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또 한 번의 기회(3)
학장이 준 일주일은 빠르게 흘렀다.
마나 운용법과 검술 수련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시간이 후딱 가 버린 것이다.
어느새 테스트 당일이 찾아오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미리 공지된 장소로 향했다.
또 한 번의 기회.
이 기회를 놓치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미래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퇴출은 물론, 당장 살아갈 거주지조차 없었다.
그리고, 길바닥에 나앉아 나를 찾는 밀리센트 가문의 손아귀에 잡혀가 노예로 팔려 나가는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무조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기는 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이쪽으로.”
부스에서 보았던 테스트와 마찬가지로 나를 위한 필드가 마련되어 있었다.
정령술과 담임인 펠리엇, 학장, 다섯 명 정도의 정령술과 선배들, 그리고……
‘세이먼?’
세이먼도 함께였다.
학생회장이라는 신분으로 온 건가?
내 테스트까지 참관할 줄은 몰랐는데.
그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들어가렴.”
펠리엇의 말에 나는 칼을 꽉 쥐고는 발걸음을 뗐다.
마나를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인지 필드에 들어서자 무언가 나를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펠리엇이 스크롤 하나를 품속에서 꺼내려고 할 때였다.
학장이 그의 팔을 막았다.
“내가 하지.”
그러고는 자신의 재킷 안주머니에서 스크롤 하나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적으로 불안감이 몰려왔다.
왜 학장이 나서는 거지?
혹여나 학장이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겠지?
그래서는 안 되었다.
변수가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학장은 바닥에 스크롤을 펼치더니 작게 주문을 외웠다.
슈우우…….
그러자 필드에는 거대한 몬스터 하나가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한 시간 15분.”
학장이 짧게 내뱉었고, 곧이어 필드 오른편에 작은 타이머가 생겨났다.
몬스터의 모습은 연기에 가려져 형상이 잘 보이지 않다가, 점점 걷히니 그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그리고,
[전투 모드가 발동됩니다.]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전투 모드는 뭐지?
처음 듣는 것이었다.
이내 내 시야 왼쪽 상단에 내 체력 수치가 긴 막대 형태로 표시되었다.
지금은 완전히 체력이 다 차 있어서 초록색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몬스터의 머리 위에는 작은 글자가 써 있었다.
‘칼날 도둑 가재’
그것의 몸집은 나의 오십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정말 말 그대로 거대했다.
생김새는 내가 알던 그 가재와 똑같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저 집게발에 닿으면 몸이 갈리겠는걸.”
아주 잘 벼려진 칼날이 생각날 정도로 날카롭고 뾰족한 집게발을 이리저리 흔든다는 점이었다.
가재는 저 위에서 검은색 두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나의 위치를 찾았다.
아무래도 시력이 안 좋아 내가 잘 안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리 봐도 이게 하급 몬스터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장이 나를 엿 먹이려는 심산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까.
저걸…… 저걸 어떻게 처치하란 말인가.
가재의 껍데기는 마치 콘크리트처럼 아주 단단해 보였다. 내 칼을 가지고는 절대 허용하지 않을 두께였다.
그때였다.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던 가재가 나를 발견한 것은.
그러고는 엄청난 크기의 집게발을 하늘 위로 올리더니 땅을 향해 내리쳤다.
쾅!!!
집게발이 박은 그 땅은 처참하게 작살나 있었고, 나는 필사적으로 뛰어 가까스로 사망을 피할 수 있었다.
“이런 미친, 한 방 맞으면 즉사잖아!”
나는 그때 머리에 번쩍, 하고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를 느꼈다.
아, 내 게임 경력 10년 치가 여기서 빛을 발하는구나.
전투 모드는 그것이 칼날 도둑 ‘가재’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그리고 가재와 같은 절지동물 몬스터들은 보통 하나같이 약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마디와 마디를 연결하는 접합부. 그곳은 다른 곳과는 달리 보호하는 부분이 없었고, 살이 여린 부분이었다.
그만큼 부위가 좁아 조준하기 힘들지만.
나는 타이머의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또다시 가재가 집게발을 내리치기 전에 내가 먼저 공격하는 것이 중요했다.
집게발 공격은 자칫해서 맞기라도 하면 몸이 두 동강 날 것이었으며, 피한다 한들 그 여파가 너무 커 땅이 모두 어그러졌다.
나는 칼을 꽉 쥔 채 가재를 향해 돌진했다.
아까의 여파로 거리가 너무 멀어져 뛰는 거리가 꽤 되었다.
내가 달려오는 걸 보았는지 가재는 이리저리 집게발을 흔들며 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꼬마야, 옆에!”
샐라임이 옆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미리 말해 주자 내가 허리를 숙여 피할 수 있었다.
그대로 가재를 향해 달렸다.
