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첫 임무(3)
첸테 선배 또한 혹여나 벌어질 사태를 대비해 모여서 잘 것을 권유했다.
곰곰이 들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나도 어쩔 수 없이 잰퓨어 옆에 자리를 잡고야 말았다.
괜한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아야 할 텐데…….
레인타운의 밤은 어두웠고 계속 비가 내리는 탓에 우리는 굴 아래에서 비를 피하며 잠을 청했다.
“루나, 자?”
“…….”
침낭에 쏙 들어가 눈을 감고 있는 나에게 잰퓨어가 물어 왔다.
내가 대답이 없자 그 또한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눈을 꼭 감고 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잰퓨어 또한 잠이 안 오는지 옆에서 계속 뒤척거렸다.
그리고 대답이 없는 나에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있잖아.”
“…….”
“나는 여동생이 하나 있어.”
잰퓨어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나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게임에서는 잰퓨어가 신비주의 콘셉트여서 그가 살아온 배경을 알려 주지 않았으니까.
“아직 열네 살밖에 안 된 앤데… 잘 지내고 있으려나 모르겠어.”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으로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애정이 묻어 있었다.
“자매 교류회가 끝나서 돌아가면 볼 수 있는 거 아냐?”
그러자 잰퓨어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었다.
“아니, 보지 못할 거야.”
“왜?”
내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휙 돌려 물었다.
잰퓨어는 여전히 굴의 천장을 바라본 채였다.
“떨어져 지낸 지 칠 년이 넘었거든. 사실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뭐……?”
“동생이 일곱 살 때 할머니가 타국으로 보내 버렸어. 아무리 수소문을 해도 찾을 수가 없었어.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는 내가 오빠 자격이 있는 걸까.”
나는 쉽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동생을 잃어버린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잰퓨어를 그저 게임 상대로만 생각했지, 실제로 살아온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에.
“왜… 보내신 거야?”
“어머니가 달랐거든. 집 안에 놔두면 추문을 피할 수 없다는 이유였어.”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쿵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도 사생아라는 이유로 목숨을 위협당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족의 연을 끊어버리려는 사람들.
아이를 가진 것도 그들이면서 한 치의 책임감도 없었다.
“신기하게도 동생을 생각하면 네가 떠올라, 루나.”
그는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누웠다.
“…….”
“안 자면 대답 좀 해.”
그러곤 팔로 자신의 머리를 베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왜?”
내가 짧게 대꾸했다.
“성격이 비슷하거든. 틱틱 대고 예쁜 말 한 번 못 하는 게.”
“죽을래?”
그는 후후, 작게 웃음 짓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어. 꼭, 찾을 거야. 전혀 알 수 없는 산에 있든, 바닷속에 갇혀 있든, 처음 보는 세계에 있든 중요하지 않아. 내가 꼭 찾아낼 거니까.”
“여동생한테 왜 이렇게 신경 쓰는 거야? 네가 보낸 것도 아니잖아.”
“내가 막지 못했어. 루나, 나는 에리피아를 버린 것과 똑같아.”
“…….”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며 입을 움직이는 그는 꽤 진지해 보였다.
“알아볼… 수 있을까? 시간이 너무 지나서 에리피아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분명 알아볼 거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
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괜스레 전생의 가족이 떠올랐다.
나를 버리고 도망갔던 엄마가 떠오른 이유는 뭘까.
날 버릴 만큼 고통스러웠겠지, 라고 생각해 왔다.
엄마는 잘못이 없다고, 아버지와 우릴 둘러싼 상황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아린 건 어쩔 수 없었다.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잠재웠던 내 마음을 툭툭 건드리듯 엄마의 기억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
잰퓨어는 기필코 동생을 찾는다고 했다. 그리고 만나서 미안하다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힘들었던 만큼 원망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한다.
“그게 네 꿈이구나.”
내가 가까스로 입술을 움직여 대답했다.
우리 엄마는 나를 보고 싶어 할까?
문득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날 감싸 주던 엄마가 생각났다.
언젠간 아버지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실 거라며 같이 기다리자고 했던 엄마.
