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제5 남자 주인공(1)
세이먼은 자랑스러운 얼굴 반, 걱정스럽다는 얼굴 반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엔 내가 깃발을 빼앗기지 않고 무사하게 들어왔다는 것에 대한 대견함과 싸울 때 다칠까 봐 걱정한 우려가 담겨 있었다.
“세, 세이먼. 이것 좀…….”
내가 까치발을 든 채 얼굴을 붙들려 있자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에게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이쪽을 보며 웅성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학생회장이랑 사귀는 사이인가?”
“야, 근데 진짜 잘 어울린다.”
“근데 옆에 3 왕자님도 있는데?”
의도치 않게 관심을 끌게 된 것에 탄식하며 내가 그의 손을 떼어 냈다.
“뭐 하는 거예요. 놀랐잖아요.”
내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세이먼은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루나가 싸우는 모습은 처음 봐서 신기했어요. 검법과에 안 들여보낸 게 아까울 정도예요.”
그때, 옆에 있던 에르셈프가 한마디 거들었다.
“마키아는 검법과에서도 방어력이 좋기로 유명한 학생인데, 아주 잘 상대하더군.”
그의 말을 들은 나는 내 판단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보자마자 탱커 기질이 강할 것 같은 그를 정면 승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가 아예 무기를 컨트롤하지 못하도록 정교하게 손잡이를 노렸던 건데, 아주 다행이었다.
일시적으로 무기를 잡을 수 없게 된 그는 이빨 빠진 호랑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고마워요. 그런데 안에 있는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다친 사람들도 꽤 많을 텐데.”
잰퓨어가 생각나 물어본 질문이었다.
다리를 크게 다친 그는 아마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을 거다. 깃발을 찾으러 거대 사마귀에게 다가갔을 때도 절뚝거리던 채였으니까.
“의료팀이 붙어서 구조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요. 그러고 보니 잰퓨어가 없네요.”
“그도 정령으로 정찰을 보내던데, 깃발을 찾지 못했나 보군.”
“…하하.”
나는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사마귀에게 얻어터지고 있는 그를 내가 구해 줬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반면 세이먼과 에르셈프는 외관이 아주 멀쩡하고 깔끔한 상태인 모습이었다.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세이먼과 에르셈프는 어떻게 깃발을 찾았죠?”
그러자 에르셈프가 대답했다.
“세이먼과 탐색 중이었는데, 운 좋게도 깃발을 가진 무리가 우리에게 싸움을 걸더라고.”
그들은 깃발을 찾기도 전에 어떤 무리가 세이먼과 에르셈프를 공격했다고 말했다.
상대편은 네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였고, 깃발을 두 개 가진 상태였다고.
“세이먼이 감쪽같게도 깃발이 있는 척을 했더니 속아 넘어가더군.”
세이먼은 학생들에게는 친절하고 다정한 학생회장인 이미지를 무기 삼아 깃발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완전 양아치 아냐?! 상대편 무리는 두 개의 깃발이 추가로 필요하니 세이먼과 에르셈프에게 호기 어린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이다.
세이먼과 에르셈프의 실력을 모르는 1학년임이 분명하다.
싸움이 붙게 된 세이먼과 에르셈프는 순식간에 상대편 무리를 제압하고 두 개의 깃발을 빼앗았다고 했다.
이렇게 머리를 쓸 수도 있구나.
이건 거의 깃발이 먼저 세이먼과 에르셈프에게 다가와 준 셈이니 이렇게 빨리 합격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니까 같이 다니자고 했잖아요.”
세이먼이 눈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한편으로는 그들과 함께 다녔으면 금세 깃발을 찾아 순식간에 합격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오로지 나의 능력 테스트.
남의 도움을 빌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셋이서 같이 다녔으면 분명 둘은 나를 뒤에 두고 보호한 채 그들이 앞서서 싸웠을 테니.
“제안해 줘서 고마워요.”
나는 짧게 대꾸했다.
예선전의 합격자 자리가 전부 채워지자 감독관은 닫혀 있던 철문을 개방했다.
