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미노타 섬(3)
구덩이로 굴러떨어져 주위를 확인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이었다.
“거미 감옥에 온 걸 환영한다.”
그리고 나와 똑같은 처지로 꽁꽁 사슬에 묶인 채 바닥에 누워 있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세 명은 남자, 두 명은 여자였다. 젊어 보이는 게, 다들 모험가 같았다.
“여…여기가 어디죠?”
“말 그대로 거미 감옥이야. 다들 사슬거미와 대왕거미한테 붙잡혀서 여기로 끌려 들어왔지. 자네도 똑같은 경우인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은 페니다. 좀 있으면 같이 죽을 운명을 맞이하는 셈이니 잠시라도 친구로 지내자고.”
그는 곧 있으면 죽을 사람이 아닌 것처럼 덤덤해 보였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멀쩡해 보이는데요?”
“이미 포기했어. 죽기 직전까지 엉엉 울다 갈 생각은 없으니까.”
이번엔 여자가 말을 걸었다.
“전 벨리아라고 해요. 며칠 내내 이렇게 다섯 명이어서 이게 끝일 줄 알았는데……. 유감이에요.”
“아니, 왜 자꾸 죽을 생각부터 하는 거죠?”
“그야 한 명씩 차례로 거미가 잡아간 뒤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페니와 벨리아는 이미 해탈한 지 오래인 것 같았다.
“미노타 섬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고작 거미한테 잡혀서 인생 마감하게 생기다니.”
“템트를 잡으러 왔건만 얼굴도 한 번 못 봤어요.”
“이 섬의 등급이 잘못 부여되어 있어. 이 정도면 A등급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사람처럼 각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여기 있는 사람들과는 생각이 달랐다.
“…흠.”
죽을 생각 따윈 추호도 없는데.
내가 지금 살려고 하루하루를 얼마나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데. 이딴 곳에서 죽을 수야 없지. 애초에 제 발로 여기 들어온 건 이유가 있어서란 말이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한탄을 하고 있는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샐러맨더.”
붉은 도마뱀이 내 옆에 나타났고, 사람들은 그걸 보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마 이 사람들 사이에는 정령술사가 없었던 모양이다.
“사슬 끊어 줘.”
그러자 칼날로 변한 샐러맨더가 내 사슬을 툭툭, 끊기 시작했다.
“……!”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쳐다보았고, 나는 이게 뭐 별거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그때 샐라임이 말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 위력이 있는 칼날을 만들어 내려면 일정량의 마력이 필요해. 보아하니 이 사람들은 마나가 다들 바닥나 있군. 널 보고 놀랄 만하지.”
나는 마력이 풍부한 데다가 싸우다 잡혀 온 게 아니니 마나가 없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좀 전의 전투로 인해 불꽃 칼날의 레벨이 3이 되었다. 훨씬 정교해지고 날카로워진 것이다.
“짠.”
그렇게 나는 사슬에서 풀려 자유의 몸이 되었고, 샐러맨더에게 시켜 다른 사람들의 사슬도 하나하나 풀어 주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다들 놀라면서 나에게 고맙다며 연신 인사를 했다. 하지만 사슬이 풀렸다며 좋아하던 사람들은 금세 또다시 풀이 죽었다. 이 깊은 구덩이를 어떻게 나가냐는 거다.
게다가 구덩이를 나가면 대왕거미가 나가는 걸 똑똑히 지켜볼 텐데 그걸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겠냐며 다들 한탄하기 시작했다.
“진정해요, 진정. 방법이 있겠죠. 설마 이렇게 쉽게 죽기야 하겠어요?”
내가 분위기를 바꾸려 유쾌하게 말했다.
“…….”
하지만 그들에게는 먹히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손톱을 깨물었다.
여기까지는 내 계획대로다.
‘사슬거미는 인간을 납치해 보관하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사람은 그들의 주식이 아니다.’
몬스터 정보에서 읽었던 글.
