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섯명은 너무 많잖아요 (17)화 (17/156)
  • 16화. 제안(3)

    “제 배정이 무효 처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나라는 것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유감스러운 소리구나.”

    “전 전학 온 지 이제 나흘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책상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그러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렇게 기회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해 보고 싶었다.

    “적성 테스트의 결과는 번복할 수 없다. 알고 있을 텐데?”

    그는 단호했고, 딱딱했다. 네가 무엇을 원하든 학교의 규칙은 존재한다는 목소리.

    이제 협상의 기술이 들어갈 때다.

    먼저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거래 내용, 받아들이겠습니다.”

    “거래? 그때 이야기가 끝난 것 아닌가?”

    분명 상대방은 쉽게 넘어오지 않을 것이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자세하게 말한다.

    “말씀하셨던 거래 내용뿐만 아니라 추가 요청까지도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학교 내의 변절자 무리의 행방을 찾아내라는 것, 거기에 그들의 신원까지 알아내는 것 모두 제가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빤히 응시했다.

    그러고는 한쪽 눈을 치켜뜨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와서 거래를 받아들이겠다고?”

    “네.”

    내가 여전히 고개를 숙인 모습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그는 대놓고 코웃음을 치기 시작했다.

    “하하하…….”

    “……?”

    “분명 그때는 살아가기에도 바쁘다고 거절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무엇이 다르다는 거지?”

    그리고, 이때부터 나의 특별함을 어필하기 시작한다.

    “학장님은 제가 필요하실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거래가 결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절 F반에 넣으셨던 이유는 저에게 알아서 찾아보라고 하신 뜻 아닙니까?”

    “루이아나.”

    “…….”

    “지금 네 모습이 어떤지 알고 있나?”

    그는 내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싫을 땐 안 하고, 좋을 땐 해 달라고 떼쓰는 게, 마치 어린애와 같아.”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일개 학생인 네가, 그때 한번 나와 거래를 할 기회가 생겼었다고 해서 특별해졌다고 착각하지 마라.”

    어디 감히 자신의 앞에서 거래를 제안하냐는 식의 반응.

    하지만 이 정도로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이대로 학교 퇴출을 당할 순 없다. 괴물이 득실득실한 학교 밖으로 나앉을 순 없단 말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시험을 봐서, 어느 과라도 들어가야 한다. 그게 정령술과면 더욱 좋고.

    나는 잠시 침묵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분명 제가 적임자라고 하셨던 말 기억합니다. 아직 유효할 텐데요.”

    “그땐 그랬지.”

    설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나는 이 타이밍을 위해 지금까지 빌드 업을 해 왔다.

    “저에게 테스트를 한 번 더 보게 해 주신다면, 추가 요청까지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네까짓 게 무슨 수로?”

    “변절자 무리에 아드님이 속해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면 이해하시겠습니까?”

    “……!”

    역시나, 그는 모르고 있던 정보였다.

    이제는 내가 우위다. 정보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했으니.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벌어진 입술이 작게 떨리는 듯했고, 눈빛 또한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그걸 가릴 모양인지, 의자를 돌려 등을 졌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군.”

    “다시 한번 정중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대방에게 기대감을 심어 주는 것.

    “학교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외부 조직에 이곳을 넘기시겠습니까, 아니면.”

    “…….”

    “학장님의 손으로 직접 처단하시겠습니까?”

    그에게 그가 만족스러워할 법한 미래를 그려 주는 것.

    아마 상대방은 이미 그 미래라는 이미지에 빠져 자신의 자존심은 생각하지 않을 터다.

    필립 유리츠는 얼굴이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의자를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알아봤다만은, 보통 아이가 아니구나.”

    “…….”

    “사람을 잘 봤어. 내가 참 똑똑한 아이를 좋아하거든.”

    “……감사합니다.”

    그는 잠시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펴더니, 말을 이었다.

    “원하는 과는 어디지?”

