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히드라의 언덕(4)
베탄은 입술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달싹이는 입술에선 가쁜 숨이 내쉬어졌고,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반대로 그가 가져간 가슴팍은 데일 듯이 뜨거웠으며, 열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엉망이 된 베탄의 얼굴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지금 이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니까요! 어서 당장……!”
다급한 내 목소리와는 반대로 베탄은 천천히 땅바닥에 앉으며 나에게 말을 했다.
“여기에.”
내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그의 대답을 기다리자 그가 이어 말했다.
“이 안에 텔레포트가 가능한 마법석이 있어.”
“……?”
“전투 시 긴급 상황을 대비해서 바로 워프할 수 있게 지니고 있는 건데, 이렇게 쓰게 될 줄 몰랐군. 마을 내에 있는 병원 앞으로 이동할 수 있어.”
“병원으로 갈 수 있다고요?!”
“그래. 위급한 상황은 보통 몸이 다쳤을 때니까.”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차근차근히 대답했다.
베탄의 직업은 총기사단장이었다.
전투 중 심각한 다치는 상황을 대비해서 마법석을 가지고 있었다니. 정말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귀한 마법석을 시동하는 건 아무나 가능한 일이 아닐 것 같은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건지 알려 줘요!”
나는 그의 가슴팍을 더듬으며 작은 가죽 주머니 하나를 찾아냈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는데, 그중에서 주황색으로 빛나는 마법석 하나가 눈에 띄었다.
“주문 인식자가 나로 설정되어 있어서 내가 시동해야만 해. 대신에…….”
“대신에?”
베탄은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가 다무는 것이,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몇 초를 망설이던 베탄은 이내 입을 열었다.
“…텔레포트할 사람끼리의 신체 접촉이 필요해.”
나는 혀를 내두르며 그를 쳐다봤다. 그렇게 뜸을 들이던 게 그 말을 하려던 거였어?
신체 접촉이 뭐 그렇게 어렵다고, 그냥 손이나 붙잡으면 되는 거…….
“이리 와.”
그는 나를 향해 자신의 양팔을 벌렸다.
“……?”
검은색 기사복은 흙으로 엉망이 된 상태였고, 온갖 곳은 히드라의 독 때문에 타들어 간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 뭐 하자는 건데?
“이리 오라고.”
“…….”
“내 품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잘 들은 게 맞나? 방금 나한테 안기라고 한 것 맞나? 몸과 몸이 부대끼며 체온을 공유하는 그 포옹 같은…….
내가 얼빠진 얼굴로 그를 마주하고 있자 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고통에 몸서리쳐야 할 상태인데도 웃음이 나오냐?!
하지만 그 엉망이 된 얼굴에 비치는 작은 미소는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다.
“지금… 안기라는 거예요?”
“그래.”
“정말로요?”
“나 죽어. 상황을 알긴 하는 거지?”
그는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나에게 말했다.
“꼭 이렇게 해야만 하는 거죠?”
“응.”
나는 머뭇거리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그래, 지금 내가 하는 짓은 텔레포트를 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야.
그냥 몸과 몸을 붙이고 있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베탄은 이제는 말할 힘도 없는지 입을 다문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머뭇거리는 몸짓으로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몸을 가까이 댈 때마다 심장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포옹이라니.
잰퓨어와는 몇십 번도 해 왔던 그것이다.
세이먼이나 에르셈프와도 가끔씩 접촉한 적이 있고.
그런데 지금 상황은 왜 이렇게 떨리는 거지?
포옹을 해야 하는 사람이 나여서 그런 건가?
가슴이 미칠 듯이 뛰어 댔고, 이 사람 품 안에 내가 들어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
나는 눈을 꾹 감고 그의 가슴에 내 가슴을 갖다 댔다.
그리고 어깨 너머로 팔을 둘러 목을 감쌌다.
그러자 그의 두꺼운 목이 내 팔에 가볍게 감겼다.
