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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70)화 (70/156)
  • 69화. 깃발 뽑기(2)

    나는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거대 사마귀에게로 돌진했다.

    샐러맨더와 카사를 소환할 수 없었다.

    웨어베어를 빠르게 해치우기 위해 그들을 폭발시켜 강제로 정령계로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강제로 폭발시킨 정령은 일정 시간 동안은 다시 소환할 수 없었다.

    퍽! 퍽! 퍽!

    거대 사마귀는 덩치도 큰 주제에 아주 잽싼 몸짓으로 잰퓨어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휙!

    내가 사마귀의 얼굴 가까이로 점프해 빠르게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예상치 못하게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사마귀는 잠시 스턴에 걸린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를 틈타 내가 잰퓨어의 몸을 붙잡고 땅 위로 착지했다.

    공중에서 떠다니며 얻어맞았던 잰퓨어는 눈이 빙글빙글 도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입에서는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내가 그를 덮쳐 구하자 그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루, 루나?”

    “왜 그렇게 맞고 있어. 맘 약해져서 못 지나갔잖아.”

    내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싸움에 끼어든 이상 나에게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빠르게 해치우고 돌아가는 것,

    남은 자리가 반 토막 난 시점에서 이제는 속도 싸움이었다.

    정령도 소환할 수 없으니 지금으로선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잰퓨어, 어서 운디네를.”

    그러자 잰퓨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깃발을 정찰시키다가 마나를 전부 소모했어. 그래서 이런 상황까지 온 거고. 루나, 나는 여기에 두고 먼저 가. 너까지 탈락할 순 없잖아.”

    “어떻게 두고 가! 아까 보니까 거의 황천길 다 갔더만!”

    “화, 황 뭐?”

    “아, 아니야.”

    우리는 나무 뒤에 숨어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예전에 잰퓨어와 감정이 상한 이후로 처음 나누는 대화였다.

    그때는 다시는 안 볼 사이처럼 굴었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서 보니 둘 다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와중에도 거대 사마귀는 검은색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나무 사이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그때, 잰퓨어의 다리에서 피가 콸콸 넘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피! 피가 나잖아!”

    “아까 저 앞다리에 베였어. 루나도 조심해. 엄청 날카로우니까.”

    그는 천을 꺼내 상처를 압박하며 다리에 묶었다.

    “으으…….”

    아픔을 참을 수 없는지 신음 소리를 내며 응급 처치를 하고 있는데, 그때 소름 돋는 새까만 눈동자가 우리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

    콰앙!

    우리를 찾아낸 사마귀가 앞발을 거세게 휘둘렀다. 땅이 깊게 파이면서 흙먼지가 뿌옇게 올라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잰퓨어의 목덜미를 잡고는 잽싸게 몸을 피했다.

    “윽!”

    잰퓨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움직임이라 잰퓨어가 소리를 냈지만 그런 걸 봐줄 여유가 없었다.

    나는 몸을 피하면서 몬스터 정보를 확인했다.

    곤충이라면 무조건 약점이 있을 터였다.

    “잰퓨어, 여기서 좀만 기다려요.”

    정령을 불러내지 못하는 이상 근접전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검술이나 체술은 정령술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마나 운용법을 갈고 닦은 덕에 위력을 가할 수는 있었다.

    쉭!

    숏 소드를 뽑아 들고는 사마귀의 앞가슴으로 달려들었다.

    여타 사마귀의 특성처럼 거대 사마귀는 아주 겁이 없었고, 내가 달려오는 걸 보자 오히려 날개를 펴서 몸집을 부풀렸다.

    “징그러운 녀석!”

    사마귀의 앞가슴은 매우 가늘고 길었으며, 나는 점프하여 그곳으로 안착했다.

    내가 붙은 걸 알았는지 날카로운 앞발을 이리저리 휘둘러 댔고, 날개를 접었다 피며 난리를 부렸다.

    “좀 가만히 있어, 제발!”

    내 외침과는 달리 사마귀는 나를 떼어 내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나는 그 틈을 주지 않았다.

    앞가슴에 찰싹 달라붙어 내가 숏 소드로 외피를 쑤시려고 했지만,

    탕!

    외피가 어찌나 딱딱한지 칼이 들어가지 않았다.

    내 숏 소드 정도의 낡은 칼로는 작은 흠집 정도밖에 낼 수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앞가슴이 약점인 만큼 방어력이 뛰어나군.”

