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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63)화 (63/156)

62화. 다가오는 죽음(2)

샐라임과 수련을 시작한 지 며칠이 흘렀다.

장소는 테일러 마을의 게이트를 타고 간 웨어울프의 숲이었다.

웨어울프의 서식지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숲 깊은 곳에 살았고, 초입에는 자잘한 몬스터들만이 존재해 수련을 하기에 딱이었다.

샐라임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마구잡이로 굴려 댔고, 나는 질세라 이를 악물고 따라갔다.

매일매일 탈진 상태가 될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기본기가 탄탄하지 않은 마나 운용법도 피를 토할 때까지 수련했다.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다니……. 보통 사람이라면 삼십 분 만에 기절하고 말았을 거야. 한 시간을 넘도록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대단하구나.”

가만히 자리에 앉아 몸 안을 마나로 가득 채우며 마나홀에서부터 머리까지 회전하게 만드는 마나 운용은 심장에 큰 무리가 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루에 삼십 분 이상 수련하면 위험하다고 했지만 나는 두 시간까지는 괜찮았다.

물론 마지막에는 피를 울컥울컥 토하긴 했지만.

“너… 네 몸은 진짜 신경도 안 쓰는구나?”

“실력을 위해 건강을 포기했어요. 그리고 자고 일어나면 멀쩡하니까요.”

비실비실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내구성이 참 좋았다.

하루 종일 힘들게 연습하고 나면 다음 날은 지칠 법도 한데, 금세 기력을 회복하고 수련을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검에 오러를 발동시켜 봐.”

나는 한 손으로 잡고 있던 검으로 마나를 흘려보냈다.

오러를 덧씌우는 느낌으로 발동시키자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색의 마나가 형체를 이루며 검을 감쌌다.

옛날에는 마나가 가득한 훈련장 필드에서만 가능했던 기술이었다.

하지만 마나 운용을 열심히 수련하면서 오러 발동은 점점 수월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소드 마스터들이 해내는 엄청난 오러는 아니었다.

숏 소드를 간신히 감쌀 정도로 적은 양의 오러였지만 모든 공간에서 언제나 가능하다는 점이 나에게는 엄청난 발전이었다.

“넌 마나 운용에 타고난 모양이구나. 배우는 속도가 아주 빨라. 마나 운용이 모든 것의 기본이기 때문에 이걸 잘하면 다른 술법들은 금세 익힐 수 있지.”

“…….”

“물론 익힐 수 있다는 거지, 능숙하게 다루려면 각 술법마다 오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 네가 썼던 오러나, 몸에 마나를 둘렀던 경우도 아직까지는 남을 따라 하는 수준이야. 연마하기 위해서는 정석을 닦아야 해.”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나는 천 년이 넘는 세월을 사는 동안 검술 마스터, 체술 마스터도 전부 보았지. 그걸 토대로 내가 널 가르칠 거다.”

“샐라임, 보기보다 똑똑하군요.”

“난 널 최고의 실력자로 만들 생각이야. 정령술은 물론 검술과 체술에서도 부족한 부분이 없도록 말이지.”

“좋아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죠?”

“일단 중급 정령술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그 정도만 되어도 네 몸 하나는 무조건 지킬 수 있을 거야.”

“중급이라면…….”

“평생을 하급 정령술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태반이야. 네 정령술과 담임도 중급 정령술사인 것처럼, 하급과 중급의 차이는 천지 차이 그 이상이지.”

중급 정령술사가 되면 국가가 인정해 주는 자격증이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 그 수는 한 나라에 열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그러면 대체 상급 정령술사는 어느 정도인 거예요?”

그러자 샐라임이 코웃음을 팡 치며 말했다.

“세계 통틀어 몇 명 되지 않을 거다. 날 다루던 녀석은 ‘해화신 라나블’이라고 불렸지. 불바다의 신이라는 뜻인데, 완전 유치하지 않냐?”

킥킥대며 말했지만 그의 말에서 알 수 있었다.

상급 정령술사가 되면 거의 신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물론 과장도 포함되어 있을 순 있지만 세계에서 몇 안 된다는 것은 세상을 휘두를 만큼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상급 정령술사는 차치하고.

