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18)화 (18/156)

17화. 또 한 번의 기회(1)

무료 급식소에서 나오는 아찔한 음식들.

유통 기한이 언제일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 딱딱한 빵, 묽다 못해 물에 가까운 수프까지.

정말 ‘죽지 않기 위해 먹었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나는 눈물 고인 눈빛으로 다짐했다.

“이 퀘스트, 반드시 성공시킬 겁니다.”

“…….”

샐라임은 말이 없었고.

나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다시 수련을 하기 위해 땅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후우!”

짧게 호흡을 내뱉은 채 다시 명상의 자세를 취했다.

가만히 아무 말 없던 샐라임은,

“……내가 널 어떻게 이기겠냐. 이왕 하는 거 도와줄 테니 열심히 해 봐.”

이내 졌다는 목소리를 냈다.

내가 유쾌한 목소리로 ‘고마워요!’라고 외치자, 샐라임은 진지한 목소리로 마나 수련에 대해 알려 주었다.

가만히 있는 칼이 말소리를 내는 정도였지만 왠지 실력자가 내 앞에 앉아 설명을 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자 봐 봐, 손에 마나를 가두는 수련은 ‘마나 운용법’의 기본이야.”

“네.”

“손에 마나를 가두는 방법을 익히면 그다음에는 심장에 가두는 연습을 해. 심장에 마나를 가둘 줄 알게 되면 그걸 ‘마나홀’이라고 한다.”

“…마나홀!”

“나무가 가지를 뻗듯 마나홀에서 마나를 온몸으로 퍼뜨린 다음에 자유자재로 몸속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나 운용법’이야.”

“마나홀은 마치 물 저장고 같은 곳이군요?”

“고렇지.”

하지만 침착하게 설명하던 샐라임은 곧 한숨을 내쉬었다.

이 수련법은 몸에 너무 무리가 가는 행위라서 하루에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사 필리페르파도 마나 운용법을 달성하는 것에 한 달이 걸렸다고 하지. 그것도 피를 토하면서 했댄다.”

“…그러면 전 한 달이 지나도 저 수련법을 못 익힌다는 거네요.”

내가 끙 소리를 내며 바닥 위로 엎어지는 시늉을 했다.

“혹시 모르지. 네가 필리페르파보다 강한 정령술사가 될지 누가 아느냐.”

샐라임이 덤덤한 어조로 말하며 이내 덧붙였다.

“하지만 테스트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전략을 짜야 한다. 가장 효율적으로 가장 단기간에 몬스터를 이겨 낼 수 있는 방법을.”

“그게 뭔데요?”

“네가 정 ‘마나 운용법’을 수련하고 싶다면 정해진 시간에만 하거라.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체‧근‧민을 올리는 연습을 하는 거야.”

“체‧근‧민이요?”

“그래. 네게 시험은 이제 약 6일밖에 안 남아 있어. 그 적은 시간으로 가장 쉽고 빠르게 올릴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일 거다.”

“그럼 육탄전으로 가라 이 말씀이신가요?”

“그래.”

샐라임은 체력, 근력, 민첩성을 늘려서 정령과 몸싸움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원래는 정령을 불러내는 법을 알려 주려고 했지만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불가능일 것이라 판단했다고.

“전투의 기본 기술을 익히는 훈련부터 들어갈 거다. 남은 시간에는 네가 원하는 ‘마나 운용법’을 연습해도 좋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몸을 단련시키는 연습과 마나 수련법을 동시에 해서 정령술과 테스트도 통과하고, 퀘스트도 이뤄 내겠다고.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는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있었다.

‘과연 완전히 불가능한 퀘스트가 나에게 내려왔을까?’

아닐 것 같았다.

무언가 열심히 하면, 퀘스트를 이뤄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할 수 있어, 루나.’

나는 그렇게 6일간의 육체 단련과 마나 수련에 돌입했다.

* * *

에르셈프는 첫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여유롭게 왕궁에서 나섰다.

왕실을 상징하는 화려한 무늬의 마차가 아카데미를 향해 천천히 굴러갔고, 그 안에서 에르셈프는 지시했던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루이아나 윌리어스의 본명은 사실 루이아나 밀리센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밀리센트 가문의 딸이라는 거죠.”

“그럼 왜 굳이 가명을 쓴 거지?”

“그건 저희도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만, 세간에 루이아나 밀리센트가 알려지지 않은 바로 보아 배다른 자식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작가가 감추고 있을 가능성도 있고요. 본인도 그걸 아는지 일부러 가명을 쓰는 듯합니다.”

“공작가 출생인데 일부러 신분을 감춘다……라.”

“더 자세히 알아 오겠습니다. 공작가가 워낙 보안이 강한 터라 사람을 시켜서 정보를 빼 오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알겠네.”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행원은 고개를 숙이더니 그에게서 물러섰다.

알수록 묘한 아이였다.

몸을 던져서 자신을 구하질 않나, 이제는 공작가의 딸인데 신분을 숨기고 있다니.

“샅샅이 조사해 오거라.”

더욱 알고 싶었다.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그 여자아이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겁니까?”

어렸을 적부터 친하게 지내던 근위 기사인 킬베르가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잠시 창문 밖을 응시하던 에르셈프가 이내 입을 열었다.

“……알 거 없잖아.”

* * *

“아이고…… 힘들어.”

정해진 과가 없는 나는 다른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을 때도 혼자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테스트를 준비할 시간이 는 것은 다행이지만.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까지는 육체를 단련했고, 체력이 전부 소진되어 더 이상 훈련이 불가능할 때는 가만히 앉아서 마나 수련에 돌입했다.

마나 수련에 있어서는 점차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손에 가두는 법조차 익히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육체 단련은 달랐다.

