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비무 대회 준비(1)
히아신스의 칼부림 사건이 무색할 정도로 학교는 금세 잠잠해졌다.
곧 있으면 다가올 비무 대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관심사는 전부 비무 대회로 쏠렸고, 다들 출전을 대비하기 위해 연습에 몰두했다.
정령술과 게시판에도 비무 대회에 출전할 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었다.
“루나, 이번에 출전할 거야?”
아미카 선배가 어느새 옆으로 와서 넌지시 물었다.
“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요.”
예선과 본선 1차, 2차로 이루어지는 비무 대회는 모든 반을 섞어서 진행한다는 점에서 흥미가 가긴 했지만, 굳이 출전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샐라임과 수련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선배는 출전해요?”
“당연하지. 나는 이날만을 기다렸다고. 졸업하기 전에 마음껏 싸워 봐야 하지 않겠어?”
아미카 선배는 싸움광이었다.
그저 싸우는 것이라면 전부 좋다는 마음으로, 싸움 자체를 즐겼다.
그녀는 벌써부터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출전 조건을 살피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정령술과의 상위권 선배들은 대부분 출전한다고 했다.
다들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세이먼과 에르셈프, 잰퓨어는 출전하려나?
세이먼과 에르셈프는 실력이 출중한 만큼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권유할 것 같았다.
잰퓨어는 어떠려나.
아직까지도 잰퓨어와 어색한 탓에 그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 친구 관계가 파괴 직전이라는 경고도 왔었기에 지금 잰퓨어와의 관계는 아주 아슬아슬한 사이일 것이다.
페널티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당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러다가 잰퓨어 호감도 퀘스트라도 내려오면 곤란할 텐데.
나는 턱을 잡고 생각하다가 아미카 선배에게 대답했다.
“고민 좀 해 봐야겠어요.”
올해 비무 대회 우승자 상품은 ‘듀이타나’라는 아티팩트였다.
최근 들어 가장 실력 있고 유명한 마법사 ‘듀이타나’가 직접 개발한 것으로, 손에 넣은 자는 ‘개화’라는 것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개화’는 본인의 능력보다 열 배 이상의 능력으로 뛰어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듀이타나’는 짧은 시간 안에 실력자로 성장할 수 있는 부스터 역할을 하는 물건인 것이었다.
“흐음…….”
나는 게시판에 붙은 공고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누가 봐도 탐나는 상품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관심이 가지 않았다.
스스로 쌓은 실력이 아니라 아티팩트의 힘을 빌린 실력이라면 언젠가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뭐, 어쨌든 모집 기간은 여유로웠으니 급하게 생각할 건 없었다.
* * *
나는 히아신스의 인질극 이후로도 샐라임과 매일 같이 훈련을 했다.
히아신스에게 인질로 잡혔다는 것을 이유로 펠리엇에게는 병가를 냈다.
수업 걱정 없이 샐라임과 마음껏 수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수련에 들어간 샐라임은 비장하게 말했다.
“마나 운용법의 마지막 단계는 바로 ‘마나 활용’이다. ‘마나 감응’과 ‘마나 방출’을 모두 익혔으니 남은 건 지금까지 배운 걸 활용하는 것뿐이다.”
마나 감응은 말 그대로 마나를 느끼는 것.
그리고 마나홀을 만들어 몸 전체에 회전을 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전에 샐라임과 공터에서 수련할 때와 에르셈프가 도와줬을 때 확실히 익혔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수련에서 ‘카사’라는 하급 정령과도 계약했다. 내 얼굴만 한 크기의 불꽃 모양을 한 정령이었는데, 화염을 쏘는 능력이 샐러맨더보다 더 탁월했다.
어느새 나는 두 종류의 정령을 한 번에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번째 단계인 마나 방출은 검에 오러를 덧씌우는 것처럼 실체화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단계는 샐라임이 가장 집중적으로 훈련시킨 분야였고, 그에 따라 나는 문제 없이 오러 발동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단계는 ‘마나 활용’으로, 샐라임의 말에 의하면 마나 운용법의 정수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정령 스킬은 전부 ‘형상 변화’에 그쳤지. ‘형상 변화’는 순식간에 원하는 모양으로 바꾸어 자유로운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단점이 아주 명확하다.”
“그게 뭔데요?”
“바로 데미지가 너무 약하다는 점이야. 정령술사가 검술 같은 다른 술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강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정령들의 폭발적인 피해 능력에 있다. 하지만 형상 변화는 메인 공격으로 치기엔 너무 약하지.”
“그럼 ‘마나 활용’이 폭발적인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건가요?”
“그렇지. 직접적인 공격을 가할 수도 있고, 네가 직접 정령에게 버프를 걸어 줄 수도 있어. 스킬을 몇 가지 알려 주마.”
샐라임은 그 어떤 때보다 진지한 태도로 나를 가르쳤다.
평소에 실없는 장난을 치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듯했다.
“이 스킬은 일명 ‘채찍질’이다. 정령에게 버프를 걸어 주는 것인데, 정령에게 두 대를 때릴 때마다 정령의 데미지가 올라가지.”
“이 귀여운 정령들을 어떻게 때려요!”
내가 기겁한 표정으로 말하자 샐라임은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정령들은 그런 걸 더 좋아해.”
“헉…….”
말을 잇지 못하자 샐라임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잔말 말고 마나로 채찍질을 한다는 느낌으로 손을 휘둘러 봐.”
나는 길고 가느다랗게 마나를 방출한다는 느낌으로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착! 착!
푸른색으로 빛나는 채찍이 공중에 생겨나며 내 손에 잡혔다.