그때였다. 힘을 주어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던 베탄이 툭, 힘을 풀었다.
그러자 그의 등이 땅바닥을 향하며 뒤로 누워 버렸다.
“……!”
동시에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있던 나는 그의 몸 위로 겹쳐지며 같이 누울 수밖에 없었다.
“잘하네.”
그의 표정을 보진 못했다.
그런데 왠지 그의 입가엔 미소가 어려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굴에 뜨거운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베탄을 밑에 깐 채 내가 그의 위에 올라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미칠 듯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지금 뭐 하는……!”
“꼭 붙어야 실패할 확률이 낮아지거든.”
그의 말대로 한 치의 틈을 허락하지 않은 채 딱 붙어 버린 우리는, 그렇게 텔레포트를 시작했다.
“조금 어지러울 수 있어.”
“본인 걱정부터 해요! 지금 한시가 급한데!”
그는 쿡쿡 웃음을 흘리며 마법석을 손에 꼭 쥐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하얀 빛무리가 꼭 겹쳐진 우리의 몸을 감싸 왔고, 귓가엔 이명이 들려왔다.
슈우우-
게이트를 탈 때와 같은 감각이 우리를 찾아왔다.
* * *
눈을 떴을 땐, 정말 마을 내에 있는 가장 큰 병원의 입구에 우리가 있었다.
우리는 텔레포트하기 전에 폭 안고 있는 자세 그대로 도착했고, 나는 주변에 나다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정말로 감사했다.
이 모습을 누구라도 봤다면 창피해서 죽어 버렸을 거다.
“으윽……. 일단 일어나서 병원으로 가 보자.”
그는 팔로 내 등을 꽉 감싸고 있는 상태였고, 동시에 정신을 잃은 채였다.
내가 그의 팔을 거두자 툭, 하고 힘없이 떨어졌다.
“베탄!”
선생님이라고 부를 새도 없이 그를 불렀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은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주, 죽으면 안 돼!!”
나는 재빨리 병원 안으로 들어가 간호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곧이어, 들것을 가져온 사람들이 베탄을 싣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온몸이 엉망이 된 상태로 들것에 실려 가는 베탄의 모습을 보니 마음속이 울렁거렸다.
내가 이렇게 감성적인 사람이었나. 아닌데.
자꾸만 이상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병원 내부로 들어서려는데, 옆에서 나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혹시 단장님을 데리고 온 분이십니까?”
검은색 기사복을 입고 있는 기사 둘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베탄과 같은 기사복이었지만, 베탄의 것보다는 덜 화려했다.
“네. 맞는데요?”
“저희는 단장님이 위급하다는 신호를 받고 달려온 램클리프 소속의 기사입니다. 지금은 상황이 급하니 정식 인사는 생략하겠습니다. 단장님과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키가 크고 주근깨가 가득한 기사는 나에게 상황을 물었고, 나는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때, 나와 기사 두 명이 대화하던 복도 옆으로 아까 베탄을 데리고 갔던 간호사가 지나갔고, 나는 그녀를 붙잡고 물었다.
“어떻게 되었나요?!”
“보호자는 나가 주십시오.”
보, 보호자……?
졸지에 베탄의 보호자가 된 나는 간호사에게 차가운 대답을 들어야만 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기사 두 명도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단장님은 저희가 맡을 테니 돌아가 주십시오.”
“……!”
여기서부터는 자신들의 소관이라는 듯 말하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베탄과 뭐 어떤 사이가 되는 것도 아니며 내세울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네…….”
베탄이 들어간 수술실을 한 번 바라본 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제발 생명에 지장이 없어야 할 텐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온갖 생각이 다 드는 탓에 내 얼굴이 하얗게 질리자 기사 한 명이 나를 병원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조심히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원래 이게 램클리프 기사단의 규칙인 건지, 그들은 상관이 위험한 데도 큰 감정의 동요 없이 매뉴얼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원 밖으로 나섰다.
* * *
그렇게 베탄이 병원에 입원을 했고, 나는 다음날부터 면회를 갈 수 있었다.
