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64)화 (64/156)

63화. 다가오는 죽음(3)

“뭐, 뭐…야?”

히아신스는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의 목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엔 붉게 벼려진 칼날이 목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듯이 서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그건 진짜 칼날이 아니라는 것을.

그 칼날은,

“불꽃 칼날.”

내가 구석에 숨어 있을 때 만들어 낸 불꽃 칼날이었다.

샐러맨더를 불러 스킬을 쓴 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으라고 명령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스킬을 오래 지속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마력은 샘솟듯이 넘쳤고, 무엇보다 샐라임과의 수련이 한몫했다.

샐라임은 정령과 친해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 정신적으로 친해져야만 정령을 자유롭게 부릴 수 있다. 그 말은 즉 정령을 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불꽃 칼날처럼 곧바로 목을 베어 버리는 게 아닌, 뒤에서 날아와 히아신스의 목덜미 바로 앞에서 절묘하게 멈추는 것.

그리고 마치 내가 칼을 쥐고 있는 것처럼 그녀를 위협하는 것까지.

정교한 컨트롤은 정령과 허물없이 친해져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면 영원히 하급 정령술사로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은 정령과 친해지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타고난 감으로 정령과 교감하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현재, 수련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히아신스의 목을 위협하고 있는 칼날은 일반적인 칼보다 훨씬 절삭력이 좋았으며 열기까지 머금고 있었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목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 히아신스는 꼼짝없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길게 말 안 할게. 놔.”

내가 짧게 내뱉었다.

그러자 히아신스는 눈을 마구 굴렸다.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히아신스에게 유리한 상황이란 없었다. 학생들이 이렇게 모여든 상황에서 그녀는 이미 학교 생활이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네년을 죽이기 전엔 절대 안 놔.”

“내 불꽃 칼날이 훨씬 빠르게 네 목을 자를 수 있어. 네 단검으로는 내 목에 상처밖에 더 내겠니?”

내가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자 히아신스가 주춤거리며 칼을 내 목에 더욱 갖다 대었다.

칼날이 목을 더 파고들었고, 피가 밑으로 흘렀다.

그러자 세이먼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내 몸에 상처가 난 것을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호감도가 3% 상승했습니다!]

귀를 의심했다.

어째서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호감도가 오르는 거지?

이 망할 시스템아, 지금 내가 자칫하면 죽게 생겼는데 호감도가 오르든 말든 대체 뭔 소용이냔 말이야.

세이먼은 여전히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죽기라도 할까 봐 무서운 걸까?

아니면 다치기라도 할까 봐?

그리고 히아신스는 정말로 내 목을 그을 수 있는 사람일까?

내 목을 졸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니 충분히 가능하겠지.

“세이먼이 이걸 본 이상 널 죽일 수밖에 없어.”

히아신스는 미친 사람 같았다.

눈을 부릅뜬 채 칼을 쥔 손을 마구 떠는 모습은 경찰에게 둘러싸인 범죄자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자 세이먼이 입을 열었다.

히아신스를 잠재우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아니야. 그러지 않을게. 아니, 못 본 걸로 할게.”

항상 평온하고 이성적이었던 세이먼도 지금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

손을 이쪽으로 뻗으려다가도 히아신스가 내 목에 칼을 대면 급하게 손을 거두었다.

내가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내뱉었다.

“대신 너도 죽는 거야, 히아신스.”

그러자 히아신스의 표정이 싹 굳었다.

“…….”

“내가 설마 널 살려 줄 거라 생각하는 거야? 그러면 오산이지.”

내가 죽는 입장에서 상대를 살려 줄 순 없다.

히아신스가 손을 움직이는 순간 불꽃 칼날도 그녀의 목을 그을 거다.

죽어도 같이 죽어야 마땅하지.

“다, 닥쳐. 네 스킬 정도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 다 알아.”

“과연 그럴까? 한 번 볼래?”

[호감도가 2% 상승했습니다!]

또다. 세이먼의 호감도가 또 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때 세이먼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루나, 내가, 내가 대화해 볼게. 히아신스, 넌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내가 아는 히아신스는 이러지 않았어. 좀 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고.”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세이먼은 애써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다급하게 굴면 히아신스가 더 흥분할 것이라는 판단 같았다.

나도 사실 피를 보기는 싫었다.

그래서 일단은 세이먼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정말이야. 못 본 거로 할게.”

그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애원하는 목소리였다.

그러자 히아신스가 소리쳤다. 주변에 사람이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태도였다.

아니, 그녀의 눈엔 이미 자신과 세이먼, 나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게 가능할 것 같아?! 어떻게 본 걸 못 본 거로 할 수 있겠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세이먼.”

“일단 그 칼 내려놔. 그리고 나랑 이야기해.”

하지만 세이먼이 말을 할수록 히아신스는 더욱 흥분했다.

목에 핏대가 선 채 소리를 지르자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 같았다.

잃을 게 없다는 듯, 오직 나를 죽이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굴었다.

