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22)화 (22/156)
  • 21화. 솟구치는 감정(2)

    그녀는 성큼성큼 병실 안으로 들어와 세이먼의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내 몸을 밀쳐 냈다.

    “악!”

    그녀는 히아신스였다.

    세이먼이 다쳤다고 하니 어떻게든 정보를 듣고 찾아올 여자는 그녀밖에 없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네까짓 게 세이먼의 몸에 손을 대냐고!”

    벽으로 밀쳐진 내가 순간적으로 열이 뻗쳐 바로 말을 받아쳤다.

    “세이먼이 손을 다쳤잖아! 밥도 못 먹는 상황이고!”

    “그걸 왜 네가 먹여 주고 있냐고. 뻔히 내가 있는데!”

    그녀는 상황이 몹시 짜증스럽다는 듯 히스테리를 부렸다. 나도 원하는 상황도 아니었고, 어쩔 수 없이 하던 거였는데 오해를 받으니 억울하고, 또 짜증났다.

    “히아신스, 소리 지르지 마. 왜 갑자기 찾아와서 난리지?”

    그때 세이먼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평소에 히아신스를 대하는 그의 태도라고는 믿기지 않는 말투였다.

    “뭐……뭐?”

    그녀 또한 당황한 듯 입을 뻐끔거리며 무어라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의 말투는 차갑다 못해 아주 냉정해서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찾아왔냐고 물었어. 또 누구한테 듣고 온 거지?”

    “세, 세이먼…….”

    히아신스는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향하며 주먹 쥔 손을 작게 떨었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는 듯이.

    어떻게 네가 이럴 수 있냐는 듯이.

    그러고는,

    “너, 나와.”

    히아신스가 내 팔목을 덥석, 붙잡더니 나를 바깥으로 끈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내가 모든 원흉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세이먼과 가까이 있던 것도, 밥을 먹여 주려는 것도, 세이먼이 자신에게 차갑게 군 것도, 모두 나 때문이라고.

    “이거 안 놔?!”

    나는 붙들린 팔을 빼내려고 팔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하지만 히아신스의 악력은 대단했다.

    팔목이 끊어질 것처럼 세게 잡았고 그 누구보다 강력한 욕망으로 나를 바깥으로 이끌었다.

    “미친 거 아니야? 놓으라고 했잖아!”

    “히아신스! 그만 해!”

    세이먼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 팔을 붙잡은 채 병실 밖으로 나와 복도로 질질 끌었다.

    “놓고 말하라고!”

    세이먼은 발은 다치지 않았기에 그녀에게 끌려가는 나를 따라 병실을 나왔고, 그때 그녀가 세이먼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따라오지 마, 세이먼.”

    으르렁거리며 그에게 말하는 것은 마치 새끼가 적에게 붙잡힌 하이에나 같았다.

    세이먼은 그녀의 말투에 잠시 발을 멈추었다. 동시에 나는 여전히 그녀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나를 끌고 온 곳은 같은 층에 있는 병원 휴게실이었다.

    나를 휴게실 안으로 던지듯이 집어넣고서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 미친 계집애가, 진짜 어떻게 되어 봐야 세이먼한테서 떨어지겠어?”

    “끼어든 건 너야. 세이먼 말 못 들었어? 왜 찾아왔냐잖아.”

    나는 사실만을 말했다.

    나와 세이먼이 있는 공간에 그녀가 찾아왔고, 그녀 혼자 난리를 피웠다. 그게 팩트였다.

    “이게 진짜 죽으려고 환장했나, 내가 예전부터 경고했지. 세이먼한테 들이대지 말라고. 사람 말이 말 같지가 않아?!”

    “너야말로 적당히 좀 해. 세이먼이 지친 거 안 보여? 너희들 관계 전혀 알 바 아닌데, 세이먼이 저러는 걸 보니 네 수준도 알 만하다.”

    “뭐? 지금 말 다 했어?”

    “너 그거 집착이야. 사랑 아니라고. 그렇게 굴면 세이먼이 네 것이라도 될 것 같나 본데, 원래 사람이란 쥐려 할수록 도망가는 법이야. 세이먼이 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해 볼까? 지금이라도 물어보러 갈래?”

    “이 미친 계집애가!”

    짝!

    순식간이었다.

    그녀가 내 뺨을 날린 것은.

    반대편으로 날아간 고개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약하게 맞은 것도 아니었다.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풀 스윙이었단 말이다.