날이 갈수록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기본적인 전투 기술인 찌르기와 베기를 배운 나는 닷새 전보다 민첩해진 몸에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꼬마야, 아직 갈 길이 멀다. 고작 이런 걸로 만족하지 말도록.”

“칭찬 한번 해 주면 어디가 덧나요?”

내가 투덜거리며 대꾸하자 샐라임은 작게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나는 쉬던 걸 멈추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다시 한번 더…….”

얼마나 그렇게 칼을 쥔 채 통나무 앞에서 온갖 전투 기술을 시험해 보고 있었을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이아나 윌리어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아보자,

“역시 맞군.”

한 마리의 고고한 늑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 에르셈프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아까부터 나를 지켜본 것 같았다.

“전하, 여기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려던 참이다. 산책을 하다가 이쪽까지 들어왔는데, 마침 누가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 보여서.”

나는 고작 통나무를 상대하며 혼자 미끄러지고 자빠졌던 내 모습을 떠올리자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혼잣말을 계속하던데.”

“네? 아, 네.”

샐라임과 대화하는 것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모습으로 본 모양이었다.

그때, 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선심을 베푼다는 말투로 말했다.

“괜찮으면 내가 대련 상대가 되어 주지.”

나는 그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

이름: 에르셈프 카이센 비젠티아

나이: 18

직위: 비젠티아 왕국의 제3 왕자

호감도: 5%

+

재빨리 그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호감도가 5% 밖에 되지 않는데도 먼저 말을 걸고 대련 상대가 되어 주겠다고 나서다니.

원래 에르셈프는 자신의 마음을 열기까지가 되게 오래 걸렸던 상대였는데…….

5%라면 나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적어도 30% 정도는 되어야 적극적인 애정 공세가 시작되니까.

‘혹시 진짜 대련를 하고 싶어서?’

단순 호기심인지 뭔지 대체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일단 거절을 하기로 했다.

“괜찮습니다, 전하. 제가 아직 미숙하여 나무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내가 예의를 갖추어 마다하자,

“지금 거절을 한다는 것인가?”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날카롭게 내뱉었다. 그의 보랏빛 눈동자가 나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았다.

마치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사람은 처음이라는 양.

‘으음…….’

나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어떻게 또 한 번 예의 있게 거절하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퀘스트가 도착하였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귀에 익숙한 시스템 음성이 들려왔다.

‘마나 운용법’ 퀘스트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한다니.

중복으로 실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탓에 잠시 당황했다.

“전하, 잠시만요.”

나도 모르게 에르셈프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퀘스트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짧게 한마디를 던지고는 등을 돌렸다.

에르셈프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가만히 나를 기다릴 뿐이었다.

‘열람.’

두 글자를 읊자 글자들이 차례로 나열되었다.

+

# 제2 호감도 퀘스트

제목: ‘여자의 무기’

내용: 여자를 돌처럼 바라보는 남자 ‘에르셈프 카이센 비젠티아’에게 보호 본능을 유발하시오.

제한 시간: 1시간

보상: 모든 빚 상쇄

페널티: 5000골드 차감

+

‘오 마이 갓…….’

무슨 청천벽력 같은 퀘스트가 내려오고 말았다.

지금 당장 에르셈프를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떡하니 호감도 퀘스트가 내려온다고?

그것도 보호 본능을 유발하라는?!

이 게임은 아주 날 갖고 노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주 매혹적인 보상이 내려온 것은 사실이었다.

저걸로 빚을 상쇄하고, ‘마나 운용법’ 퀘스트를 성공시킨다면 무려 만 골드를 얻게 된다.

물론 ‘마나 운용법’ 퀘스트가 실패한다 하더라도 이 퀘스트를 성공시킨다면 빚쟁이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걱정이 되는 것은.

‘호감도가 오르면 어쩌냐는 거야.’

안 그래도 에르셈프는 직위가 왕자인 만큼 내가 함부로 대하기가 어려웠다.

호감도를 낮추기 위해 싹수없는 말을 내뱉는다든가, 상대방의 말을 무시하는 등의 행동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잘못해서 잡혀가면 어떡해.’

그럼 루이아나 인생 조기 종영이었다.

“흐음…….”

어서 빨리 결정해야 했다.

에르셈프가 나의 대답을 기다리며 바로 앞에 서 있으니까!

그때, 내가 퀘스트를 받은 것을 모르는 샐라임이 나를 향해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야! 도와 달라고 해! 백날 나무토막 때려 봤자 한 번의 대련을 못 이긴다고.”

그 말을 듣자, 나는 순식간에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스토리 퀘스트니, 호감도 퀘스트니,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정령술과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

이곳에 남을 수 있게 되는 것!

나는 이 학교에 꼭 남고 싶었고, 이 학교에서 나의 계획을 펼치고 싶었다.

이 게임 시스템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필요한 내 능력을 키워 줄 수 있는 곳.

그리고 그것이 수월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정령술과에 가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이나마 내 실력을 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에르셈프에게 보호 본능을 일으킨다면 일석이조고.

게다가 에르셈프는 검술에 아주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다고 하니, 분명 도움이 될 것이었다.

나는 등을 돌려 기다리고 있던 에르셈프를 향해 말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잠시 생각을 하느라 대답이 늦었습니다.”

“……그래서?”

“전하께서 대련 상대가 되어 주신다면, 영광이지요.”

나는 일부러 웃음을 지우며, 진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잠시 나를 응시하더니, 이내 말을 내뱉었다.

“시작하지.”

그렇게 나는 에르셈프와의 대련 구도를 취했고, 그는 가방에서 작은 목검을 꺼내 들었다.

항상 기본을 잊지 않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도구라고 했다.

나는 숏 소드를 쥔 채, 그는 목검을 쥔 채 마주 보는 자세를 취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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