가까이 갈수록 가재의 부속지와 다리들이 보여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그것의 앞에 도달했을 때 나는 땅을 도움닫기 삼아 온 힘을 다해 점프했다.
그러고는 몸마디와 마디 사이의 접합부에 칼을 꽂아 넣었다.
키야아아악!
칼의 길이가 짧아 아쉬울 정도로 정확하게 들어간 일격이었다. 가재는 고통에 몸서리치며 온몸을 버둥거렸다.
나는 접합부에 박힌 칼 때문에 가재의 몸짓과 같이 함께 휘둘렸다.
“으으!”
최대한 칼 손잡이에 힘을 주며 버텼다.
이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그것 나름대로 즉사일 것 같았다. 사인은 아마…… 두개골 골절?
나는 칼에 온 힘을 주어 접합부를 말 그대로 쫙 찢어 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가재에게서 떨어져 땅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쿠웅!
땅에 떨어지자마자 등이 부서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동시에 시야 왼쪽 상단에 있는 체력 수치가 삼 분의 일이 확 닳아 버리고 말았다.
이상하게 그 수치를 보자 몸에 힘이 더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키야아아아!
가재는 아직도 고통에 몸서리치며 포효하고 있었고, 나는 두 번째 공격은 어떻게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약 7분가량이었다.
그 안에 무조건 처치를 해야만 했다.
칼날 도둑 가재 또한 내 공격에 타격을 받았는지 힘이 좀 떨어진 것 같았다.
내가 찢어 버린 배 마디의 접합부에서는 검은색 피가 솟구치고 있었고, 나는 손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제한 시간이 15분이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15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상대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충분히 남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며 차분하게 생각했다.
절지동물의 다른 약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바람이 휘잉, 불며 나를 감싸고 지나간 것과 내게 묘안이 떠오른 것은 동시였다.
가재는 물속에서 사는 생물이다.
가끔씩 땅에 올라올 수는 있지만 땅에서 살 수는 없는 생물이라는 거다.
그리고 가재가 이 필드 안에 들어온 지 이제 막 8분을 지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의 두 번째 약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
“꼬마야, 괜찮은 거냐? 몸이 피범벅인데.”
“제 피 아니에요.”
그리고 나는 칼을 쥔 채 땅에 가만히 서 있기를 자처했다.
먼저 공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가재는 피를 뿜으면서도 나를 찾으려 이리저리 매서운 눈을 돌렸다.
그러고는 집게발로 여기저기 땅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우왓!”
나는 땅이 갈라짐에 따라 여기저기 쏙쏙 피해 다녔다. 민첩을 올려놓은 것이 여기서 아주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뛰기만 해도 체력 수치가 조금씩 닳았다.
“진짜 이런 게 물몸이라고 하는 거구나.”
내가 이런 몸이 될 줄은 몰랐다.
항상 탱커만 해 왔기에 체력 수치가 낮은 포지션은 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나는 가재의 공격을 피해서 달렸다. 그것은 아주 거대해서 공격의 속도가 느렸고, 눈에 잘 보였다.
겁만 먹지 않고 날렵하게 피한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정도의 공격이었다.
그리고, 약 5분이 남았을 때였다.
가재는 힘을 잃었다고 해도 엄청난 움직임으로 나를 죽이고자 온갖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나는 타이머와 내 체력 수치를 동시에 확인했다.
충분하다.
나는 칼을 쥐고는 다시 한번 가재의 몸으로 돌진했다.
이번엔, 배가 아니다.
가슴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발을 굴렀고, 가슴마디 위에 안착할 수 있었다.
내가 올라온 것을 알아챘는지 가재는 나를 떨어뜨리려 마구 몸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는,
콰악!
접합부에 다시 한번 칼을 꽂아 넣으며 그걸 지지대 삼아 가재의 몸짓을 버텼다.
그리고 나는 가슴마디 위를 기어갔다.
껍데기가 아주 미끄러워 몇 번이나 떨어질 뻔한지 모른다.
타이머를 보자 남은 시간은 약 80초가량.
가재의 숨통이 점점 조이기 시작했을 거다.
나는 천천히 가슴마디를 기어가 부속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부속지와 부속지 사이, 마름모 모양의 구멍을 보았다.
그곳은, 아가미였다.
이미 숨이 부족했는지 아가미가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내 몸은 이미 검은 피로 물들어 온몸이 새까맸다.
그리고 나는 타이머의 남은 시간인 30초를 확인한 뒤, 칼을 하늘 높이 들어,
콰악!!
펄떡대는 아가미를 꼬챙이 꿰듯이 칼로 쑤셔 버렸다.
숨을 쉬는 기관이 칼에 의해 막혀 버리니 가재는 아까보다 몇 배는 달하는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캬악!