    “정령술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펠리엇에게 말해 놓지. 일주일 뒤에 시험을 볼 수 있게 해 주라고.”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허리를 숙여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톡톡.

    그리고 그는 검지로 책상 위를 두드렸다.

    “네가 제시한 정보에 내가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찾아오도록.”

    변절자에 대한 정보를 말하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바쁜데, 그의 거래까지 응해야 하니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학장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 * *

    학장실 밖에는 아미카 선배가 초조한 눈빛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루나!”

    내가 나오자마자 그녀는 내 어깨를 붙들었다.

    “어떻게 되었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채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 툭 치면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고작 두 번밖에 보지 않은 사이에 이런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 정령술과가 폐지되지 않기 위한 노력인 건가.

    “어떻게 되었냐면요.”

    나는 한쪽 입꼬리를 당겨 미소를 지었다.

    “…….”

    “일주일 후 다시 테스트를 볼 수 있게 되었어요.”

    “뭐라고?! 진짜?!”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더니 이내 내 두 손을 잡고는 방방 뛰기 시작했다.

    “루나! 정말 잘 됐어. 정말.”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그녀를 대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나는 학장님 얼굴만 봐도 무서워 죽겠던데. 독사처럼 생긴 게 진짜 재수 없다니까.”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건 비밀이에요.”

    그녀와 나는 교무실에 있는 정령술과 담임인 펠리엇을 찾아갔고, 테스트에 관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일주일 뒤 테스트용 몬스터와 일대일 전투를 해서 이긴다면 들여보내 주마.”

    “일대일 전투라니…….”

    “너무 걱정하지 마. 하급 몬스터일 테니까.”

    어깨 밑까지 머리를 기른 장발 머리의 펠리엇은 무조건 나를 정령술과에 집어넣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학장님께 혼나더라도 내가 혼날게. 너는 일주일 동안 연습만 하거라. 알겠지? 물론 이 사항은 비밀로 하고.”

    나는 아미카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1차 테스트 때 싸웠던 물방울 모양의 정령은 계급이 뭐예요?”

    “아, 걔는 정식 정령이 아니어서 좀 애매하긴 한데, 아마 하급 정도일 거야.”

    나는 그때의 싸움을 다시 떠올렸다. 비록 3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반격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가시 모양으로 변해 나를 마구 때리던 모습과 칼로 몇 개 쳐 내지도 못하던 내 모습.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일주일의 시간이 있다고 하지만 나에겐 싸움 전적이 전무했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살아 나갈 세상도 만만치 않은데, 이런 작은 테스트에서 꺾일 수야 없다.

    그때, 샐라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마야, 걱정하지 마라. 불의 상급 정령이 네 옆에 있으니까.”

    무얼 걱정하냐는 듯한 말투. 나는 처음으로 샐라임이 믿음직스럽게 다가왔다.

    “이길 수 있겠죠?”

    “물론이지.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누워서 떡 먹기로 깔고 뭉갤 거다.”

    “…흠.”

    내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자,

    “고생할 준비나 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 * *

    그날로 나와 샐라임은 일주일간의 특훈에 돌입했다.

    기숙사 방에서 훈련을 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날 밖으로 이끄는 샐라임에게 물었다.

    “밖에서 해야 하는 거예요?”

    “마나를 느끼려면 자연으로 가야지.”

    “……마나!”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도 마나를 느낄 수 있게 된다니, 마음이 설레었다.

    “저쪽, 저 풀숲으로 들어가자.”

    “저기요?”

    “사람이 안 보이는 곳에서 해야 할 것 아냐. 그래야 집중도 되고.”

    우리는 도저히 길이라고 보이진 않는 기다란 풀숲 속으로 들어갔다.

    허벅지까지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헤치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빈 공터가 나왔다.

    학교 안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도 쓰지 않는 공간이었다.

    “앉아.”

    공터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나는 바닥에 칼을 내려놓았다.

    샐라임은 이내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모든 마법은 마나에서부터 시작한다. 넌 이미 마나를 느낄 수 있을 거야. 친화력이 높으니까. 아마 자각을 못 하고 있겠지.”