    나는 어쩔 수 없이 사마귀와 정면 대결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마귀의 가장 주요 무기는 저 시퍼런 낫 같은 앞발.

    저 앞발만 제거한다면 사마귀는 이빨 없는 호랑이와도 같았다.

    나는 사마귀의 몸에서 벗어나 땅으로 안착했다.

    “키야악…….”

    사마귀가 입에서 거품을 부글부글하며 나를 정면에서 쳐다보았다.

    빠르게 움직이는 겹눈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쫙 올라왔다.

    “내가 벌레 하나는 딱 질색인데!”

    어렸을 때부터 벌레라면 치를 떨었던 성격 탓에 지금 이 전투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백 배는 확대해 놓은 저 몸집은 알고 싶지 않아도 사마귀의 생체 기관들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빠르게 해치운다.”

    그리고 공격은 사마귀가 먼저였다.

    나를 향해 빠르게 기어와 앞발을 포물선의 형태로 휘둘렀다.

    휘익!

    나는 잽싸게 옆으로 피하며 칼로 그의 앞발을 내리쳤다.

    콰앙!

    롱 소드나 바스타드 소드와 같은 칼이었다면 한 번에 절단을 했겠지만 내 칼로는 꽤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른손 위에 왼손을 올리며 두 손으로 힘을 주어 칼날을 세웠다.

    그러자,

    “끼아악!”

    앞발 하나가 거칠게 잘려 나갔다.

    잘려 나간 앞발이 땅으로 툭, 떨어지자 사마귀는 순식간에 엄청난 흥분 상태로 돌입했다.

    “미, 미친. 왜, 왜 이래!”

    사마귀가 마구 포효하며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키야아아!”

    그러고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날개를 쫙 펼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쉭!

    나에게로 날아와 단단한 큰 턱으로 내 몸을 박아 버렸다.

    “아악!”

    엄청난 타격에 내가 눈을 잠시 감은 사이 사마귀가 입으로 나를 물어 올렸다.

    “!!”

    그러고는 날갯짓을 하며 위로 솟아오르더니 공중에서 나를 마구 흔들었다.

    “으억! 억!”

    나는 사마귀의 입에 물려 거꾸로 매달린 채 몸이 마구 흔들렸다.

    그러자.

    “안 돼!!”

    내 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깃발이 빠져나왔다.

    “제발! 제발!”

    내가 손을 뻗어 깃발을 잡으려고 했지만 깃발은 살랑거리는 몸짓으로 바람을 타고는 휭 날아가 버렸다.

    저걸 구하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지금 저게 없으면 본선으로 못 올라간단 말이야!

    그 와중에도 안내 방송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11 자리 남았습니다.”

    곧 있으면 한 자릿수대로 들어간다.

    이러고 있다간 오성석은커녕 사마귀 밥이 되게 생겼다고!!

    “이런… 망할 사마귀 놈이…….”

    내가 눈을 시퍼렇게 떴다.

    단번에 죽여 버려야 한다.

    지금 서로 대치할 시간 따위는 없다.

    나는 그의 입에 물려 있는 것을 이용해 주먹으로 얼굴을 갈겼다.

    퍼억! 퍼억! 퍼억!

    주먹이 까질 정도로 센 펀치였다.

    그러자 사마귀가 날카로운 이빨로 내 목을 쥐려는 낌새가 보였다.

    그렇게는 안 되지!

    나는 양손으로 사마귀의 입을 붙잡고는 위로 쫘악 벌렸다.

    그러자 침이 가득한 이빨과 입 내부가 보였다.

    그리고 소리쳤다.

    “운디네! 나와 계약을 해 다오!”

    옛날에 샐라임이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잰퓨어의 정령이 나와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나도 운디네와 계약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실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충분히 도전해 볼 만했다.

    내가 큰 소리로 외치자 순식간에 공중에 운디네가 쏙 떠올랐다.

    “정령계의 빛과 인간계의 빛이 하나가 되노니, 나는 그대와 마주하여 악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고자 한다.”

    내 주변에서 빙글빙글 도는 운디네.

    “나를 위한 창이자 방패가 되어 다오.”

    그러자 운디네가 망설임 없이 나에게로 휙 다가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휘리릭 소용돌이치더니 날카로운 얼음으로 변하였다.

    나는 쫙 벌렸던 사마귀의 입을 더욱 크게 찢으며 내뱉었다.