“이제 카사랑 샐러맨더를 때리는 거야.”
“너무 미안한데…….”
내가 눈을 찡그린 채로 카사와 샐러맨더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자 탱탱한 소리가 나며 정령들이 타격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정령들의 몸에 화염이 화르륵, 올라오며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나무를 쓰러뜨려 봐.”
내가 정령들을 조종하자 붉게 빛나는 정령들이 나무를 향해 마구 돌진하기 시작했다.
우지끈!
그리고 몇 번의 타격 만에 두꺼운 나무가 쓰러졌다.
“와, 이렇게 강해질 줄이야.”
“기본적으로 탑재해야 할 공격 방법이야. 이제 너는 정령들을 조종하면서 적당한 때에 버프를 걸어 주는 능력을 길러야 해.”
샐라임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가르쳤고, 그렇게 나는 ‘마나 활용’을 이용한 스킬을 몇 가지 더 배웠다. 또한 배운 스킬들의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계속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렇게 고된 수련을 하다 보니, 벌써 레크리드와 약속한 날짜가 다가왔음을 알아챘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단 말이야?”
“매일같이 수련만 했으니 날짜 개념이 없어질 법도 하지.”
“어서 가요. 어서.”
나는 풀밭에 널브러진 짐을 가방에 챙기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숲을 나섰다.
* * *
‘매그넘 마법 상점’에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레크리드가 나를 맞이해 주었다.
“루이아나 씨!”
하늘색 셔츠를 입은 채 단추 두어 개를 푼 그의 모습은 오늘따라 더 청량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았다.
“레크리드.”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괜히 마음이 몽글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잘 지냈나요? 어떻게 지냈어요? 울리프는 어땠나요? 잘 따르던가요?”
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지만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아……. 발차기 실력이 워낙 출중해서 코피 터지는 줄 알았답니다.”
“이런, 울리프가 또 심술을 부렸군요. 얌전히 갔다 오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괜찮아요. 다음번엔 좀 낫겠죠.”
내가 손을 흔들며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레크리드가 가게 안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키베리아 씨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답니다. 어서 들어가 봐요.”
그의 말을 듣자 긴장이 확 올라왔다.
드디어 샐라임이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다니!
떨리는 기분으로 상점 안에 있는 작은 방으로 향했다. 샐라임도 별말이 없는 걸 보니 한껏 긴장한 것 같았다.
키베리아 씨는 하얀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 있는 노인이었다.
“봉인된 정령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아신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바로 본론을 꺼내며 칼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 안에 봉인이 되어 있다는 건가?”
“네, 맞습니다. 수백 년 전에 봉인되었다고 들었어요.”
“정령의 등급이 어떻게 되지?”
“불의 상급 정령, 샐라임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말하자 키베리아 씨가 잠깐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상급 정령이로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내가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혹시 안 된다고 할까 봐 걱정이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령의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그보다 위의 등급 정령이 있어야 가능하네. 하급, 중급 정령이라면 상급 정령이 필요하지.”
“그럼 상급 정령이라면…….”
내가 말끝을 흐리자, 키베리아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령왕을 만나야 해.”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정령왕을 어떻게 만난단 말인가?
아직 하급 정령술사인 내가, 정령왕을 어떻게 소환할 수 있냔 말이다.
“정령왕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첫 번째는 상급 정령술사를 넘어서서 정령왕과 계약할 수 있는 정령술사가 되는 것이네.”
“두 번째는요?”
“바로 정령국에 가는 거지. 갈 수 있는 방법은 아주 어렵다고 알려져 있지만, 혹시 모르지 않나.”
“…그렇군요.”
내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사실상 첫 번째 방법은 지금으로선 불가능에 가까웠다.
상급 정령술사가 되는 것도 모자라 그 위의 단계까지 올라야 한다니.
가능하다 해도 아마 오랜 세월이 지나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령국을 찾아가는 방법뿐인데.
그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정령국이라는 말도 오늘 처음 들어 보았는데, 내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령국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허허, 이 아가씨 정말 찾아갈 생각인가 보네. 북쪽 숲을 헤쳐서 쭉 가다 보면 정령국으로 통하는 통로가 나온다고들 알려져 있지만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일 뿐이야. 애초에 북쪽 숲을 통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일세.”
“그렇군요…….”
“언젠가 훌륭한 모험가가 되어서 정령국을 찾아가 보길 빌겠네.”
키베리아 씨는 그렇게 정보를 알려 주고는 일이 있다며 인사를 한 뒤 나갔다.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방에서 나왔다.
봉인을 풀 수 있는 방법이 간단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샐라임을 꼭 꺼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러다가는 영원히 칼 속에서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샐라임은 희망을 잃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나 또한 쉽사리 말을 꺼낼 수가 없어서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땠나요, 원하는 정보를 들었나요?”
레크리드가 궁금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고마워요, 레크리드.”
내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하자 그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런, 아닌가 보군요.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나요?”
“방법이 너무 어려워서요.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닌데, 허탈하네요.”
레크리드가 더 자세하게 묻자 나는 키베리아 씨와 나눈 대화를 짧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레크리드가 말했다.
“루이아나 씨는 꼭 갈 수 있을 거예요. 관련된 정보가 들어오면 알려 줄게요.”
“제가 정말 정령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럼요. 많은 사람들이 정령국이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분명 가지 못할 곳은 아닐 거예요. 그리고, 간절히 바라면 못 이룰 게 없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레크리드의 모습이 참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약간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고마워요, 레크리드.”
그렇게 레크리드와 묘한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샐라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나가자, 꼬마.”
“…….”
“나가자고. 나 기분 안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