끼이익-
32명의 합격자와 시간 안에 들어오지 못한 나머지 학생들이 다 같이 철문 밖으로 나왔다.
“일주일 뒤에 본선 1차 경기가 시작됩니다. 다음 경기는 팀전으로 이루어지며, 배정된 팀원과 대진표는 경기 전날 공개됩니다. 당일까지 체력 회복과 경기 준비에 힘써 주시길 바랍니다.”
안내 방송을 들으며 밖으로 나오고 있을 참이었다.
그제야 나는 무언가가 내 머리를 치고 가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아까 세이프 라인 앞에서 싸울 당시에 급박한 나머지 신경을 못 쓴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세이먼!”
“네?”
+
이름: 세이먼 유리츠
나이: 18
직위: 유리츠 가문의 기사
호감도: 58%
+
“에르셈프!”
“무슨 일이지? 루나.”
+
이름: 에르셈프 카이센 비젠티아
나이: 18
직위: 비젠티아 왕국의 제3 왕자
호감도: 41%
+
착각이 아니었다.
싸울 때 들려왔던 호감도가 오르는 소리.
긴박한 나머지 신경 쓰지 못했는데, 지금 확인해 보니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이럴 수가…….”
나는 이마를 짚으며 탄식했다.
고작 싸우는 모습을 보여 준 것만으로도 호감도가 올라가 버리다니.
그들과 직접적으로 엮인 것도 아닌데 호감도가 오른 거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거잖아!?
“샐라임, 또 호감도가 오르고 말았어요. 내가 뭘 했다고…….”
내가 절망스러운 말투로 샐라임에게 속삭였다.
그러자 샐라임이 괜찮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괜찮아. 오성석만 활성화할 수 있으면 호감도 같은 건 전부 필요 없어지니까.”
“아……!”
내가 박수를 짝 쳤다.
맞는 말이었다.
오성석으로 소원만 이룰 수 있다면 남주인공들의 호감도가 얼마나 오르든 상관이 없었다.
100%가 되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호감도가 얼마나 높든 간에 소원만 빌 수 있으면 게임 시스템 자체가 사라져 버릴 테니까.
그러면 나는 결국 남주인공들의 호감도가 100%가 되기 전에 오성석만 활성화할 수 있으면 되는 거다.
심지어 99%가 되어도 괜찮다는 거니, 여유가 생긴 셈이었다.
더 이상 호감도가 오르는 만큼 내가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안절부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이런……. 너무 행복해.”
내가 감격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4%, 5%씩 오르는 호감도를 보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가!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오성석을 손에 넣는 것과 그걸 활성화하는 것.
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럼 조금은 즐겨도 되는 건가……?”
남주인공들을 떠올렸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미남에 어디 하나 모자란 구석이 없는 남자들이었다.
그런 남자들을 밀어 내는 것이 참 아까웠는데, 이제는 가끔씩 나도 즐겨도 되는 것 아닌가?!
“쓸데없는 소리 한다, 또.”
내가 이상한 상상을 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자 샐라임이 초를 쳤다.
“아, 왜요. 저도 사람이라고요. 잘생기고 멋진 걸 보면 마음이 두근거리는 건 본능일 뿐!”
“그 전에 오성석을 손에 넣어야 할 텐데? 수련에만 힘쓰기에도 시간이 모자라.”
그가 단호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다.
나에겐 소원을 이루려면 오성석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일차적인 목표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도 오성석을 빼앗기지 않을 실력을 갖춰야 하는 거고.
“그래, 루나. 일단 해야 하는 걸 하자고.”
나는 스스로 다짐을 하며 주먹을 쥐었다.
흐릿했던 시야가 걷히는 느낌이었다.
* * *
베탄은 직관석에 앉아 예선전이 치러지는 과정을 전부 보았다.
일반적인 관람석과는 달리 직관석은 마법 협회의 간부들만이 앉을 수 있었다.
램클리프 협회의 총기사단장을 맡고 있는 베탄은 비젠티아 아카데미에서 열리는 비무 대회에서 쓸만한 인재들을 뽑아오는 역할을 맡았다.
