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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34)화 (34/156)
  • 33화. 첫 임무(2)

    “잰퓨어, 너는 루나를 맡아.”

    첸테 선배는 그 말을 끝으로 주머니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 왼쪽에 있는 파란 형체를 향해 던졌다.

    휙!

    순식간이었다.

    그의 손목은 보이지 않을 만큼 빨랐고, 파란 형체는 그대로 단검을 맞으며 나무 위에 박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 마리가 그렇게 공격을 당하자 그것들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붉게 빛나는 적대적인 눈빛을 품은 채 허공에 떠올라 있는 그것은 마치 뿔 달린 도깨비를 작게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생김새였다.

    “하늘도깨비……!”

    첸테 선배가 수없이 많은 그것들을 향해 외쳤고, 동시에 내 눈앞에는 하나의 창이 또다시 떠올랐다.

    [해당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때였다.

    하늘도깨비의 팔이 주욱 길어지며 내 목을 향해 날아온 것은.

    “루나!”

    잰퓨어가 몸을 날려 나를 감싼 뒤 땅바닥에 착지했다.

    하늘도깨비의 파란색 팔에 달린 손에는 아주 날카로운 손톱이 박혀 있었다.

    방금 저것에 목을 잡혔다면……

    처참하게 뜯겨 죽어 버렸을 것이었다.

    “…재, 잰퓨어…….”

    나는 순간적으로 느낀 생명의 위협 때문에 순식간에 긴장이 몰려왔다.

    하늘도깨비는 적어도 삼십 마리는 되어 보였다. 빽빽하게 우리를 둘러싼 그것들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러고는 계속해서 팔을 늘려 우리에게로 뻗으며 공격을 시작했다.

    팔은 길고 빨랐지만 한 번 내치면 손톱이 나무에 박혀 버려 다시 돌아가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놈!”

    첸테 선배가 대지의 정령을 소환했다.

    마치 바위를 덧대어 올린 것 같은 골렘처럼 생긴 놈은 세 개의 형상을 드러냈다.

    “팔을 노려!”

    놈은 순식간에 땅으로 몸을 처박더니 땅을 가르며 하늘도깨비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굴러갔다.

    그리고 하늘도깨비의 긴 팔 위로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팔을 잘라 버렸다.

    하지만 놈은 겨우 셋뿐이었고 도깨비의 숫자는 너무나도 많았다.

    잰퓨어와 나도 합세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루나, 혼자 있을 수 있지? 잠시만 여기 있어.”

    내 어깨를 감싼 채 보호하고 있던 그가 앞으로 나서며 물의 정령을 소환했다.

    “운디네!”

    아름다운 여자 형상을 한 운디네 둘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내 날카로운 얼음 모양으로 변했다.

    송곳처럼 뾰족한 얼음 모양을 한 운디네는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도깨비들을 향해 꼬챙이를 끼우듯 몸을 관통시켰다.

    “끄윽!”

    “끄헉!”

    하늘도깨비는 고통스러운지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팔을 이리저리 내치기 시작했다.

    “루나! 옆에!”

    그리고 첸테 선배의 말에 나는 옆을 바라보았고, 본능적으로 민첩하게 한 발자국을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내 배가 뚫렸을 것이었다.

    첸테 선배와 잰퓨어는 소환할 수 있는 모든 정령을 불러내 하늘도깨비의 수를 줄이고 있었다.

    그때, 아까 보지 못했던 몬스터의 정보가 생각났다.

    “몬스터 정보 확인!”

    +

    이름: 하늘도깨비

    등급: F

    특징: 라인하르트 왕국의 서쪽 숲에 서식하는 하급 몬스터. 하늘을 날아다니며 공중에서 공격을 하기에 초심자가 상대하기엔 까다롭다. 팔을 자유자재로 늘일 수 있으며 날카로운 손톱에는 약한 독이…….

    +

    “그래서! 결론이 뭔데! 약점이 어디냐고!”

    나는 눈으로 위아래를 빠르게 훑었다.

    “머리 위에 달린 뿔로 날아다니는 것이기에 머리가 유일한 그들의 약점이다……?”

    머리를 공격해야 하는 것이었다.

    배를 관통해도, 팔을 잘라도 다시금 살아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세포 분열을 하여 재생하기 때문.

    이미 첸테 선배와 잰퓨어는 나와 멀리 떨어져 계속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쾅!

    대지의 정령인 놈은 땅에서부터 에너지를 얻기 때문에 땅을 타고 올라가서 공격했다.

    하지만 하늘도깨비는 공중에 떠다니는 몸.

    그렇기에 놈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샐라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마야, 샐러맨더를 불러.”

    계속해서 땅이 부서지고 나무가 쓰러지는 와중이었는데도 샐라임의 목소리는 이런 건 별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아주 차분했다.

    “샐러맨더!”

    내가 힘차게 외치자 도마뱀 형상을 한 샐러맨더가 빠르게 한 마리 나타났다.

    “이제부터 스킬을 알려 줄 거다.”

    “지금요?!”

    “불의 정령을 이용한 가장 기본적인 스킬이지. 직관적이고 조종이 쉬워서 금방 배울 수 있어. 머릿속으로 칼날을 그려 봐.”