    그는 정령술이 아닌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마법이요?”

    그러자 샐라임이 덧붙였다.

    “정령술도 마법의 일종이다. 정령을 불러내는 마법이라고 할 수 있지. 네 학교에 존재하는 마법과는 순수 마법과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군요.”

    “눈을 감고 집중해서 자연에 흐르고 있는 마나를 느껴 봐. 처음에는 쉽지 않을 거야. 아무리 세상에 깔려 있는 게 마나라도, 인식하지 않으면 평생 모르고 사는 게 마나니까.”

    “해 볼게요.”

    나는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마나, 마나를 느껴야 한다.

    마나는 공기와도 같아서 조금만 집중하지 않아도 아무런 느낌 없이 흘러 지나간다고 했다.

    “…흡.”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손바닥과 질끈 감은 눈.

    정신을 집중하자 온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이잉.

    그러고는 이내, 마치 푸른색 형상을 띠는 것만 같은 작은 에너지의 흐름이 내 몸의 테두리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마나! 마나를 느꼈어요!”

    “보통 사람이 마나를 느끼려면 빨라도 한 달은 걸리는데, 이렇게 바로 느끼다니 대단하구나.”

    그는 웬일로 칭찬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기뻐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아직 시작일 뿐이며, 그 마나를 손에 가두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손바닥에 마나가 들어왔을 시 주먹을 쥐어 붙잡는 연습을 해 봐. 몽글거리는 무언가가 피부로 느껴진다면 성공이다.”

    그때였다.

    샐라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에게 퀘스트가 도착했다.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

    # 제2 스토리 퀘스트

    제목: ‘마나 운용법’

    내용: 마나 수련을 하는 당신, 마나를 당신의 몸에 가두는 ‘마나 운용법’에 대해 익히시오.

    제한 시간: 일주일

    보상: 10000골드

    페널티: 없음

    +

    이번엔 스토리 퀘스트가 내려왔다.

    스토리 퀘스트는 호감도 퀘스트와 다르게 남주인공들과 직접적으로 엮이는 일이 없는 퀘스트였다.

    게다가 저번 ‘검법F반’ 퀘스트처럼 나를 검법과로 끌어들이려는 불순한 의도가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이제 거지 탈출인가?!’

    “꼬마야, 무슨 일인데 그리 기뻐해.”

    “퀘스트가 도착했어요.”

    샐라임에게 내 게임 시스템에 대해 말한 이후로 처음 도착하는 퀘스트였다.

    샐라임은 어서 자신에게도 알려 달라며 졸랐다.

    “‘마나 운용법’을 익히라는데, 이거 많이 어려워요?”

    “…마나 운용법을 익히라고 했다고……?”

    그는 내 말을 똑같이 되풀이했다.

    “그래도 보상이 만 골드나 돼요. 페널티도 없고!”

    “페널티가 없는 건 참 다행이구나. 마나 운용법은 평균적으로 몇 년 이상 걸리는 수련 방법이야. 게다가 과하게 연습하면 몸에 무리가 와서 천천히 시간을 두고 수련해야 하지.”

    “…헉.”

    “그냥 포기하는 게 나을 거야.”

    샐라임이 금세 힘이 없어진 목소리로 읊조렸다.

    항상 자신감에 넘치던 샐라임이 이렇게 의기소침해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팡팡!

    나는 가슴을 치며 대답했다.

    꼭 이번 퀘스트를 성공시키고 싶었다.

    왜냐하면…….

    “무슨 소리예요, 샐라임.”

    “…….”

    “마나를 느끼는 것도 한 달 정도 걸린댔는데 저는 고작 몇 분 만에 성공했다고요. 마나 운용법도 분명 가능할 거예요. 그리고 퀘스트에 실패한다면…….”

    “?”

    “또 무료 급식을 먹어야 한다고요.”

    그건 정말, 맛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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