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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27)화 (27/156)

26화. 함께하는 수련(1)

“잰퓨어 이브라고 합니다.”

자신이 G팀이라고 호명되자마자 옅게 미소를 짓던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말았다.

같은 팀이라고?

같은 반인 것도 모자라 같은 팀?

믿기지 않았다. 어쩜 이런 우연이 다 있을 수 있지?

밤에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수업 시간 때 내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쫓겨 나간 뒤, 같은 팀까지 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확실한 건, 극히 희박한 확률이라는 것이다.

“자! 이제 팀 배정이 끝났다. 앞으로 육 개월을 같이 하게 될 팀원들에게 인사를 하도록.”

펠리엇의 말이 들려왔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팀은 전부 대여섯 명인 것에 반해 우리 팀은 딱 셋뿐인 것이다.

그때 펠리엇이 다가왔고, 우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이렇게 대답했다.

“어쩔 수 없어. 너네가 잘난 탓이지.”

“…….”

그렇게 나는 첸테, 잰퓨어와 함께 한 팀이 되어 육 개월 동안 임무 수련을 같이 하게 되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내가 인사를 하자 첸테 선배는 그런 인사치레는 필요 없다는 양 손사래를 쳤다.

“근데, 너 마력량은 둘째 치고, 정령을 불러낼 줄은 알아? 듣자 하니 테스트 때 몸으로 때웠다던데.”

“아, 아뇨. 정령 불러낼 줄 모릅니다.”

냉정하게 말하는 첸테 선배는 상대방에게 원래 무뚝뚝한 편인 것 같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서워하거나, 멀리했을 법도 하지만…….

‘이런 사람이 겉과 속이 똑같지.’

군인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탓에 전혀 무섭거나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틱틱 대며 챙겨 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폐 끼치고 싶지 않으면 다음 수업까지 정령 불러내는 법 익히고 와. 책을 보든 선생님을 붙잡든 어떻게 해서든지.”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악의는 전혀 없어 보였고, 원래 그런 사람인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러곤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였다.

“일 학년이라고 안 봐준다.”

아무래도 샐라임과의 수련이 시급할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간 첸테 선배에게 온갖 잔소리란 잔소리는 다 들을 것 같았으니.

게다가 잰퓨어…….

저 변수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매일같이 붙어 있어야 하는데 세이먼한테 구는 것마냥 모질게 굴 수도 없고, 나름 사회성 있게 대해야 하는데, 그러자니 잰퓨어가 다가올 것 같고…….

머리가 아파 왔다.

잰퓨어는 이런 나의 마음을 전혀 모르겠지.

왜 하필 정령술을 배웠니, 왜.

그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은근슬쩍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후회돼요. 친구 하지 말걸 그랬어요.”

“이제 와서 말 바꾸기 없어요.”

“내가 친해지고 싶은 상인가?”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착각도 적당히.”

누가 보면 내 성격이 미쳤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퉁명스럽게 굴다가 친구가 되자고 하질 않나, 친구가 되자마자 또다시 차갑게 대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3 남자 주인공인 ‘잰퓨어 이브’의 공략 방법은,

그가 내뱉는 달콤한 말에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호감도는 쭉쭉 올라갔다.

실제로 잰퓨어 루트가 가장 쉬운 루트이기도 하고.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뀐 상태.

그에게 넘어가지 않으려면, 그의 모든 말을 거부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하지만 잰퓨어는 자존심도 없는지 이런 말을 하는 나에게,

“밤에 어디로 놀러 갈까요?”

“…….”

“오늘 갈까요? 피곤하면 내일? 아니, 아무래도 오늘이 좋겠어요.”

상처 따윈 받지 않는 것 같았다.

* * *

수업이 끝난 뒤 나와 샐라임은 매번 연습하던 공터로 향했다.

내일이 바로 첫 임무를 받는 날이기 때문에.

“정령을 불러낼 수 있는 기초적인 마나 운용을 알려 줄게.”

샐라임이 입을 열었다.

