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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46)화 (46/156)

45화. 미노타 섬(2)

다행스럽게도 잰퓨어는 내 손길에 눈빛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한테 얻어맞았다는 사실이 충격적인 건지, 뺨이 아파서 깬 건지 모르겠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루, 루나……. 너무 아파.”

“정신 차리고 하는 소리가 그거야?”

그의 얼굴을 보니 왼쪽 뺨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약간은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죽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지금 우리 앞에는 거대한 거미 몬스터가 있었고, 알 수 없는 사슬마저 날아오는 상황이었다.

그때, 회색 몸통을 가진 거미 옆으로 새로운 거미 하나가 나타났다. 몸통엔 빨간 줄무늬를 가진, 이전의 거미보다 훨씬 날렵하게 생긴 거미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날아오는 그들의 공격에 나는 드디어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촤악!

타앙!

회색 거미가 용액을 뿜으면 빨간 줄무늬 거미가 그 자리에 사슬을 날리는 형태였다.

자세히 보니 사슬은 아주 견고하게 엮여서 굳어진 것처럼 딱딱해 보이는 거미줄이었다.

둘은 연계 공격을 하고 있었다. 상대를 용액으로 맞춘 뒤 마비되어 있는 동안 사슬을 맞추어 공격하는 방식으로. 저 사슬을 맞으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도 연계 공격으로 가죠!”

우리는 임무를 가기 전에 전투 방식을 정해 놓았었다.

첸테 선배가 앞에서 몸으로 막아 주는 역할을 하면, 내가 근거리에서 공격을 넣고, 잰퓨어는 가장 후방에서 엄호하며 원거리 공격을 하는 것으로.

각자 다루는 정령의 특징에 따라 결정된 가장 정석적인 3인의 구조였다.

“아직은 두 마리뿐이니까 충분히 처치할 수 있어요! 그리 세 보이지도 않고요.”

내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사실 확실한 건 아니었다. 단지 전생에 게임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유추해 본 결과였다.

일반적으로 면적이 넓은 곳에서 하나의 종이 다수로 서식하는 경우, 잡몹일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거미라는 것은 게임에서도 그리 무서운 존재로 취급되지 않았다. 사슬을 던진다는 점에서 보통 거미와는 다르긴 했지만.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저 용액에 맞으면 끝장이라는 거였다. 그것만 조심하면 되었다.

“아!”

그리고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시스템의 음성이 먼저 들리지 않아도 내가 열람할 수 있나?

‘몬스터 정보 확인!’

마음속으로 읊었다.

그러자 긴 글자들이 주르륵 나열되기 시작했다.

+

이름: 사슬거미

등급: D

특징: 늪지대에 주로 서식하는 거미형 몬스터. 사슬거미는 일반적으로 두 종류로 나뉘며, 첫 번째는 용액을 퍼뜨리는 용액거미, 두 번째는 사슬과 같은 거미줄로 공격을 하는 줄거미로 나뉜다……

+

역시 저번과 같이 몬스터의 특징이 아주 길게 설명되었고, 그것을 빠르게 훑었다.

‘그들의 약점은 용액과 사슬을 내보내는 사출구다.’

약점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때, 첸테 선배가 공격을 시작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전투 모드가 발동됩니다.]

시스템 음성이 들려오자 앞에 있는 사슬거미들의 체력 수치가 머리 위에 떠올랐다.

역시나였다. 그들의 총 체력 수치는 내 체력 수치의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았다.

공격만 제대로 먹힌다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터다.

“조심해! 움직임이 매우 빠르다!”

첸테 선배가 가장 앞쪽으로 나가 놈을 소환했다. 그리고 놈은 금세 형상 변화를 통해 커다란 벽으로 변하더니 사슬거미의 공격을 막기 시작했다.

촤악!

탁!

그들의 용액과 사슬이 솟아오르는 벽에 의하여 막혀 버렸다. 나는 그때를 노려 벽 위로 점프하여 올라갔다.

그리고 솟아오른 여러 개의 벽을 하나씩 빠르게 건너갔다.

