만 꽥꽥 지를 뿐이었고, 출구에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꼬리가 네 개 달린 도마뱀 형상을 한 마물이 경기장 안으로 착지했다.

    그리고 꼬리를 한번 휙! 흔들자 출구 쪽에 있던 사람들이 그 꼬리를 맞고는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주, 죽은 건 아니겠지……?”

    순식간에 몇십 명이 공중으로 자취를 감췄다.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도마뱀 마물뿐만 아니라 다른 마물들도 이 학교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것 같았다.

    변절자 무리가 학교를 파괴한다는 것이 바로 마물을 이용한다는 뜻이었나?!

    마물의 힘을 빌리기 위해선 오래전에 없어진 흑마법을 써야 한다고 들었다.

    이 학교 내에 흑마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콰앙! 콰앙!

    거대한 마물들이 이젠 적응을 한 건지, 학교 이곳저곳을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에 온 도마뱀 마물도 커다란 발을 움직이며 꼬리를 휘두르고, 혀를 내두르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필사적으로 꼬리와 혀를 피해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들 부딪쳐 우르르 넘어졌다.

    “미, 미친…….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나는 램클리프와 볼프문트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그들은 칼을 뽑은 채 도마뱀 마물에게 뛰어가고 있었다.

    몸집 차이가 어마어마했지만 그들은 거침없이 마물에게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마물의 힘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혀를 내두를 때마다 튀기는 도마뱀의 침은 물건을 부식시키는 힘이 있는 거 같았다.

    침을 맞은 사람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마구 소리를 질러 댔고, 기사들은 곧 갑옷이 부식되며 나오는 연기에 둘러싸였다. 순식간에 경기장은 더욱더 난장판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저 마물을 해치우는 것도, 학생들을 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저 오성석을 손에 넣어야만 한다.

    다행히 마물의 난리 통에 모두들 상단에 놓여 있는 상품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고, 나만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키야아악!!”

    도마뱀 마물이 기사들에게 공격을 받자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는 어떤 기운이 깃들어 있는지, 이 장소의 분위기가 어둡고 흐려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마구 발을 움직이던 도마뱀이 상품이 있는 상단을 발로 밟아 버렸다.

    이 정신 나간 마물이 뭐 하는 거야!

    “꽤애액!!”

    아픈 건지 신음을 내지르는 도마뱀은 발을 떼어 냈고, 그 밑에는 붉게 빛나는 오성석이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마물이 밟아도 부서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그쪽으로 마구 뛰었다.

    하지만, 도마뱀은 열이 받았는지 그 돌을 발로 뻥, 차 버리고 말았다.

    휘익-!

    저 멀리 날아가는 돌을 보며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어서 가서 돌을 찾으면 돼! 어디로 떨어진 건지 보았으니까!

    나는 돌이 날아간 장소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마법 협회 기사들은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당장 경기장을 나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십시오!!”

    죽어라 달리고 있는 나에게도 소리치는 기사를 무시하고는 나는 관중석의 끝으로 향했다.

    벽이 마구 무너져서 잔해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헤쳤다.

    “끄응!”

    무거운 벽을 들어 올리며 돌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어디 있는 거야, 진짜. 하필 쪼끄매 가지고!

    나는 눈을 좌우로 살피며 붉은색의 존재를 찾았다.

    “젠장! 이런 곳에서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열이 뻗치는 바람에 욕을 내뱉었다.

    반대쪽을 바라보니 도마뱀 괴물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거대한 발걸음 소리와 동시에 나는 저절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빠르게 찾아야 해, 빠르게!!

    급한 마음에 잔해들을 마구 헤치며 돌의 행방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손이 찢어졌다.

    하지만 아픔 따위 느껴지지도 않았다.

    난 이 빌어먹을 시스템에서 기필코 빠져나갈 거란 말야!

    빗방울은 점점 굵어졌고, 짙은 회색의 하늘에서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

    나는 비를 맞으며 잔해들 사이에서 허우적거렸다.

    쿵! 쿵! 쿵!

    도마뱀 마물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온몸이 새까만 마물이 꼬리를 마구 휘두르며, 혀를 내두르며 나에게 다가오는 모습은 정말이지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적어도 20초 안에는 찾아야 한다.

    나는 돌이 떨어진 곳만을 헤집고 있었다.

    “꺄악!!”

    “크억!!”

    사람들의 비명 소리 때문인지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떠는 손으로 돌을 찾는데, 내 몸에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도마뱀 마물이 온몸에 잔뜩 상처를 입은 채 내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마법 협회는 대체 뭘 한 거야!

    베탄이라도 있었으면 이 정도는 되지 않았을 텐데!

    비무 대회를 보기 위해 온 마법 협회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대가 높은 원로들이라 마나를 마구 방출하는 공격 마법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공격력이 현저하게 낮은 것이다.