용액과 사슬 모두 인간을 죽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러니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 공격만을 일관하는 것이고. 그래서 한 명만 거미에게 잡힌다면 시선은 나에게로 쏠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일부러 납치를 당해 여기까지 온 거고, 예상대로 첸테 선배와 잰퓨어는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나 더.’
나는 한 가지를 더 유추할 수 있었다.
이 미노타 섬에 주로 서식하는 몬스터는 사슬거미와 템트다.
템트는 일인 형태로 서식하는 습성이 있어 섬에는 한 마리만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미노타 섬에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선착장 한 곳뿐이다.
그렇다면 선착장과 반대편에 있는 단 한 마리의 템트를 어떻게 인간이 만날 수 있었을까?
‘지능이 높은 사슬거미는 인간으로 다른 몬스터들과 거래를 하거나, 상생을 위한 도구로 쓰곤 한다.’
몬스터 특성 설명의 마지막 문장. 인간을 도구로 사용한다는 말.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사슬거미와 템트 간에 어떤 교류가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매개체가 인간이라면?
사슬거미는 인간을 납치해 템트에게 넘겨주고, 템트는 그 대가로 어떤 걸 주는 방식.
즉 그들은 상생 관계를 이룰 수 있었다.
“합리적인 추론이야.”
사슬거미가 인간에게 살의를 가지지 않는 것.
인간을 죽이지 않고 굳이 납치하는 이유.
인간을 도구로 삼아 교류하는 습성.
그리고 인간이 템트와 닿을 수 있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말이 되었다.
추론은 끝났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템트와 사슬거미의 연결 통로를 찾는 것.
나는 다섯 명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템트나 사슬거미에 대해 아는 정보가 있나요? 아무거나 상관없으니 알려 주세요.”
그러자 벨루아가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서 유일하게 사슬거미에게 잡히지 않고 대왕거미에게 잡혀서 들어왔어요. 그 이유는…….”
그녀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잰퓨어와 첸테는 드디어 늪지대를 벗어나 평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진흙탕이 끝나고 평평한 평지가 나오니 그만큼 기쁜 것이 없었다.
“잠깐만, 나 포션 좀 먹고.”
하지만 이렇게 기뻐할 때가 아니었다. 어서 빨리 루나를 찾아야만 했다.
사슬거미에게 잡히기 전, 루나는 거미의 본거지를 찾으라고 했다. 분명 자신은 거기에 갇혀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들은 얼마 걷지 않아 거대한 대왕거미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저, 저걸 좀 봐요!”
인간의 백 배는 넘을 것 같은 크기로 가만히 앉아 시선을 휘릭, 휘릭 돌리고 있었다. 마치 소중한 것이라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까이 가 보자.”
그들은 숨을 죽이고는 살금살금 대왕거미에게 다가갔다.
쉭! 쉭!
가끔가다 이상한 소리를 내고 눈을 이리저리 돌리는 것이 절대 가까이 오지 말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오면 산산조각 내서 죽여 버릴 거라고, 경고하는 눈빛이었다.
저벅저벅.
나무 뒤에 숨으며 가까이 가고 있는데, 무언가를 발견했다.
커다란 신상이었다.
파란색으로 거대하게 세워져 있는 신상은 신이 배에 손을 모으고 정 자세로 서 있는 모양을 조각한 조형물이었다.
“아는 신이냐?”
“처음 봐요. 사이비 계통인가.”
그리고 그들은 신상을 지나 더욱 앞으로 나아갔다. 대왕거미의 뒤쪽으로 향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앞으로 가고 있는데, 또 하나의 신상이 발견되었다.
“어? 아까 본 거랑 똑같이 생겼잖아.”
파란색 신상이 거대한 크기로 세워져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저것도 신상 아니에요?”
옆을 바라보니 저 멀리 똑같은 신상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뒤쪽도 마찬가지였다.
즉, 대왕거미를 중심으로 네 개의 신상이 사각형의 모양을 그리며 서 있는 것이다.
“일단 가죠.”