    나는 맞은 뺨에 손을 갖다 대며 꺾인 고개 그대로 시선을 아래로 하고 있었다. 그때,

    “히아신스!”

    세이먼이 들어왔다.

    팔에 꽂혀 있던 링거를 억지로 뺐는지 팔에선 피가 흐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휴게실로 들어오자마자 나에게로 달려왔다.

    “루나! 루나, 괜찮아요?”

    나는 눈을 꾹 감고 부들부들 떨리는 화를 최대한 참고 있었고, 세이먼은 내 어깨를 감싸며 계속해서 괜찮냐며 물어왔다.

    히아신스 또한 화를 주체하지 못하며 주먹을 쥐고는 손을 떨고 있었고, 이내,

    “흐어어…….”

    울음을 터뜨렸다.

    봉변을 당한 것도 나고, 뺨 싸대기를 얻어맞은 것도 난데 왜 쟤가 우는 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뭐가 억울하다고 우는 거지?

    이 상황을 자처한 건 본인이잖아?

    “흐어, 흐어어…….”

    그녀는 우는 것이 창피하지도 않은지 소리를 내며 눈물을 뚝뚝 흘려 댔다.

    “세이먼. 세이먼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약속했잖아. 우리 결혼할 사이라고.”

    “히아신스. 이건 별개의 문제야. 진정 좀 해.”

    “내가 어떻게 진정을 할 수 있겠어! 뻔히 다른 여자가 내가 결혼할 남자한테 밥을 먹여 주려 하고 있는 꼴을 보았는데!”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울부짖었다. 휴게실 내부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세이먼이 무섭게도 낮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읊조렸다.

    “…우린 부모님에 의한 정략결혼 관계일 뿐이야. 사랑 같은 건 존재한 적도 없다고.”

    “…뭐……?”

    “널 사랑해 줄 남자를 찾는 거라면 다른 곳 가서 알아봐. 지긋지긋해서 더는 못 하겠으니까.”

    평소에 상냥한 사람이 무표정을 하면 위화감이 큰 것처럼, 항상 다정하던 그가 냉소적으로 중얼거리자 그것만큼 이질적인 것이 없었다.

    세이먼은 그녀에게 질린 것이었다.

    부모님들에 의해 정해진 결혼. 그것에 장단을 맞추고자 온갖 노력을 하였지만 이제는 한계가 오고야 만 것.

    “다 너 때문이야……. 다 너 때문이라고……. 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괜찮았어……. 네가 나타나면서부터 모든 게 망가진 거야…….”

    그녀가 미친 듯이 중얼거렸다.

    누구 하나 죽일 듯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며 계속해서 입을 움직였다.

    나는 그녀의 광기 어린 모습에 눈을 감고야 말았다.

    이런 치정극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고, 그들의 관계 따위 알 바 아니었다.

    나는 단지 나를 위해 몸을 날려 준 세이먼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고, 퀘스트를 위해 온 것뿐이었다.

    “가 볼게요, 세이먼.”

    “루나, 잠시만요. 할 말이 있어요.”

    “저는 할 말이 없어서요.”

    “기다려요!”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휴게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계단으로 빠르게 병원 밖으로 나와 버렸다.

    일 분이라도 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퀘스트고 나발이고, 그럴 기분이 못 되었다.

    “그런데, 루나…. 아직 십 분 남았다?”

    그리고, 샐라임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내가 병원을 나서자마자였다.

    * * *

    30분에서부터 떨어지던 타이머는 귀신같게도 ‘10:03’에 멈춰 있었다.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내가 겪은 거지 같은 상황에 도저히 열이 식지가 않았다.

    “뺨… 괜찮냐?”

    샐라임이 조심스럽게 물어 왔고, 나는 아무런 대꾸 없이 볼을 매만졌다.

    아직 빨갛게 부어 있었다. 좀만 더 세게 때렸으면 입 안쪽이 터졌을 거다.

    “내가 예전부터 말했지. 재수 없는 애였다고. 그러니 진작 죽여 버리자고 했잖아.”

    샐라임은 나를 위로해 줄 요량이었는지 대신 투덜거려 주기 시작했다.

    “…….”

    “어디 감히 우리 귀하신 몸에 손을 대. 그것도 뺨을 때려? 사형감이야 사형감.”

