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만반의 준비(2)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맞붙어 보지 않아도 알았다.
저건 절대 내가 이길 수 없는 상대다.
공격력 수준이 달랐다.
“웨어울프가 왜 여기에…….”
숲 깊숙이 들어가지만 않으면 만날 일은 없다고 했는데 왜 여기까지 나온 거지!?
내가 평소에 수련하는 소리를 듣고 따라 나온 건가?
웨어울프는 머리는 늑대의 형상, 몸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팔과 다리는 아주 두꺼운 근육질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웬만한 타격은 허용되지 않을 만큼 단단해 보였다.
게다가 저 배에 선명하게 있는 복근.
삼 미터는 가뿐히 넘을 법한 키.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몬스터들 중 가장 강한 상대였다.
예선전에서 만났던 웨어베어와는 차원이 다른 수인형 몬스터였다.
“몬스터 정보 확인.”
+
이름: 웨어울프
등급: B
특징: 사람과 늑대가 섞인 수인형 몬스터다. 몬스터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공격력을 가졌으며 그만큼 아주 흉포하다. 웬만한 모험가들도 선호하지 않는 몬스터이며…….
+
무려 B등급이었다.
B등급이라 하면 D등급 몬스터보다 약 100배는 강한 상대였다.
매번 D등급 이하의 몬스터만 상대해 왔기 때문에 B등급 몬스터는 등장만으로 내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
“어, 어떡하죠?”
샐라임에게 묻자 그가 조용히 대답했다.
“승산이 없다. 무조건 도망쳐. 게이트까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웨어울프.
나는 더 이상 가까워지기 전에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으로 타이밍을 노렸다.
“지금이야!”
웨어울프가 코를 킁킁대며 주변의 냄새를 맡고 있을 때, 내가 발걸음을 뗐다.
“으아!”
뒤를 돌아 게이트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숲속이라 그런지 달릴 때마다 풀과 온갖 잡초들이 내 종아리를 스치는 게 느껴졌다. 묶은 머리도 헝클어진 지 오래였다.
빨리 달리는 탓에 넘어질 뻔하기도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땅바닥을 구르는 건 면할 수 있었다.
내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미, 미친!”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웨어울프가 미친 듯한 속도로 뒤에서 나를 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보폭이 매우 넓어 한 번 뛰는데도 거리가 쉽게 좁혀졌다.
“어떡해!”
숲을 거의 다 나왔으니 좀 있으면 게이트가 나올 거다.
조금만, 조금만……!
그때였다.
퍽!
“커헉!”
내 뒤로 바짝 붙은 웨어울프가 엄청난 크기의 주먹을 내 등에 냅다 꽂아 버린 것이다.
뼈가 부서질 듯한 감각을 느끼며 나는 저 멀리 날아갔다.
“크르릉…….”
이를 갈며 나를 쳐다보는 웨어울프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등을 맞고 저 멀리 날아가 나무에 처박힌 나는 일시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몸이 마비된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고작 주먹 한 대였는데도 이렇게 타격이 크다고?
그렇다면 진짜 싸움에 들어갔을 때는 얼마나 세다는 거야?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끼며 나는 앞을 바라보았다.
웨어울프의 드넓은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거구의 몬스터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쿵 쿵 쿵.
발도 어찌나 큰지 걸어올 때마다 땅이 울리는 것 같았다.
이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아마 저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목을 할퀸다면 난 그 자리에서 즉사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하냔 말이야……!”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빠르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내가 웨어울프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
아주 잘 쳐줘 봤자 5% 미만이다.
운 좋게 내 모든 기술들이 웨어울프의 약점을 공격한다고 가정했을 때였다.
하지만 웨어울프는 바보가 아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공격 정도는 가뿐히 피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진 수인.
게다가 저 근육은 단단해 보이기도 했지만 아주 날렵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쩔 수 없다. 싸워야지.”
그때 샐라임이 중얼거렸다.
이젠 도망갈 수 없으니 꼼짝없이 싸우는 수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움직이는 몸을 일으키며 칼을 뽑아 들었다.
샥.
그리고 공격은 빠르게 다가왔다.
후욱!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순식간에 웨어울프가 내 앞까지 돌진했다.
“헉!”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에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
“!!”
저 멀리 나동그라져야 했다.
그의 주먹은 내 배를 향했지만 가까스로 몸을 돌린 덕에 팔을 맞을 수 있었다.
얻어맞은 팔에 찌릿찌릿한 감각이 찾아왔다. 왼팔은 잠시 쓰지 못할 것 같다. 오른팔이 아니라는 거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나는 빠르게 정령을 소환했다.
