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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48)화 (48/156)
  • 47화. 템트(1)

    저 멀리서 애를 먹고 있는 남자 두 명이 보였다.

    대왕거미와 대치한 채 공격을 날리는 모습.

    가까스로 구덩이에서 빠져나와서 자기들끼리 웅성거리던 거미들을 피한 뒤 주위를 둘러보자 잰퓨어와 첸테 선배가 보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들에게 쏟아지는 용액의 물결.

    “!!!”

    엄청난 용액의 양을 피하기란 불가능이었고, 그들은 그대로 스턴 상태에 빠져 버렸다.

    내가 전속력으로 달렸다.

    거미의 다리보다 빨라야 한다.

    제발, ‘마술사의 군화’야, 조금만 힘을 내 줘!

    솟아오르는 기백으로 그들에게 달려간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그들을 덮쳤다.

    “우왓!!”

    그리고 스턴에 빠져 꼼짝 못 하고 있는 그들의 몸을 부여잡은 채 바닥으로 떨어져 굴렀다.

    “정신 차려요! 다들!”

    절묘한 타이밍으로 그들이 떠 있었던 허공으로 거미의 다리가 날아왔고, 아무것도 내치지 못한 다리는 땅에 박혀 버렸다.

    “크아아!!”

    거미가 화가 난 듯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포효했다.

    나는 첸테 선배와 잰퓨어에게 어서 빨리 제정신으로 돌아오라고 몸을 흔들었고, 그들은 곧 정상적인 눈빛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후어……. 보통 일이 아니군.”

    “루나! 괜찮은 거야?!”

    잰퓨어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내 볼을 부여잡고는 나를 걱정했고, 나는 가볍게 그의 손길을 걷어 냈다.

    “저 다리부터 어떻게 해야 될 것 같아요!”

    털이 보송보송 난 다리는 너무나도 위협적이었다. 한 번만 타격을 허용해도 척추가 나갈 것 같았으니까.

    그때, 샐라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오늘은 부족한 체술을 좀 채워 볼까.”

    “이 와중에 수련이라고요?!”

    “물론이지. 실전만큼 좋은 수련의 장은 없으니까. 일단 거미의 다리부터 피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일단 거미는 한 번 용액을 내뿜으면 다음 용액 공격까지는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그러니 쿨타임 전까지는 무조건 거미를 제압해야 한다는 소리가 되었다.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던 거미는 커다란 눈동자를 휘릭 돌리며 우리를 찾는 것 같았다.

    “시력이 안 좋은가……?”

    우리가 쥐 죽은 듯이 소리를 내지 않자 코앞에 있는데도 찾아내지 못한 채 눈을 도록 도록 굴릴 뿐이었다.

    탕!

    첸테 선배가 돌을 끌어 올려 허공에서 돌끼리 부딪쳤다.

    아니나 다를까 거미는 그쪽을 향하여 다리를 휘둘렀다.

    콰앙!

    “서, 선배! 좀 더 멀리서 해 주지!”

    우리는 거미가 가한 타격의 여파에 몸을 데굴데굴 굴렀다.

    하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거미는 시력이 약하고 소리에 의존하는 게 분명해. 그렇다면,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거미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는 건데.

    “…흐읍.”

    심장을 중심으로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몸의 테두리를 둘러싼 마나는 나의 근육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듯했고, 훨씬 빠르고 가벼운 몸놀림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알려 주지 않아도 체득이 빠르구나.”

    타앗!

    머리보다 몸이 빨랐다.

    첸테 선배와 잰퓨어에게 내 계획을 설명한 후 바로 거미에게로 달려들었다.

    거미의 용액 공격은 오히려 거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더 위험했다.

    엄청난 양이 폭포처럼 뿜어져 나오므로 그걸 피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그러니 아예 거미의 위에 올라타서 사출구에서 나오는 용액을 피할 거다.

    마나를 온 근육에 두르자 움직임의 속도가 무차별적으로 빨라졌고, 점프의 길이 또한 엄청나게 늘어났다.

    탁!

    바로 거미의 몸통 위로 안착했다.

    무언가가 위에 올라탔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거미는 온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이리저리 몸을 휘두르는 탓에 나는 거미의 보송보송한 털을 붙잡고는 필사적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스킬 ‘체술’의 레벨이 1 상승했습니다.]

    나는 몇 분 단위로 갱신되는 스킬 레벨에 놀라워했다.

