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정령술과(2)
커다란 구슬은 사방으로 새하얀 빛을 내며 내 앞에 놓였다. 마치 손을 갖다 대면 어딘가로 텔레포트 할 것만 같이 신비로운 도구였다.
“네가 할 건 따로 없어. 그저 여기에 손만 올리면 돼.”
아미카 선배가 어서 대 보라며 구슬을 눈짓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선천적 자질 테스트라고 했다.
세이먼이 준 책자에 정령술과는 자연 친화력 테스트를 한다고 했으니 이 세 번째 시험이 그걸 의미하는 게 분명했다.
“…….”
손을 대기가 망설여졌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시엔 입 닥치고 이 학교를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어서 대 봐. 너의 자질이 무엇인지 뜰 거야.”
클라우드 선배가 부추겼고, 나는 선배들을 쭉 한번 바라본 뒤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
구슬에 손을 대자 그것에선 아주 따뜻한 온기가 뿜어져 나왔다. 손을 떼고 싶지 않을 정도로 포근해서 마치 엄마 품속 같은 느낌이었다.
오 초 정도 지났을까. 구슬 속에서는 소용돌이가 마구 돌아갔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 전부 말이 없었다.
곧이어 구슬은 점점 더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온도가 계속해서 올라가더니 손을 계속해서 대고 있기에도 뜨거운 온도였다.
“떼지 마! 계속 붙이고 있어.”
하지만 아미카 선배의 단호한 말에 나는 눈을 꾹 감고 참았고, 이내 구슬 안에 작은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토네이도 모양이었다. 짙은 붉은색과 주황색이 섞인 토네이도는 점점 크기가 커져 가더니 구슬 전부를 뒤덮었다. 내 얼굴보다 두 배는 큰 구슬 전체가 붉어졌으며, 구슬은 마치 곧이라도 폭발할 듯이 부르르 진동이 올라왔다.
“……!”
그러자 클라우드 선배가 내 손목을 잡더니 구슬에서 손을 떼 내었다. 더 이상 대고 있지 말라는 뜻이었다.
얼얼해진 손바닥을 바라보자 얕은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새빨갰다. 약간의 연기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어.”
그러곤 아미카 선배가 작은 음성을 내뱉더니 더 이상 말을 이어 가지 못했고, 다른 선배들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한 선배가 입을 뗐다.
“이거 반장 이후로 처음 아닌가? 구슬이 이렇게 진동한 것은 두 번째로 보는군.”
“이렇게 전체가 붉어지는 것도 처음 봤어. 불태워 버릴 기세였는데.”
그때였다.
내 허리 쪽에서 이상한 울림이 올라왔다.
아까부터 느낀 감각이지만 애써 무시했는데, 그 울림은 점점 커지더니 내 허리 전체를 흔드는 것 같았다.
그 울림의 근원은 내 허리에 찬 검이었다.
지잉. 지잉.
숏 소드가 일정 주기로 진동하며 계속해서 울림을 내뱉고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했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나 혼자 안절부절못할 뿐이었다.
내 허리를 부숴 버릴 듯한 강한 울림에 나는 허리춤을 부여잡았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최대한 참으며 의자에 앉았다.
억지로 검을 옆으로 눕히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루이아나. 너는 불의 자질을 가지고 있어. 그것도 아주 센 개성의 자질을. 그래서…….”
그래서? 뭐가 문제라는 건가?
“정령이 너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어. 대부분 개성이 센 애들은 정령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거든.”
그러곤 클라우드 선배는 아까의 필드로 나를 이끌었다.
“정령이 너를 선택하는지를 시험해야 해. 사실상 이 절차가 가장 중요한데, 정령이 너를 택하지 않을 시 정령술을 배울 수 없어.”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앞서 했던 테스트는 다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생각해 보면 앞의 테스트들은 특성 측정, 필기시험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검사 같은 것이었다.
이 세 번째 관문이 사실상 정령술과의 메인 테스트 같은 것이라고 보아야 했다.
클라우드 선배는 무어라 입으로 작게 중얼거리더니 정령을 소환해 냈다.
물, 불, 대지, 바람 등 여러 요소를 상징하고 있는 작은 정령들이 하나하나 나타났다.
그리고 곧이어 대여섯 개의 정령들이 전부 모습을 드러냈고, 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스르르.