    콰쾅!

    나는 샐라임의 말을 들으면서도 갈라지는 땅을 피해서 도망 다녀야 했다.

    와중에 하늘도깨비도 나를 놓치지 않고자 마구잡이로 팔을 휘둘러 대고 있었다.

    “아악!”

    동시에 나는 속으로 잘 갈린 칼날을 생각해 냈다. 그것이라면 하늘도깨비의 머리를 벨 수 있을 거다.

    “생각했으면 그 모양을 머리에 그리면서 샐러맨더에게 어디로 향할지 정확하게 명령해.”

    침착한 샐라임의 말투에 나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하늘도깨비의 팔도 위협적이었지만 한번 휘둘러진 것은 속도가 느렸고, 조심만 하면 그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샐러맨더! 공격해!”

    그리고 나는 머릿속에 칼날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샐러맨더를 향해 명령했다.

    공격할 곳은 하늘도깨비의 목이었다.

    목을 베어 머리를 떨어뜨리는 거다.

    그러자,

    화르륵.

    샐러맨더가 검붉은 불꽃으로 타오르며 날카로운 칼날 모양으로 변하였다.

    마치 숏 소드에서 손잡이를 뺀 부분과 같은 형태였다.

    그리고 샐러맨더는 금세 몸을 움직이더니 하늘도깨비의 목으로 날아가 목을 베어 버렸다.

    [스킬 ‘불꽃 칼날’을 습득했습니다!]

    날카롭게 벼려진 샐러맨더는 다음 하늘도깨비의 목을 향해 전진했고, 나는 내 명령을 듣고 움직이는 정령의 모습에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꼬마야, 죽고 싶지 않으면 옆을 봐라.”

    나는 샐라임의 말에 옆을 보았고, 하늘도깨비의 독 묻은 손톱이 나에게로 달려드는 것을 마주했다.

    피할 시간은 없었다.

    동시에 나는 허리춤에 찬 샐라임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서걱!

    다섯 손가락을 가진 손이 내 눈앞에서 떨어졌다. 자칫하면 얼굴이 갈려 버렸을 위치였다.

    “좀 더 빨리 알려 줘요!”

    나는 샐라임에게 외쳤다.

    “진짜 영영 죽을 뻔했잖아요!”

    그리고 나는 다시 샐러맨더에게로 집중했다.

    내가 잠시 샐러맨더에게 향한 집중을 풀었다는 이유로 샐러맨더는 공격을 하지 않고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자칫하면 하늘도깨비의 손아귀에 잡힐 것 같은 위치였다.

    “움직여!”

    그러자 샐러맨더는 다시금 검붉게 불타오르며 그들의 목을 향했다.

    ‘불꽃 칼날’은 그리 위력이 강한 스킬은 아닌 것 같았다.

    처음에는 도깨비의 목을 금세 베어 버리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힘겹게 움직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하늘도깨비의 몸이 말랑말랑한 고무 같은 재질이라 ‘불꽃 칼날’ 정도로 일단은 처리할 수 있는 듯했다.

    샐러맨더가 지나간 자리로 도깨비의 목이 힘없이 투둑투둑 떨어져 내렸다.

    “아직 숙련도가 낮아서 그래. 그래도 거의 끝난 것 같은데?”

    [스킬 ‘정령술’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스킬 ‘정령술’의 레벨이 3 올랐습니다!]

    그제야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리를 가두었던 파란색 돔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로지 파란색 팔과 그들의 머리만이 남아서 나뒹굴고 있었고, 온몸이 엉망진창이 된 첸테 선배와 잰퓨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때마침 비가 그치면서 하늘이 개었다.

    얼마 안 가 다시 내릴 비였지만 숲속이 조금이나마 환해졌다.

    “루나, 네가 한 거야?”

    첸테 선배가 진흙으로 엉망이 된 로브를 털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뭘요?”

    “샐러맨더 말이야. 잰퓨어가 부른 것 같진 않던데.”

    그때 마지막 하늘도깨비를 처치한 뒤 가볍게 나에게로 날아온 칼날이 도마뱀 형태로 변하며 내 옆에 멈추었다.

    [직위가 ‘견습 정령술사’에서 ‘하급 정령술사’로 변경되었습니다!]

    내 주변을 빙글, 맴돌며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는 샐러맨더는 마치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고마워.”

    샐러맨더에게 인사를 하자 그것은 하얗게 부서지며 정령계로 돌아가 버렸다.

    “…….”

    첸테 선배는 나를 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곧이어 저 멀리 있었던 잰퓨어가 다가왔다.

    “어떻게 금세 없앤 거죠? 한 마리랑 대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 몰살당했어요.”

    그가 첸테 선배를 향해 물었고, 그는 턱 끝으로 나를 가리켰다.

    “루나?”

    잰퓨어는 그제야 나를 보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내 어깨를 덥석 잡았다.

    “안 다쳐서 다행이다. 못 챙겨 줘서 미안해…….”

    그는 이 상황은 둘째 치고, 자신이 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미안해하고 있었다.