비무 대회가 며칠 안 남은 시점이었지만 매일같이 수련에 들어가기 전, 병원에 들르곤 했다.
“아주 강력한 맹독에 감염되었습니다. 최대한 해독을 해 보았지만 몸속에 남아 있는 잔여 독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경과를 지켜보며 자연적으로 나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요.”
의사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며 병실을 나갔고, 나는 무력하게 그의 곁을 지키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한 번만 살아 주세요…….”
침상에 누워 있는 그를 볼 때마다 마음이 계속해서 울렁거렸다.
죄책감인 건지, 걱정인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가 이런 상태로 누워 있는 건 원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침대 옆에 있는 간이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걸까.
베탄이 히드라를 잡으라는 미션을 주었을 때부터? 새끼 히드라 뒤에 있던 거대 히드라를 보지 못했을 때부터? 내가 제대로 도망치지 못해 베탄이 독을 맞았을 때부터?
한숨을 쉬다가 생각을 접었다.
나는 그저 그가 독을 이겨 내고 일어나기만을 기도하면 되는 거였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나를 스승처럼 가르쳐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계속해서 정이 갔다.
물론 엮여서는 안 될 남주인공이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이건 별개였다.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는 내가 오성석을 이용해 빠져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베탄이 여기서 나 때문에 죽을 이유는 하나도 없는 건데…….
비무 대회 본선 2차 개인전을 시작할 때까지 나는 빠짐 없이 그의 병원을 찾았고,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샐라임은 시간 아깝다며 약간 투덜대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처럼 베탄이 죽으면 좋니 어쩌니 하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한 시간 후면 곧 있으면 개인 토너먼트전이 시작된다.
아까 전까지는 내 온몸의 피가 솟구칠 정도로 긴장되는 상태였지만, 이상하게 베탄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한참 실력이 모자라 웨어울프에게 신나게 맞고 있던 나를 구해 준 베탄은, 고맙게도 그 이후로 나에게 아낌없이 검술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고질적인 나의 문제점과 허점을 알려 주었고, 그것을 토대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런 스승을 만났으니, 나는 이번 토너먼트전에서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아낌없이 나의 역량을 보여 주고 올 것이다.
그것의 상대가 설령 세이먼이라도!
“선생님, 드디어 오늘이에요.”
“…….”
“오늘만을 위해서 이렇게 노력한 거잖아요. 절대 지지 않을 거예요.”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하얗게 질린 입술은 열릴 줄을 몰랐고,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아닌지도 몰랐다.
“누가 가르쳐 준 건데요. 그쵸?”
나는 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쳐다보며 혼자 내뱉었다.
결코 실패란 없다.
계획대로 이등을 해서 오성석을 무사히 얻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베탄을 뒤로 한 채, 병실을 나왔다.
* * *
개인 토너먼트전은 예전에 정령술과의 ‘펀칭 머신 테스트’를 했던 곳과 아주 흡사한 장소에서 열렸다.
회색 돌벽으로 사방이 막힌 직사각형의 거대한 방이었다.
정해진 시간까지 잘 도착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열여섯 명의 학생들이 비장한 모습으로 하나같이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서 있었다.
자신의 몸집보다 두 배는 큰 검을 뒤에 찬 학생도 있었고, 별다른 무기 없이 지팡이 하나만을 든 학생도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작은 숏 소드 하나를 다룰 줄 아는 정령술사였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될까?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그 속에서 밝은 금색 머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
그는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한 건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모습을 찬찬히 훑었다.
온몸을 방어할 수 있는 단단한 갑옷과 허리에 찬 롱 소드. 팔꿈치와 무릎 또한 방어구가 갖춰져 있었고, 장갑까지 착용한 상태였다.
내 숏 소드로는 상처 하나 허용하지 않을 것처럼 완벽히 방어된 모습이었다.
나는 성큼성큼 그를 향해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는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약속 지켰네요, 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