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67)화 (67/156)
  • 66화. 비무 대회 준비(2)

    샐라임의 투정으로 우리는 학교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레크리드와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샐라임의 기분을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었다. 레크리드가 네 번째 남주인공으로 나오고 나서 직접적으로 엮이는 상황은 나오지 않았다.

    세이먼과 에르셈프, 잰퓨어 때는 필사적으로 나와 엮으려고 했던 시스템의 의도와는 달리 지금은 아주 평온해진 것이다.

    무슨 속셈이지……? 의심부터 하는 습관이 생긴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레크리드를 좋아하게 되어서 그런가? 아니면 아직 사건이 일어날 때가 되지 않은 것뿐인가?

    하긴, 아직 마지막 남주인공도 등장하지 않았으니 급하게 생각할 건 없었다. 그것보다 세이먼, 에르셈프, 잰퓨어의 호감도를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흐음…….”

    세이먼의 호감도는 50%대, 에르셈프와 잰퓨어의 호감도는 30%대였다.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호감도를 올리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그들을 밀어 내는 것은 너무 일차원적인 대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퀘스트는 계속해서 내려올 것이고, 나를 위협하는 사건들도 계속해서 벌어질 텐데 그럴 때마다 남주인공과 엮이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

    무언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나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때 샐라임이 말을 걸었다.

    “너 보상은 확인해 봤어?”

    “맞다. 잊고 있었어요.”

    히아신스의 살인 표적 퀘스트의 보상으로 전설급 아이템이 내려왔었다.

    분명 ‘수없이 봉인된 반지’라고 했었는데.

    “재수 없게 또 봉인이랑 관련된 물건이네?”

    샐라임이 투덜거렸다.

    내가 아이템창에 있는 반지를 꺼내 살펴보았다.

    +

    이름: ‘수없이 봉인된 반지’

    등급: 전설급

    설명: 불의 중급 정령 ‘샐리스트’가 봉인된 반지다. 일정 시간 동안 소환이 가능하며, 전투 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주의 사항: 소환사의 등급과 일치하지 않을 시 몸에 큰 무리를 줄 수 있음.

    +

    아이템 설명을 본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뭐야! 중급 정령이 봉인되어 있다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냐.”

    “중급 정령 ‘샐리스트’가 봉인되어 있고, 일정 시간 소환이 가능하대요.”

    “그래서 봉인된 반지라는 거군. 별거 없잖아.”

    샐라임은 뭐가 그리 놀랍냐는 듯 대꾸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반문했다.

    “별거 아니라뇨. 하급 정령술사인 제가 중급 정령을 부릴 수 있다는 거잖아요!”

    하급과 중급의 차이는 천지 차이라고 했다.

    평생을 하급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한 이 정령술의 세계에서 나는 아이템 하나만으로 중급 정령을 일시적으로 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샐라임은 여전히 덤덤한 말투였다.

    “그래 봤자 일시적 소환이잖아. 네가 중급 정령술사가 되어서 중급 정령을 부리는 게 훨씬 더 좋다고.”

    “이런 공감 능력 없는 정령 같으니…….”

    그런데 주의 사항이라는 게 있었다.

    소환사의 등급과 같지 않을 시 몸에 무리를 준다니?

    “주의 사항은 무슨 뜻이죠?”

    “하급 정령술사가 중급 정령을 소환하려고 하면 몸에 무리가 간다는 뜻이야. 사실상 당연한 소리지.”

    “아……. 그러면 소용없는 건가요.”

    내가 시무룩한 말투로 대꾸하자 샐라임이 말했다.

    “너는 하급 정령술사 중에서도 실력이 높은 편이니 중급 정령 정도는 그리 무리가 가지 않을 거야. 그 이상이라면 모를까.”

    샐라임의 말을 듣던 내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데 샐라임도 칼에 봉인되어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봉인은 풀 수 없어도 소환은 가능한 거고.”

    “그렇지.”

    “그러면 저도 샐라임을 일시적으로 소환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였다.

    상급 정령술사는 될 수 없지만 상급 정령을 일시적으로 소환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샐라임은 코웃음을 팡 치며 말했다.

