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45)화 (45/156)
  • 44화. 미노타 섬(1)

    잰퓨어는 떨리는 마음으로 운디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혹시라도 방에 없어서 운디네가 쪽지를 그대로 가져오면 어쩌지? 지금 시간대라면 방에 없을 리가 없을 텐데…….

    잰퓨어는 방을 서성거렸다.

    어제 세이먼의 집은 잘 갔다 온 걸까. 에르셈프랑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겠지.

    보아하니 루나한테 관심이 엄청 많아 보이던데, 우리 순수한 루나한테 뭔 짓이라도 했으면 가만 안 둘 테다.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열어 놓은 창문으로 운디네가 쏙 들어왔다.

    “어때?! 있었어?!”

    운디네는 자신이 준 쪽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잰퓨어는 순식간에 실망하고 말았다.

    방에 없어서 그냥 돌아온 걸까.

    하지만 운디네가 어서 빨리 쪽지를 보라며 건네는 탓에 그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답장인 건가?”

    눈에 띠게 화색이 된 잰퓨어가 쪽지를 보자마자 벽으로 던져 버렸다.

    ‘착각도 적당히.’

    짧은 문장 하나가 써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쉽게 나오지 않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정 없게 거절해 버리다니!

    “후우…….”

    그는 침대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의 일도 물어보고 초콜릿도 전해 주려고 했는데.

    그는 손에 든 초콜릿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에게 주려고 시장까지 나가서 사온 것이었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두 번째 임무가 들어오니 며칠 내내 루나와 붙어 있을 수 있다.

    이번에는 장기 임무가 들어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길 바랄 뿐이었다.

    임무의 난이도 같은 건 상관없다.

    그저 임무는 루나를 볼 수 있는 기회니까!

    “이번에도 같이 자야지.”

    머릿속에 이상한 상상을 그린 그가 얼굴이 붉어진 채 침대에 엎어졌다.

    * * *

    다음 날 아침이 밝았고,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하게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무려 두 번째 임무를 받는 날이니 말이다.

    첫 번째 임무에서 여러모로 느낀 게 많아서 그때보다 훨씬 긴장이 되었다.

    실전에선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걸 몸소 깨달아 버렸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남주인공들과 이어지지 않게 고군분투를 하더라도 몬스터에게 목이 날아가면 그걸로 끝이었다.

    정령술사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던 건가,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샐라임의 말이 생각나 버렸다.

    이 정도 친화력을 타고 난 사람은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라고!

    그래, 이럴 운명이었던 거다. 정령술사가 되어 세상을 돌아다니며 이 빌어먹을 게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로선 그게 목표니까.

    내 몸 하나는 내가 충분히 지킬 정도의 능력을 키울 거다.

    나는 다시 한번 결심을 하며 방을 나섰다.

    운동장으로 나가니 첸테 선배와 잰퓨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나,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첸테 선배는 그새 조금 다정해진 것 같았다. 저번에는 완전 칼같이 나를 대했는데 말이다.

    “루나! 왜 어제 안 나왔어.”

    잰퓨어는 나를 보자마자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을 걸었다.

    내가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떼어 내며 대답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오늘따라 날카로운걸.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가 다정하게 목소리를 바꾸며 물었다.

    “선생님!”

    내가 그를 무시하며 펠리엇을 맞이했다.

    펠리엇은 입에 담배를 문 채 긴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마인의 자루’ 임무를 잘 해결했더구나. 아무도 다치지 않고 돌아와서 다행이야. D급 임무여서 걱정했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던 모양이지?”

    “죽을 뻔했습니다, 선생님.”

    첸테 선배가 중얼거렸다.

    “이번에 너희들이 가야 할 곳은 아주 험준한 지역이다. 부상자가 발생할 경우 통신구를 통해 신호를 보내면 의료팀이 출발할 거야. 여기 임무 스크롤과 지도를 주마.”

    +

    정령술과 G팀 두 번째 임무

    등급: C

    내용: 미노타 섬에 들어가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 ‘템트’를 처치하고 오시오.

    +

    “미노타 섬?”

    스크롤을 읽은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첸테 선배도, 잰퓨어도 다 처음 들어 보는 곳이라고 했다.