시간이 점차 지나자 아주 붉은 색의 정령을 제외한 다른 정령들은 하나둘씩 모습을 감추었다.
너는 필요한 계약자가 아니라는 듯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가장 붉은 빛의 정령. 그는 나를 가지고 놀듯이 내 주변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제발…….”
나도 모르게 입에서는 애원의 소리가 나왔고, 그가 꼭 나를 택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더 이상은 제대로 서 있기가 힘에 부쳤다.
아까부터 계속 진동하던 검 때문이었다.
그것은 아주 큰 울림을 내뿜으며 나에게 존재감을 과시했고, 불의 정령이 나에게 가까이 올 때마다 더욱 크게 진동했다.
그때였다.
내 주위를 빠르게 돌던 정령이 갑자기 움직임을 거둔 채 내 몸 앞에 우뚝 멈춰 섰다.
“…….”
선배들은 숨을 죽이고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초가 지났을까, 불의 정령은 바람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이더니, 이내 내 품으로 쏙 들어왔다.
“와!”
선배들은 모두 소리를 쳤고, 나는 이게 합격인 게 맞냐는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합격이야! 합격!”
나는 그제야 필드 위에 무릎을 대고 엎어지며 긴장을 놓았다.
“……휴우.”
아미카 선배가 필드로 달려와 나를 부축해 주었고, 나는 밖으로 나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역시 통과할 줄 알았다니까.”
“우리 일 학년이 보통내기일 리가 있겠어?”
선배들은 자기들이 더욱 기뻐하며 방방 뛰었다. 나보다 더 기쁘다는 듯 춤을 추며 내 등을 팡팡 때리기까지 했다.
“반장! 얘 면접도 봐야 해? 괜찮지 않아?”
마지막 관문은 일대다 면접이라고 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총 점수를 매겨 과에 들어올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라고.
반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통과시켜.”
라고 작게 읊조렸다.
“역시!”
선배들이 쾌재를 불렀고,
“자 보자… 점수를 계산해 볼까.”
아미카 선배가 펜을 쥐고는 종이를 차례로 훑기 시작했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선배를 바라봤다.
선천적 자질도 센 편이고 정령도 날 선택했지만… 첫 번째, 두 번째 테스트가 너무 망해 버렸다.
“몇 점이야? 아… 진짜로?”
“조용히 좀 해.”
점수는 처참한 것 같은데 다들 격려를 해 주는 모습이 합격일지 불합격일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자… 총합…….”
“…….”
“21점!”
“……!”
나는 커트라인이 몇 점인지 모르기에 당황스러운 눈동자로 선배들을 훑어볼 수밖에 없었다.
두근두근.
긴장하지 않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심장이 떨려 왔다.
“통과!”
“커트라인이 20점이었어. 문 닫고 들어온 걸 축하해!”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소리를 지를 뻔했다.
선배들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내 마음을 저울질하며 장난을 쳐 왔고, 나는 너무나도 다행스러운 마음에 찔끔 나오려던 눈물을 꿀꺽 삼켰다.
나는 아미카 선배가 들고 있던 종이 가까이로 다가갔다.
내 점수가 주르륵 쓰여 있는 문서였다.
첫 번째 테스트가 1/5, 두 번째 테스트엔 0/5.
“…….”
이거 부정 합격 아닌가?
그러나 세 번째 테스트가 10/10, 네 번째 테스트가 5/5라고 쓰여 있었다.
그렇다면 총 16점인데 왜 21점이 된 거지?
그러자 아미카 선배가 내 의아함을 눈치챘는지 쿨하게 말해 주었다.
“세 번째 테스트에서 가산점 5점 플러스 되었어. 너처럼 강한 자질을 보이는 사람은 엄청나게 드물거든. 나도 반장 이후로 처음 봤어.”
나는 다행인 동시에 한편으로 의아했다.
어떻게 내가 그런 자질을 가지고 있는 거지? 게임에서부터 여주인공 캐릭터가 불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콘셉트인가?
하지만 써먹지도 않을 콘셉트를 왜 정해 놓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하지만 마치 자신의 합격처럼 하나같이 몸소 축하해 주는 정령술과의 선배들 덕분에 저절로 웃음이 터뜨려졌다. 아미카 선배도 다가와 내 어깨를 안아 주었다.