“샐러맨더!”

순식간에 내 옆에 도마뱀 모양의 정령이 나타났다.

작게 중얼거리자 샐러맨더가 순식간에 위로 솟구치더니 거미들이 있는 곳에 화염을 내뿜었다.

“캬아악! 캬악!”

거미들은 몸에 불이 붙어 고통에 몸부림쳤다. 체력 수치가 확 줄어드는 게 공격이 먹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첨벙!

그들은 빠르게 연못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불을 끌 생각이었던 거다.

하지만 정령술의 불꽃은 물로 꺼지는 것이 아니었다. 화르륵거리며 타오르던 불길은 연못 속에서도 붉게 빛났다.

거미들은 괴로워하며 발버둥 쳤고, 그렇게 천천히 체력 수치가 내려갔다. 하지만 두 마리뿐이었던 사슬거미들이 점점 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크르르…크르르…….

고통에 소리치는 울음을 듣고 달려온 것일까.

첸테 선배가 솟아 올렸던 벽을 꺼뜨리자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수많은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많아진 거야!”

약 삼십 마리 정도 되는 사슬거미들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거미들이 우리를 향해 적대감은 품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살의가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를 죽이고 싶은 게 아닌 걸까?

그때, 내 옆을 스치며 쏜살같이 날아가는 무언가를 보았다.

푹!

그리고 그것은 바로 앞에 있는 사슬거미의 몸에 박혀 버렸다.

“잰퓨어!”

잰퓨어가 멀리서 얼음으로 만든 화살을 쏘아 거미를 맞춘 것이었다.

위력이 대단했는지 화살을 맞은 거미는 금세 체력 수치를 몽땅 잃고는 쓰러져 버렸다.

“연습해 놓길 잘했군.”

잰퓨어가 중얼거렸고, 얼음 활에 또다시 얼음으로 만든 화살을 장전했다.

그는 뒷걸음질을 치며 시위를 놓았고, 나와 첸테 선배는 거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헉…헉…….”

발목이 잠길 정도로 올라오는 진흙 때문에 첸테 선배는 아까부터 땀을 흘리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저들의 약점은 사출구예요. 용액과 사슬이 나오는 구멍이죠.”

“그걸 어떻게……?”

“지금은 일단 싸우고 봅시다.”

내가 마지막 말과 동시에 휙 모습을 감추었다. 용액에 맞지 않기 위해 뒤에 숨어서 공격을 할 것이다.

“샐러맨더.”

나는 작은 도마뱀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불꽃 칼날!”

아직 정령술의 레벨이 낮아 화염 공격의 면적이 좁았다. 작은 화염밖에 뿜지 못하니 저런 거미 군단에게는 위협적이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직접 약점을 때려 버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말을 들은 샐러맨더는 순식간에 칼의 모양새로 변한 뒤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고는 거미의 사출구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스킬 ‘불꽃 칼날’의 레벨이 1 상승했습니다.]

콱!

사출구에 박혀 버린 칼날은 쉽게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거미는 그대로 죽어 버리고 말았다. 첸테 선배 또한 놈으로 그들의 사출구를 공격해 한 마리씩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죽여도 무의미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미의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었고, 우리는 아까부터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넓은 늪지대는, 사슬거미의 서식지였다.

우리는 아직 늪지대를 벗어나려면 한참이 남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슬거미들과의 혈전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현재 첸테 선배와 잰퓨어의 체력을 고려해 보았을 경우 머지않아 지칠 것이 분명했다.

나는 손톱을 깨물었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한 마리씩 죽인다고 해도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생기지 않았다.

이 늪지대에 있는 모든 사슬거미들을 죽이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아.”

물론 도박이었다.

실패할 경우 나는 꼼짝없이 거미 밥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았다.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한 이상 나는 그 정보를 써먹어야 했다.

무조건, 이 정보 안에 답이 있을 테다.

또한 내가 한번 희생해서 나머지 두 명을 이 늪지대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든다면 충분히 그렇게 행할 의지가 있었다.