    “가능하겠지. 대신 죽을걸?”

    “……?”

    내가 아무 말 없이 없자 그가 말을 이었다.

    “네 정령술의 레벨이 너무 낮아. 네가 지금 레벨이 몇이랬지?”

    “11이요.”

    “중급이 되려면?”

    “15는 넘어야 된다고 나와 있어요.”

    시야에 레벨 수치를 나타내는 막대를 띄우며 말했다.

    “상급은?”

    “30이요.”

    “나는 상급 정령 중에서도 높은 편이니까 한 40은 되어야 할 거야.”

    “헉…….”

    “그러니까 지금 나를 옆에 두고 있어도 소환은 할 수 없다는 거지.”

    내가 약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샐라임은 이걸 이미 알고 있었나?

    봉인은 풀 수 없어도 소환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왜 진작 말을 안 했어요?”

    내가 묻자 샐라임이 무슨 그런 소리를 하냐는 듯 대답했다.

    “소환하면 죽을 텐데 뭐 하러 그런 이야기를 해.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라 너도 알고 있는 줄 알았지.”

    “이런…….”

    내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샐라임이 영원히 칼에서 못 나올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내가 40레벨만 되면 소환은 가능하다는 것이 아닌가!

    물론 40레벨이 된다는 건 까마득한 일이지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지금 실력으로 나를 부를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라. 온몸이 터져서 죽을 수도 있으니까. 난 너 죽는 거 보기 싫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요.”

    나도 죽는 건 사양이었으니 현 상태에서 샐라임을 소환할 생각은 없었다.

    나중에 반지를 이용해 중급 정령이나 소환해 봐야지.

    나는 ‘수없이 봉인된 반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검은색으로 빛나는 돌이 박힌 반지는 왼손 중지에 쏙 들어갔다.

    쫙 핀 손가락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샐라임이 말을 걸었다.

    “그런데 너, 이번 비무 대회 나갈 거냐?”

    “글쎄요. 다들 묻기는 하는데… 사실 우승 상품이 별로 기대가 안 되어서요.”

    “뭔데?”

    “아티팩트 ‘듀이타나’라고 개화를 도와주는 물건이래요.”

    “흠……. 확실히 개화는 스스로의 힘으로 하는 게 가장 좋긴 하지. 아티팩트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고.”

    그의 말을 듣자 더욱 비무 대회에 나갈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괜히 고민했네, 깔끔하게 나가지 말아야겠다.

    “이 등이나 삼 등 상품은 없어?”

    내가 머리를 더듬어 대답했다.

    뭐였더라……. 별로 좋은 게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이 등 상품이 오성석이라고 했었나? 전설로 내려오는 돌인데 사실상 효능이 없어서 쓸 데가 없대요.”

    아미카 선배가 옆에서 중얼거리던 소리를 기억해 냈다.

    일 등 상품이랑 이 등 상품의 격차가 너무 크다며 투덜거렸었지.

    그런데 그때 샐라임이 꽥 소리를 질렀다.

    “뭐?!!”

    “아휴 깜짝야! 왜 소리를 질러요.”

    내가 심장을 부여잡으며 대답했다. 샐라임이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건 처음이었다.

    “미, 미친 거 아냐? 오성석이 상품으로 내려온다고? 너네 학교 미친 거 아냐?”

    “이번 자매 교류회가 율리우스 제국의 학교니까 상품이 좀 더 좋다고는 했는데……. 무슨 일이에요, 샐라임.”

    그러자 샐라임이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너 신성석이 뭔 줄은 알지?”

    “잘 알진 못하는데, 별 박힌 돌 아니에요? 가지고만 있어도 힘이 세진다는 돌.”

    “맞아. 일성석부터 사성석까지 있는데 별의 개수가 높을수록 더욱 큰 힘을 선사하지.”

    “그런데요?”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던 이야기인데, 신성석은 사성석을 넘어서는 오성석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어. 별이 다섯 개인 오성석은 힘이 강해지는 게 아니라 무려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돌이라고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오성석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오성석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지.”

    “…….”

    “그러던 도중 어떤 마법사가 오성석을 손에 넣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아무런 효능이 없는 돌이었던 거야. 실망한 마법사는 오성석을 버려 버렸고, 그리고 행방을 감추었지.”