“샐러맨더, 카사.”
그러자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 공격해.”
나무에 기대 주저앉으며 명령했다. 내 마나는 충분하니 정령들은 힘차게 공격할 수 있을 터다.
샐러맨더와 카사가 하늘 높이 떠서 웨어울프에게 화염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화르륵.
하지만 웨어울프는 그 공격들을 잽싸게 피했다. 어디서 어떻게 날아올지 아는 것처럼 아주 유연하고 여유로운 몸짓이었다.
“이런.”
내가 채찍을 꺼내 샐러맨더와 카사에게 버프를 걸어 주었다. 데미지가 두 배나 올랐고, 속도도 더 빨라졌는데도 웨어울프는 여전히 잽싸게 공격을 피했다.
어떻게 이런 몬스터가 있을 수 있지? 내가 지금까지 상대한 몬스터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한편으로는 나를 압도하는 첫 상대를 만났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게 죽음이 걸린 싸움이라는 게 문제지만.
“하아…….”
나는 무릎을 딛고 땅바닥에서 일어섰다. 가방에서 포션을 꺼내 콸콸 입에 퍼부었다. 억지로 체력을 키우는 동시에 진통 효과도 있었다.
나는 왼팔을 부여잡으며 웨어울프에게로 돌진했다.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휙!
그러자 그가 고개를 숙여 가볍게 피했다.
이번엔 그가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휙!
나 또한 뒤로 몸을 젖히며 피할 수 있었다.
웨어울프의 민첩성은 좋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거구인 탓에 둔탁함을 없앨 순 없었다.
하지만.
휙! 휙! 휙!
“으, 왜, 하나도, 안 맞는, 거야!”
이 거리에서 검을 쓰면 오히려 느려져 계속 주먹을 날리고는 있었지만, 그에게 내 주먹 정도는 쉽게 보이는 듯했다.
“그렇다면!”
내가 허리를 굽혀 주먹을 피한 뒤 다리를 들어 올려 그의 허리춤을 향해 돌려찼다.
나름 회심의 일격이었다.
퍼억!
운 좋게 내 다리가 그의 허리에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웨어울프는 도리어 내 발목을 잡고 내 몸을 통째로 돌려 버렸다.
그리고, 내 몸을 자신의 밑으로 집어넣어 깔려고 했다.
이건 거의 이종 격투기잖아!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어 줄 생각은 없었다.
“지금이야!”
그때 카사가 화르륵 불꽃을 태우며 웨어울프를 향해 짙은 화염을 쏘았다.
나와 싸우는 동안 움직일 수 없었던 웨어울프가 그대로 화염 공격을 맞을 수 있었고, 그의 오른팔에 불이 화르륵 붙었다.
그런데.
팔 전체에 붉은 불꽃이 붙었지만 그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
마치 오른팔의 감각이 없는 것처럼 불꽃이 타오르고 있어도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어……!”
괴물 맞긴 했다.
몬스터니까.
팔이 불로 타고 있는 웨어울프는 나를 자신의 밑에 깔았고, 휘두르려는 주먹을 하늘 높이 올렸을 때였다.
“그렇겐 안 되지!”
내가 잽싸게 몸을 옆으로 굴려 그의 밑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공격권을 웨어울프에게 뺏긴 탓에 나는 온전히 수비만 할 수 밖에 없었다.
퍽! 퍽! 퍽! 퍽!
내 얼굴과 허리, 팔,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커다란 주먹.
한 대만 맞아도 몸에 충격이 전해져 오는 펀치를 최대한 팔로 방어하며 그 순간을 견디고 있었다.
동시에 머리를 굴렸다.
형상 변화 스킬은 데미지가 너무 약해 웨어울프에게 쓸 수가 없었다.
‘붉은 낫’ 정도의 스킬도 웨어울프에게 생채기 정도밖에 낼 수 없을 거다.
운디네를 이용한 공격 또한 날렵한 몸짓으로 피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데미지가 강한 버프 공격은 웨어울프에게 맞혀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마치 불에 내성이 있는 것처럼.
마지막 보루인 중급 정령 소환 반지가 있긴 했지만 캐스팅 시간이 오래 걸려 가능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으로선 웨어울프의 공격을 막기에도 정신이 없는 상태였으니까.
“약점은 오직 하나……. 과연 맞출 수 있을까?”
몬스터 정보를 통해 알아낸 하나의 약점.
하지만 약점이라고 해 봤자 다른 곳보다 약할 뿐이지 바로 제압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게다가 부위가 너무 작았다.