“잠시만 다들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나는 첸테 선배와 잰퓨어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내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나는 아까보다 훨씬 수월한 발놀림으로 진흙탕을 지나갔다.

첸테 선배와 잰퓨어를 뒤쪽으로 보낸 채 내가 가장 선두에 선 것이다. 그리고 거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탐나게 생겼지? 어서 빨리 잡아가라고.”

그러고는 춤추듯이 몸을 흔들었다. 뒤에서는 둘이 이야기하는 게 들려왔다.

“루나, 괜찮겠지.”

“지금이라도 말릴래요. 그러다가 죽기라도 하면……!”

첸테 선배가 잰퓨어를 손으로 말리는 것이 보였다.

“분명 루나는 무언갈 알고 있어.”

아니나 다를까, 내가 말을 마치는 순간 거미가 공중으로 용액을 분출했다.

“으으!”

그리고 나는 용액이 흩뿌려지는 곳에 가만히 선 채 움직이질 않았다.

눈을 꾹 감고 입을 앙다문 채 용액을 맞기만을 기다렸다.

촤악!

뜨겁고 끈적거리는 용액은 내 머리 위로 쏟아졌고, 나는 그걸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

말을 내뱉을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바로 스턴에 걸려 공중에 떠오른 채 온몸이 마비되는 감각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줄거미의 사슬이 나에게로 날아왔다.

탕!

내 몸을 후려치며 휘감는 사슬은 엄청 딱딱했고, 그래서 온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시.”

스턴이 풀린 내가 가까스로 한쪽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사슬을 맞는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온몸이 부서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매우 아플 뿐 몸은 멀쩡했다.

그리고 사슬에 휘감긴 내 몸은 아주 빠르게 사슬거미의 몸으로 안착했다.

“악!”

내 눈앞에는 통통한 거미의 몸통이 놓여 있었다.

구부러진 다리가 움직이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눈을 꾹 감았다.

내 발로 적진에 들어온 셈이었다. 아주 잡아먹으라고 먹여 주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루나아아아……!”

멀리서 잰퓨어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 크르르르.”

거미들은 곧이어 내 몸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세 마리쯤 합세해 내 몸을 자신들의 몸통에 올려놓더니 방향을 바꿔 반대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싸움을 멈추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모든 거미들은 네 마리의 거미들을 따라 줄지어 걸어가기 시작했다.

“후……. 승차감 완전 별로야.”

발을 마구 움직이며 걷는 탓에 온몸이 흔들거렸다. 하지만 아주 소중한 걸 들고 있다는 듯이 나를 놓치지 않으려 조심히 걷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한참을 거미 버스를 타고 움직였다.

샤샥-

진흙을 헤치며 걸어가기 때문에 속도가 아주 느렸던 우리와 달리 거미들은 아주 빨랐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이럴 수가…….”

내 몸의 백 배는 될 법한 대왕거미의 앞이었다.

마치 제물 바치듯이 거미들은 대왕거미의 앞에 내 몸을 쿵 내려놓았다.

아오, 아파.

온몸이 사슬로 꽁꽁 묶여 있는 탓에 통나무처럼 바닥에 떨어져야만 했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 대왕거미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와, 완전 징그러워, 미쳤다.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생김새였다.

내 몸의 크기만큼 커다랗고 까만 눈이 나를 훑었다. 괜찮은 먹잇감이 왔나 관찰하는 것 같았다.

휙, 휙.

대왕거미는 여러 각도에서 내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발로 나를 툭 찼다.

대왕거미에게는 ‘툭’이었지만 나한테는 엄청난 발길질이었다.

뿌연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나는 거미의 발길질에 따라 공중으로 떠올랐다.

“윽!”

그리고 이상한 곳으로 향했다.

온몸이 묶인 채 굴러떨어졌다.

쿵!

내가 도착한 곳은 흙을 파서 만든 넓은 구덩이였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주위를 확인했다.

“또 한 명이 들어왔군.”

그제야 나는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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