내 목표는 중급 정령술사가 되는 것.

그 정도만 되어도 가문의 살해 협박에서는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니, 무조건 달성해야만 했다.

“자자, 그만 쉬고!”

수다를 떨던 샐라임이 금세 분위기를 바꾸었다.

“정령과 친해지는 법부터 배워 보자고. 친하면 친할수록 자유롭게 부릴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정령을 거부감 없이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지.”

그러고는 다시 수업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 * *

“얼굴이 핼쑥하네요.”

세이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를 뚫어 버릴 듯한 시선이 내 얼굴과 몸 곳곳을 훑었다.

세이먼은 내가 수업도 나가지 않은 채 따로 수련에 몰두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저번에 기숙사에 찾아왔을 때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따로 부른 까닭은 따로 있었다.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려 하는데, 같이 가 줄래요?”

“학교 식당이요? 식당은 위험할 텐데요…….”

“괜찮아요. 일부러 가는 거니까.”

말끝을 흐리는 세이먼에게 내가 걱정하지 말라는 말투로 내뱉었다.

그렇다. 나는 일부러 학교로 향하는 것이었다.

가짜 에르셈프에게 목이 졸린 이후로 처음으로 가는 학교 본관이었다.

기숙사와 웨어울프의 숲만을 왔다 갔다 하며 수련만 한 탓이었다.

끼니도 대량으로 빵을 구입한 뒤 그걸로 때우면서 살았다.

그리고, 오늘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다.

나를 노리던 범인은 대체 언제 오나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겠지.

환영해 줘라, 내 발로 직접 찾아가는 길이니까.

미끼를 던지러 가는 것이다.

뒤에서 기습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내가 나타나 주는 것이다. 그것도 나를 죽이기 가장 쉬운 곳에서.

세이먼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제가 지켜 줄게요.”

괜찮답니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요.

나는 대꾸 없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타고난 체격으로 크고 다부진 몸이 새삼 부러웠다.

게임을 할 땐 맨날 탱커만 도맡아서 했던 탓이었다.

내가 그를 쓱 훑었다.

탄탄한 팔뚝과 드넓은 어깨,

힘 좋은 허벅지, 그리고…….

찰싹.

루나, 지금 뭔 생각을 하는 거야?

오늘처럼 중요한 날에 음흉한 생각이나 하다니.

나는 스스로 뺨을 때려 정신을 차렸고, 의아해하는 세이먼의 얼굴을 봐야만 했다.

식당에 도착해 나와 세이먼은 먼저 자리를 잡았다.

“뭐 먹을래요?”

세이먼이 물었고, 나는 메뉴판을 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치즈그라탱이요.”

나는 해당 코너로 가서 주문을 했고, 세이먼에게 여기서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러고는 구석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곧 있으면 상황이 시작될 테니까.

세이먼은 내가 있으라고 한 자리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라탱은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그리고, 나는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나타날 것을 보고 있었다.

내 기억은 틀리지 않기에 무조건 등장할 것이다.

곧이어, 내 음식이 나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나는 범인이 무슨 짓을 하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

세이먼 또한 보았는지 눈을 크게 뜨고는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장면은 바로 한 여자가 내 그라탱에 어떤 가루를 뿌리는 모습.

순식간에 가루를 뿌린 뒤 휙 돌아가던 길을 가려는 여자.

그녀는 바로 히아신스였다.

역시 나를 살인 표적으로 삼은 상대는 히아신스였다.

“재미없게… 진짜였잖아?”

사실 모두 예상한 상황이었다.

게임에서 나온 그대로였으니까.

물론 게임에서는 내가 세이먼과 이어졌을 경우였다.

학교 식당에서 음식에 독극물을 타 나를 죽이는 모습.

충격적인 엔딩 장면으로 나온 탓에 아직도 눈앞에 선명했다.

게임과 상황이 다른데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은, 세이먼이 나에게 히아신스가 평소와 다르게 매일같이 학교 식당에 나타난다고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짜 에르셈프가 히아신스인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날 죽이려는 상대가 히아신스고, 게임에서 그녀가 나를 죽였던 방법은 식당에서 독살하기다.