    “없애 버려!”

    그러고는 내가 벌린 입으로 돌진하더니 사마귀의 얼굴을 통째로 파괴해 버렸다.

    “키야악!!!”

    단말마의 비명을 남긴 채 사마귀는 풀썩, 쓰러졌고 나는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다시 사람 모양으로 변한 운디네가 땅에 처박히기 직전에 나를 쏙 안더니 가볍게 땅에 착지하게 해 주었다.

    “고마워, 운디네.”

    내가 부리는 원소의 정령이 아닌데도 계약하자마자 나를 잘 따르는 걸 보니 운디네도 내가 맘에 드는 것 같았다.

    원래라면 불과 물은 상성이 반대여서 싫어할 법도 한데, 운디네는 나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만 돌아가도 좋아.”

    운디네는 금세 정령계로 자취를 감추었고, 나는 잰퓨어를 내려놓았던 곳으로 향했다.

    “5 자리 남았습니다.”

    다들 깃발을 찾은 건지 빠른 속도로 합격자 자리는 채워지고 있었다.

    내가 사마귀의 침으로 범벅된 채 잰퓨어의 앞으로 가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루나, 죽인 거야?!”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잰퓨어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더니,

    “이리 와.”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곳은 바로 죽어 있는 거대 사마귀 앞.

    “왜 여기에…….”

    그러자 잰퓨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칼 좀 빌려줄래?”

    내게서 칼을 받아 들은 잰퓨어가 거대 사마귀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앞가슴 앞에 주저앉아 칼을 두 손으로 쥐어 잡은 뒤,

    콰악!

    온 힘을 다해 앞가슴을 찔렀다.

    여전히 단단한 나머지 칼이 얕게 꽂히는 정도였고, 잰퓨어는 멈추지 않았다.

    콰악! 콰악! 콰악!

    “뭐 하는 거야, 잰퓨어!”

    하지만 잰퓨어는 여전히 말을 않은 채 앞가슴만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수차례의 시도 끝에 앞가슴의 껍질을 파헤친 그는 그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으으…….”

    보는 내가 소리를 낼 정도였다.

    저 몸속에 왜 손을 넣는 거지?

    잰퓨어는 앞가슴 속에 넣은 손을 이리저리 몇 번 휘젓더니, 무언가를 꺼내 올렸다.

    “깃발……!”

    그는 깃발을 찾고 있던 것이었다.

    “정찰 보냈던 운디네가 사마귀 몸속에 있다고 알려 줬어. 하지만 마나 관리를 잘못해서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던 거고.”

    깃발이 몬스터의 몸속에 있다니.

    예상하지도 못했다.

    하긴 웨어베어의 꼬리에도 묶여 있었으니 몸속이라고 이상할 건 없었다.

    사마귀와 싸우다가 바람에 날아가 버렸기에 나에게는 깃발이 없었다.

    다섯 자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깃발을 다시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나는 예선전에 통과하지 못할 상황에 처해 버렸다.

    “잰퓨어, 어서 가.”

    잰퓨어라도 어서 세이프 라인에 가라는 뜻으로 말하자 잰퓨어가 고개를 저었다.

    “자, 이건 루나 거.”

    그러고는 체액에 범벅이 된 깃발을 나에게 내밀었다.

    전혀 아깝지 않다는 표정을 한 채였다.

    당연히 나에게 주는 것이 맞다는 듯.

    “네 것이잖아. 내 건 바람에 날아가서 빨리 찾으러 가야 한다고.”

    내가 받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자 잰퓨어가 더욱 깃발을 내밀었다.

    “2 자리 남았습니다.”

    이제는 아슬아슬한 숫자가 나왔다.

    두 자리라니, 지금 당장 뛰어가도 가능할까 말까 한 수준이다.

    “자.”

    잰퓨어가 내 손에 깃발을 쥐여 주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

    사마귀를 쓰러뜨린 건 나지만 찾아낸 건 잰퓨어가 아닌가.

    깃발을 잃어버린 건 내 책임이고.

    하지만.

    “땡큐, 잰퓨어.”

    나는 깃발을 손에 쥔 채 깔끔하게 인사하고는 뒤를 돌아 전속력으로 달렸다.

    어쩔 수 없잖아.

    난 예선전에 통과해야 한다고.

    뒤를 돌아보니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잰퓨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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