모든 피부가 단단한 근육질로 뒤덮여 있어 공격을 허용하지 않는 웨어울프도 유일하게 연한 살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관자놀이.
관자놀이를 수차례 가격하면 잠시 동안이라도 웨어울프를 기절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판단보다 손이 더 빨랐다.
나를 가격하고 있는 웨어울프에게 일격을 날리려 타이밍을 보고 있던 찰나,
순식간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
귀 옆에 있는 관자놀이를 노린 것이다.
운 좋게도 나는 정확히 관자놀이에 맞출 수 있었고, 웨어울프는 머리에 충격이 가해졌는지 순간적으로 몸을 휘청거렸다.
“됐다!”
그때였다.
틈을 놓치지 않은 내가 마나를 두른 주먹으로 힘차게 웨어울프의 관자놀이를 한 번 더 가격하려고 했을 때였다.
순식간에 웨어울프의 노란 눈동자가 반짝하고 빛이 났다.
그리고 까만 동공이 작게 찢어지는 것이다.
“설마, 벌써, 밤이라고?!”
아까부터 해가 지고 있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싸움을 계속하는 동안 해는 금세 자취를 감추었고, 어둠이 짙게 숲속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웨어울프는 밤이 되면 그 공격력이 두 배가 뛰어오른다.
달의 정기를 받아 힘을 키우는 그들은 달이 떠오르는 순간 몸의 모든 능력이 치솟는 것이다.
탁!
휘두르려는 주먹이 눈 깜짝할 사이에 힘없이 떨어졌다.
웨어울프가 몸을 돌려 내 배를 향해 발차기를 한 것이다.
“커헉!”
배를 맞은 탓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피가 역류해 입에서 줄줄 흘러나왔다.
하지만 웨어울프에게 자비란 없었다.
퍼억!
그가 쓰러진 나를 발로 차 공중으로 보내 버렸다.
“으억!”
공중에 떠오른 동시에 웨어울프가 몸을 허공을 향해 날아오르더니 한 번 더 발차기를 날렸다.
진짜, 이러다간 죽게 생겼다.
생사가 갈리는 순간이 찾아왔다는 거다.
우당탕!
나무에 처박힌 채 주르륵 땅으로 떨어진 내가 신음을 흘렸다. 더 이상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웨어울프의 시간이 되었다. 그는 나를 신나게 쥐어팰 일만 남은 것이다.
어느 정도 웨어울프와 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자 크나큰 오산이었다.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오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내가, 이렇게, 약하다고…….”
더는 싸울 수가 없었다.
“그만……. 제발…….”
입에서는 애원의 소리가 나왔고, 곧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내몰린 순간은 처음이었다.
이건 내가 자초한 일이다. D등급의 몬스터들도 잰퓨어와 첸테 선배와 함께 잡은 주제에 겁 없이 웨어울프의 숲에 들어오다니.
그때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그건 바로,
“샐라임!”
샐라임을 소환하는 거였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샐라임이라도 소환해 보고 죽는 게 어떤가! 상급 정령인 샐라임이라면 웨어울프의 상대가 될 수도 있었다.
“샐라임을 소환할래요!”
“무슨 소리야, 나를 소환하면 너는 바로 즉사라고!”
“이미 그전에 즉사하게 생겼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차라리 샐리스트를 소환해 봐!”
“웨어울프도 상급 몬스터라 샐라임이어야 가능할 거예요. 제발 한 번만……!”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검을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하지만 샐라임을 소환하는 것 또한 캐스팅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내가 샐라임을 소환하는 시간보다 웨어울프가 내 목을 찢으러 오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이다.
제발, 제발 기적이 일어나길!
여기서 죽을 순 없단 말이야-!
휙!
생각도 잠시, 커다란 웨어울프가 공중으로 점프하며 나에게 몸을 던졌다. 달빛이 가려지며 큰 그림자가 나를 드리웠다. 순간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대로 인생 종결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남주인공들이랑 좀 더 즐겨 놓을걸…….
죽을까 봐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해 봤는데…….
그때, 내 눈이 터질 듯이 커졌다.
서걱!
나에게 달려들던 웨어울프의 목이 순식간에 날아가며 목 아래로 남은 몸뚱이가 나를 덮친 것이다.
“악!”
소리를 지르며 거대한 몸뚱이에 깔렸다.
“허억……!”
내가 숨을 헐떡이며 빠져나오려 애썼다.
그리고 그때, 한 남자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바닥에 깔려 있는지라 남자의 다리와 신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누, 누구…….”
나를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다.
나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차가운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렸고,
“…죽고 싶으면 나에게 말하지 그랬어.”
붉은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