    “샐러맨더.”

    샐러맨더를 부르자 도마뱀은 바로 칼날로 변했다. 그러고는 내가 머릿속에 그리는 대로 다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콰악!

    숏 소드 정도의 길이를 가진 불꽃 칼날은 아직까지 거미의 다리를 베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다리에 상처를 내기에는 충분했고, 그때 첸테 선배의 공격이 정확히 먹혀들었다. 대지에서부터 나온 굵은 나무뿌리가 치솟더니 거미의 상처 부분을 정확히 휘감아 버린 것이다.

    원래 같았으면 바로 나무뿌리를 부숴 버린 채 제압되지 않았을 테지만 미리 상처를 입은지라 먹힌 모양이었다.

    다리의 상처를 휘감은 나무뿌리에서는 초록색 체액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선배! 한 번 더요!”

    내가 소리치며 한 번 더 불꽃 칼날을 시도했다. 하지만 거미가 엄청난 몸부림을 치는 까닭에 불꽃 칼날의 적중률이 너무나도 하락했다. 따라서 내가 직접 다리에 타격을 내자고 결심했다.

    다시 한번 점프를 해 거미의 다리에 올라탔다.

    “가만히 좀 있어라, 응? 편하게 해 준다니까.”

    [스킬 ‘체술’의 레벨이 1 상승했습니다.]

    마나를 운용하니 거미의 몸에 붙는 것은 아주 쉬웠다.

    예전에 정령술과 입단 테스트를 볼 때 칼날 도둑 가재의 몸에서 계속해서 미끄러지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콰악!

    내가 칼을 빼 들고는 거미의 다리에 꽂아 넣었다. 다리는 아주 통통해서 내 칼을 잘 받아들였고, 그 상태로 밑으로 죽 그어 버렸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다시 첸테 선배의 나무뿌리 공격이 이어져 왔고, 정확하게 거미의 두 번째 다리를 제압했다.

    양쪽에서 다리를 제압당하자 나머지 여섯 개의 다리를 마구 휘둘러 댔다. 하지만,

    “어림없지.”

    꽁꽁 묶인 채 상처에서 피를 쏟고 있는 거미의 체력 수치는 삼 분의 일이 닳았고, 이어서 잰퓨어의 공격이 가해졌다.

    샥!

    그는 얼음 화살을 조준해 곧바로 거미의 사출구를 향해 쏘았다.

    콱!

    그의 푸르고 빛나는 얼음 화살이 정확하게 사출구에 꼽혔고, 거미는 더욱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러나.

    “뭐야, 왜 이렇게 피가 안 줄어?!”

    거미의 머리 위에 놓인 체력 수치가 크게 닳을 줄 알았건만, 그렇지 않았다.

    체력 수치는 손톱만큼밖에 닳지 않았다. 그리고 곧이어 거미는 파격적인 짓을 행했다.

    우지끈!

    자신의 다리 한쪽을 입으로 문 채 부러뜨려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제압당한 다리도 부러뜨려 나무뿌리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나는 부러진 다리에 올라타고 있던 탓에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아악!”

    나무에 부딪히며 떨어진 나는 신음을 내뱉었다. 엄청난 힘과 속도로 날아간 탓에 온몸이 너무 아팠다.

    “이런, 너무 멀어.”

    잰퓨어와 첸테 선배가 있는 곳을 살폈지만 작은 점처럼 보였다. 뛰어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작전 변경이다. 플랜 비로 가야 해.”

    거미의 몸에 올라타기 전 미리 첸테 선배와 잰퓨어에게는 설명은 다 해 놓았었다.

    벨리아가 말해 준 모든 것에 대해.

    내 추론은 옳았다. 사슬거미와 템트 사이는 상생 관계에 있는 것이 맞았다.

    그것을 매개로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도.

    “템트는 아무런 방어 능력이 없어.”

    그런 템트가 손쉽게 인간을 잡아먹으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벨리아는 템트와 사슬거미 사이에는 통신 수단이 있다고 했다.

    그건 바로 대왕거미를 둘러싼 네 개의 신상.

    만약 대왕거미에게 무슨 일이 생겨 인간이나 다른 위협적인 존재가 나타나면 네 개의 신상 중 하나를 건드린다고 했다. 그러면 바로 템트에게 신호가 가는 형태고, 템트는 몸을 숨긴다고.