    “…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가, 뺨 맞고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뭐 자기가 책임진대? 그거 사회적으로 아주 큰 손실이야.”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금세 웃음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그는 날 달래 줄 줄을 알았다.

    세이먼처럼 자신을 호소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것도 아닌,

    적당한 장난기로 나를 풀어 주었다.

    “내가 이 검에서 나오기만 하면야, 걔부터 먼저 없애 줄게.”

    “하하하… 됐어요….”

    나는 웃음을 흘리며 그에게 이제 그만하라며 손사래를 쳤고, 그는 좀 나아졌냐며 괜히 살랑거렸다.

    샐라임 덕분에 기분이 나아진 건 사실이었다.

    히아신스의 더러운 성격도 알고 있던 바이기도 했고, 게임 중에 나오는 엄청난 짓거리에 비하면 뺨 싸대기는 약과인 셈이기도 했다.

    물론 내가 그녀의 만행을 당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지만.

    그런데,

    ‘10:03’

    남은 10분을 어떻게 채우냐가 문제였다.

    이 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나는 정령술과의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이런 미친 퀘스트…….

    어떻게 페널티를 줘도 수업을 못 듣게 하는 벌을 내릴 수 있지?

    내가 정령술과에 가는 게 그렇게도 싫은가?

    게임은 이전부터 필사적으로 내가 정령술과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겼다.

    당당히 테스트도 통과했는데, 수업을 못 듣는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다.

    아마 한이 되어서 귀신으로 남아 버릴 거다.

    “벌써 밤인데…….”

    밖을 보니 하늘이 새까맸다.

    다들 내일을 위해 잘 준비를 하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하루가 끝나기까지 고작 두 시간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전에 어떻게든 남은 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까짓거 갔다 오자.”

    “병원을요?”

    “응. 대화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춤을 추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시간만 보내라고 했다며.”

    그의 말이 맞았다.

    퀘스트에는 ‘30분 동안 시간을 보내시오.’라고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보상으로 적혀진 ‘서사급 아이템.’

    저 보상에 대해서도 궁금한 건 사실이었다.

    아직까지 아무런 아이템을 장착해 본 적이 없기에 더욱 기대가 되는 것도 있었고.

    “자고 있겠죠?”

    우리는 그가 자고 있는 틈을 타 몰래 옆에 서서 십 분만 채운 뒤 나올 것이라는 계획을 세웠다.

    그것도 옆에서 함께 있는 것이니 아마 시간에 적용이 될 것이었다.

    나는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채 기숙사 방 문을 조심스럽게 나왔다.

    물론 샐라임도 허리에 차고 있는 채였다.

    살금살금 기숙사 계단을 내려왔다.

    규정대로라면 열 시가 넘어서는 기숙사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였다.

    “정문엔 경비원이 지키고 있을 텐데. 어디로 나가려고?”

    “다 생각이 있죠.”

    기숙사는 남자 기숙사 한 건물, 여자 기숙사 한 건물이 이어져 하나의 조형물을 이루는 형태였다.

    그리고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사를 잇는 다리엔 이 건물을 빠져나갈 수 있는 뒷문과 이어지는 계단이 존재했다.

    다리는 삼 층 복도 끝 비상구 문을 열면 나온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팔 층. 계단을 이용해 빠르고 조용하게 삼 층까지 내려갔다.

    아무도 없이 잠잠한 건물 복도는 어두컴컴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발소리가 복도 전체에 울렸고, 크게 진 나의 그림자가 마치 나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삼 층의 복도 끝까지 발을 옮긴 나는 비상구의 문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철컥, 철컥.

    “잠겼잖아……!”

    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낭패였다.

    이곳이 아니면 나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내가 아는 바로는 그랬다.

    다시 한번 더 문고리를 돌려 보았다.

    여전히 굳게 잠겨 걸쇠에 걸리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어쩌죠……?”

    샐라임에게 물으며 나는 문을 벽 삼아 등을 기대며 주저앉았다.

    그러자, 마법 같게도,

    철컥!

    바깥에서 누군가 잠금장치를 푸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는 바람에 등을 기대고 있던 나는 그대로 뒤로 자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문을 연 누군가가 내가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등을 잡아 주었다.

    나는 잠자코 숨을 죽인 채 문을 연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살피기 위해 고개를 올렸다.

    “……!!”

    그리고 내 눈이 휘둥그레 떠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잰퓨어……?”

    내 앞에 있는 남자는.

    세 번째 남자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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