하지만 그들은 별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잰퓨어는 아까부터 미칠 지경이었다. 루나가 이런 걸로 죽을 애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신이 희생양이 되어 그들에게 잡혀가겠다는 말을 했다. 마치 자신에게 좋은 수가 있다는 당당한 태도에 그들 둘은 설득될 수밖에 없었고, 그 위험한 곳에 루나를 보내야만 했다.
저번에 고블린 소굴에 보낼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자신이 루나를 지켜 주지 못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는데.
그때, 첸테가 입을 열었다.
“루나 걱정하냐?”
“…네. 아무래도 잘못 보낸 것 같아서.”
“신경 쓰지 마라. 걱정하는 것도 괜한 체력 낭비다.”
“…….”
“그리고 걔 너보다 강해.”
맞는 말이었다.
전투 상황에서 그녀는 거침이 없었고, 판단이 빨랐으며 공격의 위력도 셌다. 따지고 보면 그녀가 우릴 지켜 준 적이 더 많았던 것 같았다. 아까 패닉에 빠진 자신을 구해 준 것도 그렇고.
“후우…….”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정령술사라고 해도 걱정이 될 테니까.
그렇게 그들은 숨을 죽인 채 대왕거미의 뒤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질퍽.
그러다 잰퓨어의 옷에 묻어 있던 진흙 한 덩이가 바닥에 떨어져 첸테가 그걸 밟고 순식간에 넘어졌다.
“우왓!”
쿵!
발이 미끄러져 앞으로 크게 넘어지고 말았고,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럴 수가…….”
대왕거미는 귀신같이 몸을 돌렸고, 갑자기 큰 그림자가 졌다.
그리고 그들이 고개를 들었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대왕거미의 새까만 눈동자였다.
“크르르르…….”
휙!
공격은 빠르게 날아왔다. 거대한 거미의 다리 하나가 그들을 향해 다가온 것이다.
쿠웅!
어찌나 힘이 센지 그의 다리가 닿았던 땅이 깊게 움푹 파였다.
“맞으면 시체도 안 남겠는데요.”
잰퓨어가 엎어진 첸테를 붙잡고 저 멀리 피하며 말했다. 이어서 대왕거미의 다음 공격이 날아왔다.
쿵! 쿵! 쿵!
잰퓨어와 첸테가 있는 곳을 마구 다리로 짓밟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맞추진 못했다. 크기가 커서 적중률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얘 처치 못 하면 루나 못 구한다.”
“이런!”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정령을 소환했다.
“분명 약점이 사출구랬지.”
대왕거미는 용액이나 사슬을 내뿜지는 않았지만 정확히 사출구가 눈에 보였다.
첸테가 앞으로 나서더니 땅에 손을 짚었다. 그러자 땅 위에 있던 모든 돌이 허공 위로 떠오르더니 거미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거미는 아프지도 않다는 듯 돌을 튕겨 냈다.
잰퓨어는 뒤에서 원거리 공격을 시전했다. 얼음 화살을 정확히 거미의 사출구를 향해 조준했다.
샥!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얼음 화살은 아쉽게도 대왕거미가 몸을 움직여 다른 곳에 맞고 말았다.
“캬아악!”
화살의 위력이 어느 정도 먹혔는지 대왕거미가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몹시 화가 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였다. 대왕거미의 사출구에서 엄청난 용액이 쏟아져 나온 것은.
“허, 헉!”
굉장한 양을 쏟아 나왔기에 그들은 용액을 맞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러고는 허공에 떠오르며 스턴이 걸렸다.
스턴의 길이는 줄거미의 두 배였다. 약 이십 초 동안 지속되는 전투 불능 상태는 거미에겐 엄청난 기회였고, 거미는 다음 공격을 바로 날렸다.
“캬아아!”
그리고 멀리서 날아오는 거미의 다리.
잰퓨어와 첸테는 생각했다.
이렇게 삶이 끝나는 것인가, 하고.
그때,
휙!
누군가가 몸을 날려 그들을 억지로 끌어 내리며 땅에 엎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