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78)화 (78/156)
  • 77화. 적안의 남자(3)

    처음 이틀은 빠르게 지나갔다.

    칼을 휘두르는 방법과 스킬을 배우기 위한 기초 훈련을 했다.

    “자, 이젠 검이다.”

    그는 내가 눈을 감고 자다가도 정확한 자세가 나올 때까지 만든 뒤에야 목검 대신 소드를 쥐여 주었다.

    이틀 만에 손바닥이 물집으로 엉망이 된 나는 떨리는 손으로 숏 소드를 받아 들었다.

    “공격과 공격 사이의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을 거야. 오래 싸워도 지치지 않을 거고.”

    “흑, 감동…….”

    나는 오랜만에 잡아보는 샐라임의 검에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어딜 갔다가 이제 온 거야! 내가 말도 못 하고 얼마나 답답했는지 아냐고! 너는 말을 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네가 없으면 에고를 표출할 수 없게 되어서 입이 열리지 않는단 말이야. 매번 말을 하다가 갑자기 입이 다물리는 기분이 어떤지 알아? 어떤지 아냐고…….”

    쉴 새 없이 꿍얼거리는 샐라임의 말을 들어야만 했지만 그것마저도 반가웠다.

    역시 이 검은 내 허리가 제자리라니까.

    “이제 왔잖아요, 샐라임. 제 실력 한번 볼래요?”

    고작 이틀 만에 검술의 기초를 전부 닦을 수는 없었다.

    가장 필요한 것을 해야 했는데, 그건 바로 칼을 휘두르는 연습이라고 했다.

    기교와 같은 것들은 눈대중으로 따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가장 기초가 되는 일격 연습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번 휘둘러 봐.”

    베탄의 말에 내가 숏 소드를 허공에 날렵하게 휘둘렀다.

    샤악!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목검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전보다 아주 좋아졌어. 동작도 날렵하고 정확해.”

    나는 그의 한마디 칭찬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고작 저 말을 들으려고 이 고생을 했나 싶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그만큼 고된 훈련을 했다는 거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훨씬 검사 같아졌군. 이틀만의 성과치고는 대단해.”

    샐라임도 옆에서 중얼거렸다.

    “오러 발동.”

    베탄이 짧게 읊자, 나는 온몸의 마나에 집중했다.

    곧이어 푸른 마나가 칼에 서렸다.

    “저 나무가 네 상대야.”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망설임 없이 오러가 서린 검으로 나무의 밑동을 긋자 결과는 놀라웠다.

    샥!

    원래라면 우지끈하며 거칠게 부러졌을 나무가 내 칼에 닿자 매끄러운 단면과 함께 베어진 것이다.

    쿵!

    베인 나무가 떨어지자 베탄은 무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나에게 칭찬을 할 때도 절대 웃지 않았다.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게 굴곤 했다.

    “이제 네가 익혀야 할 진짜 스킬을 알려 줄 거야.”

    “…….”

    나는 숨을 죽이며 그의 말에 집중했다.

    사실상 이 스킬을 익히기 위해 앞선 기초 훈련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본선이 시작하기 전까지 이 스킬을 완벽하게 익히는 것이 내 목표였다.

    대체 어떤 대단한 것이 나올까……?

    베탄은 나를 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름하여 ‘찔러 베기’다. 말 그대로 찌른 뒤 베어 내는 공격이야.”

    “…엑?!”

    나는 그의 설명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뭐야, 찌르기와 베기는 지금 상태로도 할 수 있다고!

    두 개를 연계한다고 해서 엄청난 위력이 나올 것 같지도 않은데, 이게 내가 꼭 익혀야 할 스킬이란 말이야?

    나는 실망한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베탄은 예상했다는 듯, 상관도 하지 않은 채 이어 말했다.

    “기본이 가장 중요한 법이야. 가장 기초가 되는 찌르기와 베기만 잘해도 웬만한 아카데미 학생들은 쉽게 이길 수 있을 거다.”

    나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베탄을 믿어 보자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위력을 보여 주마.”

    그는 말을 마친 뒤 나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얼마 걷지 않아 우리가 도착한 곳은 딱 봐도 으스스해 보이는 골짜기였다. 여기저기 안개가 껴있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분위기를 더욱 음험하게 만들었다.

    “이곳이 어디죠?”