하지만 결국 집을 나가 버렸다. 지금은 나도 그게 얼마나 힘들었던 건지는 이해한다. 그래도, 그 후에라도 왜 날 찾지 않았던 걸까.
내가 죽은 걸 알면 슬퍼하긴 하겠지? 날 버린 걸 후회하겠지……?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게 웬 추태야. 이미 지난 일에 갑자기 왜 감성이 폭발해서는. 그동안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였었나.
나는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침을 계속해서 꿀꺽 삼켰다.
“루나……?”
그때 귀신 같게도 내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는지 잰퓨어가 몸을 일으켜 내 쪽을 쳐다봤다.
“…….”
나는 아무 말을 않고 옆으로 웅크려 누웠다. 그러곤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괜찮은 거야……?”
그런데 훌쩍이는 소리는 숨길 수 없었나 보다.
사실 운 것도 아니고 그냥 눈물이 고인 것뿐인데,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서는.
“…….”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여는 순간 울먹이는 소리가 나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잰퓨어가 아예 일어나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침낭을 얼굴 위로 당겼지만 잰퓨어는 이미 알아챈 것 같았다.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항상 잃어버린 가족을 생각했던 그의 다정한 목소리에.
나를 챙겨 주는 따뜻한 목소리에.
“아니야……. 아니라고…….”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진짜, 진짜 울고 싶지 않았고, 자존심이 너무나도 상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잰퓨어가 내 어깨를 감싸며 몸을 일으키게 도와주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그저 고됐던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을 뿐이고, 환생한 이후로도 힘겨운 상황만 겪었던 기억 때문에 잠시 내가 미친 것이었다.
잰퓨어는 나에게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그냥 눈물만 흘리는 나에게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여 주었다.
[호감도가 8% 상승했습니다!]
그 와중에 망할 호감도는 올라가고 있었다.
동정심이라도 든 걸까. 아니면 여동생 생각이 나서 마음이 동한 것일까.
그를 쳐다보자 그가 알 수 없는 미묘한 눈동자로 나를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
그가 조심스럽게 나를 와락 안았다.
“야, 야…….”
품에 넣어 한 손으로 내 뒤통수를 감싼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등을 두드려 주었다.
“이제 괜찮아.”
내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그를 밀어 냈다.
“괜찮아?”
잰퓨어는 단지 가볍고, 바람둥이 같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달리 보였다.
그가 그제야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내 어깨를 부여잡았다.
“이상하게 네가 각별하게 느껴져.”
뺨 밑으로 고였던 눈물을 닦으며 내가 내뱉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죽지 말고 나랑 같이 다니자. 꼭.”
“재수 없는 소리도 하지 마.”
내가 틱틱 대며 그의 말을 모두 받아치자 그가 그제야 안심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치지 않게 내가 꼭, 지켜 줄게.”
그는 촉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에게서 여동생이 생각나서일까?
나를 향한 호감도가 올라가서일까.
이상하게도 그의 눈빛이 무거웠다.
* * *
아침이 밝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쏴아아.
여전히 쏟아지는 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쪽 숲을 향해 강행군을 했다.
그렇게 얼마 걸리지 않아 숲의 입구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의 목표는 최대한 고블린과의 싸움을 피하는 거다. 자루만 가지고 올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전략이야.”
이곳은 유명한 대형 고블린 서식지로, 그들은 곳곳에 부락을 이루어서 생활한다고 했다.
“싸우지 않고 자루를 가져올 방법이 있어요.”
잰퓨어가 나무 뒤에 숨어 작게 보이는 고블린 무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임무에서 가져오라고 하는 ‘마인의 자루’는 보석이나 귀한 물건들을 자루에 보관해 놓는 습성이 있는 고블린의 보석함 같은 것이었다.
보통 그들이 거주하는 동굴 맨 깊숙이에 자리한다고 했다.
“뭔데?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말해야지.”
첸테 선배가 잰퓨어를 향해 말했다.
“첸테 씨가 놈을 이용해서 동굴 내부에 지진을 내는 거예요. 고블린들이 지진을 피해 동굴에서 나왔을 때 자루를 몰래 가져오면 됩니다.”