베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예선전을 치르는 학생들을 꿰뚫어 보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하얀 은발 머리를 한 작은 여자아이였다.
“예상외인걸.”
웨어베어와 싸우는 모습까지는 그리 특별한 것이 없었다.
정령 컨트롤이 나쁘지 않아 보이긴 했지만 그만큼 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넘치고 넘쳤다.
하지만 그의 눈을 사로잡은 건 바로 세이프 라인 앞에서의 싸움.
그녀를 둘러싼 열 명의 사람들을 한 번에 도발하지를 않나,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눈빛이 살아나는 것에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 학생은 적성이 어떻게 됩니까?”
옆에 있던 아카데미의 선생에게 물었다.
“어디 보자……. 정령술과네요. 그런데도 검술 실력이 참 좋군요.”
베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그녀를 비추고 있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자신의 몸집보다 세 배가 차이 나는 상대를 한 번에 제압할 수 있는 기지는 쉽게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 도끼 공격을 몇 번 막아 내던 것을 볼 때는 꼼짝 없이 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오러를 펼쳐 내어 검 자루를 타격하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었다.
피를 보고 싶지 않다는 듯 손목을 노리지 않고 제압만 하려는 판단까지.
“가볍게 볼 만한 학생이 아니겠어.”
그녀는 아까 본관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학생이었다.
평범한 학생이라 여겼고, 그리 이야기가 새어 나가지 않을 것 같아 입을 막지 않았지만, 맘 놓고 안심할 학생이 아닌 것 같다고 느껴졌다.
‘게다가 너무 닮았단 말이야.’
그는 자신이 아는 한 여자를 떠올렸다.
흔하지 않은 분홍색 눈동자가 어른거렸다.
마치 그녀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됐어.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는 가볍게 고개를 털었다.
자신이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이 아카데미에서는 자신이 부여받은 역할만 행하면 되는 거니까.
그는 턱을 쓸며 다시 화면을 쳐다보았다.
물의 정령을 불러 사람들을 쓸어 버리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총책임자 메니토가 베탄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탁!
베탄이 메니토를 쳐다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저 학생을 주시하게.”
짧고 간단한 말이었다.
메니토는 말수가 적지만 그만큼 한마디 한마디에 뜻이 있었다.
주시하라는 것은 단지 그 단어 그대로 지켜보라는 것이 아니었다.
뒤를 캐며 저 학생에 대한 정보를 알아 오라는 것.
그게 메니토가 한 말의 진의였다.
“알겠습니다.”
베탄이 고개를 까딱 숙였다.
그러자 메니토가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렇게 예의 차리지 않아도 된다니까.”
라인하르트 왕국 소속의 램클리프 마법 협회는 온건파의 입장으로서, 평화로운 분위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최근에 총기사단장으로 승급한 베탄이 너무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자 메니토가 손사래를 친 것이다.
“아……. 적응이 되지 않아 그랬습니다.”
“편할 대로 해. 편할 대로.”
“알겠습니다.”
베탄은 앞에 놓인 수많은 참가자의 인적 사항 서류를 뒤졌다.
곧이어 루이아나의 것을 찾아내었고.
“일 학년이라…….”
그 이외의 몇 장의 서류를 챙겼다.
예선전을 지켜보며 눈에 띈 학생들의 것들이었다.
사람의 뒤를 밟는 일은 사람을 시키면 되지만 그는 왠지 모르게 다른 느낌을 받았다.
‘본선이 시작하기 전에 알아봐야겠군.’
자신이 직접 알아내야 할 것 같은 느낌.
사적인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작업일 뿐.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는 학생들이 나오고 있을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은발 머리의 소녀를 발견했다.
격렬한 싸움을 한 만큼 옷과 머리가 엉망인 상태였다. 옆에는 남자 둘을 낀 상태였다.
베탄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기사복을 입은 키 큰 사내가 훌쩍 다가오자 그녀가 흠칫 놀라는 게 느껴졌고, 이내 그가 말을 내뱉었다.
“이야기 좀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