“축하해, 루이아나!”
그리고 그때,
시스템의 음성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검술F반’ 퀘스트에 실패하였습니다!]
[페널티가 제공됩니다…….]
[페널티로 5000골드가 차감되었습니다.]
[보유 골드는 아이템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하하… 하하…….”
나는 선배들과 같이 웃다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럴 수가. 퀘스트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
‘아이템창 열어.’
무려 오천 골드 차감이었다. 무려……. 삼천 골드의 빚이 생기다니. 나는 속으로 탄식하며 한숨을 삼켰다.
“하아…….”
물론 퀘스트를 거역하기로 했을 때부터 예상한 일이니 괜찮았다. 단지…단지,
‘또 무료 급식이나 먹어야겠구만.’
조금 각박해질 뿐이었다.
* * *
세이먼은 본관 5층의 학생회실에서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엔 무거움이 담겨 있었으며, 매번 짓는 미소 또한 언제 그런 것을 담았냐는 듯 굳게 입술을 다물고 있었다.
그에게선 마치 필립 유리츠의 분위기가 풍겨 왔다.
나른한 눈빛에서는 상대방을 꿰뚫는 듯한 날카로움이 묻어져 나왔으며 그가 향하는 시선에는 상대방을 하나하나 해체하는 듯한 잔인함 또한 담겨 있는 듯했다.
“…….”
창문 밖으로 운동장의 전경이 보였다.
행사의 마지막 날인 만큼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분주하게 부스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학생들의 마지막 선택이자 발악이었다.
“……!”
그리고 운동장 가장 끝, 평소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정령술 부스에 눈길이 간 건 우연이었다.
그곳에선 루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활짝 웃음을 지으며 부스의 막을 나오고 있었고, 사람들은 직접 바깥까지 마중을 나와 주며 그녀의 손을 잡고 흔들어 주고 있었다.
신나 보였다.
행복해 보였고.
그의 인상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다치게 하고 싶진 않았는데, 거슬리게 하네.”
세이먼은 날카로운 푸른빛 눈동자를 반대 방향으로 굴려 시선을 돌렸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눈빛에는 강한 욕망이 담겨 있었다.
“혼자서만 행복하면 안 되지.”
그는 잠시 턱을 추켜올리더니 몸을 돌려 창문을 등졌다. 그러고는 책상 의자에 앉아 지금까지 처리하던 업무 서류를 쳐다보았다.
적성 테스트 행사인 만큼 학생들의 결정된 적성을 결재하는 일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내렸다. 온갖 학생들의 학생 기록부를 하나하나 펼쳐 보며 결정된 적성과 부여받은 점수를 대조하여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수많은 서류가 빼곡하게 쌓여 있었지만 그의 자리 바로 앞에는 하나의 서류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름: 루이아나 윌리어스
학년: 1
적성:
적성 칸은 공란이었다. 아직 결과가 세이먼에게까지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손에 펜을 쥔 채 잠시 고민했다.
굳게 다물린 입술이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고는, 이내 서류 위에 무언가를 적었다. 짧은 획수였다.
“…….”
그때였다.
톡톡.
누군가가 창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뒤를 돌자 창문 밖에서는 작은 고양이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새끼인 듯 작고 온몸이 검었다.
그는 창문을 열어 능수능란하게 고양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
“야옹.”
고양이는 그의 품에 안겨 야옹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작은 발짓조차 하지 않은 채 얌전하게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응. 나도 알아.”
세이먼은 무언가를 중얼거리듯 작게 입을 움직였다. 마치 고양이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모습이었다.
고양이는 알아들은 것처럼 그의 대답에 맞추어 야옹, 야옹 울어 댔다.
그는 고양이를 안아 든 채 다시금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거대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루나가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곤 그녀를 눈에 담으며 낮은 목소리를 읊조렸다.
“……어딜 함부로.”
이내 고양이는 그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그의 집무 책상 위로 가볍게 내려앉았다.
작고 유연한 다리를 사뿐사뿐 걷는 발걸음은 이내 루나의 서류 위를 질근질근 밟아 댔다.
그녀의 서류 위에는 펜촉의 작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름: 루이아나 윌리어스
학년: 1
적성: X
그 모습을 세이먼은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