“간단히 말하면 마나홀을 만들면 성공이야. 저번에 네가 성공했던 것처럼, 그게 어느 장소든지 가능하게 해야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 부근에 마나가 모여 소용돌이치도록 하는 것.

아공간 필드에서는 한 번에 성공했지만 학교 내에서나, 기숙사에서는 실패했다.

마나가 생각보다 잘 모이지 않는 탓이었다.

나는 공터 한가운데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자연의 마나를 느끼고자 집중했다.

눈을 감고 정신과 자연이 하나로 일치할 때 푸른 마나의 흐름이 내 몸의 테두리를 타고 도는 것이 느껴졌다.

“흐읍……!”

그 테두리에 있는 마나를 심장 부근으로 집합시켜 하나의 원을 만들어야 했다.

내가 정신을 집중하면 심장 부근에 작은 소용돌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은 소용돌이는 더 이상 원이 되지 못하고 자꾸만 흩어져 나갔다.

“하아…….”

셀 수 없이 많은 시도 끝에도 성공하지 못하자 나는 답답한 마음에 집중을 풀고는 잔디에 누워 버렸다.

안 그래도 더운데 온 정신을 집중하니 몸이 땀범벅이었다.

‘원래 오래 걸리는 건 알았지만…….’

수업이 끝나고 펠리엇을 붙잡고 물어본 결과 정령을 불러내기 위해서는 두세 달간의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보통 일 학년은 입학해서 세 달 동안 기초 훈련을 받으니 그때 기본적인 마나 수련을 익히고, 적성 테스트 행사 때 시험을 보고 정령술과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니 첸테 선배 입장에서는 내가 당연히 기본적인 마나 수련을 다 거쳤을 거라 생각했을 터.

두세 달이 걸리는 것을 하루 만에 하려니 벅찬 것도 사실이었다.

마나홀을 만드는 것은 이전의 마나를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정교한 컨트롤을 필요로 했으니.

그렇게 잔디밭에 누웠다가, 앉았다가, 휴식과 훈련을 반복하고 있었을까.

“헉…… 헉…….”

숨을 고르며 손부채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루나?”

공터 왼쪽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항상 여기서 수련을 하는군.”

에르셈프였다.

내가 벌떡 일어나 그를 맞이하자,

“그러지 않아도 돼.”

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날씨가 더운지 로브를 벗고는 땅에 내려놓았다.

검은 재킷에 흰 셔츠, 갈색 바지에 부츠를 신은 그의 모습은 기가 막히게도 매력적이었다.

그가 나에게로 다가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나도 그를 따라 옆에 착석했다.

“오늘은 검을 쓰지 않던데.”

에르셈프는 혼잣말을 하듯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자칫하면 그의 말을 무시하기 쉬웠다.

하지만 왕자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니 주의 깊게 들어야만 했다.

“마나에 관한 수련을 하고 있었어요.”

“마나?”

“심장에 축적하려 해도 자꾸 흩어져서요.”

그러자 눈꺼풀을 내리깔고 밑을 내려 보던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 건 내가 잘하는데, 필요하면 도와주고.”

“에르셈프도 마법을 쓰나요?”

“오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필요하지.”

그가 짧게 대꾸했다.

에르셈프도 오러를 쓰는구나.

하긴, 검법A반인데 쓰지 않을 리가 없겠지.

게다가 그는 왕실 기사단에게 검술을 배웠을 터였다. 손에 꼽는 엄청난 고수에게 전수받았겠지.

“아뇨, 괜찮아요. 혼자 수련해도 충분해서…….”

“강물을 생각해 봐.”

그는 또다시 내 말을 무시하고는 입을 열었다.

왕자로 자라서 그런가?

어쩜 이렇게 사람 말을 안 들어 먹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흘러가는 강가 위에 큰 바위를 두면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 사이에 고이잖아.”

“……네.”

이미 설명을 시작한 그에게 내가 대충 대꾸를 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에르셈프의 행동은 내가 어찌한다고 막을 수가 없었다.