    “라인하르트 왕국의 가장 큰 강인 메인하버 위에 있는 작은 섬이다. 사람이 살지 않고 몬스터만 우글거리는 곳이니 알 리가 없지.”

    “그런데 C등급 임무네요?”

    “…학장님의 지시다.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보셨어.”

    우리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D등급부터 F등급까지를 하급 임무, B등급과 C등급을 중급 임무, S급과 A급 임무를 상급 임무라고 불렀다.

    하급 정령술사가 중급 임무를 맡게 되다니.

    학장이 왜 그런 지시를 한 지는 알 수 없었다.

    잰퓨어와 첸테 선배를 쳐다보니 다들 긴장한 눈치였고, 곧이어 내가 당차게 말했다.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거니까 주신 거겠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렇게 믿는 편이 나았다. 자신감을 잃는 것보다 최악인 것은 없었다.

    “루나 말이 맞다. 그리고 항상 의료팀이 대기 중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펠리엇이 순간 이동 마법을 걸 수 있는 보석을 손에 쥐었다.

    주문을 영창하자 미노타 섬으로 향하는 문이 허공에 일렁거리며 생겨났고,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차례차례 발걸음을 옮겼다.

    “행운을 빈다.”

    * * *

    슈우우-

    울렁거리는 느낌과 동시에 우리는 커다란 강이 보이는 뭍에 도착했다.

    미노타 섬에 도착한 줄 알았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섬이 아니었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해.”

    첸테 선배가 손가락으로 강을 가리켰다.

    강에는 뿌연 안개가 잔뜩 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으스스한 느낌을 주었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위치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루나, 무서우면 내 옆에 꼭 붙어. 나는 괜찮으니까.”

    “됐거든?”

    “쑥스러워하지 말구.”

    “…하아.”

    선착장에서 작은 배를 탄 우리는 직접 노를 저어 섬까지 가야 했다.

    찰랑찰랑.

    첸테 선배가 노를 젓자 물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안개가 가득 낀 강을 건너려니 여간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안개 때문에 한 치 앞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자칫하면 방향을 잃을 수 있었다.

    탁한 강물은 밑이 보이지 않았고 섬으로 가까이 갈수록 녹색 이끼가 잔뜩 떠다녔다. 게다가 배도 작고 조악해서, 조금만 물살이 세지면 뒤집힐 것 같았다.

    “앞으로 쭉 가면 섬이 나와. 그런데 지도를 보면 이곳은 늪지대라고 나와 있어.”

    첸테 선배가 지도를 보여 주며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지도는 배가 내리는 곳부터 섬의 절반 부분까지가 늪지대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늪이라니, 말만 들어도 골치가 아플 것 같았다. 발을 잘못 디디면 늪에 빠져서 못 헤어 나온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섬의 절반이 습지이기 때문에 그 환경에서 자란 몬스터들이 지형적 이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삼십 분을 내리 저었을까. 우리는 뿌연 안개를 뚫고 미노타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배를 묶을 테니 먼저 내려.”

    첸테 선배가 우리를 먼저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에서 나오자마자 진흙탕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내 ‘마술사의 군화’가 움직임을 수월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었다.

    반면 첸테 선배와 잰퓨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체력 낭비가 심하겠군.”

    불투명한 연못들과 진흙밭이 계속되었다.

    푹- 푹-

    첸테 선배와 잰퓨어는 바지 밑단을 모두 적신 채 힘겨운 걸음을 계속하고 있었다.

    “꼬마야, 불안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때 샐라임이 말을 걸었다.

    샐라임의 말은 허투루 들을 것이 못 되었다. 그의 말을 들어서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디서 느껴지는 거죠?”

    내가 작게 중얼거리자 샐라임이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섬 자체에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와. 너희를 잡아먹을 정도로 강하고 악한 마력이 느껴진다.”

    “‘템트’의 영향인 걸까요?”

    “‘템트’는 고대부터 내려오던 인간형 몬스터야. 그래서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지. 사람을 순식간에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기술이 있어서 자칫하면 그녀의 먹잇감이 되어 버린다. 이 정도로 느껴지는 마력이라면 절대 쉽지 않은 녀석일 거야.”