    내가 부른 샐러맨더가 이 상황을 처리한 것도 모르는 것 같았고, 그저 험한 상황에서 나를 가만히 놔두었다는 것에 탄식하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과민반응이야?

    [호감도가 3% 상승했습니다.]

    내 어깨를 힘을 주어 잡고 있던 그가 깊은 눈빛으로 나를 빤히 응시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

    이름: 잰퓨어 이브

    나이: 17

    직위: 엔리에타 황립 아카데미 학생

    호감도: 18%

    +

    에르셈프보다 훨씬 늦게 나타났는데도 벌써 비슷해졌다니. 이런 속도라면 금세 세이먼의 수치를 넘길지도 모른다. 게다가 세이먼과 에르셈프는 내가 아예 마주치는 것을 피할 수 있었지만 잰퓨어는 달랐다. 매일매일 봐야 하는 건 물론이고 이렇게 죽음을 앞에 둔 상황을 같이 마주해야 하는데…….

    “잰퓨어, 좀 놔.”

    내가 힘을 주어 내 어깨를 부여잡은 그의 손을 떼어 내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쏘아보았다.

    “안 죽었으니까 걱정 같은 거 안 해도 돼.”

    그러자 그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 우릴 바라보고 있는 첸테 선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뿐이었다.

    * * *

    금세 날이 어두워져 우리는 거처를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숲속은 몬스터의 위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평야로 나온 우리는 큰 굴 앞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샐러맨더를 이용해 불을 피워 모닥불을 만들었다.

    “불의 정령술사라니, 반할 것 같아.”

    잰퓨어는 여전히 나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보고 있었고, 나는 호들갑을 떠는 그를 눈으로 흘길 뿐이었다.

    “하늘도깨비의 약점은 어떻게 안 거지?”

    우리는 젖은 몸을 녹이며 모닥불에 둘러앉아 첸테 선배가 준비해 온 따뜻한 차를 마셨다.

    밤은 어두웠고 우리가 있는 곳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냥 목을 자르면 될 것 같았어요. 딱히 큰 이유는 없고요.”

    내가 쉽게 대답했다.

    게임 시스템이 몬스터의 정보를 알려 주었다고 말할 순 없으니 말이다.

    그냥 웬만한 동물은 목을 자르면 다 죽잖아?

    첸테 선배의 놈이 바위 형태라 목을 자르기 힘들었고, 잰퓨어의 운디네가 송곳 형태라 몸을 꿰뚫기만 했던 건 순전히 운이 안 좋았을 뿐이었다.

    “운이 좋았죠. 칼날이 먹혔다는 게.”

    “아마 우리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해서 달려든 것 같아.”

    “원래 이렇게 몬스터가 습격을 하는 경우가 많나요?”

    “적지는 않은 편으로 알고 있어. 그런데 오늘같이 수가 많은 경우는 나도 처음 봤어. 자칫했으면 목숨이 날아갈 뻔했다고.”

    “첸테 씨. 또 겁준다니까. 안 죽고 이렇게 잘 살아 있잖아요.”

    잰퓨어가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위험성을 알려 준 것뿐이야. 실제로 임무 수련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하니까. 그만큼 모험가란 직업은 항상 생명을 내놓고 살아야 하는 직업이지.”

    첸테 선배는 곧 있으면 졸업이었다.

    그는 마을의 모험가 길드에 들어가 정령술사로서 활동할 것이라고 했다.

    “선배는 왜 모험가가 되고 싶어요? 선배 정도면 바로 마법 협회에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냥, 재밌잖아. 지루한 마법 협회에서 평생을 썩을 순 없어.”

    나는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모험가…….

    이유는 달랐지만 나의 목표도 그와 같았다.

    밀리센트 가문을 피하는 건 물론이고, 나를 괴롭히는 게임 시스템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모험가만 한 직업이 없다.

    게임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이 마을에 틀어박혀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 내 실력을 키워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

    나는 차가운 손을 불에 쬐며 녹였다.

    몇 시간을 내리 걸었고, 갑작스러운 전투가 일어났던 터라 몸이 노곤노곤했다.

    “몬스터의 습격을 대비해 차례대로 보초를 서자.”

    첸테 선배의 말에 따라 나와 잰퓨어는 먼저 잠이 들 수 있었다.

    나는 바위 앞쪽에 모닥불이 가까운 곳에 침낭을 준비하며 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잰퓨어가 금세 나에게 다가왔다.

    “루나아.”

    그러고는 자신의 침낭을 내 침낭 옆에 두는 것이 아닌가.

    내가 다른 쪽에 손가락질을 하며 내뱉었다.

    “저기도 자리 많은데.”

    그런데 잰퓨어는 히죽 웃으면서 내 쪽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난 여기가 좋은데?”

    “그럼 내가 저기로 갈게.”

    내가 자리를 옮기려고 하자 잰퓨어가 나를 급하게 붙잡더니 입을 열었다.

    “위험해서 안 돼.”

    “…뭐가?”

    “몬스터도 그렇고, 날씨도 험하고, 천둥이 칠 수도 있고 그러니까.”

    “…….”

    “내 옆에서 자.”

    부끄러운 눈빛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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