    “히드라 서식지다. 하지만 주 서식지는 저 골짜기 위쪽이고 이쪽엔 그리 수가 많지 않아.”

    “설마 히드라와 싸우려는 건가요?”

    나는 이 세계의 히드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따라서 눈에 보이면 몬스터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저길 봐.”

    그때 뿌연 안개 뒤쪽에서 얼굴을 세 개 가진 히드라 한 마리가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내가 스킬을 쓰는 것을 보아라. 한 번에 끝낼 거니까 집중하고 잘 봐 둬.”

    “네.”

    그는 천천히 히드라에게 다가갔다.

    저벅저벅.

    자갈이 밟히는 소리가 나자 히드라가 귀신같이 고개를 번쩍 드는 것이 보였다.

    “!!”

    크기만 해도 베탄의 다섯 배는 되어 보였다.

    게다가 목이 여러 개 달린 생김새만으로도 위협감을 줄 수 있는 몬스터였다.

    “몬스터 정보 확인!”

    +

    이름: 새끼 히드라

    등급: C

    설명: 머리가 여러 개 달린 형상을 한 뱀으로, 머리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힘의 세기가 더 강해진다. 공격력이 아주 강하고 맹독을 가지고 있기에 조심해야 하는 대상이다. 다행히…….

    +

    “C등급이구나.”

    웨어울프가 B등급이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나은 상대이긴 했다.

    베탄 또한 웨어울프를 한 방에 죽였기 때문에 히드라 또한 쉬운 상대일 것이었다.

    히드라에게 다가간 그는 나를 힐끗 보며 이쪽을 보라는 신호를 주더니, 이내 스킬을 발동했다.

    “찔러 베기.”

    날카로운 브로드 소드를 꺼낸 그가 금세 히드라에게 돌진했다.

    그러고는 뾰족한 칼끝으로 정확히 배를 찌른 뒤, 그 지점을 기준 삼아 가로 방향으로 주욱! 베어 버렸다.

    “끄허억…….”

    신음 소리 한 번 제대로 내보지 못한 채 히드라는 죽어 버렸다.

    그는 히드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고, 곧이어 나에게 다가왔다.

    베탄은 히드라를 한 번에 처리한 것 치고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후…….”

    가벼운 숨을 내쉬며 나에게 다가온 베탄이 말을 내뱉었다.

    “보았나? 간단한 기초 동작의 연계 스킬이라고 할지라도 숙련도가 높아진다면 이렇게 일격에 히드라를 처치할 수 있어. 이 정도 파워를 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코 얕잡아 볼 스킬이 아니라는 거다.”

    그가 땀으로 젖은 머리를 넘겼다.

    “이해했어요. 한번 해 볼게요.”

    당차게 말했지만 베탄이 급하게 저지했다.

    “무슨 소리야. 수명 단축할 일 있어? 너는 지금으로선 히드라를 잡을 수 없다고.”

    “아…….”

    내가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검술의 기초를 닦긴 했어도 히드라를 잡으려면 한참은 걸린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스킬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몬스터랑 싸울 생각을 하냐며 그가 타박을 주었다.

    쩝, 샐라임이 실전이 최고라고 해서 그렇게 하려고 했을 뿐인데.

    내가 알겠다는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원래 우리가 있던 언덕으로 돌아갔다.

    그때였다.

    나를 떨리게 만드는 그 소리.

    한 번도 좋은 기억이 없는 그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후…….”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읽기 전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놓아야 한다.

    이번엔 베탄과 관련된 퀘스트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

    어디 한번 보자.

    +

    # 제8 호감도 퀘스트

    제목: ‘대화할까요.’

    설명: 아직 다섯 번째 남주인공과 친해지지 못한 당신, 그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신상 정보 네 가지를 알아내시오.”

    제한 시간: 12시간

    보상: 랜덤 카드 1장

    페널티: 비무 대회 출전 불가.

    +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퀘스트를 열람했다.

    퀘스트의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남주인공에게 안기라든가, 뭘 먹여 주라든가 하는 퀘스트에 비하면 상전이었기 때문이다. 신상 정보를 알아내는 것쯤은 대화하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보상도 저번과 마찬가지로 랜덤 카드를 준다고 나와 있는데… 대체 저게 뭘까?

    이번에 꼭 성공해서 저 랜덤 카드가 무엇인지 알아내고 말 테다.