    벨리아의 일행이 대왕거미에게 목숨을 위협할 만한 공격을 가하자 대왕거미가 필사적으로 신상으로 달려가는 걸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신상에 충격을 가했고, 신상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템트가 있는 곳을 향해 흘러갔다는 것이다. 몬스터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똑똑한 통신 방법이었다.

    벨리아는 그 과정에서 대왕거미에게 공격을 받았고, 전투 불능이 된 상태에서 그 광경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거미 감옥으로 끌려오게 된 것이라고.

    “가장 중요한 건 신상을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거야.”

    거미가 자신의 다리를 잘라 낸 상황을 보니, 지금이 위급 상태라고 판단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거미는 바로 신상을 향해 신호를 보내러 갈 것이다. 그리고 그걸 막는 것이 잰퓨어와 첸테의 역할이었다.

    아까 만났을 때 지시한 것도 신상을 보호하라는 것이었고.

    그리고, 나는 저 멀리서 거미가 신상 하나를 향해 마구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첸테 선배와 잰퓨어에 의해 계속 방해받는 것 같았다.

    “지금이야.”

    지금을 노려 템트에게로 갈 것이다.

    잰퓨어와 첸테가 대왕거미를 막으며 신상을 보호하는 동안,

    홀로 템트를 처치할 것이다.

    * * *

    나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섬의 가장 북쪽에 있는 템트를 향해서 한시라도 빨리 도착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신상이 공격받을지 모른다.

    템트가 숨어 버린다면 낭패였다.

    사슬거미와 대왕거미의 발을 묶은 채 템트를 처치해야 하니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이 틈을 노려야만 임무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이번 ‘템트 처치’ 임무는 단순히 정령술 향상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정확한 추론과 전략적인 전투 플레이, 효과적인 역할 분배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진짜 학장 미친 새끼…….”

    이런 난이도를 하급 정령술사의 두 번째 임무로 준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내가 변절자에 관한 정보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해서 죽기라도 바라는 건 아니겠지.”

    학장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나의 태도는 여전했다.

    나를 죽이려는 게임 시스템이든 학장의 속셈이든, 내가 죽을 생각 따위는 저 사슬거미의 털끝만큼도 없다.

    “내가 얼마나 끈질긴 X인지 보여 주지.”

    전설템과 신화템을 몸에 두른 나는 체력이 그리 쉽게 닳지 않았다. 게다가 발에 마력을 두른 만큼 이전보다 움직임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리고 템트를 향해 달릴 때마다,

    [스킬 ‘체술’의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스킬 ‘체술’의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스킬 ‘체술’의 레벨이 4에서 6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검술과 같은 레벨이 되었다.

    검술이나 체술이나 정령술이나 종류는 달랐지만 근본은 똑같았다. 효과적인 마나 운용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거다.

    “이렇게 마나를 무자비하게 쓰는 사람도 없을 텐데.”

    샐라임이 중얼거렸다. 내가 온몸에 마나를 두른 채 달리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나름 효과적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몸에 마나를 두른 채 체술을 휘두르는 건 고작해야 십 분 미만이야. 그 이후로 행하면 몸에 엄청난 무리가 가니까. 심하면 며칠 내내 누워 있을 수도 있어.”

    “그, 그 정도인가요…….”

    나와는 다른 이야기였다. 나에게 마나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으니까.

    그리고 오히려 마나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드래곤한테 마나 걱정을 하는 것만큼 쓸모없는 건 없겠지.”

    타닥타닥!

    몇 분을 내리 전속력으로 달린 결과 저 멀리 북쪽 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곳으로 가면 템트와 만날 수 있다.

    템트가 사는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절벽이니, 손쉽게 찾을 수 있을 거다.

    “조심해. 그녀의 술법에 걸리는 건 한순간이니까.”

    “왜 자세히 말해 주지 않는 거죠?!”

    “계약자가 술법에 걸리자 나를 소환하지 않았어. 이유는 모르지만 몸과 정신이 제압당해서 정령을 부르는 방법을 잊는 것 같아. 그래서 나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거야.”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저 멀리 섬의 끝자락에 무언가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한 채 등을 돌리고 강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멀리서 봐도 아주 아름다운 느낌을 풍겼다.

    유려한 몸의 곡선과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다리, 그리고…….

    “쳐다봐 주면 좋겠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중얼거렸다.

    나를 바라봐 주면 했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휙.

    그녀가 나를 향해 몸을 돌려 눈을 마주했다.

    “…….”

    그리고 난,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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