    “이렇게나 거리가 먼데도 마력이 강하게 느껴지다니…….”

    타원형의 모양을 한 미노타 섬은 반은 늪지대, 반은 일반 평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선착장의 반대편인 섬의 가장 북쪽에는 ‘템트’가 살고 있었다.

    샐라임의 말에 의하면 템트는 주로 섬에 서식하며 인간의 영혼을 주식으로 삼는 몬스터라고 한다. 섬으로 사냥을 나온 모험가나, 어쩌다가 섬에 닿는 사람들을 꾀어내어 잡아먹어 버린다고.

    하지만 다른 섬과 달리 미노타 섬은 선착장을 제외한 섬의 테두리가 모두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선착장과 가장 먼 곳에 있는 템트와 어떻게 만나길래 죽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우리는 이 타원형의 섬을 세로로 가로질러 템트에게로 가는 것이 목표였다.

    “템트는 방어 기술이 아주 약한 몬스터야. 그러니 확실한 건 그녀에게 꾀이기 전에 몸을 쳐야 한다는 거지.”

    샐라임은 자신이 아는 정보를 모두 끌어모아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때였다.

    발이 푹푹 빠지는 늪지대를 걸어가고 있는데,

    촤악!

    갑자기 어디에선가 끈적끈적하고 뜨거운 용액이 공중에서 떨어졌다.

    우리는 가까스로 운 좋게 몸을 던지며 용액을 피할 수 있었다.

    “깜짝야!”

    그리고 앞을 보자.

    “크르르르…….”

    짙은 회색 몸통에 다리가 여덟 개가 달린 커다란 거미형 몬스터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새까만 눈부터 늪 위에 가뿐하게 앉아 있는 여덟 개의 다리까지, 아주 소름 돋기 짝이 없는 모양새였다.

    “저, 저게 뭐야!”

    첸테 선배도 처음 보는 몬스터인지 소리를 질렀다.

    고작 한 마리였지만 우리에게 주는 위협감은 아주 컸다. 빠르게 움직이는 여덟 개의 다리와 독을 품은 듯한 송곳니까지.

    게다가 끈질기게 달라붙는 진흙탕에서 움직이기 힘든 우리와 달리, 거미는 아주 안정적이고 가뿐하게 늪 위에 안착해 있었다. 아마도 다리에 달린 털이 진흙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 같았다.

    그때, 용액을 품은 거미는 입을 소름 끼치게 우물거리며 움직이더니, 다시 한번 용액을 허공으로 내뿜었다.

    촤악!

    용액은 우리 위에서 흩뿌려졌고, 나와 첸테 선배는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잰퓨어!”

    용액을 피하지 못한 잰퓨어는 몸에 용액의 일부를 맞고 말았다.

    그러자,

    “!!!!”

    잰퓨어가 땅에서부터 약 10센티 정도 뜬 허공에서 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스턴이 걸린 거다.

    10초 동안 허공에서 빳빳하게 몸이 경직된 채 얼어붙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사이 무언가가 잰퓨어의 몸을 향해 날아왔다.

    “조심해!”

    내가 몸을 날려 그를 붙잡고는 진흙탕으로 엎어져 굴렀다. 그러자 잰퓨어가 스턴이 걸렸던 그 자리에는 무시무시하게 생긴 사슬이 휘리릭 날아왔다가 돌아갔다.

    타앙!

    견고하게 엮인 사슬은 아주 단단하고 강력해 보여서 한 번이라도 맞을 경우 순식간에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자칫하면 잰퓨어가 사슬을 맞아 죽어 버렸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너, 괜찮은 거 맞아?!”

    잰퓨어는 진작 스턴이 풀렸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이 새파래진 채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전기 충격에 맞은 것처럼 몸이 경직된 채 마비되는 기분은 누가 느꼈어도 패닉에 빠져 버렸으리라.

    “어…어…….”

    그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표정이 얼어붙어 있었다.

    내가 그를 억지로 일으켜 멱살을 쥐어 잡았다. 그리고는 뺨 싸대기를 때렸다.

    “정신 차려! 안 그러면 정말 죽는다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