“얘만 죽이면 너랑 나랑 사랑할 수 있어. 알겠어? 그러니까 막지 말라고!”

그러자 세이먼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하면 내가 널 사랑할 거라 생각해……?”

진심이었다.

세이먼은 진심으로 히아신스에게 묻고 있었다.

그런 건 가능하지 않다고 말이다.

하지만 히아신스는 자신감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

“물론이지. 다 수가 있다고.”

내가 조용히 물었다.

“그 수가 뭔데?”

그러자 히아신스가 순순히 대답했다.

“‘러브문’이라는 약만 있으면 돼……!”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약인 것 같았다.

“그 약만 있으면 가능한데 나를 죽이려 하는 이유가 뭐지?”

내가 조용하게 묻자 그녀가 언성을 높였다.

“시끄러워! 조용히 안 해?”

칼을 더욱 들이댔다. 나도 열이 받은 나머지 불꽃 칼날을 미세하게 조종하자 히아신스가 소리를 질렀다.

“아악!”

그녀의 목에서도 피가 흘렀다.

불에 덴 것처럼 검게 그을린 자국도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니, 고통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람 같았다.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야, 히아신스.”

세이먼은 어린아이를 달래는 말투로 말했다.

“…….”

“그건 세뇌라고.”

그의 눈빛은 슬퍼 보였다.

히아신스와 얽히고설킨 그의 운명이 기구했다.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히아신스는 그저 인질을 잡은 범죄자밖에 더 되지 않았다.

학생들은 어느새 우리를 동그랗게 둘러싼 채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풀어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세이먼. 얘를 살리고 싶으면 나와 결혼하겠다고 팔라신에게 맹세해.”

그녀의 말에 순간적으로 주변이 싹 고요해졌다.

팔라신.

라인하르트 왕국이 숭배하고 있는 유일신이다.

모든 것은 팔라에서 왔으며 모든 것은 팔라로 되돌아간다.

이 세상의 근본이 팔라신에서 왔다고 믿는 종교이자, 국교였다.

그리고 팔라는 약속을 아주 중요시 여겨, 그를 걸고 맹세한 약속은 절대 깨뜨릴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걸 깨뜨렸다가는 팔라신의 저주가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팔라신에 대해 맹세하는 것은 엄청난 무게를 가졌고, 사람들도 쉽사리 하지 않는 약속이었다.

그런 약속을, 히아신스는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세이먼은 지금 자신의 모든 미래를 걸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인 셈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식당 내부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세이먼이 어떻게 대응할지 다들 지켜보는 것이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히아신스에게 자신의 미래를 약속할 것인지, 아니면 날 모른 체할 것인지.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건 예상 밖의 말이었다.

“…차라리 나를 죽여.”

“뭐……?”

세이먼은 체념했다.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의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말은 어떤 거짓도 섞이지 않았다는 듯 그의 진심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히아신스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미간을 구겼다.

정말 세이먼이 나를 이 정도로 좋아한다고?

대신 죽을 수 있을 만큼?

자신의 목숨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는 거야?

세이먼의 호감도는 이제 50%대로 들어섰다.

반절을 넘기자 나를 생각하는 마음 또한 변한 것이었다.

그 전에도 밥 먹듯이 집착을 했던 그인데, 지금은 대체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거야?

그때.

[호감도가 3% 상승했습니다.]

내가 잡혀 있는 상황은 세이먼에게 어떤 커다란 파급력을 주는 것 같았다.

그의 심경에는 계속해서 변화가 생겼고, 그 변화에는 나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내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깊은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로맨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죽기 직전에 사랑을 깨닫는 사람처럼, 그렇게 알아챈 걸까?

아니면 그저 난처한 상황에 나에 대한 애틋함이 올라간 것뿐인가?

세이먼의 속을 알 수 없었다.

그 또한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히아신스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세이먼은 히아신스가 끔찍이도 사랑하던 남자다.

그런 남자가,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를 위해 대신 죽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 여자인 나를 없애기 위해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데, 정작 그 남자는 이걸 알아 주지 못하다니.

히아신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 만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려는 건 절대 용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탓하겠지.

나만 없었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사이였다고 생각하면서.

“흐어어!”

히아신스는 발을 구르며 참을 수 없다는 듯 화를 표출했다.

동시에 슬픈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분노가 너무 커서 슬픔을 삼켜 버린 것 같았다.

단지 나에 대한 증오만이 그녀를 휩싸고 있었다.

그녀가 참을 수 없는 감정의 폭포에서 몸부림치고 있는데, 세이먼이 입을 열었다.

그녀에겐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

“그만큼 나는 루나를 사랑한다고.”

세이먼의 말을 들은 히아신스의 얼굴이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듯 마구 구겨졌다.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기 위한 표정.

벌게진 얼굴과 눈물이 잔뜩 고인 갈색 눈동자.

그녀는 세이먼을 향한 애증에 울부짖었다.

크게 소리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녀의 손이 움직인 건 순식간이었다.

동시에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내가 아니면, 너도 안 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