최대한 칼을 끝까지 밀어 넣으며 아예 가재의 움직임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가재는 계속해서 포효하기만 할 뿐 움직임을 멈출 줄을 몰랐다.
타격이 부족한 것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칼로 아가미 부분을 쑤셨다. 아예 숨을 쉬지 못하게 아가미의 입구를 봉쇄시키듯이 칼로 꽂았다.
하지만, 가재는 더욱 미친 듯이 몸을 튕겨 댈 뿐 죽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다른 방법이 필요한 건가!”
남은 시간은 무려 20초.
20초 안에 무조건 승부를 봐야만 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다시 몸에서 떨어져 새로운 약점을 찾는 것이라고는 불가능했고,
나는 여전히 아가미 부분에 붙어서 새로운 대책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에게 생각난 것은,
퀘스트였다.
나에게 주어진 퀘스트 ‘마나 운용법.’
성공할 수 있을까?
미지수였다.
시도한다 하더라도 성공률이 높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필드에 들어왔을 때부터 몸에 흐르는 마나를 느꼈다. 그것은 몸의 테두리를 타고 들어와 내 심장 부근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으윽!”
가재가 쉴 새 없이 몸을 버둥거리는 바람에 집중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리고, 심장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던 것을 서서히 손으로 보냈다.
푸른 빛의 마나가 내 손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고 그것은 물이 아래로 향하는 것처럼 자연의 섭리에 따라 칼로 향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너!”
샐라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밤마다 마나 운용법 수련에 얼마나 피와 땀을 흘렸는지를.
문자 그대로 정말 피를 토하며 했다.
그리고 서서히 마나가 칼로 스며들기 시작하더니,
검신에는 푸른빛의 오러가 서리기 시작했다.
나는 두 손 높이 하늘을 향해 칼을 들어 올렸다.
두 손이 가재의 몸에서 떼어진지라 순식간에 처리하지 않으면 내 몸이 추락했다.
그리고, 푸른빛의 오러가 서린 검을 다시 한번 가재의 아가미 깊숙이 찔러 넣었다.
캬아아아악!!!!
오러는 칼을 타고 아가미 전체에 파고 들어가 그 구멍을 완전히 메꾸어 버렸다.
[퀘스트 ‘마나 운용법’에 성공하였습니다!]
[보상이 제공됩니다…….]
[보상으로 10000골드가 제공되었습니다!]
숨을 쉬는 기관이 칼에 의해 막혀 버리니 가재는 아까보다 몇 배에 달하는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캬악!
최대한 칼을 끝까지 밀어 넣으며 아예 가재의 움직임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가재의 움직임이 멈추기 전에 학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나는 그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칼이 아가미에 박혀 있어 가재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학장이 가재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자 가재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형체를 잃어 갔다.
그러자 나는 엄청난 높이에서 뚝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악!!!”
떨어짐과 동시에 나는 눈을 꽉 감았다.
여기서 죽는 것은 아닐까,
학장의 속셈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바닥에 몸이 처박히는 것을 생각했지만,
푸욱!
누군가의 품에 안겨서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어어…….”
꾹 감고 있던 두 눈을 뜨니 나를 안고 있는 사람은 세이먼이었다.
그가 내가 떨어지는 걸 보자마자 달려와 나를 안은 것이다.
중력이 엄청났는지 세이먼 또한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었다.
“세, 세이먼.”
나는 순간적으로 눈에 눈물이 맺혔다.
거의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사실 그 높이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걸 학장도 알았기에 그렇게 가재를 돌려보낸 것이겠지만.
“괜찮아요? 세이먼?”
완충제 역할을 해 버린 세이먼의 품 안에 안겨 그에게 물었다.
그는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엄청난 충격 때문이었으리라.
“……축하해요. 루나.”
그러고는 힘들게 입술을 열었다.
[호감도가 4% 상승했습니다.]
내가 안겨 있었기 때문일까.
이 미친 호감도가 상승해 버리고 말았다.
다 좋은데 왜 초를 치냔 말이야!
나는 세이먼의 품에서 벗어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세이먼의 팔을 잡아 부축하며 그도 일으켰다.
오히려 다친 쪽은 세이먼인 것 같았다.
내가 세이먼과 함께 펠리엇, 정령술과 선배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자 그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해 주었다.
“루나! 너라면 잘할 줄 알았어!”
“겁도 없더라. 그렇게 큰 몬스터에 망설임도 없이 달려들다니.”
나는 그들의 말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들을 향해 웃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학장과 펠리엇이 눈에 들어왔다.
“…….”
그들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엄청난 의외라는 듯이.
그러고는,
“정말 정령술과에 넣어도 되는 걸까요? 아무리 제 욕심이라지만…….”
“……검법과에 넣어야 하는 것인가.”
“제 생애 일 학년이 오러를 쓰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나의 검술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