세이먼이나 잰퓨어라면 한 소리라도 했겠지만 에르셈프에겐 그럴 수 없었다.

한 나라의 왕자라는 것이 그렇게 만들었다.

후, 왕족이란 게 이렇게 크게 다가올 줄이야.

“마나 또한 그런 원리야. 무작정 모으려고만 하지 말고 물에 돌을 놓아 길을 만드는 것처럼 운용해야 하는 거지.”

그가 보랏빛 눈동자를 빛내며 나에게로 몸을 돌렸다.

우리는 잔디밭 위에 앉은 채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

나는 속으로 호감도를 떠올렸다.

지금 에르셈프의 호감도는 20%다.

저 수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

‘아……!’

그리고 현재, 머릿속에 어떤 묘안이 하나 떠올랐다.

“해 볼게요.”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들은 채 자세를 잡고 집중을 시작하였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아둔 손, 꾹 감은 눈, 다물어진 입술까지, 온 정신을 하나로 모았다…….

아니,

모으는 척을 했다.

“흐읍.”

나는 소리를 내며 최대한 자연스럽고 필사적으로 마나 운용을 하는 척을 했다.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엄청 열심히 하는 것처럼.

그러고는,

“으아!”

집중을 풀며 그에게 무책임하게 말했다.

“안 되네요.”

그러자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잠시 쓰다듬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다시 해 봐.”

나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몇 번이고 실패하면 알아서 나가떨어지겠지!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눈을 슬쩍 뜨자 그가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내가 성공하길 빌고 있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에르셈프. 당신의 뜻대로 되진 않을 겁니다.

나는 또다시 집중하는 척을 했다.

처음에는 자연의 마나를 끌고 와서 몸에 흐르도록 한 뒤, 에르셈프가 아까 말했던 길을 만들어 보라는 말 따윈 시도해 보지도 않은 뒤 그냥 마나의 흐름을 풀어 버렸다.

“도저히 안 돼요!”

내가 이제 어떡할 거냐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는 약간은 당황한 것 같았다.

이렇게 내가 실패할 거란 생각은 추호도 못 했겠지.

그러니 남을 도와준다는 말은 그렇게 쉽게 하는 게 아니랍니다, 왕자님.

앞으로 에르셈프가 나에게 도움을 주려 다가올 리는 없겠다는 생각에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당황한 그는 딱 한 번만 더 해 보라며 요구했고, 나는 흔쾌히 알겠다며 다시 시도했다.

“…….”

나의 삼 분짜리 일인극이 시작되었고,

이내,

“못 하겠어요!”

라고 꽥 소리를 질러 버렸다.

[호감도가 2% 하락했습니다.]

에르셈프는 왕실 교육 코스를 밟은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일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을 못 알아먹는 사람은 처음 보았겠지.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리도 없었을 테고.

항상 무표정을 유지하는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서렸고, 나는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썼다.

나는 이렇게 된 거 더 호감도를 떨어뜨릴 생각으로 입을 나불댔다.

“저는 바본가 봐요. 마나 같은 거 제가 배울 게 아니었는데……. 그냥 집에서 빨래나 할 걸 그랬어요. 괜히 아카데미에 들어와서는 고생이나 하고. 아무래도 저랑 안 맞는 것 같아요.”

“…….”

이 정도면 정이 떨어지겠지?

사람은 자신한테 확신이나 자신감이 없는 사람한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괜히 오버를 떨며 나는 틀렸다며, 에르셈프도 나한테 이런 헛된 시간 쓰지 말라며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러자, 굳게 입을 다문 채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그가 어떤 결심을 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떤 말을 하려는 것이길래 저렇게 비장한 표정이지?

“내가 네 심장에 손을 올려놓을게.”

그러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적으로 심장 부근에 손을 대겠다는 그의 말에 뇌가 멈췄다.

심장 부근에 손을 댄다는 것은 가슴에 닿는다는 것 아닌가!

내가 지금 대체 뭔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이렇게.”

그가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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