그녀는 덫을 쳐 놓고, 내가 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즉, 내가 식당에 나타나기만 하면 바로 독살할 생각이었던 거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이미 아는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판을 깔아 주었다.

“자기가 친 덫에 자기가 걸렸네.”

그리고 그녀가 약을 타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뒤, 그녀를 협박할 생각이었다.

이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으니 내가 이긴 싸움이다.

바보처럼 자신을 저렇게 노출하다니.

누구를 죽이려면 더 치밀했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참이었다.

“뭐야……!”

돌발 상황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히아신스가 그라탱에 손을 댄 것을 목격한 세이먼이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의 앞으로 나선 것이다.

“히아신스!!”

큰 소리로 그녀를 부르면서.

“이런 미친……. 왜 저러는 거야, 내가 알아서 할 건데!”

히아신스의 범죄 장면을 세이먼에게 굳이 보여 준 이유는 증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히아신스가 나를 죽이려고 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내 말을 믿어 줄 테니까.

하지만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세이먼은 히아신스의 팔목을 잡아챘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지나가던 학생들 한두 명이 힐끗거리긴 했지만 금세 눈을 거두었다.

“세, 세이먼. 무슨 짓이라니…….”

“정말이야? 정말이냐고. 너 진짜… 루나를 어떻게 하려고 했어?”

“무, 무슨 소리야!”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당장 내가 나서서 상황을 잠재워야 한다.

일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히아신스와의 문제도 둘이 해결하면 되는 건데!

“세이먼, 진정해요. 나도 다 봤으니까.”

내가 그들에게로 다가서며 세이먼에게 말했다.

세이먼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 히아신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식에 뭘 탄 거지? 무언가를 뿌렸잖아.”

“무슨 소린지 전혀 모르겠어. 나는 내 음식이 나온 줄 알고 가져가려다가 만 것뿐이라고.”

그녀는 시치미를 뚝 뗐다.

그러자 세이먼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싸늘해진 눈동자로 히아신스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네가 먹어 봐.”

“뭐…뭐?”

“먹어 보라고. 아무 짓도 안 한 음식이니까 멀쩡할 거 아니야.”

“…….”

“당장 먹으라고. 내 말 안 들려?”

세이먼이 언성을 높였다.

주변의 학생들이 점점 쳐다보기 시작했다.

“세이먼, 일단 우선은…….”

내가 그를 진정시키고자 팔을 잡아당겼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이먼은 음식을 가져와 히아신스 앞에 내밀었다.

“…….”

세이먼이 계속해서 종용하자 히아신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모습이 마치 궁지에 몰린 사슴 같았다.

그녀는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고는 그라탱을 한 숟갈 떴다.

“…흐윽.”

그녀는 슬픈 얼굴을 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게 야속하겠지.

제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화가 날 테고.

히아신스는 숟가락을 든 손을 파르르 떨었다.

“먹으라고.”

세이먼이 한 번 더 내뱉었다.

그때였다.

“못 먹어.”

슬픈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었다.

생각을 바꾼 건지 아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눈을 매섭게 뜬 채 입술을 열었다.

“어쩔 수 없네.”

그러고는, 순식간에 옆에 있는 내 머리채를 잡고는 자신의 쪽으로 이끌었다.

“아악!”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고, 그녀의 힘이 너무 강해 나는 힘없이 그녀에게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여기서 죽어, 루이아나.”

뒤에서 날 제압한 뒤,

내 목에 칼을 갖다 대었다.

아주 잘 벼려진 칼날이 내 목에 닿자 곧바로 살이 베여 피가 흘러나왔다.

“!!!”

한순간에 인질극을 벌이게 된 히아신스는 미쳤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식당에 있는 학생들 전부 다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튼짓하면, 죽여 버릴 거야.”

히아신스가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완벽히 제압당한 상태였고,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칼에 목을 따일 것 같은 위험천만한 자세에 나는 얼어붙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또 하나의 날카로운 칼날이 히아신스의 목을 위협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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