“좋네요. 고블린은 겁이 많으니까 다들 밖으로 도망갈 거예요.”
“문제는 누가 가져오냐는 건데…….”
그들의 굴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위험을 떠안아야 할 역할이 필요했다.
자칫해서 굴 안에 남은 고블린과 싸움이 벌어진다면 꼼짝없이 갇힌 상태가 되기 때문에 전투에도 불리할 것이었다.
“선배는 놈으로 지진을 내야 하니까 밖에 있는 게 맞고, 저와 잰퓨어만 남네요.”
“안 돼, 루나! 무조건 내가 들어갈게. 넌 다치면 안 돼.”
잰퓨어는 또 나를 보호하려고 들었다.
이건 임무였다.
셋의 힘을 합해서 임무 달성을 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한 명이 일 인분을 못 한다면 이 수련엔 전혀 가치가 없었다.
“조용히 해. 제가 들어갈게요. 잰퓨어는 몸집이 저보다 크니까 조그만 동굴에서 움직이기 불편할 거예요.”
누가 봐도 그게 맞았다.
내가 몸집이 작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첸테 선배는 동의했고, 잰퓨어는 내가 쏘아보는 눈빛에 마지못해 알겠다고 했다.
대신 밖에서 똑바로 엄호해 주겠다며 절대 걱정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했다.
우리는 두꺼운 나무 뒤에 서서 목표로 정한 고블린의 동굴을 바라보았다.
“그럼, 시작할까.”
* * *
고블린들은 전생에 게임에서 보던 비주얼과 매우 흡사했다.
키가 작고 귀가 큰 것이 잡몹이라는 별명처럼 작고 하찮아 보였다.
하지만 절대 얕잡아 봐서는 안 되었다.
고블린은 개개인의 능력은 약하지만 다 같이 모여서 힘을 모아 공격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들의 페이스에 휘말릴 수 있었다.
“녀석들이 굴에서 모두 나오면 잰퓨어가 신호를 주는 거야. 간다.”
첸테 선배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무 사이로 숨으며 그들의 동굴 뒤로 향했다.
나 또한 잰퓨어와 떨어지며 굴에 가장 들어가기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적진의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
스스로를 다독였다.
드디어 첸테 선배가 작업을 시작한 것 같았다.
동굴에 있던 고블린이 하나같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돌아다녔다.
그 이후로 몇 번의 짧고 작은 지진을 연달아 일으켰다.
그러자 고블린들은 마구 웅성거리며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나는 숨을 죽이고 나무 뒤에서 그들을 노려보았다.
타이밍이 되면 잰퓨어가 하늘 위로 물방울을 쏘아 올려 준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왔다.
피융!
작고 투명한 물방울이 하늘 위로 쏘아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그것은 계속해서 내리는 비와 섞여 고블린들은 눈치를 챌 수 없었다.
나는 빠르게 동굴 가까이로 몸을 움직였다.
동굴 옆으로 가서 안을 확인하니 텅 비어 있었다.
다들 놀라서 밖에 뛰쳐나간 것이 분명했다.
“지금이야……!”
나는 작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엄청 좁잖아.”
높이가 낮아 허리를 숙여야만 했다.
잰퓨어가 왔으면 절대 깊숙이 못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동굴 내부는 더욱 작아졌고, 나는 아예 무릎을 땅에 대고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끝까지 들어갔을 때,
우리가 찾던 ‘마인의 자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이스!”
나는 쾌재를 외치며 손을 뻗어 자루를 손에 넣었다.
이제 빠져나오기만 하면 된다.
고블린들은 겁이 많고 경계심이 강하기 때문에 첸테 선배는 지진을 계속해서 내고 있었다.
혹시라도 중간에 들어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동굴이 작게 흔들리면서 돌멩이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그것들을 치우며 한 손엔 자루를 든 채 엉금엉금 기었다.
중간중간 돌멩이들이 내 몸으로 떨어졌지만 ‘타락한 천사의 의복’ 덕분에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렇게 입구를 향해 얼마나 기어가고 있었을까,
“!!”
어쩐지 왜 이렇게 일이 잘 풀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