    페널티 부분은 비무 대회 출전 불가라는 충격적인 벌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성공하면 되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실패한 퀘스트가 한 개밖에 없는 만큼 자신감이 올라왔다. 게다가 그 퀘스트는 세이먼에게 안기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으니까, 이번엔 괜찮을 거다.

    “선생님, 잠깐 쉬었다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바로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무슨 소리지? 갑자기 왜 쉰다는 거야?”

    그가 의문을 제기하며 단번에 거절했다.

    끙.

    좀 있다가 쉴 때 다시 도전해야겠어.

    내 말은 귓등으로 튕겨 버린 베탄이 나를 언덕의 한 곳에 자리 잡게 했다. 그러고는 스킬의 원리와 발동 방법을 알려 주었다.

    비무 대회 본선 1차 경연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일.

    나는 3일 안에 ‘찔러 베기’를 익혀야만 했다.

    설정한 타점을 정확하게 찌른 뒤 가로로 베어 내는 것. 지금까지 전투를 해 오면서 무의식적으로 많이 해 본 동작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스킬로써 익힌다는 건 말이 달랐다. 똑같은 동작을 수천 번의 연습을 통하여 몸에 체득하는 것, 그것은 전투 시 마구잡이로 상대방을 찌르고 베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정교함과 위력을 주었다.

    “핫!”

    웨어울프를 한 번에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베탄 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찔러 베기’를 통해서 강한 일격을 날릴 수 있도록 연습해야 한다.

    나는 베탄이 가르쳐 준 대로 스킬을 익히고자 계속해서 움직였다. 애초에 아는 동작인지라 찌르고, 베었는데 베탄은 자꾸만 똑같은 단어를 외쳤다.

    “다시.”

    “한 번 더.”

    “다시.”

    동작은 간단했지만 이상하게도 베탄이 보여 줬던 위력의 반의 반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왜지? 어째서 전혀 스킬 같지 않은 거야?

    허수아비 앞에서 헉헉대는 나에게 베탄이 말해 주었다.

    “충분히 익힐 수 있어. 대신 죽을 만큼 노력해야 해.”

    거의 뭐 전교 1등에게 ‘안 자고 공부했어요.’라는 말을 듣는 것 같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익힐 수 없는 스킬을 제안했을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나에게 어울리고, 할 수 있는 걸 주었겠지.

    나는 그렇게 또 지옥 같은 반복 훈련에 들어갔다.

    똑같은 자세를 쉴 새 없이 몇천 번 반복한다는 것은 토악질이 나오는 행동이었다. 과장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토가 나올 것 같았다는 말이다.

    중간에 구역질을 하기도 한 나는 물을 벌컥 들이켜며 다시금 수련에 몰두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벌써 새까만 밤이 된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요 며칠간처럼 정해진 시간이 되자 똑같이 짐을 챙기고는 언덕을 나섰다. 그리고… 드디어 퀘스트를 실행할 때가 되었다.

    그의 신상 정보만 알아내면 된다 이거지!

    나는 게임을 플레이했기에 이미 그의 신상 정보는 웬만하면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그에게서 알아내는 것이 퀘스트의 내용이므로 하나하나 물어보기로 했다.

    나는 당차게 그에게 입을 열었다.

    먼저 이름.

    “선생님, 그러고 보니 이름이 뭐예요?”

    “……?”

    내 말에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는 표정이었다.

    “베탄.”

    짧게 대답한 그가 눈을 흘기더니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나는 급하게 그를 뒤 따라가며 물었다.

    “성이요, 성.”

    그러자 그가 아주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게 왜 궁금하지?”

    마치 스파이라도 만난 사람처럼.

    “…어……. 그래도 선생님인데 이름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태연한 표정으로 묻자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스파이는 아닌지 의심하는 표정 같았는데.

    “됐어, 그 정도만 알아 둬.”

    그러고는 도도한 고양이처럼 뒤를 돌았다.

    하, 이 사람, 이름도 제대로 안 알려 준다고?

    그래, 그럼 사는 곳.

    “그러고 보니 매일 테일러 마을로 게이트를 타시던데, 그쪽에 사시는 거예요?”

    이번엔 자연스러웠다.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내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베탄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적을 마주하는 듯한 눈빛.

    그리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누가 내 정보를 알아 오라고 시켰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