    “결국 쓸모없는 돌이라는 건 똑같은 거 아니에요? 부풀려진 소문 같은…….”

    김새는 말을 들은 난 결국 침대에 그냥 누워 버렸다. 샐라임이 계속해서 들어 보라는 듯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오성석은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는 돌이 맞아. 다만 오성석을 쓰기 위해서는 특정 조건이 붙지만……. 아무튼 저거는 무려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엄청난 것이란 말이다!”

    “샐라임은 어떻게 알았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왜 이렇게 좋은 걸 모르는 거죠?”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라 사람들은 믿지 않았어. 게다가 믿는다고 하더라도 사용 방법을 알지 못했고. 하지만 내가 살아온 세월이 천 년이다. 운이 좋게 오성석을 활성화해 소원을 이룬 자를 한 번 볼 수 있었지. 그러니 나는 사용 방법을 안단 말이다.”

    소원을 이루어 준다니.

    정말 가능한 일일까?

    나는 다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소원이든 상관없는 거예요?”

    “내가 본 자의 소원은 신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어. 그리고 실제로 그는 신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듣자 순간적으로 내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신이 되고 싶다는 소원도 가능하단 말이야?

    소원의 범위가 인간계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된단 말이지.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다면…….

    “내 소원도 가능할까……?”

    바로 다섯 남자에게서 벗어나는 것.

    즉 나를 괴롭히는 이 게임 시스템을 깨부수는 것 말이다.

    “소원은 무엇이든지 가능해. 네가 전생에 죽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해도 가능할 거다.”

    “그래도 전생보다는 지금 삶이 조금, 아주 조금 더 나아요.”

    샐라임에게 대꾸한 뒤, 마저 생각을 이어 갔다.

    언제까지 호감도가 오를까 봐 전전긍긍하며 삶을 살아갈 순 없다.

    호감도는 언젠가 100%를 찍고 말 것이고, 그러면 난 꼼짝없이 인생이 끝나 버릴 거다.

    이것에서 나를 구출해 줄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 방법.

    그건 바로 이 게임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

    게임 시스템에서 자유로워진다면 나는 다섯 남자들의 굴레에서도, 호감도의 늪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전설의 돌이 고작 비무 대회의 상품으로 나오다니……. 다들 무시하고 있지만 진정한 사용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 거다. 사라진 지 오백 년도 넘은 하찮은 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겠지.”

    그의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자유로워질 수 있어…….”

    드디어 이 거지 같은 게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알아낸 기분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저 돌이 필요한 거고.

    “출전할래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돌을 손에 넣어야겠어요.”

    몸속에서 열기가 끓어 오르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대회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잘 생각했다, 꼬마.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내가 비무 대회에서 이 등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였다.

    다른 과의 학생들도 전부 섞여 실력을 가리는 대회인 만큼 미래를 예상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타 적성의 학생들과 싸워 본 경험이 전무했다.

    게다가 내 정령술의 레벨은 고작 11일 뿐.

    하급 정령술사 중에서는 높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과 학생들의 실력이 어떨지 몰랐다.

    비무 대회가 시작하기 전까지 최대한 레벨을 많이 올려놓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모집 기간이 오늘까지던데!”

    나는 급하게 나갈 채비를 한 뒤 밖을 나섰다. 학교 곳곳에는 비무 대회 모집 공고가 붙어 있었다.

    “출전 조건이 ‘마나 감응에 탁월한 자’네요.”

    “마나 감응은 너를 따라올 자가 없을 텐데.”

    마나 감응은 예전에 성공한 것이니 출전 조건은 가뿐히 성공한 셈이었다.

    그렇게 지원서를 내러 본관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등을 톡톡 두드렸다.

    “?”

    뒤를 돌아보자 에르셈프가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

    순간적으로 내 목을 조르던 에르셈프의 모습이 생각나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루나, 무슨 일이지? 왜 그러는 거야.”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점점 다가왔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몸을 밀쳤다.

    퍽!

    “뭐지……?”

    그러자 에르셈프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 내 생애 누가 날 밀친 건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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