    촤악!

    도마뱀이 나를 향해 혀를 날름거렸다.

    나는 잽싸게 피했지만 침을 맞지 않기 위해 몸을 무리해서 움직이느라 다리가 꼬여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벽의 잔해에 무릎을 박아 피가 철철 흘렀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숏 소드를 뽑아 들었다.

    일단 저 혀부터 어떻게 하는 거다.

    “샐러맨더, 불꽃 칼날.”

    불꽃 칼날을 만들어 낸 내가 도마뱀의 혀를 자르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재빠르게 날아간 샐러맨더가 도마뱀의 머리 앞을 배회했고, 도마뱀은 그것을 경계하며 눈을 굴렸다.

    “카사!”

    불꽃 모양의 카사 또한 도마뱀의 입 앞으로 보냈다.

    그러고는 도마뱀이 입을 벌렸을 때, 카사가 안에 들어가도록 명령했다.

    펑!

    “우븝! 푸하악!”

    입 안에서 폭발한 카사 때문에 도마뱀은 입을 벌리며 불꽃을 식혀야만 했다.

    그때 샐러맨더가 움직이며 도마뱀의 혀를 자르기 시작했다.

    “캬아! 캬아아아!!”

    발버둥 치며 입을 뻐끔거렸지만 샐러맨더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절삭력이 높아진 샐러맨더가 깊게 도마뱀의 혀를 찢듯이 잘라 버렸고, 거대한 혓바닥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내 차례다.

    결과는 모르지만, 도전해 보는 거다.

    이 마물은 몬스터 정보 확인이 되지 않기 때문에 등급을 알 수 없지만, 그 어떤 지상의 몬스터보다 센 것 같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격을 하지 않고 도망가기 바빴던 거겠지.

    하지만 도마뱀은 지금 상처를 많이 입은 상태였다.

    잘하면, 죽일 수 있어. 그리고 여유롭게 오성석을 찾는 거야.

    나는 숏 소드를 손에 꽉 쥔 채 도마뱀을 향해 도약했다.

    그러고는, 가슴팍으로 달려들어 ‘찔러 베기’를 시전했다.

    깊숙이 찔러 넣은 다음 가로로 베어 버렸다.

    “꾸엑!”

    하지만 숏 소드의 검신이 너무 짧은 탓에 깊은 상처를 내지 못했다.

    “한 번 더 똑같은 곳에 가는 거야.”

    나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도약한 뒤 똑같은 상처 안으로 손을 깊숙이 넣었다.

    “죽어 버려!!”

    손을 넣은 채 칼을 더 깊게 꽂고, 옆으로 베어 냈다.

    그러자 도마뱀의 몸에서 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했다.

    쿠웅!

    그러고는 땅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 기절을 한 것 같았다.

    그때, 시스템의 음성이 들렸다.

    [스킬 ‘검술’의 레벨이 2 상승했습니다!]

    나는 도마뱀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돌을 찾기 위해 다시금 등을 돌렸다.

    그리고, 운 좋게도 부서진 벽 사이로 붉게 빛나는 돌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닿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팔을 벽과 벽 사이로 넣은 채 끼어 있는 돌을 빼기 위해 애를 썼다.

    “제발!!”

    어깨가 찢어질 듯이 팔을 넣자 검지가 돌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됐어! 됐다고!”

    그 순간이었다. 또다시 내 앞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진 것은.

    도마뱀이 어느새 일어나 형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혀는 잘린 채였고, 온몸에 피 칠갑을 한 것이, 내가 지금까지 본 어떤 것보다 기괴했다.

    콰앙!

    도마뱀은 내 쪽을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갔고, 이제 다음 공격이 이어질 차례였다.

    “빨리!”

    그리고 도마뱀은 앞발을 정확하게 나를 향해 휘두르려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샐러맨더!!!”

    그리고 눈을 꽉 감았다.

    “……?”

    공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뜨자, 샐러맨더가 필사적으로 도마뱀의 앞발을 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고마워, 샐러맨더! 조금만 버티다가 돌아가 줘!”

    그리고 나는 내 손에 들어온 붉은색 돌을 보았다.

    그것을 꽉 쥐며 나는 벽 잔해들을 건너서 사람들이 있을 곳을 향해 뛰었다.

    “드디어! 드디어 얻었어요! 드디어!!”

    오성석을 가슴 안쪽에 있는 주머니에 넣은 뒤 통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그런데 땅바닥에 엎어진 채, 팔과 다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헉…헉…….”

    신음을 흘리며 고통을 참고 있는 듯한 남자는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왜, 대체 왜 저 남자가 여기서 다친 채로 쓰러져 있는 거지?

    나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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